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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계시. 마지막 책임 (계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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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주변에서 특정한 달 특정한 날에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 어진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많이 대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이 사람들의 말을 사실로 믿고 자 극을 받아서 자정 기도회로 모이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물론 미국 에서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이 단이라고 일축해 버립니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의 재 림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광신적인 의견이라고 일축해 버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소식을 접할 때 위험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대인들의 냉담한 신앙 생활을 떠올리며 이런 사람들에게 매우 동정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위 험하기도 하고 이단적이기도 하고 또 성경 해석에 관한 많은 오류 를 품고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메말라 버린 현대인들 의 신앙이 다시 회복되어서 재림하실 주님을 준비하는 자리에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생각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을 모두 이단으로 몰 아 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물론 재림의 시기를 못박는 것은 비 성경적이지만, 주님 오실 그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은 성 경을 믿는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 다. 우리는 재림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비판할 때에라도 성경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복된 소망 자체를 저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닫혀진 책 혹은 대단히 신비 한 책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단적인 성향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보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정당한 메시지마저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대 단한 불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먼저 당신이 요한계시록에 대해 마음을 열기를 바랍니다.

이번 과의 본문이 요한계시록 1장 1절인데, 이 구절을 통해서 요한계시록의 성격이 어떠한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책 을 이해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을 주목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 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의 성격 사도 요한은 이 책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 책의 제목이 「요한계시록」인데, 그 처음 구절이 사도 요한 의 계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The rev elation of Jesus Christ) 하는 이 부분의 의 미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계시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 신 계시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계시의 중심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사도 요한에 의 해서 기록되었다고 할지라도 제목을 「요한계시록」이라고 붙이는 것 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장엄하고도 유일한 주제 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 안에는 예언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의 초점은 예언이 아닙니다. 또 요한계시록은 칠 년 대환난을 비 롯한 종말의 여러 사건들을 다룹니다. 그러나 그 초점은 실로 성 경 전체의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이 성경을 상고하거니 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도 우리의 영 광스러운 구주요 역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책입니 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을 참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시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요 주 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스펄전은 성탄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별을 사용하셨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보았던 별, 그 별은 별 자체를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리스도가 증거된 후에 그 별은 사라졌습니다. 그 별이 증거했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아직도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우리에게 증거하기 위해서 요한을 사용하신 것도 사실이고, 천사들을 사용하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 한계시록을 통해서 참으로 높여져야 할 분은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 구들로서의 천사들이나 요한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그분이 계시의 원천이 되시고 계시의 중심이 되십니다.

 이제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계시의 중심이시고 원천이신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어 분해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

1장 18절에,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 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陰府)의 열쇠를 가졌노니라 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언급합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의 첫 장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 을 나타내는 것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3장/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그리스도 소아시아, 그러니까 지금의 터키 지방에 존재하던 일곱 교회를 향 해 씌어진 편지입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 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의 일곱 교회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구 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 스도 자신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 부분에 명백히 밝혀져 있습 니다. 각 교회가 받아야 할 메시지에 적합한 모습으로 주님의 모 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2장 1절에 에베소 교회를 향 해서는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 는 이가 가라사대라고 합니다. 8절에서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는 ,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라고 했 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박해와 고난을 많이 당했던 교회입니다.

지금도 계속 죽음의 위기 앞에서 신앙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있는 이 교회를 향해서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얼마나 적합한 이미지 를 갖습니까? 우주의 처음과 나중이요, 사람들의 생명의 처음과 나중이요, 죽 었다가 살아나신 분, 지금도 살아 계신 분, 사람들의 생명을 주 장하시고 교회를 주장하시는 분, 교회의 주(主)가 되시는 그리스 도가 가라사대.

이렇듯 2장과 3장은 교회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5장/천국의 영광 되신 그리스도 사도 요한은 잠시 영원의 커텐을 열어서, 주님을 믿고 이미 하나 님의 나라로 올라간 성도들이 보좌를 중심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있 는 영광스러운 장면을 보여 줍니다.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그 주님, 구속(救贖)함을 받은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가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함께 그분을 예배하고 있는 놀라운 광경입니다.

 요한계시록 6-18장/역사의 심판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여기에서는 심판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역사의 모든 죄 와 악은 그분에 의해 심판됩니다.

 요한계시록 19-22장/역사의 완성자가 되시는 그리스도 그분이 역사를 시작하셨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 었고 그분에게로 돌아가 완성됩니다. 바로 그 완성자가 되시는 그 리스도를 보여 줍니다.

 실로 요한계시록의 단일 주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1장 1절의 첫 구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계 1:1).

이 『계시』란 말은 뚜껑을 연다, 나타낸다, 보여 준다 (unveil)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이라는 이 책 은 지리산이나 계룡산에서 도(道)를 닦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나타 내기 위한 내용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기 위한 책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무대 속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숨기신 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서 12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일련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 십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封 緘)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이 구절을 볼 때, 다니엘의 메시지 중 상당 부분이 감추어진 메 시지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지막 때까지 봉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예수님이 재림하기 바로 직전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이 마지막의 시작은 예수 님이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부터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 을 때, 하나님은 역사를 완성하기 위한 특별한 일련의 구속(救贖 ) 역사를 이 지구상에서 펼치십니다. 그때가 마지막의 시작입니다.

히브리서 1장 1,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 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 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되신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시간과 공간의 역사 속에 찾아오신 그 사건이 역사를 완성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지막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도래했으므로, 다니엘에게 봉함하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제 공개되어야 했습니다. 다니엘서 12장 4절과 비 교해서 요한계시록 22장 10절을 읽어 보십시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 까우니라.

이 말씀은 알려져야 하고, 교훈되어야 하고, 도전되어야 하고, 응답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 를 어떤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이나 특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 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된 계시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의 계시라는 단어가 신약성경의 사도들에 의해서 특별히 어떤 방법으로 쓰여졌는지 몇 구절만 주목해서 보겠 습니다. 우선 고린도전서 1장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여기의 나타나심이라는 단어와 요한계시록 1장 1절의 계시 라는 단어가 원어로는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쓴 저자의 가장 중요한 의도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 한계시록을 정상적으로 묵상하고 공부한 사람들은 그 속에서 영광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다음은 베드로전서 1장 7절 말씀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 려 함이라.

여기의 나타나실 때라는 단어가 요한계시록 1장 1절의 단어와 똑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라는 주제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는 더 절실한 문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던 사도 요한을 포함한 초대 교회의 사도들 은 그 당시에 신앙의 박해를 받으면서 이 메시지를 받아 기록했습 니다. 그들이 신앙의 박해를 경험하고 있었을 때, 그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주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주변의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 주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도전해 왔을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믿음의 삶을 지켜 가며 격렬한 싸움을 싸우고 있던 그 당시의 성도들에게 다시 오실 주님,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주님은 얼마 나 커다란 격려와 영감(靈感)의 원천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 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구체적으로 계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 하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의 드라마의 끝은 아닙니다. 그분은 다시 오십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제자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도록, 그 당시에 박해 상황을 생각하면서 요한계시록 1장 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 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또 1장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 었더니.

그 고난과 박해와 시련을 당하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 다시 나타 나실 주님 앞에 희망의 초점을 맞추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습 을 기억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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