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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탄식.영광 (롬 0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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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미국 오페라계에서 크게 활약했던 힐리니 할버튼이라는 유명한 가수가 있 었습니다. 어느날 자기의 아들과 이웃집 아이가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습니 다. 이웃아이가 자기 아들을 보고 우리 아버지는 시장을 잘 아신다고 자랑하니 까 그 말을 들은 자기 아들이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을 잘 아셔 아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말을 듣는 순간 할버튼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 지기 시작했고, 서재 로 들어가 싫컷 울었다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가장 존귀하신분,높으신분, 가장 전능하 신분,가장 자비로운신 분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나니. 하나님은 네 아버지야!라고 말씀하는 음성을 날마다 듣습니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그 하나님을 얼마나 자랑스럽 게 부르고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랑스럽고,황홀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악한 세상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 일이요,매력을 주지 못하는 일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장을 잘 안다는 것을 더 자랑스러워 하지, 하나님을 내가 잘안다-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는 말은 시큰둥하게 듣고 넘어 갑니다.

오히려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고,이질감을 갖고 대합니다.

왜그렇습니까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은 이 세상 사람들은 마귀의 자녀들입니다.마귀의 자녀들 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을 좋아 할 이유가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자녀들과 섞여 살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자연히 그 만한 값을 치루지 않으 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값을 치룰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다움이 나타나지 이 값을 치루지 못할 때에는 마귀의 자녀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자녀된 자가 세상에서 치룰 대가에 대해서 말하 고 있습니다. 또 그 대가를 치룰 때에 상속자로서 누릴수 있는 축복에 대해서 말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세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고난이요,탄식이요,영광입니다.

 1. 하나님의 자녀만이 아는 고난이 있습 니다.

 17절,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 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게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두 귀절에서 고난이라고 하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고난의 특징은 1)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이요, 2) 현재의 고난이다 고 말할수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와 함께 받는 고난이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고난을 받았습니다.그가 왜 고난을 받으 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은 퍽 초라해 보였습니다.

배경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신분도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 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네까짓 것이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멸시하고 천대를 했 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 사는 동안에 가난하고 외롭게 사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무참하게 죽을 때에도 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무지무지한 고통을 겪으며 피를 흘리 고 있는 참혹한 모습을 보면서도 동정의 빛 하나 보이지 않던 유대 사람들은, 그 를 향하여 침을 뱉으며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잖 아-그러니 저렇게 죽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랑하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 받지 아니하 고 넘어갈수 있을까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은 고난을 우리도 똑 같이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요,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주인이 고난을 받는데 종이 안받습니까 맏형이 고난을 받는데 동생들이 피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요한15장 20절에 분명하게 이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꼭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 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 할 것이라 사람들이 주인 된 나를 핍박하였으니 종된 너희를 핍박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 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사울이 한 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무지하게 핍박했습니다. 한 참 열이 나서 다메섹으로 달려 갈 때에 갑자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무어라고 말씀하고 계신 줄 아십니까 사울아,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지,예수를 핍박하지 않았 거 든요. 그러나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너 왜 나를 핍박하니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세상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같이 핍박을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자는 예수를 핍박하는 자입니다.

둘을 나누어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아도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 그 고난을 우리가 피 할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세상은 그동안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 습니다.

이 세상은 아직도 세상 신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싫어 합니다, 하나님을 싫어 하기 때문에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싫어 합 니다.

겉으로는 별로 표를 내지 않고 있지만 속으로는 정말 싫어 합니다.

만일 예수 믿는 놈들을 다 죽여라 하는 시대가 온다면 금방 우리를 욕하고 죽이 려고 달려 들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랬고,공산당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당한 고난을 우리가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샅샅이 뒤져 보세요. 마태복음으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까지 샅 샅이 뒤져 보세요.

예수 믿는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피하라고 하는 말씀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난을 받으라고 하는 말씀만 구구절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 고난 받지 않도록 도와 주겠다 말씀하는 데도 없습니다.

너 고난 받지 않고도 하늘나라에 들어 들어 갈수 있다고 말하는 데도 없습니 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고난,환난을 당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전 4:13절은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라.이는 그의 영광 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니라

다음으로는 우리가 받는 고난은 현재의 고난입니다.

18절에는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으로 시작합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라는 말은 잠간 동안 받는 고난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현재라는 말은 주님의 부활 승천 후에서부터 재림하시기까지의 기간 즉 말세라 는 시대를 전부 포괄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수천년의 기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그 동안 받을 수 있 는 고난이 현재의 고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에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할 때에 나서부터 죽을 때 까지 고난이 것은 항상 우리 옆에 따라 다닌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 만이 아는 고난입니다.

 아직 저는 고난이라고 말할 어려움울 별로 당하지 않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로 고난을 당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예수를 먼저 믿었기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학대와 핍박을 당하고,정신적을 고문 을 당하는 성도들이 우리 교회와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직장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술자리에 함께 앉지 않는 다는 이유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의논하는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나중에는 진급도 제대로 안되고 가난하게 살아야 되는 우리의 형제와 믿음의 가정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양심의 소리를 귀를 막고 듣지 않았더라면 한탕, 재산을 모을수 있는 기회도 자주 있었는데, 하 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피하다 보니 돈벌 기회는 다 지나가 버리고 평생 가난하 게 살아야 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우리 교회에도 있을 것이고, 우 리나라에도,세계 곳곳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나이가 차서 시집은 가야 할 텐데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면,결혼을 안해하는 고집을 꺾지 못해서 혼기를 놓치고 아직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는 자매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 모두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저는 자주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불쌍하거나 안 됐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꺼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양들은 모두가 다 십자가로 낙인이 찍혀 있다, 털에 만 찍힌 것이 아니라, 살 속까지 깊이 찍혀 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몸에 십자가의 낙인을 새 까맣게 직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 낙인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입니다.

우리 만이 아는 고난입니다.

자랑스러운 고난입니다.

피할수 없는 고난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위하여 남모르는 땀과 눈물을 흘릴 때, 생각하십시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 고난을 기쁘게 받는다고 스스로 고백을 하 십시요.

그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입니다.

이 고난을 피하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자격이 없는 자라는 것을 아십 시요.

 2. 하나님의 자녀 만이 아는 탄식이 있 습니다.

 23절을 봅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 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이 본문을 보면 우리라고 해 놓고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라고 설명을 합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중생 받게 하셨죠.예수 믿게 하셨죠.

롬 8:23에 보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건져 내셨죠 롬 8:16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바,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죠 이 모든 것이 성령께서 주신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가 있으니까 중간 열매와 끝 열매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에게 몇가지 되는 첫 열매만 주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의 열매를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다음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는 제일 끝의 열매를-양자될 것 곧 우리의 몸의 구속이라-표현하고 있 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첫 열매 받은 사람입니까 제일 정확한 증거가 무엇입니까-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 열매, 다음 열매...마지막에는 끝 열매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왜 탄식을 합니까 속으로 탄식한다. 남모르게 탄식이 터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탄식은 우리만 아는 탄식이요.우리만 할 수 있는 탄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탄식은 해산하는 산모가 비명을 지른다는 단어입니다.

그저 일반적인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고 산모의 비명입니다.

 우리는 산모가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르고 탄식하는 것을 자주 보지요.

그러나 이것은 절망에서 오는 비명이 아닙니다.

3대 독자 옥동자를 낳는 산모는 가문을 이을 새생명을 낳는다는 희망에 차서 자 랑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기쁨의 비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명은 시끄럽기는 해도 듣기 싫지는 않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이 나고,견딜수 없어서 울부짖어도 그 마음 속에는 희망이 샘솟습니다.

어떤 산모는 너무 고통스러운데 아이는 나오지 않고 견딜수 없으니까 옆에 있 는 남편의 퍼을 때렸다고 합니다.

퍼을 맞아도 좋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새 생명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가진 사람으로서 탄식을 합니다만 무엇인가 희 망을 가지고 하는 탄식입니다.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몸처럼 변화 될 날을 기다리는 희망을 안고 하는 탄식입 니다.

고후 5:2 과연 우리가 여기서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사모하니 간단히 말하면 이 몸을 입고 이 세상에서 괴로워하고 탄식하며 살고 있 지만, 언제인가는 우리가 새 몸을 입고 영생 할 터이니 그 날을 바라보고 탄식한 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얻고 싶어 하는 것, 간절히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간절히 가보고 싶어하는 무엇이 있다고 하면, 기다리는 자체가 탄식입니다.

우리의 탄식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영광스러운 천국의 생활을 꿈에 그려 보아도 황홀한데 왜 이리 더딘가 결혼날짜를 잡아 놓은 신랑신부처럼 손 꼽아 기다리면서 나도 모르 게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 이것이 믿는 성도들의 탄식입니다.

 한편 본문에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한가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2절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만이 아는 이 탄식을 피조물이 같이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 니 이 피조물이 누굴까요 하늘에 있는 영물들은 여기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0절에 보면 허무한데 굴복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21절에 보면 썩 어짐에 종노릇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이 피조물은 천군천사나 마귀는 아닙니다.

이 세상사람 전부도 아닙니다.

왜그러냐 하면 이 피조물은 소망이 하나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리성적인 자연만물, 즉 하늘의 해와 달,공중을 날아 다니는 새,땅 의 온갖 생물들과 나무,바위,물과 같은 것들을 일컬어서 여기서 피조물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피조물이 우리와 함께 왜 탄식할까요 이 피조물들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를 않아서 사람과 함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함께 저주를 받아서 인간과 똑 같은 운명을 겪도록 되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 존재의미를 잊어버렸습니다.(20절-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함) 왜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지를 피조물들이 몰라요 2) 죽음의 굴레를 벗어 나지 못함(21절-썩어짐의 종노릇함) 피조물 중의 어느 것도 날 때부터 썩어져서,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벗어나지 를 못합니다.하늘의 해와 달도 썩느냐고 말할지 모릅니다만, 해도 점점 죽어가고 있어요.달도 인간이 자꾸 드나들면서 오염시키고 있어요. 지구의 오염과 파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천하만물 가운데 썩고 죽지 않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 것 때문에 피조물 들이 탄식하고 있어요.

 그런데 또 피조물들이 탄식하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피조물의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 오는 것을 고대합니다.

고대한다는 말을 고개을 쑥 내밀고 앞 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한번 가서 새들에게,나무와 꽃들에게 무어 보세요.

너도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니 그러면 물론이지!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의 귀가 불완전하고 어두운 것입니다.

영이 맑은 사람은 누구나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만이 아는 영광이 있습 니다.

 이 영광은 피조물과 함께 탄식하면서 기다리는 소망입니다.

17절에도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라고 했고, 18절에도 우리에게 나타 날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21절에도 영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무슨 영광이냐 23절에 나오는 우리 몸의 구속을 말합니다.

11절로 잠간 돌아가 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 를 죽은 자 가운게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가 다시 부활해서 새로운 몸을 입는 것을 말합니다. 영생의 옷을 입고 다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영화라고 말합니다.

그 때가 되면,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 때가 되면, 아픈 것, 썩는 것,죽는 것이 다시 우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흠과 티가 없는 신령한 사람이 됩니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하게 됩니다.

계 22:5절 말씀대로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모든 천군천사들이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우 리를 위해서 수종들 것입니다.할렐루야!!

이 날이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누릴 영광입니다.

우리가 새 몸을 입었으니, 새 몸을 입고 살아야 할 세상도 새 것이라야 합니다.

아무리 새 몸을 입었어도, 전에 살던 더럽고 악한 곳에서 그대로 산다면 이 것은 영광이 될 수가 없지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바꾸었으니, 집도 바꾸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새롭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계 21:5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 말은 신실하니 기록하라고 말씀 하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새로운 하늘과 땅을 새로 만드시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이 신천신지야말로 피조물이 탄식하면서 기다리는 영광입니다.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된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그 신천신지에 새 몸을 입은 우리가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게 되는 기막힌 영광입니다.

 이 신천신지의 삶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한가를 이사야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사야 11장 6절이합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합니다.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웁니다.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어린아이에게 끌려 다닙니다.

암소와 곰이 함께 풀을 먹고 있습니다.

그 것들의 새끼가 함께 뛰놉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습니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고 장난을 합니다.

 그 거룩한 산,그 영광스러운 신천신지에는 해하는 일도 없고, 해를 받는 일도 없습니다.

영원토록 우리 주님 모시고 영생하도록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의의 영광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영광이 언제 나타납니까 주님의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주님의 재림 하시는 날 이 영광이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만이 아는 영광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했습 니다.

우리만이 아는 탄식도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만이 아는 영광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이 현실을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대처해야 할까요 1) 고난과 영광을 열심히 비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18절 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은 비교의 명수였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견딜수 없을 때마다 비교했습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하고, 장차 나타날 영광하고 두개를 놓고 비교 했더니,족히 비교할수 없다 쉽게 말하면 비교가 안된다하는 말입니다.

 바울처럼 태장을 수없이 맞고, 불들려가서 감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를 몇번 씩하고,바울처럼 헐벗고,바울처럼 몸에 가시를 가지고,바울처럼 십자가지는 생활 을 살아도, 장차 나타날 영광과는 상대가 안된다고 여운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분명히 확인하면서 살았습니다.

고후 4:17절에는 비교를 하니까, 지금의 고난은 너무나 가벼운 거야하고 고 백합니다.

 우리도 비교하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 당할 때마다 비교하십시요.

예수님 때문에 가난을 무릅써야 하는 성도들은 비교하십시요.

이 가난과 영광을 한번 비교하십시요.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을 비교하십시요! 시시때때로 비교 할 때마다 하나님은 비교가 안돼! 지금의 너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해서는 가벼워 하는 음성을 들려 주실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능력을 얻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둘러스 선교선에는 350명의 선교사들이 세계를 누비면서 선교를 합니다. 잠비아 에서 선교를 할 때에 회교도들이 폭탄을 던져서 2명이 죽고,32명이 부상을 당했습 니다. 죽은사람은 18살 먹은 소피아라는 스웨덴 사람이엇고,또 하나는 19살 먹은 뉴질랜드에서 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부모들이 둘러스 선에 축전을 쳤습니다.

우리는 이 비참한 일에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복음 전하는 일을 계 속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들이 어떻게 이렇게 대범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교한 것입니다.

내 딸들의 죽음하고, 장차 주님이 약속한 영광하고 비교한 것입니다.

비교해 보니까-내 딸이 피지도 못하고 죽었지만, 복음을 위해 죽었지...그리 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다가 죽었지...-지금의 이 끔찍한 고난과 시련이 오히 려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자녀를 잃은 슬픔을 당하지만, 장차 주님이 나에게 줄 영광에 비교하면 아 무것도 아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부귀와 하나님의 영광을 매일 비교하시요. 그러면 부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돈....

평안함....

건강.....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2) 참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24-25절에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 로 기다릴찌니라

불평이나 원망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참음으로 기다립시다.

참고 기다리면 멀지 않은 그 날 주님이 오실 것이요,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썩 을 몸 훌훌 벗고 하늘로부터 오는 새몸을 입고, 부활할 것이요, 우리가 부활을 하 는 것과 동시에 이 우주 삼라만상이 새롭게 단장을 하고 우리 앞에 신부와 같이 나타날 것이요.우리는 주님이 준비하신 새집에서 영원토록 우리 주님 모시고,하나 님의 자녀답게 살 것입니다.

이 날을 참고 기다립시다. 이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될 일입니다.

 소망에 눈을 뜨십시요.

세상으로 향하던 눈을 돌려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드십시요.

우리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십시요.-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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