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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율법주의자들은 은혜의 가치를 비웃었습니다 (엡 0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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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비슷한 경험들을 하게 되지만, 그 경험에 어떤 태도로 반응하느 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경험 한 어떤 일 때문에 지독하게 독선적인 성격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가 하면 그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아 량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실패를 경험할 수 있지만, 그 실패에 바르게 대응해 서 극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베푸는 선의나 호의를 제대로 받아들이 지 못하는 것처럼,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의 부조화 현상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하나 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에 감격하다가도, 자신이 얼마나 죄인된 사람 이었고, 또 지금도 날마다 죄를 범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죄책감에 시달리 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미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 하는 율법주의적인 오류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이미 은혜로 구원받았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은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죄가 있는 것이 너무나 확실한 데도, 재판관은 이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것은 이 죄인에게 정 말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유 때문에 죄인의 죄가 없는 것으 로 인정하겠다는 재판관의 약속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 죄 인이 죄가 없다고 인정받게 된 데에는, 누군가 죄인의 죄 값을 대신 치렀 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재판관의 공정성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죄인을 심판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 리에게 구원의 놀라운 은혜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 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은혜의 가치를 비웃고, 은혜로 구원받는 것 보 다 의로운 행동으로 자신의 구원을 확실히 하겠다고 열심을 냅니다. 하지 만, 율법주의자들의 열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는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 시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 의한 순종은 결국 십자가의 은혜 를 거부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것은 무죄 선고를 받은 죄인이 여전히 죄인으로 살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아는 자답게, 주 의 사랑을 드러내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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