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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말년 (창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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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야곱의 일생을 더듬어 볼 때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반생은 심히 세속적이요, 계략적인 사람이었다. 얍복강에서 그는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 일이 있는데 설교자들은 흔히 해석하기를 그것은 야곱의 간절한 기도라고 하 지마는 그가 하나님 앞에 간곡히 기도한 것은 환도뼈가 부러진 후의 일이요.

그 전까지의 일은 하나님께 대적한 악한 행위라고 선지자 호세아는 말했다.

호세아 12:2,3에 보면 "여호와께서.... 야곱의 소행대로 벌 주시며 그 소원 대로 보응하시리라.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 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 나님과 힘을 겨루었다"고 했다. 그가 모태에서 그 형의 발 꿈치를 잡을 것이 악했던 것 같이 천사와 씨름한 것은 하나님과 대적한 악한 소행리라고 했다.

가시채를 차는 자의 발이 상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자가 평안할 수 없다.

그는 환도뼈가 부러지고야 말았다. 이처럼 그는 모태에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 지 그의 인격이나 신앙은 몹시 혈육적이요, 세속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성도의 당하는 모든 징계가 환난은 오히려 그 인격과 신앙을 정금같이 빛나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야곱의 역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제 그의 말기의 인격이 얼마나 경건하여진 것을 다음 몇가지로 창 43 장 이하의 본문 중에서 찾아보려 한다.

첫째로, 창세기 43:1-2을 보면 " 그 땅 기근이 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 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비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 식을 조금 사라"한 말씀이 있다.여기에 " 양식을 조금 사라"하는 조금이란 말 이 있다. 조금이란 말은 필요한대로 조금만 사라는 뜻이다.

많이 사오지 말라는 뜻이다. 여기 이 말은 그의 말년에 큰 흉년이 들어서 먹을 양식을 사려고 그 아들들이 애굽으로 갈때에 한 말이다.애굽에는 그 때 양식이 무진장 있어서 창고 문을 모두 열고 얼마든지 팔고 있을 때이다. 그런데 야곱 의 그 가정은 지금 기근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야곱의 가정은 지 금 기근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야곱의 가정은 창46:6에 보면 그때 그렇게 가난한 것은 아니다. 오직 양식만이 없을 뿐이지 소와 양과 모든 재물 이 넉넉했다. 얼마든지 양식을 살 수 있는 재물이 넉넉했다.

또 창46:27에 보면, 그 때 야곱의 자녀손들이 도합 70인이라고 했다. 그밖에도 많은 종들이 있었다. 그러한 큰 가정이니 양식도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조금의 양식으로 만족하려 했던 것이다. 이것은 적은일 같지마 는 이 한 마디 말 속에서도 우리는 그의 인생관이 얼마나 변화된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본래 그는 얼마나 탐욕이 많은 사람이었는가, 형의 기업을 탐내고, 외삼촌의 재산을 탐내서 저들을 속이고 그것을 빼앗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노경의 형편을 볼 때 그에게는 그러한 모든 탐욕이 없어진 것을 알 수 있 다.

본래 창43:1-2의 본문 말씀 중 "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하는 말과 또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라"하는 말의 히브리 원문은 대구적으로 되어 있 다.그것을 그대로 직역한다면, 즉 큰 기근이 있는데 적은 식량을 사라고 되었다. 큰 기근에는 반드시 많은 식량이 필요한데적은 식량이란 말을 강조한 것은 읽는 자로 하여금 자연히 야곱의 그 변화된 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함인줄 안다. 그처럼 말년의 야곱에게는 그 모든 탐심이 가셔졌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것도 그가 많은 환난을 통해서 얻어진 하나의 인격적 변화로 안다.

둘째로, 창43:14에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하는 말씀이 있다. 야곱이 이 말을 하게 된 동기는 그의 아들들이 애굽에 양식을 사러갔다가 그곳에 인질로 남게 하고 다시 또 마지막 아들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는 엄한 명령을 받았을 때에 야곱이 아들들에게 한 말이다.

그가 처음 그 엄한 명령을 받았을 때는 심히 슬퍼했다. 성경에 보면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 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곧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맡기게 됐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것은 온전히 그의 모든 것을 하나님게 맡기는 그의 신앙적 태도를 보여주는 말이다.

옛날 그의 조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에 그의 생명을 온전 히 하나님께 맡겼던 것이다. 야곱도 드디어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신앙을 따르 게 됐던 것인 줄 안다. 이렇게 그가 전부를 하나님 앞에 내어 맡길 때마다 그 는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을 보게 됐던 것이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 하던 그는 그 아들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잃었던 아들도 도로 찾았다.

시므온도 돌아왔고 요셉도 다시 찾았던 것이다. 요셉의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 을 뿐만 아니라 그가 어떻게 애굽에서 존귀하게 돈 것을 듣게 됐다.

그가 그렇게 큰 기쁜 소식을 듣게 된 것은 그저 슬퍼하면서 근심할 때가 아니 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그 근심과 슬픔을 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크게 위로 하셨다.그를 크게 기쁘게 했다. 이 한가지 사실 에서도 말년의 그의 신앙이 얼마나 경건해졌는가를 볼 수 있다.

세째로, 노년기의 야곱은 먼저 경건히 제단을 쌓는 하나님 중심의 족장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창45:28 이하에 보면 야곱은 자기의 아들 요셉이 죽은줄만 알고 있다가 그가 살아있고 또한 애굽의 위대한 재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 을 때 그는 그저 기뻐한 것만 아니다. 그의 아들 요셉의 부름을 받고 그저 기 뻐서 애굽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단을 쌓 았다.

창 45:28-46:1에 보면 "이스라엘(야곱)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 금 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전에 가서 보리라.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생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의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되..." 했다. 이런 일은 과거의 젊은 야곱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일이다. 그는 오랜 동 안의 신앙의 슬픈 훈련을 통해서 모든 일에 먼저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하나 님 앞에 예배해야 할 것을 깨닫게 됐다. 그 뿐만 아니다.

네째로, 그의 신앙은 드디어 세상의 소망보다도 하늘나라의 소망을 더 소중히 알았고 현재의 일 보다도 미래의 일에 더 생각이 깊었던 것이다. 그는 눈에 보 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을 더 사모하게 됐던 것이다.

창49:1에 보면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 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했다. 그는 먼 후일의 일을 바라보는 신령한 믿음의 눈이 열렸다. 사랑하는 자녀들에데 현실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 는 먼 후일에 오는 세상을 바라 볼 것을 일렀던 것이다.

또 창49:18에 보면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니이다" 했다. 그는 지 금 육신적으로 위대한 애곱의 재상의 아버지로서 모든 사람에게 최대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적인 부귀에 도취되는 그러한 사람은 벌 써 아니었다. 그는 고요히 자기의 아들들을 불러 놓고 하늘을 우러러 간구하기 를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했다. 이 얼마나 경건한 신앙인 가! 그가 청년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그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자기의 뜻 을 이루어 보려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먼 후일을 바라보며 주의 구원을 기다리는 경건한 믿음의 족장이 되었던 것이다.

또 48:21에 보면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고 요셉 에게 유언을 남겼다. 이 얼마나 은혜스러운 유언인가 생각해 보라. 요셉은 지 금 애굽의 비로 왕 다음으로 가는 큰 주권자이다. 그러나 요셉의 눈에는 보이 는 그 권세를 그렇게 크게 생각했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너와 함께 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너희 기업의 땅 가나안으로 갈 것을 요셉에게 유언으로 남겼다 익을 볼찌라도 말년의 야곱은 애굽의 군세와 그 보화보다도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 가나안을 더 사모한 것을 알 수 있다. 진실로 야곱은 그 에게 당했던 모든 환난을 통해서 그의 신앙은 그렇게까지 경건한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의 눈이 얼마나 밝아졌는가는 또한 창48:17이하에 잘 나타나 있다. 거기에 보면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 복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때에 야곱의 눈은 말년의 자기 아버지 이삭 의 눈과 같이 어두어졌다.

그는 맏 손자 므낫세에게 왼손을 얹고 작은 손자 에브라임에게 바른 손을 얹어 축복하려 했다. 그 때에 요셉이 놀라서 하는 말이 "아버지여, 그리마소서" 하 면서 그 손을 바꿔 놓으려 했다. 그 때에 "야곱이 허락지 아니하여 이르되, 나 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하면서 작은 아들에게 오른 손을 얹어 축복했다 그는 아무리 눈이 어두웠어도 옛날 이삭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의 믿 음의 눈은 그렇게 밝아져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것이다.

히브리 11:21에 보면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 고 " 했다 진실로 야곱이란 이 족장은 많은 환난을 통해서 마침내 그처럼 경건 해지고 그처럼 거룩한 자리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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