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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인생의 성지순례 (마 16: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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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도와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무사히 12박 13일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남보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 특별하신 사랑으로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2박 13일이라는 짧은 일정 속에 싱가폴, 이집트, 이스라엘, 이탈리아, 로마, 파리 등 6개국을 다녀 왔습니다. 짧은 일정 속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우려니 당연히 강행군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후와 시차, 음식 등이 맞지 않아 큰 고생을 한 분도 몇분 있었는데 저는 건강하게 그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매일 같이 성전에 모여 미천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의 기도 덕분이라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한번도 여행이라는 것을 떠나본 일이 없는 저에게 성지순례란 실로 가슴벅찬 감격이었고, 그 설레임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깨닫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성지순례 기간 중에 받은 은혜와 영감을 통해 갑절이나 큰 역사들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앞으로 몇주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성지순례의 기간 중에 받은 은혜와 영감들을 정리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내 인생의 성지순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큰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신앙 속의 불신앙과 불신앙 속의 신앙
성경에서 가나안은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같은 지역에 대한 다른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성지하면 이스라엘, 가나안 땅, 시내산 등을 생각합니다. 그곳을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사도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입니다. 성지 곳곳에 놀라운 주님의 섭리와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하여 정말로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운 환경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반대로 주님의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서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들이 행하여 지고 있는 역설적인 모습을 보고 돌아 왔습니다.
애굽은 지금의 이집트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애굽은 세상의 상징, 멸망의 처소로 일컬어 집니다. 우리는 쉽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하지만 그 말을 듣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세상에 대한 심판과 저주를 말할 때 저들은 돌이켜 주님 품에 안기기 보다는 주님의 백성들을 더욱 핍박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교회사였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나라, 심판의 처소에 사는 이들과 기독교 신앙인들과의 사이에서는 당연히 싸움이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처지에 이집트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자국인들이 볼 때는 역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안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사실은 더 많은 박해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집트에 가면 기독교의 성지가 몇군데 있습니다. 모세 기념 교회와, 예수님 피난 교회,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호렙산(시내산)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 나라, 열 가지 재앙을 쏟아 부을 수 밖에 없었던 나라, 그래서 더욱 기독교 신앙을 미워하는 나라, 그 이집트 안에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놀라운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애굽 기독교인들을 콥틱(Cotic) 기독교인이라고 말합니다. 콥틱이라는 말은 애굽토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집트 원주민을 일컫는 말입니다. 애굽 안에 있는 콥틱 기독교인들은 국가적으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1200년 동안이나 신앙을 지켜 왔습니다. 지금도 이집트 내에 75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신앙의 변절을 막기 위해 십자가 문신을 팔목 안쪽에 새겨 넣습니다. 1200년간 신앙을 지켜온 그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그곳이 우리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과연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가 예수님 피난 교회에 갔을 때 아기 예수님께서 기거하셨던 방은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국가에서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직업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체 공직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콥틱 기독교인들은 예수 피난교회의 성전 보수를 위해 엽서를 팔고 있었습니다. 9년 전에 성지순례를 다녀왔던 목사님이 이번에 같이 가셨는데 그분 말씀으로는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 되겠습니다. 애굽 안에 그러한 콥틱 기독교인이 750만이나 된다는 사실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불신앙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굳건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실한 사람들의 무리였습니다.
반대로 저는 이스라엘에 가서는 많은 실망을 느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가셨을 때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과 비들기 파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이들과 타협한 제사장들의 무리를 인하여 분노의 채찍을 드셨습니다.
저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면 예루살렘 성전부터 다시 청소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나 ‘원달러’를 외치는 아랍인들이 시장처럼 장사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모두가 천주교 소유로 절간을 방불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이 무너지고, 스룹바벨 성전과 헤롯의 성전도 무너지고 하나님의 법궤를 모셨던 지성소의 자리에는 거대한 황금빛 회교사원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찬양이 울려퍼져야 할 신앙의 처소에서 가장 가증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 처소를 보면서 저는 제 자신 안의 가증한 불신앙의 요소들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분노하실 저의 죄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깊게 생각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신실한 신앙을 지켜나가는 콥틱 기독교인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이스라엘과 이집트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여건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나라 남북한 강원도 땅만한 장소에 550만의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나라입니다. 주변에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요르단. 바레인, 리비아, 시리아 등 산적한 주변 국가들이 한나라도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나라가 없습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이스라엘까지 전역을 제가 둘러본 결과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그렇게 차이나는 땅은 아니었습니다. 똑같이 돌과 먼지로 뒤덮힌 척박한 사막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는 방식과 수준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이집트는 지독스럽게 못살았고 이스라엘은 엄청나게 잘살았습니다.
삶의 조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스라엘보다는 이집트가 훨씬 더 유리했습니다. 이집트는 엄청난 매장량의 유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가로 지르는 세계 최장의 나일강이 있습니다. 나일강은 6,670Km에 달하는 긴 강으로 이집트 전역을 가로 지르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스에즈 운하가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도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11배에 달하는 넓은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못 살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강원도 땅만한 작은 나라입니다. 사방이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에도 250만이라는 아랍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안팎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땅에서는 한방울의 석유도 나오지 않습니다. 전량 이집트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이스라엘은 세계사에 가장 뛰어난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가능했던 역사입니다.
먼저 이집트가 못사는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①게으른 국민성의 문제입니다.
한국인의 국제언어는 ‘빨리 빨리’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든 서둘러 마쳐 버립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계획한 기간 안에 일을 마치는 법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②제도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과학화 되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제도를 개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③기후와 문맹율입니다.
한낮의 기온이 40℃를 오르내리는 엄청난 무더위와 52%에 해당하는 문맹율 때문입니다. 한낮에는 너무 더워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집트에 가보면 경찰관이 세명씩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셋 중에 둘은 문맹자입니다.
④잘못된 종교관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루에 다섯번씩 그들의 성지 사우디의 메카를 향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생활로 인하여 다른 아무 일도 못하고 업무가 마비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은자의 시신을 모시고 한 집에 같이 사는 잘못된 모슬렘 신앙을 인하여 그 나라의 민족성과 역사성을 잃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썩은 시체의 냄새와 함께 그들의 화려했던 문화와 역사도 함께 부패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역사와 상황이 다소 이해가 되는 부분도 물론 있었지만 똑같은 조건에 우리 민족이 살았다면 그대로 그 엄청난 땅을 내버려 두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그 척박한 사막을 옥토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집트는 먼지가 날리는 척박한 땅이라면 이스라엘은 푸른 초목이 뒤덮힌 오아시스처럼 보였습니다. 스프링쿨러를 이용하여 전국토에 갈릴리 호수의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그 나무들은 다 말라 죽어버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갈릴리 호수의 물로 60%의 식수로 사용하고, 지하 2000m까지 땅을 파서 지하수 개발로 나머지 40%의 물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들은 사막을 옥토로 바꾼 것입니다. 가나안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을 합니다만 실상 그 땅은 물도 흐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기르는 양 속에 젖이 있고, 벌들이 꽃속에서 꿀을 모으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는 있습니다만 그 땅은 너무 황무한 땅입니다. 그들은 신앙으로 사막을 옥토로 바꾼 민족입니다.
충북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정범모 박사가 쓴 ‘종교인과 가치관’이라는 책에서 보면 종교가 가져다 주는 영향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①회국국가-현재지향적입니다. 그날 그날 살아버리는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이집트를 순례할 때 현지 여행사에서 한국인 가이드와 이집트 가이드가 따라 다녔습니다. 모든 가이드는 한국인 가이드가 하고 이집트 가이드는 검문에 걸릴 때 나아가 몇마디 할 뿐이었습니다. 이집트법상 외국인이 가이드를 할 수 없기에 둘러리로 데리고 다닐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일당 20달러씩을 줍니다.
우리 돈으로 16,000원 가량됩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무원 평균임금이 월 50달러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엄청난 수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같으면 알뜰하게 아껴서 쓰고 나머지는 저축할 텐데 그들은 그날 수입을 그날 탕진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종교관에서 비롯된 모습입니다. ②유교국가-과거지향적입니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요순시대를 찾습니다. 한국
인들도 지금도 족보를 뒤척이며 조상을 자랑합니다.
③기독교 국가-미래지향적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
고 의지함으로 삶을 개척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들어가는 나라마다 위대한 변화를 가져온 것을 역사를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 예수 그리스도 신앙만 소유한다면 여러분의 생애도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 될 줄로 믿습니다.

3.피라밋과 카타콤
인간은 누구나 죽음으로 자기 생애를 마감합니다. 죽은 후에 꾸미는 것이 무덤입니다. 저는 이번 여행 중에 두 곳의 무덤 속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세계사에 보면 여러가지 불가사의가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이 이집트의 피라밋입니다. 이집트에는 40개 정도의 피라밋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큰 것이 하스모니안 왕조의 피라밋입니다.
피라밋이 불가사의 한 것은 그 엄청난 돌을 어떻게 운반하여 쌓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피라밋은

2.5톤이나 되는 돌을 230만개나 10만명의 인원이 30년 동안 쌓아야 되는 거대한 무덤입니다. 왕이 즉위하면 곧바로 자기 무덤을 준비하는 30년 걸려서 그 무덤을 만드는 것입니다. 피라밋에 들어가보면 삼각추의 한 가운데 지점에 왕의 무덤이 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유물이 도굴당하고 빈무덤만 남아 있습니다. 그 엄청난 무덤을 어떻게 지었을까도 궁금하지만 그 무덤을 어떻게 파서 그 유물을 도굴해 갔을까 하는 점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왕이 자기의 부귀와 영활를 자랑하기 위해 지은 것이 피라밋이라면 이것이 반비례하여 신앙의 사수를 위해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로마의 카타콤입니다. 카타콤은 카타콤베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지하무덤을 말합니다.
이 지하무덤은 로마 황제들의 박해를 피하여 무덤 속으로 파고 들어가 생활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의 장소였습니다. 지금도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인데 지금까지 45개 정도가 발굴이 되었습니다. 그 총 연장 길이가 900㎞에 달한다도 합니다. 저희가 들어갔던 카타콤은 지하 20m에 4층 구조로 이루어진 무덤이었습니다.
이 지하무덤 안에 학자들은 600만명 이상의 사신이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카타콤의 지층은 응회암으로 이루어졌는데 땅을 팔 때는 푸석푸석하여 손톱으로도 잘 파지는데 일단 사람의 입김이나 어떤 습기를 접하게 되면 돌처럼 딱딱해지는 흙입니다. 카타콤은 가이드가 없이는 절대 들어갈 수가 없는 지하 미로입니다. 1972에 일본인 관광객이 길을 잃고 실종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된 예가 있을만큼 대단한 곳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누구나 육신은 땅에 묻히게 됩니다. 영혼은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죽은 뒤에 이 땅에서 피라밋과 같은 거대한 무덤에 묻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하 컴컴한 무덤 속에 이름없이 묻힐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어 생명을 얻는 일이 소중한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깊은 허무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신앙의 의미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읽었던 성지순례 책자 가운데 적혔던 글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빈무덤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우리 믿음의 대상은 빈무덤이 아니라 무덤을 비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집트, 이스라엘, 로마 그 어떤 성지도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도들의 발자취가 있었던 장소일 뿐입니다. 그 장소에 역사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소중한 것이지 그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시내산과 예루살렘은 세계 16억 기독교인의 성지요, 9억의 이슬람교도, 1600만의 유대교도들의 성지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둘러 보면서 느낀 점은 철저하게 빈무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나중에 사진 등을 통해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만 천주교와 유대교는 무당 종교 비슷하게 모든 성지들을 전락시켜 놓았습니다. 빈무덤일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빈무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덤을 비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내 인생의 성지순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 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 16:24-28)”
성지순례를 통하여 많은 것을 보고 깨달았지만 그 땅을 밟고 둘러보고 왔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내 인생 자체가 주님이 맡기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부인하고 따라가는 거룩한 성지순례의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의 삶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좇아가는 거룩한 성지순례 여정이 될 수 있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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