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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경을 극복하라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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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에 있는 말씀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사람이 살다보면, 허무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없이 허전함을 느낄 환경도 만납니다. 전혀 즐거움이란 있을 수 없는 직업과 그런 환경에서 살 경우도 있습니다.(EX:소련에 벌목공의 경우, 북한의 탈출자들의 경우)그런가 하면, 교회에 나와도 항상 소외감을 느끼며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과 환경에서는 신앙에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이러한 때, 사탄은 우리를 더욱 공격하여 우울증의 늪으로 깊이 빠져들게 합니다.
오늘 다윗은 바로 이런 경우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그렇게 표현 하였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란 말은 희망보다는 죽음의 그늘이 서려 있는, 즉, 살았으나 사는 기쁨이 없는 그런 환경을 말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때때로 '나의 인생', '나의 가정', '나의 직업', '나의 환경'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쩔수없는 환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자니 그런 삶이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란 말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많습니다. 인생을 기쁨과 감사로 살지 못하고,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주어진 환경, 또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 환경을 탓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신앙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그러한 환경을 극복해 낼 수 있었는가우리가 다윗의 일생을 보면, 기가 막힐 웅덩이들이 너무나 많은 삶을 살은 것을 봅니다. 이새의 말째아들로 태어나,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기 까지 그에게는 많은 좌절과 시련의 고비들이 첩첩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잘못이 없이 골리앗을 쳐서 이긴 후 부터 사울 왕의 질투와 증오심에 시달려야 했고,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도망쳐 숨어야 했습니다.
사람이 이럴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공연히 좋은일 해 놓고 미움을 당하고, 더욱이 죽이겠다고 따라 다녀, 그것을 피해 다니는 경우를 여러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너무나 억울한 것 아닙니까

가령 공직에 계신 분들 중에 이러한 경우를 당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서, 국민들을 위해서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적 모함으로 그 자리에서 밀려 나거나, 구속당하는 일이 있다고 가정해 보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지난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들의 경우들이 모두 이러한 예들과 같다고 봅니다. 정의로움을 위하여 바른말 했다고, 쫓겨남을 당하고, 피신하며 사는 동안 그것이 그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신앙 고백을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신앙적 교훈을 찾게 됩니다. 즉 우리 신앙인은 비록 환경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두려워 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그 환경을 극복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윗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주께서 내가 처한 그런 환경속에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 누가 나와 함께 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 아무런 쓸모 없는 사람들이 제 아무리 많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꼭 필요한 사람, 한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사람이 누구냐 할 때, 다윗은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니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함을 믿는 신앙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믿는지 못 믿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보통때, 평소때는 모릅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닥치거나, 개인에게 불행스러운 환경이 생길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믿음을 알게 됩니다.(EX:목회생활 중에 경험으로 보면, 평소에 잘 믿는 것 처럼 보였던 사람들 중에도 정작 어려운 환경에 들어갈 때, 그것을 신앙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낙심하는 경우를 많이 봄)참으로 말이 쉽지, 정작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면 우리 모두 사람인 고로 당황해 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곧 신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청장년 그룹성경교재를 읽는 중에 환경을 극복하는 세가지 방법이란 글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1) 상처주는 사람에게서 떨어지라고. 그리고 상처받은 감정을 용서함으로, 이해함으로 거두어 들이라고...원수의 목전에서도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라고... 2)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 드리라고...설령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내일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그리고 3) 될 수 있는 한 모범을 보이라고...
투덜거리는 투집사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간증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라고.... 퍽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 마찬 가지입니다. 좋은일 있을 때 누가 기뻐하지 않겠으며,성공할 때, 누군들 감사하지 못 하겠습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의 신앙이 아직도 겉도는 신앙이 아닌가 살펴야 하겠습니다. 정말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행할 때' 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교회에서 힘들게 일하기 보다는 쉽게 믿으려고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일불 선교를 강조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첼례 기독병원을 짓는일에서 헌금을 강조한다고 그렇게 좋게만은 아니게 받아 드리는 교우들도 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교회는 선교만 해야 하느냐 고... 교육도 하고, 친교도 하고, 다른 것도 다 해야 하는데, 돈 걷우어 모두 칠례로만 보내면 어떻게 하려느냐 고 겉으로는 표현은 아니했어도 내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다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빗을 졌어도 주님사역을 위해 빗을 졌다면 그 이상 더 영광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가진 것에서 나 자신을 위해 써 버린 것 보다, 아쉽지만 주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쓰는일에 동참 했다면, 그 이상의 영광스러운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 마음에 불평스러운 생각이 든다면,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더 많은 헌금을 낸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적으로, 우리 신앙의 사람들은, 현재 환경에서 불평하지 말고, 주께서 함께 하심을 바라보면서 그 환경을 극복해 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과연 나와 함께 해 주시겠는가 그것 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일에, 주님이 옳다고 인정해 주시겠는가 내가 지금 교회에 대하여 이런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데, 과연 주님께서 내 이런 불평을 정당하다고 인정해 나와 함께 해 주시겠는가 그것 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그렇다고 확신이 생기면, 그 사람은 바로 주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그 신앙으로 자신의 환경에서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종종 시험드는 경우를 보면, 남이 하는 일에 반대하다가, 남들이 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일에 극구 반대하다가, 시험에 빠지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럴 때 시험에 빠지지 말고, 과연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일에 주께서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시겠는가 를 먼저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절대로 자신의 처한 환경에서 낙심하지 않습니다. 16세기 종교 개혁자 루터의 경우에서 보면, 당시 자신의 생각하는 바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을 때, 그 많은 개혁의 난관을 이겨 냈습니다. 때로는 목숨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행할 때도, 주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끝까지 걸어 나아 갔습니다.

환경을 극복한 성공적 사례는 구약의 (룻) 에게서도 찾게 됩니다.
룻이 걸어온 길은 문자 그대로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길이 었습니다. 그녀는 모압에서 국적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어 혈육도 남기지못한채 일찍이 청상 과부가 되었고, 흉년으로 과부 시어머니를 따라 외지 베들레헴으로 이주해와, 이삭을 주우면서 끼니를 때워야 했고, 그러다 마침 보아스의 눈에 들어 애정의 감정으로 재혼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그 아들이 다윗의 할아버지가 된 사실을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모름즉이 신앙의 사람은 현재의 환경에서 주님이 함께 하면,내일이 있음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 앞에 상을 베푸시는 날이 올 것을 바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환경에서 정말 참기 어려운 분들이 계십니까룻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환경에서 칵 죽어 버리고 싶은 분들이 계십니까여러분 보다 더 불행스러운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들 가운데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도리어 간증거리를 많이 쌓아 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 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 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는 감격의 고백이 나올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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