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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양 받으시는 하나님 (시 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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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네 가지가 있습니다. 할랄, 야다, 자마르, 샤바흐가 있습니다. 이 네 개의 단어는 찬양하라는 뜻만 가진 것이 아니라, 야다와 자마르 는 감사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 가운데 여호와의 이름을 찬 양하라 는 말씀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 시간에는 '여화의 이름을 찬양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받고자 합니다. 시편113편은 이스라엘의 3대 명절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기 동안 성전과 회당들에서 애송하였던 시편 입니다. 추수감사절을 2주간 앞두고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 의 음성을 듣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시113편의 1-4절은 찬양받으시는 영광의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며, 5-9절의 말씀은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즉 전반부는 찬양을 받으실 수 밖에 없는 절대적 하나님을 보여 주며, 후반부는 은혜의 하나 님 곧 우리 인간을 구체적으로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첫째: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사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 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한 것입니 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께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여 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인간의 본문을 잃어버 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 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 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즉 타락한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들이 다시금 찬양을 하게 된 것은 우리의 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 는 그의 사랑하신 자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자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 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우리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많은 사람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토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여호 와의 이름을 찬양하여 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여호와의 종들에게 하나님 을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종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종에 해당하는 히 브리어는 에베드입니다. 에베드는 주인에게 예속되어 주인에게 봉사하며, 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에베드는 예배자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 호와의 종인 우리들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와 예배를 통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찬 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기도 합 니다만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종으로 선택받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영광 중에 최고의 영광입니다. 찬양드릴 수 있음을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2.둘째:우리가 찬양드려야 하는 여호와는 어떤 분입니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찬양드리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하 나님을 찬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택하여 주심 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케 하셨습니다. 무엇을 찬양하여야 합니까 우리가 찬양하여야 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1절 말씀에 세 번이나 반복적 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는 것은 막연하게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이름 속에 나타난 여호와의 모습에 따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찬양하여야 하는 여호와의 모습을 자세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 양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 높이 계신 영광의 하나님 이시만, 스스로 자기을 낮추사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십 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문에 나 타난 구체적인 은혜로신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1.우리가 찬양하는 분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위대하 십니다. 왜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십니까 많은 이유에서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라고 표현했습니다. 하 나님께서 앉으셨다는 것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으로서 보좌에 앉으셨다는 것입니다. 높은 위에 앉으셨다는 것은, 어느 것도 더 이상 높을 수 없는 절대적 인 위치에 앉으신 영원한 만물을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사랑하는 성 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생물과 사람과 만물과 그리고 온 우주를 다스리십니다. 이러한 영원한 통치자로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 은, 1)우리의 찬양을 받으시는 영원한 주님의 모습입니다. 또한 낮은 곳에 처 해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곧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 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높은 곳에 가만히 계신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있는 자들 을 이끌어 올리기 때문에 더욱 그리고 진정으로 위대하십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온전 히 찬송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우리가 찬양하는 분은 세상을 찾아오셔서 천지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찾는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높은 곳 에 계시지만 세상과 동떨어진 별세계에 계시지는 않습니다. 높은 곳에 계신 하 나님은 세상을 친히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낮 추시고 죄악으로 죽음을 향하여 절망가운데 있는 우리를 만나시려고 사랑으로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찾아오신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성 육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친히 우리를 만나시려고 찾아 오셨습니 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 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 심이라 (빌2:6-8)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소망입 니다. 모든 구원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뤄집니다. 이 처럼 우리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이 어떠한 가 를 살펴 부족한 점을 채워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3.우리가 찬양하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모습은 바로 은혜로우신 모습입니다.

 스스로 낮추시고 이땅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곧 은혜의 하나님으로서 경제적으 로나, 사회적인 면에서 고통과 멸시를 제해 주시고 새로운 힘과 소망을 주시는 분이 십니다. 7-9절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1)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켜 주십니다. 진토는 땅의 흙을 의미합니다. 진흙 은 우리의 육체가 형성된 근원적 자료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모습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므로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생기가 떠나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점에서 진토 라는 것은 하나님의 생기가 빠져버린 죽음과 무의미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 습니다. 진토에 있는 가난한 자는 어떤 상태의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생기가 살 아진 먼지 속에서의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죽음 속에서 헤메이는 사람에 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2)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십니다. 앞에서 가난한 자는 영적으로 가난한 자 이지만, 궁핍한 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궁핍한 자를 하나님의 도움을 찾는 의로운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궁핍 한 자가 항상 잊어 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 로다 또한 시편37:14절에서는 궁핍한 자를 정직하게 행하는 경건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왜 궁핍한 자를 왜 의롭게 보고 경건하게 봅니까 여기에는 시대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이들이 가난해진 것은 악인의 핍박때문이며, 이러한 궁핍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구원을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불에 타고 남은 재를 내다버린 잿더미, 속에 즉 신분적으로 무시당하는 상태이지 만, 더 근본적으로는 구원받은 사람에게 제외된 것입니다. 이러한 자를 하나님께 서 드셔서 백성들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십니다. 이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여기 서 방백들은 세상의 권세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사 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들입니다. 또 방백들은 인색함이 없이 자발적으로 하나 님께 예배를 드리거나 하나님께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방백들은 하 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러 한 사람들은 당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궁핍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절망적인 상태에서 새로운 힘과 소망을 얻어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경건한 사람이 되어 다른 방백들과 사귀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이루시 는 하나님이 참으로 영광받으실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드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이요, 선택받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 시며,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갖가지 은혜를 베푸십니다.

 3.세째: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되 하늘 위에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에 적합한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양의 성격은 어떠합니까 1)시간성/영원성: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되 지금부터 영원까지 찬양하여야 합니 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인간의 시간을 뛰어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 지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이 땅에서만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 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 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계3:15)

2)장소성/셰계성:해돋는 데서 해지는 데까지 복음성가 중에 해뜨는데 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 이름 찬양받으리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시간적으 로 제한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제한을 받지 않음을 말씀합니 다. 어디서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것은 소리 나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아름다운 생활이 가장 좋 은 찬양입니다. 이 찬양이 여러분께 있기를 축원합니다.

 3)포괄성/전체성: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남녀노소 구별없이 찬양을 드려야 합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찬 양의 유익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막는 모든 것이 열립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으나 찬송할 때 열리는 역 사가 있었습니다. 찬양할 때, 영적인 문제가, 건강의 문제가, 경제적인 문제들 이 모두 열리게 됩니다. 이러한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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