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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율법과 나 (롬 0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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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에서는 죄에 은혜에 받은 사람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것을 진심으로 깨닫고 느끼는 사람은 정말 귀합니다.

 7장은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6장의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죄는 항상 율법을 가지고 우리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예 수님은 우리의 죄때문에 죽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율법 때문에 죽었다고 볼수 있 습니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진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허공에 떠있는 것이 아니 기 때문에 학교에 다녀보지 않은 할머니라도 성령을 받고 은혜가 임하면 이해할수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는 따질수 없어도 그냥 믿어지고 이해할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6장14절에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예증하기 위해서 예를 하나들고 있는데 1-3절에 부부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에는 서약을 합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정절을 지킬 것이라고 말 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효력이 있어서 80-90년동안 얽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더러운 세상이기 때문에 별의 별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이 서약이 지켜지는 가운데 서로에게 매여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쉽게 덤벼들게 아닙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자유합니다.

여자가 남편이 죽은 다음에 옛날 애인을 만난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 다. 혹시 가족들이나 이웃이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습니다.

남자들은 여자가 죽으면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1년이 안되어서 결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정이 많아서 아내가 죽은지 얼마 안되어서 결혼하는 사람을 못보 아 줍니다. 못된 사람이라고 욕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죽으면 손해라고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고 시위를 합니다.

'이렇게 고생을 해서 기반을 닦아 놓은 것이 누구 좋은 일 시키게 되느냐'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나와의 관계를 잘 나타내 주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율법과 결혼 한 사이입니다. 그렇게 뗄레야 뗄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이야기입니다.

율법은 강하고 나는 약합니다. 그래서 율법이 남편이고 나는 아내입니다. 율법 은 우리가 조금만 잘못해도 때리고 구박합니다. 조금의 실수도 용서하는 법이 없 습니다. 철저하고 엄격합니다. 숨조차 쉴수 없을 정도입니다. 율법은 너무사납고 무섭습니다.

항상해라,말라 입니다. 안하면 때리고, 나중에는 죽인다고 합니다.

 이 율법을 벗어나고 십습니다. 어떻게 하면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을까 하는 것 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율법에서 해방되는 길은 율법이 죽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에 하나가 죽는 것입 니다. 그런데 율법은 죽지를 않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절대 없어 지지 않습니다.

12절에 보면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 다 율법이나 계명이나 같습니다.

율법은 거룩하므로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죽어야 합니까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으면 율법하고의 관계가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까 율법 아래서 내가 죽으므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위 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4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였으니 언제 죽임을 당하였읍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죽 었습니다.

예수는 아무 죄없는 분이지만 우리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심으로 율법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정죄를 받아서 죽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율법과 관계를 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함께 죽은 우리도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 자가에 죽으므로 율법에서 해방되고 자유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거한 것처럼 우리 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주님이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킨 것입 니다.

 4절 중간에 이는하고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왜 우리를 율법에서 벗어나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해방되었느니까 이제는 죄를 짓는 것에 대해서 아무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 방종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 무용론을 주장합니다. 성경의 율법 을 안읽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를 율법에서 벗어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는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는 살아나신 예수님 과 재혼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 예수와 재혼해서 한 몸 되게 했습니까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 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열매를 맺힌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결한 삶을 산다는 의미와 하나님 을 위해서 사는 헌신을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대로 순종하는 것입 니다.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사람들은 방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를 자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성결할 수 없습니다. 성결하 지 않으면 하나님의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5절은 우리가 종살이 할 때를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 으로 죄의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서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왜 율법이 우리를 죄짓게 할까요

이것은 율법을 마귀가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율법으로 충동질하여 하나님 을 대항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지말라는 짓은 더하고 싶은 본능이있습니다. 선반위에 것을 만지지 말라면 의자를 놓고라도 만지다가 엎어 버리고 혼나는 경우가 한두번씩은 있습니 다. 죄의 충동에 이끌려사는 것입니다

6절에 이제는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자 가 되었습니다.

의문은 기록된 것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율법의 조항에 얽매여 애를 쓰는 모 습입니다. 벌벌 떨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미신에 얽애여 살듯이 유대인들은 법 에 매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종이에 기 록된 법에 얽매이지 않고 더 좋은 것을 가졌습니다.그것은 영의 새로운 것입니 다.

주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는 성령을 주셨는데 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종이에 새긴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고 사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종이에 새긴 밖의 것을 지키려고 했으니까 힘들었지만, 마음에 있는 법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쉽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 로 살기 때문에 쉽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금방 알수 있습니다. 마음에 감동이 옵니다. 그래서 쉽게 주님을 따라 사는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점이 하나있습니다.율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호랑이를 보지 못한 사람이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무서움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부터 들었기 때문에 율법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면 어떤 피해가 오느냐 하면 복음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을 보면 율법을 잘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됩 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안다는 것이 오히려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었다고 예 수님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 22-29절에 '너희도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잘 알지 못하였으므로 오해 하였 도다'고 말씀하셨고,눅 11:45에는 십일조는 드리되-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은 저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잘 몰랐기 때문에 할 것은 안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 들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공의 이웃 과 어울려 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시시한 십일 조,제사드리는 것,주일을 지키는 것 등을 가지고 떠들다가 말았습니다.

 율법의 기능이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알려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7절 중간에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무슨 죄를 알려 줍니까 마음 속의 죄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행위로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으니까 의롭다 고 자위했지만, 마음속의 탐심은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8절에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11절에도 있 습니다) 죄가 율법 즉 계명을 두구로 삼아서 우리로 하여금 마음 속으로 탐욕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이 없으면 여인을 보고 범죄를 짓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3이니까 놀지 말아라,하면 더 놀고 싶어집니다.

이것은 율법이 우리의 욕망을 부채질하고 깨우는 것입니다.

셋째는 11절에 나를 속였다고 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속입니다.

하와에게 와서 속였습니까 유대인들도 율법을 잘 몰라서 속았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겉으로 십일조하고,금식하고 손을 씻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철저히 속아서 살은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눈을 떠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될수 없습니다.

 EX) 예수님에게 어느 부자가 찾아왔습니다.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 까고 물었습니다. 네가 계명을 지켰느냐고 예수님이 물으시니까 내가 다 지 켰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율법을 잘 모른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가서 네 모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쫓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니까 잘 못된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무엇인 지 바로 알게 된 것입니다.

 율법을 바로 알고 있느냐, 잘못 알고 있느냐는 아 나는 이 정도면 괜찮아 라 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입니다.율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율법을 깨달아 알게 되면 우리는 두려워하게 됩니다. 내가 지은 죄가 생각나서 부끄러워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구경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교인들은 그렇지 않은것 같습니다. 내가 잘났다내가 잘한 다고 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율법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인가 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죄악들이 살아나서 통회하는 사람에게 하 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않고는 느낄수 없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우리는 죄의 감각을 상실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율법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깨달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것은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 문 밖에 험상궂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어린 딸이 보면 누구를 꼭 붙잡습니 까-아버지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무서우면 무서울 수록 아버지의 가슴에 매달 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로 더 가까이 가 기 위해서, 하나님을 더 열심히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율법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 다.

 구원의 기쁨에 넘쳐서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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