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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영광을 위한 고난 (벧전 0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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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누구도 고난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인생 싸움에서 승리를 원치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은 그 누구도 고난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고난을 거치지 않는 성공이나 승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공자나 승리자는 고난들이 없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온갖 고난들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뉘가 끝나면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마는 성공과 승리를 위해서 그토록 많은 고난을 극복해 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주님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고난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2. 믿음의 불 시험에 대한 태도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무서운 박해와 핍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창과 칼과 화살의 표적이 되거나 맹수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회의와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미칠 불행 때문에 극심한 심통에 시달렸습니다. 그야말로 견디기 어려운 불같은 시험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러한 교인들에게 아주 놀라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 속에서 고난에 대해 취해야 할 다섯 가지의 태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를 시련하려고 찾아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세상에서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불같은 시험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요한일서 3:13에도,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어차피 닥친 고난에 대해서는 주님을 믿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상책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라고 당하는 고난이란,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여 구원하신 주님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임을 깨닫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공회에서 채찍질을 당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말라는 명령을 듣고 나왔을 때의 태도가 사도행전 5:41에 나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함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영원한 영광을 위한 고난
셋째, 우리 주님이 우리로 당신의 고난에 동참케 하시는 것은, 영광의 재림 때에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임마누엘의 복을 받고 있는 줄로 믿어야 합니다. 영광의 영이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결정적인 증거가 뭡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의 시련이요, 주님의 이름으로 욕을 보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 중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고난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결 못할 고난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실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란 평탄할 때가 아니라, 고난을 당할 때입니다. 고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하나님께 그 만큼 더 큰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3장에 아주 은혜스러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유대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때문에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다니엘 총리의 천거로 각각 바벨론의 도지사로 임명까지 해 주었는데, 금 신상에게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니 몹시 화가 날 만도 했습니다. 화가 나는 대로 하면 당장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아까운 인물들이라서 회유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라도 금 신상에게 절하면 좋지만, 만일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겠다는 것입니다. 극렬히 타는 풀무를 보면서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의 태도는 한결같았습니다.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풀무 속에 던져 넣으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속에서 능히 건져내실 것이고, 또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노한 왕은 풀무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한 채로 던져 넣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얼마나 불길이 강하든지 그들을 붙든 사람들이 타 죽을 정도였고, 세 사람은 그 풀무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명히 결박된 세 사람이 떨어졌는데, 보니까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은 채로 불 속을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왕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고 명한 다음에, 만조 백관 앞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님께 대해 설만히 말하는 자의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겠다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불같은 시험을 통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모든 믿음의 시련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3. 받아서는 안 될 죄악의 고난
고난을 받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믿는 사람들이 받아 서는 안 될 고난이 있습니다. 즉,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란 알로트리오에피스코포스(λλοτριοεπσκο-πο)로서, 믿음과 관계가 없거나 믿음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행위나 사업에 종사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강도가, 그것도 대낮에 은행을 털다가 그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어처구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경찰관이 물었습니다. “아니, 얼마나 대담하길래 대낮에 은행을 털어” 그러자 그 강도는 “대담하긴요. 세상이 하도 어수선해서 밤에 현금을 가지고 다니기가 뭣해서요.” 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강도질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인생에는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느라고 당하는 값진 고난을 당하는 것이 훨씬 유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맺음말

우리가 죄악의 고난을 피하고, 믿음의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교회 안의 불신자들에게 먼저 한다면, 복음을 믿고 순종치 않는 사람들의 마지막 운명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또, 믿음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이 겨우 구원을 얻는다면,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이 설자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믿음의 고난 속에서도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을 좇아 선행을 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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