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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의 삯 (롬 0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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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사변의 16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좁은 땅에 16개 나라가 각각의 군기를 휘날리며 모여서 싸우고 피를 흘렸습니다. 약 오백만명의 생명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이 사변은 이 땅을 피로 붉게 물들여 놓았습니다. 한강에는 헤아릴 수 없는 시체가 떠올랐고, 부녀자도 어린아이도 총탄은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쓰러뜨렸습니다.

부산은 학교마다 부상병으로 콩나물 시루처럼 되었고, 손양원 목사를 비롯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순교를 당하였으며 많은 주의 종들이 납치되어 갔습니다. 오늘날 아무리 불러 보아도 북한 하늘에는 검은 구름만이 오락가락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6.25사변은 남북한의 2,122개 교회를 불에 태웠으며, 523명의 목회자가 순교 또는 납북되었습니다. 사망자 수로는 국군이 419,350명, 미군등 유엔군이 143,958명, 인민군이 1,644,280명, 민간인 3,453,000여명입니다.

친히 겪으신 분들은 지금도 그 비애와 참상을 통감하실 것입니다. 이 전쟁의 비참함을 뼈저리게 느낀 이 나라는 16개 성상이 흘렀지만 그 상처를 싸맬 길이 없습니다.

북한에 남편을 둔 어떤 부인의 보낼 수 없는 편지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당신이 끌려가던 날 새벽을 잊을 수 없으나 그 후, 당신의 소식은 받을 길이 없습니다. 첫 아이이면서 막내가 된 영희는 벌써 국민학교 3학년이랍니다. 같은 하늘 밑에 산다고는 믿어지지가 않고, 그렇다고 안믿기란 믿기보다 어렵습니다. 혹 영희년이 병이 나면 아버지를 찾습니다』 하여튼 보이지 않는 장벽은 6.25라는 피와 독의 포화를 퍼부었을 뿐 오늘도 굳게 닫혀 우리의 한숨의 안개로 더욱 희미할 뿐입니다.

이 6.25의 근본 원인을 당신은 아십니까? 북한의 호시탐탐한 야욕, 세계를 공산화하고자 하는 붉은 마수의 조작입니다. 16년전 하필이면 거룩한 주의 날을 택하여 殺肉流血(살륙유혈)의 침략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평면적이요, 인간적이요, 가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여기 수직적이며 神本的(신본적)이요, 불신앙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심오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민족의 죄의 삯입니다. 히브리서 11:3을 보십시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질병, 전쟁, 사망은 근본적으로 인류의 죄의 결과로 이 땅에 깃들인 괴물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밖의 선물인 『해방』을 이 겨레는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과 분열과 사기와 도적과 음란과 모략과 사치와 불로소득과 안일과 불신과 온갖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분노의 방망이에 맞은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들을 들어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반박하였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대저 네가 레바논에 강포를 행한 것과 짐승을 두렵게 하여 잔해한 것 곧 사람의 피를 흘리며 땅과 성읍과 그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 하박국 선지자는 상대적인 개념에서 죄와 의를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개념에서 죄와 의를 말씀하십니다. 상대적 개념에 따라 생각하는 우리는 죄인도 있지만 의인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으나 그래도 갈대아 보다는 의롭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모두다 죄인입니다.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마서 3:10을 보세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낫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모순입니다. 조금 선하고, 의롭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관점일 뿐이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다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박국 3:2, 17-18을 보세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인간의 죄인됨을 아는 자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적게 짓는 자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심령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자보다 자신의 죄인됨을 안정하고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많은 축복을 받아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자보다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해방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런 자를 찾으셨으나 그런 자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사참배의 문제등을 따지면서 자신의 의로움만을 내세우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교계의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신을 못차린 이 백성을 다시 6.25사변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넜으나 작은 문제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서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한 것과도 같습니다. 6.25사변은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8:22이하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하기 직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소돔과 고모라성이 화를 면할 수 있도록 간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성에 의인 오십 인이 있으면 의인과 함께 성을 멸망시키시렵니까?』하는 질문에서부터 『의인 열 명이 있으면 성을 멸망시키시렵니까?』하는 질문까지 무려 여섯 차례나 간구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즉 하나님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자 열 명이 없어서 유황불로 비참하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서 5:1을 보십시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에서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의를 쌓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죄인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휴과 자비와 은총을 기다리는 의인을 찾으십니다.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비참하게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이 되십시다. 모든 교만과 불의를 버리고 겸손함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주님 앞에 서십시다. 바로 이 민족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사야서 57:15를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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