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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을 향한 열망 (눅 08: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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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는 생일이 있고, 나라에는 기념일이 있고, 교회에는 절기가 있습니다. 생일과 기념일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의미가 그날들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일을 잊어버린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을 지킴으로 내가 살아있는 이유와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국경일을 정하고 교회가 교회력을 따라 절기를 지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내일은 3월 1일

3.1절입니다. 74년전 기미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들 되돌아 보면서 민족과 개인, 가정이 나아갈 바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자유의 복음이요, 해방을 주는 복음입니다.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에는 자유케 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병든 개인과 역사를 고치고 수술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인은 전국에 걸쳐 고작 151,801명이었습니다. 이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만세운동의 주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7명이었습니다. 후일에도 전덕기, 남궁억, 유관순 같은 이들이 기독교인으로서 조국을 위해 일어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과거에 있었던 사건으로만 돌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계승 발전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 내 삶의 처소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내 심령 안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이 나라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자유, 우리의 해방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고통이 클수록 더욱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인생에 고난은 동반자처럼 언제나 붙어 다닙니다. 이 고난 앞에 허다한 사람들이 넘어지고 좌절합니다. 사실은 모두에게 다가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그 고통을 다 당하는냥 괴로워 합니다. 사람이 일시적 고통이 아닌 장기적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대부분은 좌절해 버리고 방치하거나 포가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이 여인은 12해를 혈루증으로 앓았습니다. 젊은 날의 12해이면 청춘을 병으로 다 날려버린 것입니다. 똑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 5장 26절을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은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런 효험 이 없고 도리어 중하여졌던 차에”
의원에게 속기만 했습니다. 돈도 다 날려 버렸습니다. 육신의 고통은 나날이 더해만 갔습니다. 가족들이 다 포기했습니다. 집안 식구 중에 누가 아파서 장기적으로 누워 있으면 모두가 고통을 받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몇해를 누워 고통받는 자식을 간호하던 어머니가 자식에게 “이놈아, 빨리 죽어라. 너는 죽는 게 효도하는겨!”하며 통곡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간호하던 어머니도 지치고 포기하고 본인도 낙심하는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신앙의 사람도 있습니다. 내 고통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반드시 일어나리라 건강을 회복하리라 옹골지게 마음먹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그런 희망으로 극진히 돌아보는 사랑의 가정도 있습니다. 이대로 쓰러질수는 없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본인에게 다짐하고 또 격려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알콜중독으로 매일같이 술만 마시고 살림을 부수고 사람을 때려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가정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날 심방을 갔더니 “목사님, 우리집을 내놓았습니다. 이제 우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합니다”말을 합니다. 이유를 물은즉 이제는 더 이상 이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자식은 친척집에 맡기고 자신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식모 생활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술마실 돈이 떨어지고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야 정신을 차릴 거예요” 말을 합니다. “행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쩝니까”했더니 그렇게 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정의 첫번째 문제는 남편에게 있습니다. 사랑을 약속하고 한 결혼인데 행복하게는 해주지 못할망정 매일 술만 마시고 두둘겨 패대니 큰 잘못입니다. 그 아내에게도 잘못은 있습니다. 결혼은 신성한 약속입니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요구하기 이전에 본인 스스로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남편이 잘못하니까 나도 막가겠다는 식은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남편의 문제, 파괴된 가정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 기도하고 매달려 보라고 하면 그것은 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잃으니 불신앙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고, 불행의 결과가 찾아 왔음에도 주님 안에서의 회복, 구원을 바라보지는 못하더라는것입니다. 가정에 구원이 필요합니다. 처음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파괴된 가정이 다시 회복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한 그 가정은 다시 살 수 없습니다. 고통이 지속될수록 우리는 절망이 아닌 회복, 구원을 위한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 어떤 형태로 파괴된 가정과 개인일지라도 절망이 아닌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구원은 힘써야 합니다.
이 여인은 지금까지 많은 의사를 만났고 그때마다 실망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들려온 예수님의 소문은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에게 나아가게금 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왔고, 예수님이 찾아가신 사람도 있어지만 예수님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간혹 뜨거운 믿음과 간절한 마음의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시고 예수님은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과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 믿음을 아셨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오는데는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열 두 해를 혈루병으로 앓았습니다. 얼마나 몰골이 흉칙했겠습니까 모두가 멀리 했을 것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닌 열두 해를 매일같이 피를 쏟았으니 어지럼증은 얼마나 했겠습니까 이 여인은 걸어서 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기어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은 있는데 상황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신앙의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문제는 이기고 넘어서야지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문제의 해결, 우리 가정의 구원, 내 병고를 물리치기 위해서라면 고통 때문에 몸져있는 것이 아니라 기어서라도 나가는 것입니다. 아프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기에 더 더욱 신앙에 힘쓰며 주님이 고쳐주심을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아파 문드러진 육신을 이끌고 나와야 합니다. 가정의 문제를 아뢰며 한나처럼 울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집어 던지며 나왔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수치와 모멸을 이기고 나왔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러분을 막고 서있는것이 무엇입니까 넘어서십시오. 그래야 건강합니다. 그래야 가난과 빈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3.믿음이 구원했습니다.
성경은 믿은대로 역사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습니다. ‘허다한 무리 속에 둘러 싸여 지금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시는 주님, 저분을 잡아서 나를 고쳐달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옷깃만 만지만 나는 나을 것이다.’ 생각해서 앞으로 앞으로 기어서 나갔습니다. 이사람에게 치이고 저사람에게 짓밟히면서 포기하지 않고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워졌습니다. 사력을 다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옷자락 끝을 겨우 만졌습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치유의 능력이 여인에게 나갔습니다. 그시로 여인은 건강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낫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을 고칠 능력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가진 허다한 문제를 그분은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름대로 힘써왔던 노력의 결과들이 무엇이었습니까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주님의 명령대로 행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고 소망하며 나아가십시오.
1910년에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고 1945년에 해방이 되었습니다. 36년간의 폭압통치에 우리 민족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해방이 어느날 갑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3.1절의 삼천리 반도에 이천만 겨례가 불렀던 만세의 함성이 그날을 가져온 것입니다. 해방은 그것을 간절히 기다린 선열들과 골방에서 간절히 드린 성도들의 기도의 열매였습니다. 지난 25일로 우리나라는 문민정부가 들어섰습니다. 1960년 5월 16일 군부통치로 시작된 역사의 막을 내린 것입니다. 실로 32년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던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새날은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새벽은 오지 않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일이나 동일원리입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의 삶에 자유와 해방을 원하십니까 바라보십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희생의 댓가를 충분하게 치루십시오. 여러분이 간절히 바라는 구원이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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