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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삼상 0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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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집안의 멸망이 본장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 은 한치의 착오다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방의 세력을 그 징치 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신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벌인 전쟁은 이스라엘의 패배 로 끝났다. 그리고 다시 벌어진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 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마저 전사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엘리 제사장으 죽고, 그 자부마저 하루 아침에 죽었다. 하나님의 경고가 무서우리 만치 정확하게 성취되고 만 것이다.

<본론>

1. 빼앗긴 언약궤(1-11)-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다.1) 전쟁에서 패배한 원인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1-2).

이스라엘에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4천명가량(2절) 되었다.

이같은 실패는 이스라엘이 전체적으로 죄악으로 부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 로 이스라엘이 전쟁에 패배한 것은 당연하였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패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 패배의 원인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1차 전쟁에서의 패인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 단을 하였다. 여기까지는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어떻게하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표식으로서 언약궤를 2차 전쟁에 가지고 나왔다. 언약궤만 같이 있으면, 하나님이 함게하실 줄로 알았다. 마치 성경책만 들고 있으면 하나님 이 함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았다.

지금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에 대하여 무감각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죄는 우리에게 실패를 가져다 준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죄는 계속 인류를 실패 시켰다. 땅이 저주를 받고, 환경이 저주를 받고, 육신마저 질병으로 시달리게 되었 고, 땅에서 여러가지 곤고한 일들을 당하다가 소망없이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성도들도 모든 죄와 그 저주에서 벗어나 해방을 얻었지만, 죄를 깨끗이 청산하고 정결을 유지하지 못하면, 계속 마귀의 활동 무대를 제공해주는 격이 되어 여러가지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결과 거룩을 유지하는 것이 승리의 기초이다.

이것을 모르고 3절에서 장로들은 여호와의 언약궤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패전 하였다고 오판하였다.

2) 빼아기는 언약궤-형식보다 중심을 더 중요시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중심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앙망하는 신앙은 전혀 없으면서, 껍데기와 형식에 불과한 언약궤를 의지하고 믿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참 신앙은 없으면서, 거저 형식만 갖추면 하나님이 역사할 줄로 착각하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억약궤가 함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 하나님 을 바로 모셔 들이고 있느냐 않느냐 하는 점이었다. 깨닫지 못하고 외식과 형식 에 빠진 패역한 자들은 맹목적으로 언약궤만 들고 나왔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형식이 아니다.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고 갈급해 하느냐 이지, 무슨 우상이나 부적을 써듯이 언약궤만 내 세우면, 중심이야 어찌하였든지 소원성 취할 것이라는 생각은 미신이요, 맹신이었다.

그 결과 그렇게 믿었던 언약궤도 무력하게 빼앗기고, 전사자 3만명에다 엘리의 두 아들(제사장)이 죽는 것으로 돌아왔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중심이다. 그러나, 우리가 중시하는 것은 껍데 기와 형식이 되기 쉽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그러 나,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형식과 폼만 갖추면 되는 줄로 착각한다.

형식과 외식하다가 이스라엘이 망했고, 바리새인이 망했고, 오늘날 은혜를 사모 할 줄 모르고 10년, 20년 믿은 년수 자랑이나 하는 성도들도 실패하게 되는 것이 다. 그러므로 내가 바리새적인 요소가 없는지, 철저히 정검해야 한다.

 2. 정확하게 성취되는 하나님의 말씀(12-22)1) 불명예스러운 엘리의 죽음(18) 사람은 누구든지 죽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죽음은 피할 수 없다(히9:27). 하지 만 죽음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의인의 죽음도 있고, 악인의 죽음도 있으 며, 복된 죽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죽음도 있기 마련이다.

엘리는 언약궤가 적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에 몸을 떨고 앉은 자리에서 급사하고 말았다. 왜 엘리의 죽음이 졸지에 불명예스럽게 죽었는가 그것은 제사장으로서 주의 뜻을 바로 분변치 못하고 자신의 책무에 소홀히 하였을 뿐 아니라, 자녀들이 우상이 되어서 그 허물과 잘못을 바로 고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 녀가 더 크게 보였던 것이다. 자녀가 우상이 되면 주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

오늘날도 자녀가 우상이 되어있는 성도가 있다. 성도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겨져서는 안된다.

2) 기우는 가문 며느리 마저 남편의 전사소식과 시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들은 후 해산하였으 나 죽었다. 이렇게 하여 노인 하나 남지 않으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엘리의 가문의 죽음들이 자연사가 아니라, 불시에 이루어진 변사들이었 다. 이로써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것을 교훈해 주고 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과 같은 사람을 찾으 시고, 욥과 같이 한결같이 하나님에 대한 꿈을 져버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을 찾으 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부단한 연구와 기도가 요구된다. 말씀운동 기 도운동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길이요, 성공하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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