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푸른 인생3 (시 23:1-6)

첨부 1


지난 주일에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하는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은 양과 같이 되 새김질하는 동물입니다.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사람으로서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헉슬리라고 하는 사람이 쓴 공상소설 가운데 용감한 신세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래의 모든 제도가 다 편하게 되고 고통이 없는 세계가 오는데 그 소설의 주인공이 나에게 고통을
달라!고 하는 부르짖음이 소설 마지막 내용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알아서 스스로 눕거나, 되새김질 하는 지혜를 갖지 못하여 자꾸 뜯어 먹기만 하고 욕심만 채우려 하기에 인생에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아시는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눕히시고 되새김질 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때때로 고난과 고통으로 들어 누워 있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순간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진주와 같은 인생을 사는 놀라운 비밀이 그 속에 있기에 하나님이 눕히신 곳은 푸른 초장이며 쉴만한 물가요 거기서 영혼의 소행함을 입고 우리가 의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도 역시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는 말씀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국 휴스턴 제일 감리교회의 챨스 알렌 목사님이 쓴 시편 23편에 대한 책들 가운데 심령의 치료자 하나님이란 책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이 목사님에게 큰 회사의 사장이 찾아왔습니다. 이 사장은 말단 사원으로 그 회사에 들어가서 그가 지닌 비상한 능력과 열성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마침내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외면적으로는 사장으로서 화려한 인생을 사는 것같았으나 실상 그는 사장이 됨으로 해서 잃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경쟁회사와 끊임없는 보이지 않는 경쟁을 계속해야 하고 경쟁회사가 실적이 조금만 높아가도 불안 초조 긴장이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편히 쉬지 못하고 긴장, 긴장 또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동안에 그는 병에 걸리게 되어 그의 주치의가 백방으로 그를 치료해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때, 그 담당의사는 그 사장에게 목사님과 상담해 보기를 권면하여서 이 사장은 챨스 알렌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두 사람은 장시간 대화했습니다. 면담을 마친 후에 알렌 목사님은 그에게 약을 지어 주며 내가 이 약을 당신에게 지어 드리는데 매일 다섯번씩 일주일 꼬박 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처방대로 해야 합니다. 약을 한꺼번에 많이 먹어도 안되고 약을 건너뛰어도 안되고 며칠 먹다가 쉬어도 안됩니다. 일주일 동안 하루 다섯번씩 드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이 약을 먹고 아침 식사 후에, 점심 식사 후에, 저녁 식사 후에 그리고 자기 전에 이 약을 잡수세요.

사장이 집에 가서 약을 꺼내보니 그 속에는 약봉지 같은 조그만 네모난 종이에 전부 시편 23편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장은 자기 인생을 고쳐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가 되어 버렸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처방이라면 한번 해보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시편 23편의 말씀을 펴들고 끓어 앉아 그 말씀을 읽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도 혼자서 이 말씀을 먹었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를 최대한 받아 들이겠다는 마음의 자세로 말씀을 읽었습니다. 점심 후에도, 저녁 후에도, 자기 직전에도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목사님의 처방대로 꼭 그대로 해 갔는데 언제 찾아왔는지 모를 평안이 그 마음 속에 찾아 왔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는 푸른 초장위에 누울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막연히 좋은 말씀으로만 생각지 말고 이 사장처럼 여러분의 삶속에 한번 적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이부자리 속에 눕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푸른초장은 있습니까 우리 삶에 쉴 만한 물가가 있습니까 늘 불안하고 초조하며 신경이 곤두 서있고 늘 바쁘고 늘 우울하고 생기가 없습니다. 풀이 죽어 있습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산물이며 사고의 산물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믿음대로 되어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세상만사는 그 마음 가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필립 켈러라는 목사님이 쓴 목사가 본 시편 23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필립켈러목사님은 어린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동 아프리카에서 양치기와 목자의 생활을 하신 분으로서 과거에 양을 치며 느꼈던 것과 시편 23편을 비교해서 목자가 본 시편 23편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보면 양들은 필요한 조건 네 가지가 채워지지 않으면 편히 쉬거나 눕지 못하고 그저 맴맴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는 소심한 동물인 양은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받지 못하면 누워 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떼를 지어 사는 양들이기에 언제나 무리 한가운데 알력과 마찰이 생기고 싸움이 있는 한 편히 쉬지를 못합니다. 세째는 양에게는 파리 모기 기생충이 많이 달려 드는데 이러한 것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면 눕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양은 배가 고프면 편히 쉬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양이 푸른 풀밭에서 휴식을 취하려면 두려움에서 해방 받아야 하고 긴장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노여움과 짜증 그리고 배고픔으로 부터 완전히 해방될 때 편히 눕는다는 것입니다. 불안, 염려로부터 해방을 시켜 주고 양으로 하여금 푸른 초장위에 눕게하는 분은 오직 목자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도 똑 같습니다.

첫째 두려움에서 해방받지 않으면 푸른 초장에 눕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양은 아주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숲속에서 토끼가 한 마리 뛰어 나와도 전부 떼를 지어 앞다투어 도망을 갑니다. 양은 자기를 방어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두려움에서 무조건 도망을 가는 겁니다. 두려움에 쫓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을 삽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 어떤 불행이, 위험이, 재난이 우리를 엄습할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안과 두려움과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공포로 하루도 편히 푸른 초장에 누워서 쉴 수가 없는 삶을 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들어 우리의 인생의 목자이신 예수님이 내곁에 계심을 볼 때에 이런 두려움에서 해방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만이 모든 두려움을 쫓아낼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들어오면 언제 담대한 마음이 우리 속에 채워질른지 몰라요. 옛날 시골에서 신앙생활 했을때 보면 수 십리 떨어진 곳에서 산을 넘고 재를 넘어 교회에 오는 부녀자들이 있는데 믿음이 그 마음속에 있으니까 두려움 대신 담대함이 그들을 채우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정문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면 두려움은 창문을 열고 도망을 칩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목자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심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 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 하느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아라.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무서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희를 붙들어 주리라고 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365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두려워 하지 말라. 매일 매일 하시는 한마디의 말씀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기드온에게도, 많은 선지자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임마누엘의 믿음! 이 믿음을 우리가 확고히 가질 때에 두려움은 물러갑니다. 담대함이 생깁니다. 그때 우리는 편히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둘째 양들은 다른 양과 알력과 마찰과 다툼이 생기면 편히 눕지를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동물들의 세계에도 끊임없는 다툼과 알력과 잔인한 경쟁이 있습니다. 닭들을 한번 보세요. 찬하게 지내다가도 여차하면 포악해져서 상대방을 콕콕 쪼아서 물어 뜯습니다. 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로 잘 지내다가도 알력이 생기면 서로 떠받습니다. 양들은 상대방을 자꾸 밀어냅니다. 끊임없는 세력다툼과 주도권 싸움이 계속 됩니다. 여기에서 긴장과 잔인한 경쟁의식과 싸움이 생깁니다. 이런 경우 양들은 만족하게 쉴 수가 없으며 늘 서 있어야 합니다. 왜요 내가 이미 공격했기 때문에 언제 도전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서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대항 하다가도 목자가 나타나면 그 때 평화가 옵니다.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찾아옵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 웬지 모르게 마음이 편치 못하고 교회에와도 여전히 그런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마음 속에 푸른 초장이 없습니까 여러분! 그 누구와 알력이 생겼고 원수를 맺고 있으며, 그 누구와 다투었으며, 누구와 지금 사이가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 저 교회 찾아가 보아도 마음치 편치 못합니까 교회를 세력다툼의 장소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도권 싸움의 장소로 생각하고 있으며, 교회에서도 자기주장만 밀고 나가려고 하고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우두머리가 되고 출세하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머리를 밀면서 눈을 부릅뜨고 싸웁니다. 그러는 동안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도 상처를 받습니다. 질투가 생기고 마음이 초조해 지고 안달하며 악의와 경멸이 생깁니다. 뜻대로 안될 때 불만이 생깁니다. 이러다보면 한번 편히 쉬어보지 못하고 언제나 서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일은 학교에서도, 이웃에게도, 심지어 가족, 부부 간에도 생깁니다. 사회 단체에서도 흔히 생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그 누구와 알력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지나친 경쟁으로 싸움이 생기는 한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쉴 수가 없습니다.

필립켈러 목사님은 양을 치면서 느낀것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였습니다. 양을 많이 데리고 다녀보면 그 양들 가운데 특별히 고약한 양들이 있다고 그래요. 다른 양을 보기만 하면 머리로 떠밀고 공격적이고 자기 욕심만 채우고 좋은 풀이 있으면 다른 양을 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공격적인 양이 공격을 해오면 그저 피하고 양보하고 슬쩍 도망가는 양이 있는데 놀랍게도 공격적인 양은 체중이 늘지 않고 젖을 내지 않으며 제대로 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해 버리고 양보하는 양이 더 살찌고 체중이 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도 알력이 생기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누가 더 크냐고 싸움이 벌여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안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원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서로 나누어지고 깨어지고 원수된 이러한 무리를 화해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화목케 되기를 원하셔서 주님이 대신 죽으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 봐야합니다. 서로 경쟁하고 다투고 교회 안팎에서 알력이 생기고 갈등이 생겨서 푸른 초장에 눕지를 못할 때 다시 한번 예수님 앞에, 그 십자가 앞에 풀석 주저 앉아서 그 십자가의 의미를 깨우쳐야 합니다.

십자가는 화해의 표시이며 평화의 표시입니다. 고린도 교회교인들은 서로 헛된 자랑을 했습니다. 은혜 많이 받은 사람은 은혜 많이 받은 것 자랑하고 방언하는 사람은 방언 못하는 사람을 멸시하고 자기 자랑을 했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 자랑하고 정통을 자랑하는 이는 내가 정통이라고 뽐내었습니다. 그리고 참 예수교 사람이라고, 참 그리스도파라고 나눠지고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너희들이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구나! 너희들이 왜 십자가를 헛되게 하느냐 십자가는 화해의 표시요. 십자가로 나누어진 둘을 하나되게 하시는 그 역사를 너희가 헛되게 하는구나!그렇게 말씀 하시고 사도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박히신 것외에는 나는 알지 않기를 작정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시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판단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 뿐이심을 믿을진대 우리는 초연해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당신만이 나를 아십니다. 당신만이 나를 판단하십니다. 당신의 판단이 옳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크게 보이고 우리의 대적과 세상의 현상들이 작게 보일 때에 진정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사람입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알력이 있다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때서야 하나님은 놀라운 평안을 주셔서 잔잔한 물가 푸른 초장에 눕게 되는 것입니다.

세째 양은 모기, 쇠파리, 기생충에서 해방을 받아야 편히 누울 수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보면 소에게 쇠파리나 모기가 붙으면 밤이 늦도록 벽에 몸을 부딪치고 꼬리를 치고 발을 구르면서 그것과 싸웁니다. 모기나 파리가 피를 빨다가 떨어져 나가면 그제서야 소도 잠을 잘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성도의 삶에도 크고 작은 짜증거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들, 염려거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것으로 인해 오만상 찌푸려가며 삽니다. 과연 이런 삶의 정황속에서 우리가 해처럼 밝고 환하게 살아 갈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날마다 목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항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예라고 대답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어라. 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리라.

여러분! 솔직히 한번 반성해 보십시다. 신앙 생활을 5년, 10년, 또 1년, 2년 했습니다. 하루 5분 기도하시는 분 계십니까 그렇지 않고 어떻게 푸른초장 위에, 물가에 누워서 영혼의 만족을 누리고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루 종일 기도 못 해서가 아니라 하루에 5분, 1분이라도 무릎을 꿇고 모든 삶의 염려거리, 짜증거리, 크고 작은 사건을 하나님앞에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초청하지 않으므로 우리 삶에 참 평강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쫓아 나느뇨 너희 지체중에 싸우는 정욕으로 쫓아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 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쓸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여러분! 삶의 갖가지 복잡하고 자질구레한 문제를 인제 주님앞에 좀 맡기십시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제 저로서는 이 모든 삶의 문제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저로서는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괴롭습니다. 쉴 수가 없습니다. 주님! 이 모든 것 다 주님께 맡겨 버립니다. 제 인생의 짐을 맡아 주시옵소서. 나는 누워서 자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생활 않고 어떻게 푸른 초장 위에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있기를 기대 하십니까 하루 1분이라도 좋으니 순간 순간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눔으로 우리의 삶의 눕는 곳이 푸른 초장이요. 걸어가는 곳이 쉴만한 물가가 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양은 배가 고프면 눕지 못하고 밤새껏 풀을 기다리며 맴맴 거립니다. 양을 가장 많이 키우는 나라는 대개 건조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양이 질병에 강하고 번식률이 높고 기생충이 적다고 합니다. 반대로 약점이 있는데 초지가 귀하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스라엘 지방과 시나이 반도를 열흘 동안 다니면서 시편 23편의 말씀을 여러번 회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그 지방에는 베드윈 족이 엥날 풍습대로 양을 치면서 사는데 그들이 양을 몰고 다니는 걸 보면 산기슭이, 아니면 바위가 많은 거의 풀이라고 없는 지역으로 몰고 다니는데 그 가운데서 풀이 있는 지역을 찾아 다닙니다. 어디에 좀더 좃하은 풀이 있는지는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이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우리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인생의 풀이 많이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만나가 없었다면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벳세다 듦녘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기적을 행했겠습니까 예수님이 요술쟁이 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언입니다. 예수님안에만 참 만족이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예수님 안에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5000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에 기적을 행하신 그 기적의 의미를 그들에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영원히 주리지 아니하고 죽지 않습니다. 이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 이 말씀을 받아 들이고 이 말씀 속에 충만히 거할 때에 우리의 영혼은 배고픔이 없습니다. 어디에 누워도 푸른 초장이 됩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도망 가다가 사막 광야에 쓰러져 누워 있을 때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자기와 하나님의 사이에 사닥다리가 놓여졌고 하나님의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며 말씀을 가져다 주고 야곱의 모든 말을 하나님께 가져 갔습니다. 깨는 순간 야곱은 그 자리를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요, 천국이요. 성전이요. 하늘의 문이요. 하나님의 집이구나!했습니다.

여러분!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배부르냐에 따라서 우리 눕는 곳이 푸른 초장이 되기도 하고, 아무리 좋은 이부자리 속에 누워도 푸른 초장이 되지 못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멀어진 적이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으로 영혼의 만족을 누려서 꿀송이 보다 달게 내 마음속에 채워져서 감사와 감격과 말씀을 읽다가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혼의 만족속에서 우리의 육체는 푸른 초장 위에, 쉴 만한 물가에 누울 수가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4장 15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찌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참으로 잃어버린 양이 되어서 목자를 잃고 방황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세상의 갖가지 경쟁에서 두려움으로 이리 저리 쫓겼습니까 갖가지 대결과 알력으로 상하고 찢겼습니까 병이 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 하십니다. 내가 잃어버린 자를 찾고 쫓긴 자를 돌아오게 하고 상한 자를 싸매어 주고 병든 자를 강하게 하겠다. 두려움에서
해방을 받으십시다.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믿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두려움은 쫓겨 나게 됩니다. 세상만 봅니까 두려운 인생을 삽니다. 파도만 봅니까 파도를 밟고 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이것이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됩니다. 다툼과 알력과 갖가지 경쟁의식과 세력다툼에서 상처를 받았습니까 십자가 앞에 다시 무릎을 끓어야 합니다. 화해의 주로 오신 주님의 십자가 앞에 꿇어 엎드려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 없는 삶을
고백할 때에 오늘 우리에게 참 평강이 찾아옵니다. 크고 작은 여러가지 짜증스런 문제로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까 기도 하십시오. 염려거리를 기도의 제목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렸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펴 읽읍시다. 마음으로 받아 들입시다. 믿읍시다. 그 말씀을 삶 속에 그대로 적용합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