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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힘을 얻는 사람들 (사 4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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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성공과 실패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첫째,실패하는 사람들입니다.
매양 매사에 넘어지고 자빠지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성공하는 사람들입니다.이 사람들은 실패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셋째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입니다.이들은 실패해도 다시 성공하는 사람들입니다.인생이란 요람에서 무덤까지 성공만으로 계속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언덕이 있는가 하면 바다가 있습니다.인생도 그렇습니다.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습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한 후에 성공하는 경우입니다.
성공하고 잘 살다가 실패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성공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서고 새힘을 얻는 비결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번 얻은 성공을 지켜 나가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만 그런 실패를 딛고 다시 재기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본문은 넘어지는 사람과 넘어지지 않는 사람,쓰러지는 사람과 쓰러지지 않는 사람,일어서지 못하는 사람과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1.어떤 사람이 넘어지는 사람입니까1)의심하는 사람입니다.
27절을 보면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라고 했습니다.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의심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은 내 사정을 모르신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은 내가 겪고 있는 원통한 일들을 모른 척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그들의 불신이며 의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 편입니다.의심하면 주님이 곁에 서 계셔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을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제자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눴습니다.그런데 그들의 눈이 의심으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내 곁에 계시고,나와 함께 계시고,나를 돕고 계시지만 믿음이 없고 의심으로 눈이 가리워지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의 종국은 패배이며 절망일 수 밖에 없습니다.
2)고백이 잘못된 사람입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입을 잘못 놀리는 사람은 넘어집니다.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늘상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입니다.그런데 그들은 “내 사정은 하나님께 숨겨졌다”느니 “내 하나님은 내 원통한 사정을 수리해 주지 않으신다”느니 원망 섞인 넋두리를 늘어 놓은 것입니다.
전문의 말을 빌리면,음식물이 위내에서 정상적으로 소화되려면 위액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위액이 정상적으로 분비내려면,즐겁고 기쁜 마음과 분위기 속에서 음식을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화를 내거나 증오심을 품게 되면 위액분비가 불규칙해질 뿐만아니라 위벽이 긴장해서 소화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과 넋두리를 일삼는 사람이라면 육체적 건강이나 영적건강이 좋을리가 없습니다.
제 방엔 난초 몇 그루가 있습니다.제가 난초를 좋아한대서 몇분이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난초는 생김이 단순합니다.줄기에 가지가 붙고 꽃이 달리는 복잡한 구조가 난에는 없습니다.잎새 하나하나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잎끝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하늘로 뻗는가 싶으면,다시 목을 꺾어 땅으로 머리를 숙이는 겸허한 자태를 지니고 있습니다.그러면서 고고한 잎과 꽃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난을 좋아합니다.
저는 난 곁으로 다가가 손으로 매만집니다.그리고 속으로 난 예찬론을 읊조립니다.그래서 일까요.싱싱하고 예쁘게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두가지 고백의 자유가 있습니다.하나는 감사의 고백이며,다른 하나는 불평과 원망의 고백입니다.
감사는 다시 일어서는 에너지이고,원망은 넘어 뜨리는 에너지입니다.
통나무를 켜는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켜면 집짓는 목재가 나오지만,신세를 한탄하며 원망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켜면 장작감 밖엔 켜지 못합니다.
넘어지는 사람들과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그것은 원망,불평,의심,불신,핑계가 많다는 점입니다.

2.어떤 사람이 일어서는 사라입니까1)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본문 28-29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땅끝까지 창조하신 자,피곤이나 곤비치 아니하시는 자,명철이 한이 없으시며,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본문이 밝히는 하나님은 시간적으로는 영원히 존재하십니다.능력으로는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섭리면에서는 피곤이 없으시고,능력과 힘을 공급하시는 자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마디로 믿지 않으면 안될 분이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위대하다든지 힘이 더 강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우린 지난 주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취임식 장면을 매스컴을 통해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낡은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입니다.그가 왜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역사와 미국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신앙행위에섭 비롯되는 것입니다.
누가 강한 사람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그리고 자신이 약자임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강자가 되는 것입니다.
몇년전 탈홍증세가 있어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장시간 서있는 경우가 많고,힘써 설교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생긴 병이라며 간단히 수술하면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구정 주간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받은 다음날 담당의사가 들어오더니 소변을 누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문제는 소변을 위해 힘을 쓰면 수술 부위가 찢어지듯 아픈 것입니다.
도무지 소변이 어려웠습니다.
그 사정을 그대로 이야기했더니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려 주었습니다.그것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입으로 쉬,쉬-소리를 내며 소변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웃지 마십시오.저는 그대로 했습니다.쉬,쉬 소리를 내며 수돗물을 틀어 놓고… 그러면서 얼마나 혼자 피식거리며 웃었는지 모릅니다.그리고 세상 떠나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적 어머님이 그런 방법으로 소변을 보게 해주셨던 경험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느낀바가 컸습니다.
배설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존재,그러면서도 만물의 섭리 없으면 침 한방울도 소변 한방울도,마음대로 못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강한 존재,다시 일어서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이유는 하나님이 힘을 더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2)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입니다.
31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앙망」은 하나님만을 바라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러나 자신한테 실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는 날로 날로 새 힘을 얻고 행복에 빠지게 됩니다.
영국의 경제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이해관계로 모인 99명 보다 한사람의 신앙인이 더 강하다”고 했습니다.
왜 신앙인이 강합니까 이유는 그가 믿는 하나님이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대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명철이 한이 없으시며,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 어떻게 약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3.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을 생각해 봅시다.
그 결과가 중요합니다.
본문 31절을 보면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가.그러면서 새 힘을 얻은 상태를 독수리에 비기고 있습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독수리가 날개쳐 올라가는 하늘은 신선한 곳입니다.먼지,안개,구름 따위가 없습니다.새 힘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먼지같은 걱정이나 근심이 없어집니다.
둘째,독수리가 올라가는 그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경관이 아름답습니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에서 바라보는 경치와 높은 산위에서나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전혀 다릅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들 눈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심지어 실패도 감사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기철 목사님은 옥중에서 “주님 위해 순교하고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고,손양원 목사님은 공산당에게 두아들 동신 ·동인 두 형제를 빼앗기고 난 후 “천당갔으니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셋째,날개치며 올라가는 독수리는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조류연구가들에 의하면 앉아 있을때는 독수리나 매나 비둘기나 별차이가 없다고 합니다.크기와 모양이 약간 다를뿐입니다.
그러나 일단 날개를 펴서 날게되면 상황이 다릅니다.독수리 날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받는 힘을 본문은 「새 힘」이라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갈때는 어떤 새도 접근하지 못합니다.접근하다간 날개에 찍혀 조각이 납니다.두눈으로는 푸른 창공 찬란한 태양을 직시하며 비상합니다.
마찬가지로 새 힘을 얻는 사람은 천성을 향해 달려갑니다.
누구도 가로막거나 방해하지 못합니다.그뿐입니까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습니다.
피곤을 모르는 인생,거칠 것이 없는 삶,장애물이 없는 생활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앙망하고 믿는 사람은 그런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나는 믿어도 안되더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그러나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인지 두루두루 둘러보는 믿음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독수리 눈은 이중렌즈로 되어 있기 때문에 햇빛을 똑바로 직시해도 눈이 부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새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개인도 교회도 그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새 힘을 받아 새로 출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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