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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사십니까? (대상 2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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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물론 육신적으로는 다 살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정말 여러분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분명히 살았습니까 어떻게 살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 즉 대속의 희생으로 살았습니다. 그를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을까요 무엇하라고, 어떤 일을 하라고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신 것일까요 살아있는 여러분! 왜 살아 있습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저와 여러분을 살려 주셨다면 왜 살려 주셨을까요 어떤 일을 하라고 살려 주셨을까요 저와 여러분은 오늘 분명히 내가 왜 이 시대 이 자리에 살아 존재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과학에서는 모든 만물이 우연히 생겨서 진화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답게 살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우연히 생겨난 인생, 대충 살다가 죽으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모든 만물을 존재케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이 모든 만물을 뜻과 목적과 섭리를 가지고 만드셨습니다. 그가 만드신 피조물은 그가 만든 목적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밝히 깨달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같이 생각하고 결단할 수 있는 축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인간은 왜 창조되었습니까
이 우주 삼라만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입니다. 나는 내 집의 주인입니다. 내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나를 위하여 구비해 놓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만드는 것은 나를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 보이는 마이크는 말하는 사람의 소리를 크게 확대시켜 듣는 이로 하여금 잘 알아 듣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즉 사람을 위하여 마이크를 만든 것이지 마이크를 위하여 사람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렵혀졌을 때마다 세차를 합니다. 차를 닦는 것은 그 차를 타는 사람을 위해서이지 차 자체를 위하여 닦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의 지으심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천사장을 만드셨고, 그 밑에 천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때 지음받은 천사장이 미가엘과 가브리엘과 루시엘입니다. 미가엘은 힘의 천사였습니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찬양을 맡았던 천사장이 루시엘입니다. 루시엘에서 루시는 ‘빛, 광명’을 뜻합니다. ‘엘’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빛나는 천사였습니다. 그의 임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천사가 어느날 하늘에서 타락하였습니다. 성경은 그의 타락을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4-15)”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2-14)”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하나님의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던 천사. 루시엘이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비기고자 했습니다. 교만하여 타락하는 순간에 루시엘이라는 이름을 박탈당하고 루시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타락한 천사 마귀 사탄을 지옥에 멸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
루시엘이 루시퍼가 되는 순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없어졌습니다. 그후에 인간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가 타락하여 빈자리, 즉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할 자리를 보충하고자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사 43:7)”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것이 인간의 창조 목적입니다. 인간이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의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이크가 마이크의 역할을 하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전구는 밝은 빛을 내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은 영원히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나의 주님이십니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대상 29:10)”
이 세상에 영원히 불변하는 진리가 있습니까 그만큼 소중한 것이 있습니까 그렇게 찬양받고 경배받아야 할 이름이 있습니까 돈, 명예, 학식, 사람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이 모든 것이 개인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소중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숨을 걸만큼 소중한 것입니까 생명과 맞바꿀만큼 영원한 것입니까 불변하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이 있습니까 인류가 가진 가장 소중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만이 인류가 영원히 따를 진리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할렐루야” 인사를 합니다. “할렐루야”는 할렐루에 야라는 말이 덧붙여진 것입니다. 할렐루는 “너희들은 찬양하라”는 뜻이고 야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 뜻을 합치면 “너희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 이름이 아닙니다. 히브리어가 모음이 없고 자음으로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라는 뜻을 지닌 아도나이라는 말을 야와 접합시켰을 때 여호와, 곧 야훼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우리는 여호와로 발음하지만 ‘야훼’가 더 정확한 발음입니다. 야훼는 “인간을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출 3:14에서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만든 자가 없기 때문에 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다”라는 말씀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네가 섬기는 하나님이 누구냐”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리이까” 라고 묻자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라고 하여라!”하셨습니다. 우리의 창조자이신 그가 우리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음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언젠가 저에게 전도를 받던 분이 기독교인의 잘못을 지적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그 모양이니 자신은 못 믿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못 믿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기에 예수님을 믿습니다. 당신은 착하고 잘난 사람만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보다 훨씬 못난 나를 사랑하고 용서하십니다. 당신은 욕하고 손가락질 하지만 우리 주님은 품에 안으시며 모든 비난을 막아 주십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나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인정해 주시며 축복해 주시는 분이시기에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제가 목회자이면서 수도 없이 넘어지는 연약한 저 자신을 봅니다. 한없이 부족한 제 자신을 발견하면서 웁니다. 그러나 다시 힘주시고 용기 주시는 그분 때문에 다시 일어섭니다. 못나고 추한 나를 위해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분이기에 그분은 나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루시퍼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축복된 자리를 떠났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셔서 하나님은 그 일을 대신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마귀는 지옥에 보내기로 작정하셨지만 범죄한 인간을 멸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셨기에 우리는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날마다 넘어지고 쓰러지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손잡아 일으켜 주시며 그 자리에 세워 주시기에 소리높여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로 떠나버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찾아가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이나 반복해서 물으셨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고백했습니다. 저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①‘네가 가지고 싶어하는 그 어떤 물건보다, 네가 오르고 싶어하는 그 어떤 위치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게는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라는 내 일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②‘네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아내보다도, 남편보다도, 자식보다도, 부모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가 마땅히 사랑해야 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사랑하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사랑해야 될 분입니다.
③‘나를 사랑한다고 모인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네가 나를 제일로 많이 사랑할 수 있느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보다 더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아브라함보다 이삭보다 야곱보다 요셉보다 다윗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고백이 날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 찬양으로 흘러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찬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나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하나님 앞에서의 헌신은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다윗은 일개 목동이었던 자기를 왕으로 세우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봉헌하는 것이 일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중에 흘린 피가 너무 많았기에 그에게는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성전건축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감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몸과 마음을 다하여 헌신할 수 있다는 것, 이것보다 귀한 축복은 없습니다. 다윗은 일평생 하나님만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법궤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는 날, 너무 기쁜 나머지 왕이라는 신분도 잊고 너무 기뻐 춤추다가 바지가 흘러 내려갔으나 그래도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를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일개 양치는 목동에서부터 죽기 직전까지 그는 하나님만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낮아져도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했을 때는 침상이 젖도록 회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함으로 그를 위하여 나를 헌신하고 전폭적으로 희생했을 때 전해지는 기쁨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내가 누구관대’ ‘이스라엘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까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29을 보면 다윗은 감격함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일천이요 수양이 일천이요 어린 양이 일천이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드려도 여전히 부족한 것 같고, 드리고 헌신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사랑에 감격해 있는 다윗의 기쁨을 여러분 이해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어떤 일을 할 때 기쁨이 생깁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천사를 지으셨습니다. 그중에 하나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루시엘이 떠난 자리, 그 영광의 자리에 인간을 세우셨습니다.
그 인간도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마귀는 지옥에 멸하시기로 하셨지만 인간은 구원하기로 하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입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사랑, 찬양하고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살려두신 이유입니다.
그 이유가 아니면 저는 세상에 살 이유도 없고, 살려두시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그와 같은 자로 삼아주신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즐거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아들 솔로몬에게도 그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을 때 무엇을 후손에게 부탁하고 죽으시겠습니까 죽을 때 할말, 그 말을 위해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절에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하나님의 지으심의 목적에 합당하게 살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허락되어지는 것들입니다. 그것 때문에 아둥바둥하지 말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한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나그네와 같은 인생길에 나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시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이 고백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시는 축복된 발걸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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