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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푸른 인생4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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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 갈수록 이 세상에 믿을 것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최근에 신문에 보도된 충격적인 기사를 읽으셨을 것입니다. 정 건강 연구소라는 큰 병원이 2400명이나 되는 건강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어서 자기 병원에서 치료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정 건강
관리소라고 하는데는 보통 큰 기업이 아닙니다. 식품회사도 가지고 있는 큰 기업체입니다. 그러나 돈만 알다 보니까 성한 사람을 병자로 만들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경험할 때 저는 오히려 잘 됐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을 대상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 선지나, 임금들을 뽑아서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로 삼아 보았으나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먹이지 못하고, 쫓겨난 양을 찾지 않고 병든 양을 고쳐주지 아니하고, 상처난 양을 싸매주지 않았던 것을 구약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친히 내가 목자가 되리라고 약속하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목자로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향해 하신 가장 귀한 말씀 가운데 하나가 내가 선한 목자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인생의 목자, 영혼의 목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를 의지하고 살다가 실망하고 낙심하며, 사람을 목자로 바라 보았다가 실망하고 절망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 서 있는 김목사 자신도 여러분의 목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이름 하나 하나도,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지 못하며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는 그런 사람도 못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는, 교회의 목사나 교역자나 장로들이 그렇게도 사정을 모르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이 알려고 해도 여러분의 사정을 깊이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두 제자를 목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지 네가 목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그리고 저희 교역자들이 하는 것은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받을어서 도와 드리는 종에 불과합니다.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참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자기의 의를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목자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영혼을 소생시켜 주신다고 할 때 영혼이라고 하는 말은 내 육체를 떠난 영혼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는 말을 할 때 영혼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영혼을 소생시켜 준다는 말씀은 곧 나를 소생시켜 주시고 내 인생을 소생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우리도 때때로 영혼이 피곤해 집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지만 영혼에 때로 고통이 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시들해지고 믿음의 삶이 얼음처럼 차가와지기도 합니다. 영적인 상태가 그대로 잠들어 버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던 다윗 역시 넘어지고 쓰러진 일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는 무력함과 절망의 쓴 잔을 여러번 마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42편 11절 말씀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고백 했습니다. 자기의 영혼이 낙망하고 자신이 불안해서 쓰러지고 넘어졌던 일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신 우리 주님을 생각하면서 저 사막이나 들판에 쓰러져 다리를 하늘로 향해 누워있는 양을 한번 연상해 보십시다.

많은 동물 가운데 넘어진 양만큼 불쌍한 동물은 없습니다. 양은 한번 뒤로 나자빠지면 자기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리를 하늘로 향해 버둥거리다 보면 위 속에서 개스가 생겨서 더운 지방에서는 2-3,4시간만 지나면 그 양이 그대로 죽는다고 합니다. 얼마나 약하며 불쌍한 동물입니까 목자가 그를 붙들어 일으켜 세워주지 않으면 넘어진 채 버둥거리다가 죽고 맙니다. 그래서 주의깊은 목자는 언제나 양의 마리수를 세어 본다고 합니다. 한 두 마리가 보이지 않으면 얼른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것이 목자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꼭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 구역을 보살피는 구역장이나 권찰님들은 아마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역 식구들 가운데 한주일, 두주일 결석해서 찾아가 보면 여축없이 심령이 넘어져서 일어나지를 못하는 성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붙들어 세워 주어야만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것이 양과 같은 우리 인간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넘어진 양을 독수리나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지요. 그렇습니다. 공중의 세력을 잡은 마귀들은 하나님의 양무리 중에서 넘어진 양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서 먹이로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혹시 잘못해서 넘어지면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붙잡아 일으켜 세워줄때 새 힘을 얻는 것을 알고 목자이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경험이 있고 신실한 목자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양들의 수를 셉니다. 특히 독수리가 공중에서 빙빙 돌고 있을 때 양떼들에게 달려가서 그 수를 셉니다. 한 마리 양이 없으면 다른 양들은 버려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섭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때때로 영적인 딜레마에 빠지거나 영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성도들은 이런 때에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고 내게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때가 도리어 목자이신 주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시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때입니다. 때로 주님을 떠나 자기 혼자 살 수 있는 것처럼 교만을 부리다가 넘어진 사람을 위해서도 오히려 그를 찾아나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찾기까지 산과 들을 헤매신 그 모습을 우리에게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길을 잃고 넘어진 양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보면 넘어진 영혼을 일으켜 세워 주시고, 병든 자를 낫게 하시고, 상처난 자를 싸매어 주셨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의 목자이신 것을 친히 보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제 양들이며 우리의 목자가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양들이 잘 넘어지는 양들인지 아십니까 필립 켈러 목사님(지난 번에 말씀드렸습니다)에 의하면 세 종류의 양들이 잘 넘어지고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첫째 늘 편안한 장소, 편한 길, 좋은 곳만 찾아다니는 양들이 잘넘어진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생없이 평안히 살기를 원하는 마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교회생활 하면 모든 일이 잘되고 걱정, 염려거리도 없고 근심과 고통이 없는, 그저 형통할 것만 같은 마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때는 감사도 하고 기뻐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넘어지기 쉬운 성도입니다. 길을 뛰어가다 보면 좀 걷고 싶고 걸어가다 보면 서 있고 싶고 서 있다 보면 앉고 싶고 앉다보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살고 안일하게 살고 싶은 것은 힘쓰지 않아도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더 상승시켜 가면서 살려면 힘쓰지 않으면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평안하기만 바라면 내 영혼은 넘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끊임없는 도전이 있습니다. 연단과 시련과 고전이 있음을 아는 성도는 그 갖가지 모양의 도전이 있을 때 나의 목자이신 주님이 내 곁에 계심을 믿고 함께 이겨내고 넘어지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둘째 잘 넘어지는 양은 털이 너무 긴 양입니다. 양의 털이 너무 길면 진흙이 묻습니다. 오물과 먼지로 뒤엉켜서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맙니다. 성경에서 털이라고 하는 것은 낡은 습관을 상징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히브리사람들 대부분이 양의 가죽옷을 입었는데 낮에는 겉옷이 되고 밤에는 이불로 덮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절대로 양의 가죽 옷을 입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양털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자랑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허영과 욕망과 욕심을 상징합니다.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욕망과 욕구 그 자체가 나쁜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의 욕망과 욕구와 욕심이 지나치게 자라면 우리의 영혼이 짓눌려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의 보이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 난 것이 아니니라양의 털이 너무 길면 그 무거운 털로 인해서 넘어지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아는 목자는 양의 털을 자주 깎아 줍니다. 그러나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양도 귀찮고 목자도 양털 깍기가 퍽 힘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털을 깎지 않으면 그것으로 인해 이길 수가 없고 넘어지니까 깎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세상에 속한 긴 털을 때로는 잘라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긴 털을 세상에 붙은 욕심을 우리 스스로 잘라내지 못하는 것이 양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털 깎는 목자이신 주님께 내 몸을 바칠 때에 주님이 우리의 털을 잘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가벼운 몸이 되도록, 우리를 선하게 인도해 주시는 분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에 보면 많은 윤리가 있습니다. 오른 뺨을 치면 외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고 5리를 가자하면 10리를 가주고,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마태복음의 산상보훈은 해야 한다는 윤리가 아니라 하게 될 것이다라는 윤리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내 삶을 주님께 온전히 바치면 저절로 그렇게 하게 되어지는 윤리이지 그렇게 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긴 털을 우리가 잘라낼 수 없습니다. 목자이신 주님께 우리의 삶을 맡겨 드리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자를 것은 자르게 하시고 고칠 것은 고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어떤 이는 과거에 성수주일을 못했는데 어느 순간에 주일을 잘 지키게 되며,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비틀거리던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신앙생활 잘 하게 되는 그러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순간순간 주님께 바칠 때 주님이 우리의 털을 깎아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의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세째로 살이 너무 쪄서 비대한 양은 넘어지기가 쉽다고 합니다. 실제로 건강하지 못한 양이 비대한 양입니다. 이러한 양은 생산성이 아주 약하다고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소를 먹이면서 어른들이 하시는 예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가 되어도 새끼를 못 낳는 것을 보고 아 그 소 살이 너무 쪄서 새끼를 못 낳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도 보면 대부분, 자식 잘 낳아 키우는 분들은 신체 좋은 사람보다 빼빼한 사람들이 많지요. 참 놀라운 일입니다. 체중이 무거울수록 넘어지기를 잘 합니다. 자연히 느리고 둔해집니다. 목자는 이런 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때로는 사료를 줄이기도 하고 운동을 많이 시키기도 하여 비대하고 연약하고 무기력한 양을
튼튼하고 힘이 있고 민첩한 양이 되도록 키우십니다. 과거에 우리 민족은 가난하고 먹고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그래서 지금부터 일, 이십년 전만해도 배가 나온 사람을 참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었지요.야! 그사람 사장 같다고 하면서요.

그런데 요사이는 배가 나오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배가 나오지 않게 체중을 줄이고 억지로 땀을 빼고 합니다. 왜요 체중이 무거우면 갖가지 성인병이 다른 사람보다 찾아오기 쉽게 때문입니다. 체중이 알맞은 사람보다 체중이 무거운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이와 꼭 같습니다. 인생의 체중이 늘어가면 늘어 갈수록 신앙에 병이 걸리기가 쉽습니다. 세상에서 하는 일이 전부 잘되고 성공적이어서 우리에게 붙는 것들이 자꾸 많아집니다. 생활은 좋아지고 재산도 많아지고 친구도 많아져서 세상의 체중이 불어나 인생이 성공적이고 잘될 때 사실 위험이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계시록 3장 17절에 경고해 주신 말씀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입니다. 라오디게아라고 하는 지방은 돈이 많가 황금이 나며 장사하는 지바이었고 또 온천이 솟아나는 곳이기도 해서 인간이 참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 교인들이 모두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교만해졌습니다. 세상의 체중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보실 때 너희들이 곤고하고 너희들이 가련하고 너희들이 가난하고 너희들이 헐벗었고 너희들이 눈 멀었구나!이것이 주님이 경종해 주신 말씀입니다. 비록 어떤 사람은 자신이 부유하고 풍부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영적인 상태는 절망적인 위험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물질적인 성공, 세상적인 것의 성공이 반드시 영적인 건강 상태의 척도가 아닌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믿고 목을 받아 가지고 물질도 부유히고 세상에서 잘된 것을 보고 저 사람 예수 잘믿어서 그렇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체중이 늘어났다고 해서 우리 영적인 건강상태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기에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그저 안일하게 살기를 원합니까 신앙생활을 그저 안일한 상태에서 그냥 별일 없이 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넘어지기가 아주 쉽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할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 있어라! 너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떼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고 경종을 울려주고 계십니다. 세상의 것이 너무 많이 달라붙어서, 세상의 욕심이 너무 많아서 털이 긴 양과 같이 되신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 털을 깎아야 합니다. 아쉬워도 깎아야 합니다. 힘들어도 깎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우리가 때로는 잘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털 깎는 목자이신 주님께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밝은 빛이 어두움 가운데 들어 오면 어두움은 저절로 물러나게 되어 집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게 되면, 우리가 무엇을 끊어야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가르쳐 주시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 모든 일을 함께 하시는 분이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이십니다.

찬송가 534장 4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큰 풍파 일어 나는 것 세상줄 끊음일세 여러분!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인생을 사는 가운데 크고 작은 풍파가 일어나고 역경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세상줄을 하나하나 끊으라고 하는 하나님의 비밀이 그속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생활이 너무 너무 늘어나서 오히려 이 세상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이젠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너무 살이쪄서 움직일 수도 없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을 줄 알아야 합니다. 목이 곧은 성도가 계십니까 주님을 앙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라 주님의 부탁의 말씀입니다.

이 자리에 신앙생활 하다가 심령이 피곤해서 넘어지거나 거의 자빠질뻔한 분들이 계십니까 웬지 모르게 영혼이 시들해진 분이 계십니까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능력의 손에 붙들려서 여러분의 영혼, 제 영혼이 소생함을 입어 이제 새로운 길, 주님이 원하시는 의의 길을 달려갈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의 목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지금도 우리곁에 와 계시는 성령께 우리의 삶을 맡기십시다. 앉아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의의 길을 걸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주님께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을 맡겨 드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의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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