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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날 (벧후 0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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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수 없이 일어나는 처참한 비극들을 허락하실 까요 애매한 사람들에게 날마다 닥치는 끔찍한 고통과 슬픔들을 보고 즐거워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력한 개인들에게 가해지는 불의는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질병들이 퍼지지 않고 근절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 세상일에 개입하시지 않고 방관만 하실 까요 어째서 선한 사람들의 개혁 운동이 미미한 결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요
지난 수백 년 동안 이 세상은 교육 분야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지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혁혁합니다. 인간의 시간과 정력의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여 주는 각종 장비와 계기들이 현대 사회를 범람해 있습니다. 의학도 크게 발전하여 어떤 질병들은 완전히 불식되었고 다른 질병들도 쉽게 통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불행하고 비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인간 사회는 거족적(巨足的)인 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악이 번창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실까요
그 대답은 하나님이 악을 처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시대에 물로써 세상에 심판하셨습니다. 그 때에 8명만 구제되고 나머지 인간들은 모두 멸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서운 홍수의 심판마저도 영구적인 개선을 초래하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은 죄 속에 계속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기심과 탐욕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는 죄악이 다시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 죄많은 세상에 대해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 것일까요

루이스(C.S. Lewis)의 사자와 마녀와 장농(The Lion, the Witch and Wardrobe)이라는 책에 보면 작중 인물인 피터, 수잔, 에드문드, 그리고 루시라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흰마녀(the white Witch)가 무섭게 다스리는 신비적인 나니아(Narnia)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흰 마녀의 통치 기간은 춥고 슬폈습니다.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계율에는 크리스마스도 없었습니다. 나니아의 백성들은 억눌려 살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가지 일이 그들의 고된 삶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스란이라는 큰 사자(합법적인 왕이다)가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비어버 씨는 아이들에게 옛 시(詩)를 하나 읊어 주었습니다.
그릇된 것은 바로잡힐 것입니다.
아스란의 포효 소리에
슬픔은 달아날 것입니다.
아스란이 이빨을 드러내면
겨울은 죽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아슬란이 갈기를 흔들면
우리에게 봄이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베드로의 서신을 받아 본 수신인들은 그들이 얼마나 더 오래 그 많은 시련과 유혹을 견디어야 할 것인지를 궁금히 여겼을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언급한 주의 날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날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3:13).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수신인 성도들에게 항상 슬픔에 잠겨서 살지도 모른다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기롱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없다고 비웃었지만 베드로는 그런 거짓 선생들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약속을 항상 지키십니다. 베드로는 4, 9, 13절에서 ‘약속’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였는데 특별히 1:4절에서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럼 주께서 언제 돌아오실 까요 신자들은 주님이 오실 때를 당연히 알고 싶어합니다. 베드로후서의 수신자들도 우리처럼 인생의 여러 가지 고통들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주의 날이 도적같이”(3:10)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적이 어떻게 옵니까 신문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의 집에 들어갈 것이라고 광고를 낸 후에 올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도적은 예고 없이 옵니다.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Mat24:42)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on what day your Lord will come. (Mat24:43) But understand this:If the owner of the house had known at what time of night the thief was coming, he would have kept watch and would not have let his house be broken into. (Mat24:44) So you also must be ready, because the Son of Man will come at an hour when you do not expect him.
우리들은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비슷한 경고를 하였습니다.
(살전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살전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전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예수님 자신도 자신이 재림이 언제일지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4:36).
(Mat24:36) No one knows about that day or hour, not even the angels in heaven, nor the Son, but only the Father.
그렇다면 우리들이 재림 시기를 놓고 무익한 예고를 하거나 날짜 계산을 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할 일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위해 날마다 잘 준비하면서 성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을 해 봅시다. 여러분의 집에 불타고 있을 때 가족들이 다 안전한 것이 확인된 후, 한 가지 물건을 건져내어야 한다면 그것이 어떤 것일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집문서입니까 저금통장입니까 가전제품입니까
하지만 심판 날에는 이런 종류의 것들은 모두 뒤에 남겨 두어야 합니다. 주의 날에는 모든 것들이 파괴될 것입니다. (벧후3:10)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이것은 주의 날에 일어날 사건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지구를 수십 번씩 완파시킬 수 있다는 핵무기가 인간의 실수나 어떤 정신 이상자의 우행에 의해 발사될 가능성이 가끔 논의되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말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집니까 라고(3:12). 만일 이런 걱정을 한다면 마음을 놓으십시오. 이 세상의 완전한 멸망은 우발적인 사고에 의해 발생될 수 없습니다. 그런 대파괴는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이 세상이 쥐어져 있는 것이지 사람들의 손에 세상 만사의 운명이 작정된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베드로가 우리가 무엇보다도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다르게 말합니다. “단 한번 사는 인생이니 가능한 대로 즐기십시오.” 내일 우리가 죽으리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하였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이러한 노래가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다른 조언을 해 줍니다. “(벧후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살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인생은 가장 멋있는 삶입니다. 본 절의 말씀은 우리들의 행위와 동기들을 반성케 할 것입니다.
둘째, 베드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3:12)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3:13)보아야 합니다. (벧후3:14)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는 것도 베드로의 부차적인 교훈입니다.
왜 우리들은 하나님의 날을 고대해야 합니까 그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 아름다운 세계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파괴된다는 생각을 하고 몹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주님을 구주로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최후의 사건들이 대 재난이 될 것입니다.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 구원을 받지 않은 자들은 최후의 그 날이 너무도 무서울 것입니다. 주님을 한사코 거절하고 주님의 자비를 내던진 자들에게 그 날은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마지막 날이 너무도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심 때에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라는 체험을 가진 자들에게 주의 날은 환희와 승리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에 불이 죄와 엉겅퀴와 질병과 지진과 기근과 모든 재앙들을 일으키는 것들을 모조리 불태울 것입니다. 불이 모든 악한 것들을 산화시키고 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세워지고 그 속에는 아름답고,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의(義)가 영원히 머물게 될 것입니다.
셋째, 베드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라.”(3:12)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도와 전도로써 주님의 재림을 고대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마라나타’-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16:22)라는 인사말이 있었고 주기도문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시고”라는 기원이 들어 있습니다(마6:10). 우리들은 만사가 성취될 주의 큰 날이 도래하도록 힘써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날이 지체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3:9). 따라서 우리들이 주의 날을 앞당기려면 세계 선교에 주력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속한 마지막 자녀를 선교로서 믿음과 회개에 이르게 하여 하나님의 집이 채워지면(눅14:23). 끝이 올 것입니다.
넷째, 베드로는 우리들이 “의의 거하는 바”(3:13) 본향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향은 안전한 곳입니다. 고향은 사랑과 평강을 대변합니다. 고향은 가족들과 친지들의 따뜻한 환영을 연상시켜 줍니다. 우리들이 참 신자들이라면 고통과 슬픔에 찌든 이 옛 세상이 멸망되는 것에 대하여 조금도 섭섭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이 세상은 의의 고향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자주 이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사45:8)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다니엘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거룩한 성이 (단9:24)“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 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섯째, 베드로는 우리에게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3:14)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전서 1:19절에서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이하려고 갈보리의 잔혹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닮도록 힘써야 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죄를 더 이상 짓지 않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단의 공격을 더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 그리스도인들보다 죄의 유혹을 더 많이 받습니다. 그러기에 마귀에 힘써 대항해야 합니다(벧전5:8-9). 그리고 우리들이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날마다 추구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과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까요
다가오는 주의 날을 대비하기 위한 안내를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도움을 성경에서 옵니다. 성경만이 우리 삶의 참된 안내자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재림을 성도들에게 자주 언급하며 준비를 촉구하였는데 베드로는 본문에서 그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베드로와 그의 수신자들은 바울 서신들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구약을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을 왜곡하듯이 바울 서신들을 잘못 해석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로써 베드로는 바울 서신들을 구약 성경과 대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성경의 어떤 가르침들은 매우 난해합니다. 베드로도 바울 서신들 중에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3:16). 그런데 베드로 서신들 중에도 그런 어려운 부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들은 잘 알려진 성경 본문, 이를테면 시편 23편이나 산상설교와 같은 말씀들만 골라서 보는 영적 편식을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말씀들도 다른 관련 구절들과 함께 보면 훨씬 나은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 공부 그룹에 들어가서 다른 성도들과 함께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성경을 정독하면서 본문을 깨닫고 적용시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 시간이 되어 성전으로 올라가던 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베드로는 기회를 잡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갈보리로 보낸 사실을 지적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행3: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행3: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 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행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하나님이 만유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이 땅으로 다시 보내실 그 약속된 날은 신속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이 언제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의 영광스런 왕을 만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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