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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라마 나욧의 예언 (삼상 19: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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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시는 성경의 말씀으로 표현됨을 믿고 있으며 성경 딤후 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 여기서 특히 역사적 서술인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는데 말씀으로 나타내고, 행동으로 나타내신다는 뜻에서 더욱 하나님의 계시 사실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19:18-24의 사건도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의 신으로 사람에게 들어가 역사하신 하나님의 행동계시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이 내용을 대략 말씀하면 그 당시 사울왕은 다윗이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 앞에 위기를 당했을 때 이스라엘을 구원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의 의심과 시기심은 자기 왕위의 박탈을 우려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가 있는 『라마 나욧』으로 피신했는데 혹이 사울에게 고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사자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선지자 사무엘을 볼 때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 사울의 사자들도 예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즉 속으로부터 사무엘 편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사울왕은 대노하여 다른 사자들을 보냈는데 그들도 그렇게 되었고, 세번째 다른 사자들을 보내매 그들도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기가 막혀 그렇다면 내가 가서 다윗을 체포하겠다며, 정신을 차리고 그의 의지력과 주의력을 굳게 하여 자기가 친히 『라마 나욧』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까이 가자 그도 예언하기 시작하더니 유난히 걸어가면서 더 심했으며, 사무엘 선지자 앞에 오자 예언을 더 열렬히 하며 종일종야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 뭉게며 새 술에 취한 상태에 빠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담에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 이스라엘 역사의 한 토막을 성경에서 볼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해득 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방법에 있어 두 가지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1) 자기속기설, 즉 자기의식을 잃고 정신이 몽롱한 중에 하나님께 사로잡혀 붓이 돌아가는 대로 기록한 것이 성경이라는 설입니다.
2) 신인의식 동행설, 하나님의 뜻이 조금도 구김살 없이, 명확한 성경기자의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감동 하는 데로 그 뜻을 말씀으로 기록 표현한 것이라는 설입니다.
우리는 라마 나욧 사건을 가지고 이 두 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동속기설은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게 사로잡힘과 같은 경우를 주장 하는 것입니다. 신인의식 동행설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사로잡힌 경우와 같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알 수 있으며, 사울의 경과보다는 사무엘의 경과가 더 종은 경우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매 있어 자기의식 상실상태로 할 수 있고, 자기의식 명확한 중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쓸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두 가지가 다 있을 수 있고 사무엘의 경우가 더 인정 할 수 있습니다.

2. 다음 우리는 여기서 교회의 위대한 성령의 역사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사자 사무엘이 성령충만하고 그를 수종하는 주의 종들이 성령충만 할 때 교회는 물론, 교회주변 일대에 성령의 능력이 확대, 확장됨을 알 수 있고, 지역사회가 복음화 되는 가능성을 믿을 수 있습니다.
진리의 등대로 구원선 되는 우리 교회는 이런 사명을 띄고 서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대하 7:1-2에 보면 솔로몬 성전을 준공하고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철야기도를 하고 휴식할 때는 정신이 띵하여 마주 앉은 사람의 커피를 자기의 것으로 알고 마시는 수도 있고 언어 행동에 있어서 실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같이 하시고 큰 부흥과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에 똑똑한 것이 인간 의식의 결심이 하나님과 부딪칠 때에 얼마나 부서지고 깨지는 것을 사울이 라마 나욧에 갔을 때를 보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예언을 하게 되었고 그의 몸은 열심에 들떠서 옷을 벗어버렸고 떼굴떼굴 구르며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를 들어 만주에서 일본이 세력을 확장 할 때 일본은 五族協會(오족협회)를 내세워 한국, 일본, 만주, 중국, 몽고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일본이 주관하겠다고 정책을 폈습니다. 그때 이성봉 목사님이 만주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부흥회의 강사로 연일연야 계속 설교를 할 때입니다. 일본의 앞잡이 한국인 형사가 이 집회를 감시하려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첫날 저녁 『예수 믿는 것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 조금이라도 일본국가의 정책에 위배되는 것은 집어내어 고발 조치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첫날 저녁 설교를 듣고 조금 재미난다라는 느낌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둘째날 저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듣고 매우 배에다 힘을 주고 나는 그렇게 쉽사리 안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정치와는 관계없는 순수하게 신앙적인 차원에서만 말씀을 하니 이 형사로서도 시비할 것이 없었습니다. 세째날 저녁에는 重生(중생)에 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깨진 요강 그릇이 대장간 풀무불에 들어가 녹아져서 새 밥그릇이 되어 나와 깨끗이 씻어 밥상에 올라 떡도 담아 먹고, 국도 담아 먹으니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사람의 인격도 깨진 요강과 같이 교회에 들어와 불같은 성령의 역사에 녹아질 때 하나님의 선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이나 좋으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네째날 저녁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교였습니다. 『인생 열차는 출발했습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두 가지 사람이 있습니다. 체포된 살인 강도는 야단이 났습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한편에는 일본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귀가 중에 있었습니다. 집에 가면 모두 칭찬하고 환영할 것입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아이고 좋아라 인생 열차중 두 가지가 있습니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형수의 입장입니다. 이와 같이 죄를 그대로 가진 자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서 하나님께로 가는 예수의 십자가의 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천국으로 가는 신자들은 이 땅에서 이 현실에서 기쁨이 샘솟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하고 설교한 후에 『다 고개숙이시요 어디 나도 예수 믿고 이 세상에서 이 기쁨의 생애를 가지고 죽어서 천국에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기를 원하시는 분은 손을 드시오!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니 한분, 두분, 세분... 열한분까지 손을 들었습니다. 그 열한번째가 누군가 하면 바로 그 형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열네사람이 결심을 하였습니다.
『있는 것을 없게도 하시고, 없는 것을 있게도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저녁 예수 잘 믿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이 열네분의 귀한 심령을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분들이 앞으로 예수를 잘 믿음으로 넘치는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해주시고 마지막에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동행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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