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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목표 (출 20:1-4, 빌 03:4-14,마 21:33-48)

첨부 1


십계명은 하나님을 향해서와 인간 상호간에 행해야 할 의무의 뀨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원래의 형태는 13, 14,15절과 같이 짧은 선언 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이 확장되어서 5절, 6절, 9-11절과 같이 해석이 곁들어진 주석 형태가 되었습니다.
십계명은 두 가지 형태가 발전한 것으로 하나는 본문의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신 5:6-21의 말씀입니다.
히브리 성경 밖에서의 작품에서 이 둘을 조화시키려는 시도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십계명의 세번째 형태는 출 34:11-26절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을 예배 예전의 십계명이라 말합니다.
십계명보다 더 오래된 법전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예로 함무라비 법전, 히타이 법전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러나 히브리 법전은 독특하고 유일한 것입니다.
다른 법전의 원리는 적이다. 즉 ‘만일 이렇게 한다면 결과로 벌은 이것이다’ 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법전은 필연적인 법입니다. 즉 ‘너는 해야 한다, 너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의 형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나 조건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2절 말씀이 첫 계명입니다.
십계명을 깊이 보면 문맥의 기초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에 있으며, 이것이 십계명을 유일하게 만드는 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십계명은 구원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제적 구원의 행위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삶의 목표에 대한 본문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귀중한 십계명을 주셨는데, 이 계명은 단순히 우리가 범죄해서 안될 법규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야 할 삶의 목표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인물, 즉 예수님과 바울은 인간의 삶의 목표를 충실히 걸어간 사람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삶의 목표를 제시한 십계명 출20:1-20

십계명은 일반적인 법전과 다른 독측한 점이 많은데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다위적이고 필연적인 규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인간이 반드시 보아야 할 두 가지 측면을 보여주는 바 하나는 신앙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아야 하며, 다른 하나는 사랑의 대상으로서 인간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참된 목표는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참된 인생의 길은 하나님을 신앙함으로 시작되고, 인간에게 사랑을 베품으로 완성된다고 하겠습니다.

2.자신의 목표를 성취하신 예수님 봅시다.
(마21:33-43)“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34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쫑아 죽였느니라,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41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태복음21:33-46의 비유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로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히 나오는 것으로 그 배경은 사5:1-7의 말씀입니다.“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 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3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6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7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이 비유는 알레고리적인(풍유,어떤 사실을 풍자적이며 암시적 으로 나타내는것)
형태를 띠며, 또한 그렇게 해석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하신 주요한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언약 ②.예언 ③.그리스도의 오심 ④.십자가 ⑤.교회.로 나타납니다.

한편 33절 말씀을 보면 주인은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고 소작인에게 일을 주었고, 단지 실과를 요구하였습니다.(34절)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은 열매 맺는 나무들로 여겨짐을 알 수 있습니다.(시1:3절)“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뿐만 아니라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주님자신이 십자가에서 죽게 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38절)
따라서 본문의 비유는 오늘날 교회에 적용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생산할 것을 요청받고 있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하며, 이러한 생산의 동인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위대함은 자신이 가르치신 것을 그대로 행하셨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늘의 비유도 자신의 종국의 죽음에 대해서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는데, 이처럼 주님은 자신이 가야 할 바를 분명히 인식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길이 험난하고 어렵지만는 주저함이 없이 그 길을 묵묵히 걸어 가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목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길을 초연하게 걸음으로 성취하신 주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참 모습을 보게 됨니다.

3.자신의 가야 할 길을 경주해 간 바울을 봅시다. (빌3:4-14)

빌립보서 3:4-14말씀은 바울이 자신의 삶을 회고한 내용입니다.
(12-14)“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 라,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자신을 경주자로 그리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과 목표에 대해 분명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사실 바울의 목표는 분명한 것으로 10-1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리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받드는 자에게 상이 있음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15-16절에서처럼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자에 대해서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물질적인 노예생활에 집착하는 것을 풀어서 만민을 위해 예비한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로 만들며, 새 생명을 주사 주님과 함께 나눔의 삶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메세지는 세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과,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의 삶을 대조시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상받는 삶을 살도록 권고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야 합니다.
인생은 과정이요, 흐르는 물과 같으며, 문제는 어디로 흐를 것인가 그 목표가 중요한 것입니다.

빌립보서3:4-14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있는데, 특별히 자신을 경주자에 비유하면서 하나님의 부름의 상을 바라보면서 성실히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업적에 자만하지 않고 오직 푯대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의 배경을 자랑하지 않고,(5-6절)“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목표를 잃지 않고 성실히 살아가는 바울에게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참된 모델을 보게 됩니다.
(8-9절)“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그러므로 우리도 지난날의 일은 묻어 버리고, 우리의 새로운 삶의 목표를 위해서 달려갑시다.
힘들고 괴롭고 슬픈 일이 있을 찌라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삶의 목표를 위해서 달려갑시다. 하늘의 부름의 상을 바라보면서 달려갑시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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