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친교의 생활화1 (행 02:37-47)

첨부 1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 야기를 했습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 활화해야 하고, 둘째는 기도가 생활화되어야 하며, 셋째는 예배가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교회의 큰 과제 가운데 하 나가 「신앙의 생활화」일 것입니다. 날마다 신앙을 생활화하려면, 교회에 올 때만이 아니라 집에서 말씀과 기도와 예배 생활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신앙 성장의 네번째 요소인 성도의 교제에 대해 살 펴보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7-47절을 보면 이 네 가지가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또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성경 공부를 가리킵니다. 또 서로 떡을 떼며 교제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하루에 3천 명이 예수 믿게 되 었습니다. 즉, 전도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도인가? 성도끼리 교제해야 된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을 성도라고 합니까? 「성도」(聖徒)는 거룩한 무리란 뜻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 을 본문인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첫째로, 성도는 회개한 사람입니다.

회개(悔改)가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회개했습니까? 여기서 회개한다는 말은, 죄를 고백한다는 뜻으로 그동안 잘못했던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한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회개라는 말은 돌아섰다는 말입니다. 즉,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 의 주(主)로 고백하지 않고 살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 고는 그분께로 돌아섰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영원한 멸망의 세 계로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아 왔는데, 복음의 그 메시지를 듣고는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게 되어 천국을 향하여, 영원한 삶 을 향하여 돌아섰다는 말입니다. 회개했다는 말은, 거룩한 사람이 나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돌아섰다는 말 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습니까? 언제 하나님께 돌아섰습니 까? 당신 나름대로의 영적인 생일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벧엘 교회에 있을 때에 보니까, 한 분이 예수 믿은 지 일 년이 되는 날 구역 식구들이 생일 케聖을 만들어 촛불을 켜들고 문을 두드 리고는 Happy birthday to you라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그들에게 제 생일은 오늘이 아닌데요라고 그 성도가 이야기하니까, 『당신이 일 년 전에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당신의 영적인 생일입니다』라고 상기시켜 주고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누구나 주님께로 돌아서는 날이 있습니다. 돌아서는 때가 있습니다 . 당신은 언제 돌아섰습니까? 아직도 안 돌아선 것은 아닌지요? 아직도 천국의 세계를 향하여 돌아서지 않고 여전히 암흑의 세계 를 향하여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십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회개하라고 했으니까, 오늘부로 마음에 결정하시고 돌아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도가 되는 출발입니다.

 둘째로, 성도는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세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직은 도저히 세례를 받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예수 믿으려면 철저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 는다고 세례받고서도 철저히 믿지 못할까봐서 주저하게 됩니다. 세 례받고도 어정쩡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거든요.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도 희미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나쁜 짓 하는 사람 봤다고 하는데, 사실일 것입니다. 예수 믿은 사람이 반드시 성자(聖者) 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죄인입니다. 그런데 그냥 죄인이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꼭 성인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기도하고 간구하고 수 고하고 금식하고 자복합니다. 성자는 구원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자는 예수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꼭 죄인만 예수 믿어야 합니 다.

 그러므로 세례받는 것을 야단난 것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세례받으려면 학습을 받고 최소한 6개월이 지나야 됩니 다. 그런데 옛날에는 세례받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한밤중에 지진이 나서 감옥문이 열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보고 그들을 지키던 간수가 자살하려고 하니까 사도 바울이 자살하지 마시오. 우리가 여기 있소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감동되어서 그 간수가 사도 바울을 데리고 집에 가서 약도 발라 주고 저녁도 잘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그 간수와 그 집 사람들이 예수를 믿 었는데, 그들이 언제 세례받았는지 아십니까? 그날 밤 즉시로 세 례를 받았습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세례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다는 표시 입니다.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외적으로, 공개적으로 공포하는 것 입니다.

 또 에디오피아의 내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병거를 타고 가는데, 빌립 집사가 그에게 청하여 같이 타고 가게 되었습 니다. 이때 성경을 읽는 내시에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빌립 집 사가 물으니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 집사가 설명해 주었 습니다.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이 예수에 대한 이야기인데,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 아나셔서 저 하늘로 올라가신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분이라고 했습 니다. 그 내시가 그날로 돌아섰습니다. 회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회개했더니 빌립 집사가 당신 세례 안 받을 이유 있소? 하 고 묻습니다. 없다고 하니까 목사도 아닌 빌립 집사가 당장 그에 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는 세례받은 사람이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는 외적인 표시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 집회 후 저에게 말하기를 목사 님, 저는 세례를 세 번 받았습니다. 어릴 때 유아 세례 받고, 대학(기독교 학교였음) 다닐 때 유아 세례 받은 것이 잘 기억 안 난다고 했더니 다시 받으라고 해서 다시 받았고, 미국 이민 와서 침례교회를 나갔더니 침례를 받으라고 해서 또 받았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 세례를 받았는데도 예수님이 자기 구주인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전도 집회에 참석하고 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분은 훌륭한 신앙인이 되었 습니다.

 세례는 구원받은 사람,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이 받는 표시입니다. 물론 아직 어리고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하고 특별히 거룩하게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을 자기의 구주로 받아들였으면 즉 시로 세례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받았다는 것은 완전해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믿기로 해서 주님을 받아들였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자체 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영세라고 하는데 영세 자체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영세를 안 받으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 「그리스도의 교회」도 그렇 게 가르칩니다. 세례받으면 거듭난다고 하는 가르침이 있으나, 그 것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세례는 공개적으로 주님을 영접했습 니다 하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받은 사람이 성도입니다.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만 가깝게 지내면, 우리의 신앙에 손해가 올 수도 있습니다.

 셋째로, 성도는 죄 사함을 얻은 사람입니다.

회개해서 세례를 받았으면 죄 사함 받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세례를 줄 때 물로 주는데, 물은 깨끗하게 하는 것 혹은 씻어 주는 것을 상징합니다

왜 물을 뿌립니까? 침례교회에서 행하는 침례(浸禮)와 그 외 교 회에서 행하는 세례(洗禮)는 뜻이 다릅니다. 물 속에 몸을 담갔 다가 나오는 침례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장사지냈다가 살아났다는 뜻이고, 물을 머리에 뿌리는 세례(洗禮)는 옛날 구약 시대의 상 징(象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문둥병은 영원히 못 고치는 병이라 해서 그 병에 걸 린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과 분리시켜 죽을 때까지 성 밖에서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성 밖에 사는 문 둥병자들은 죄를 상징했습니다. 20년, 30년 문둥병자로 살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갑자기 낫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제사장에게 가서 문둥병이 나았다는 것을 알립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보고 확인한 다음에 우슬초에 새 피를 찍어서 일 곱 번 뿌리면서 코셔라고 합니다. 코셔라는 말은 너는 이제 깨끗해졌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정결 의식의 의미가 세례 의식에도 적용됩니다. 즉, 세례를 주면서 물을 뿌리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제는 당신이 예수를 믿고 회 개하고 죄 사함 받았기 때문에 완전히 깨끗해진 것을 선언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볼 때는 완전히 깨끗해진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 다. 내가 아직도 깨끗하지 못한데, 내가 아직도 부족한데, 내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데…. 그러나 당신 자신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돌아가셨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지, 당신 자신의 공로나 노력의 결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 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하 나님 앞에서 완전히 깨끗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회개하 고 세례받으면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과 기쁨 속에서 살아야 합 니다.

 회개하고 세례받고 죄 사함을 받았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동시적인 것입니다. 우리 영혼에 성령님이 오셔 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印)쳐 주시고, 그때부터 우리 안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해 서 기도해 주시고 우리를 격려해 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 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를 성숙하게 해 주십니다. 이런 사람을 보고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을 가리 켜 성도(聖徒)라고 합니다.

 성도의 교제 구원받은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 스도인들은 모두 다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모두 다 영 원 무궁토록 저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살 사람들입니다. 영원히 같이 살 사람들이니까 얼마나 친해야 되겠습니까? 성도의 교제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마치 온실과 같습니다. 그 교제 속에 들어가면 서 로 따뜻한 사랑을 나누면서 돕고 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성장 합니다. 가정 생활에서도 부모와 자식간에 사랑이 있어야 하고 형 제간에도 우애(友愛)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습 가운데 제일 아름다운 것이 형제들이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당신의 집에도 두 세 명의 자녀들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로서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 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습니까! 어려서 싸우던 아이들이 커서는 또 친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정답게 지내는 모습은 얼 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도 그것을 참으로 원합니다. 저는 딸이 셋 인데,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부모 들은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아이들에게 권고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집에 살지는 않지만, 모두 다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 다정한 교제가 있 는 것이 당연합니다.

 A.D. 125년에 사도 요한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마 제국의 어느 총독이 로마 황제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그 내용 중 에 그리스도인 그룹에 관해서 묘사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벽에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나사렛의 예 수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경배하는데, 이 사람들은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 자기 친형제 이상으로 사랑합니다. 이상한 사람 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고 너무너무 사랑해 서 저 사람들은 이상해!라는 소문이 나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특징입니다.

 한 소련 처녀가 카나다의 친척을 방문하려고 3개월의 비자(vis a)를 받아서 갔습니다. 소련과 카나다를 비교하면 얼마나 카나다 가 좋겠습니까? 석 달 동안에 이 처녀의 친척들이 카나다와 미국 의 좋은 곳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이 소련 처녀는 가는 곳마다 탄복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내가 본 일도 없는데…. 서방 세계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참 좋은 곳이 많구나! 이런 모습을 보고 친척들은 그 처녀가 석 달 후에 망명하기를 원 했습니다. 그런데 석 달이 다 되었을 때, 처녀는 카나다에 남아 있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소련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친척 들이 그 이유를 묻자, 이 처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서방 세계에 오니까 참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좋은 것들이 너 무 많다 보니까 그 좋은 것들을 즐기느라고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소련에는 좋 은 것은 별로 없지만, 사람들끼리 다정스럽게 사는 모습이 있습니 다. 그래서 저는 좋은 것보다는 좋은 사람을 찾아서 돌아가렵니다.

이 처녀는 예수 믿는 여자이고 또 예수 믿는 사람끼리 성도의 교 제를 하던 여자였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 때문에 사람의 아름다운 것, 사람의 값진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요? 다른 성도들과 가깝게 교제하면서 인간의 소중함과 인간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나누며 사는 것 이 우리가 살아갈 길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삶은 참으로 분주한 삶입니다. 바쁘고 힘들게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다 보니까 사람에 대해서 흥미를 잃게 됩니다. 또 생존 경쟁에서 처지지 않게 살려고 하니까 사람 들을 믿지 못하는 풍조가 생깁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소외감을 많이 느끼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층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욱 성도의 교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실 요즈음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많이 쓰이는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대중가요는 사랑이라는 말밖에 없 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노래를 밤이나 낮이나 듣는데도 사랑은 부 족합니다. 도처에 사랑이 없어서 굶는 인간의 애달픈 모습이 있습 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신앙인들은 사랑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전통 적인 것이고 역사적인 것인데 왜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 하면 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했을 때 눈물 흘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들의 사랑이 비 교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대학 3학년 학생 40여 명을 모아 놓고 너희들 가운 데 아버지가 너무도 사랑이 많으시고 신앙적으로 훌륭하셔서,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우리 아버지처럼 되겠다 하는 사람은 손들어 했더니 하나도 안 들었습니다. 아주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만하면 괜찮습니다 하는 사람 손들어 했더니 40여 명 가운데 네 명 이 손 들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예수 믿는 가정의 리더 역할은 남자가 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깨 달으면, 남자가 앞장서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버 이 날에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자녀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 교회의 다락방은 참 훌륭합니다. 다락방 구성원들을 볼 때, 성도의 교제가 참 잘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서 로 돕고 사랑하는지 많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분들만 있어서 유감이었습니다. 회개하고 세례받고 죄 사함 받아 성령님을 가슴에 모시고 사는 남자분들에게도 참으로 다정한 성도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남자분들도 모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정을 나누 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뻐하고 내 가족을 위해, 내 사업을 위 해 함께 기도하면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남자 다락방을 금 년에 시작한 것입니다.

 소그룹 교제의 유익 첫째로, 서로 돕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약해질 때가 있고 또 서로 필요할 때가 있습니 다. 인간은 혼자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 재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모여서 상부상조하면서 필요할 때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서로 끌어 주고 당겨 줄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로, 개인의 신앙 성장이 있습니다.

신앙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신앙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떡을 떼면서 김치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의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아직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소그룹의 교제를 통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소그룹의 친교는 선교적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좋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우리의 구원의 기쁨에 참가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초대 교회 때에도 회개하고 세례받고 죄 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가르침을 받으면서 교제하니까 하루에 3천 명이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전도의 힘이 거기에서 나 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성도의 교제가 너무나 재미있으니 까 새로운 사람을 참가시키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 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동창회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반드시 선교적인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 주고 서로의 신앙을 권고해서 우리가 우리 사회를 그리스도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제의 목적은 선교적인 사명이지 그리스도인들끼리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는 온실과 같아서, 좋은 성도의 교제가 있으면 반드시 신앙이 성장합니다. 꽃이 온실 안에서 잘 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예배 때만 참석하고 아직도 소그룹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은 분은 꼭 어느 그룹이든지 참석하기 바랍니다. 또 주일학교 에, 성가대에, 여러 선교회에 참석하시고 직업별로, 직장별로도 그룹이 생겼으면 합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선 교를 할 수도 있구요.

 성도의 교제가 우리의 신앙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시고, 함 께 모여서 즐거운 신앙의 교제를 함으로써 크게 신앙의 성장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