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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불길 (롬 10:9-15)

첨부 1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이 시간, 55억 인구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언어, 다양한 직업 등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회에서 이 사람들을 분류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이 분류의 방법은 또 사람마다 자기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나누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말하고 평가할지라도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저 사람이 잘났건 못났건, 많이 배웠건 적게 배웠건, 많이 가졌건 적게 가졌건 관계없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 아니면 불신앙으로 지옥갈 사람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 모습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어제 저희 큰 애가 아파서 리라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은 언제나 만원입니다. 의사도 많았고, 아픈 사람은 더욱 많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댔지만 제 눈에는 아픈 사람, 건강한 사람, 치료받는 사람,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 못 받은 사람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병원에도 다락방이 열리고 말씀운동이 펼쳐져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책임은 이렇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우리에게 누구나 전도의 대상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 모두는 누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전도는 제 1과제요 책임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누구를 만나도 하나님이 보낸 선교사로 그를 만나고 전도를 목적해서 만나야 합니다. 전도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죄악입니다. 어떤 일을 해도, 어디에 있어도 우리의 관심은 영혼구원이어야 합니다. 제가 늘 바쁜 차수진 자매님 가정에 가서 다락방을 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뭣 때문에 바쁘냐 전도를 목적해서 만나는 모임이 아니라면 모든 관계의 만남은 끝내 버려라.” 이 말이 지나치게 들립니까 그러나 아닙니다. 그게 주님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은 전도의 대원칙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우리 모두가 복음을 위하여 일어설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당신은 정말 구원받은 사람입니까
독일의 어느 신학교 학장이 카나다를 빙문하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길을 가는데 뒷좌석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그를 톡톡 두드렸습니다. “선생님, 예수님 믿으세요” 신학교 학장인 그는 복잡한 차 안에서 전도하는 할머니가 감사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모태 신앙인입니다.” 그때 할머니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선생님에게 모태 신앙인이냐 아니냐를 물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를 물었습니다.”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난 학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목사를 길러내는 신학교 학장입니다” 이 말에는 할머니는 기죽지 않고 다시 물었습니다 . “나는 선생님이 신학교 학장이냐 아니냐를 물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를 물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신학교 학장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구원에 대한 구체적인 고백이나 체험없이 막연하게 교회를 다니고, 목사가 되고, 신학교 학장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놀라운 변화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의 삶은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날마다 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가 나는 오늘 죽어도 구원받을 수있는가” 이 사실을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은 참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인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 구원받았다구요 그러나 그것은 자랑할 바가 못됩니다. 지금 당신이 구원의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겸손할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기름부으심으로 이스라엘 최초로 왕이 되었던 사울이 교만해짐으로 하나님을 무시할 때 하나님께 버림받고 전쟁터에 나가 두 아들과 더불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삼년을 좇아다녔던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를 아십니까 그 중에 니골라가 있습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행 6:6:5-6)”
니골라는 헬라인으로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에 한사람으로 선택되었던 사람입니다. 얼마 동안은 그가 충성스럽게 일을 하다가 변질되어 타락해 버렸습니다. 그는 육체적 방종을 일삼았고, 그를 따르는 니골라 당은 초대교회의 성스러운 신앙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가 가장 악독한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 2:6)”
아무리 훌륭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던 사람도 타락하고 변질하면 아무런 쓸데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진정 구원받은 사람인가를 물어 봅시다.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인가를 물어 봅시다. 나는 구원받은 사람인가 나는 구원받은 자리에 서 있는가 우리가 날마다 물어야 할 주님 앞에서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야 하고, 사람 앞에서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이것보다 더 정확한 구원의 증거는 없습니다.

2.나는 누구를 인도할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역사상 비율적으로 가장 많은 신교사를 파송한 단체는 모라비안 교도들입니다. 그들은 12명만 되면 그중에서 어떻게든 한사람을 찾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의 책임자는 젠센돌프입니다. 그는 영국의 백작이었습니다. 그는 어느날 화랑에 갔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사 고난 받고 계신 장면이 그려진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내 너를 위하여 내 몸을 주건만 너 나 무엇 주느냐였습니다.
젠센돌프는 모자를 벗고 그 앞에서 긴 시간을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후 젠센돌프는 자신을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백작의 지위를 버리고 모라비안교를 창설하여 선교 사역에 생명을 바쳤습니다.
젠센돌프를 울렸고 그의 생애를 사로 잡았던 그림을 그린 사람은 이스턴 백이었습니다. 그는 화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난받는 장면을 구상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이 절반쯤 완성된 어느날 거리에서 예쁜 집시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다가가 자신의 그림에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더니 그 여인은 흔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화랑으로 와서 그림을 그리는데 그 여인이 예수님의 고난받는 장면을 그린 옆의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사람은 참 죄가 많은가봐요.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죽을 수 없잖아요.” “저 분은 예수님입니다. 저분은 죄가 하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저렇게 고통받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답니다.” “그래요. 그러면 저 분은 선생님을 위해서도 돌아가셨겠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스턴 백은 날카로운 비수가 자신의 가슴에 박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스턴 백은 집시 여인을 밖으로 내보내고 그림 앞으로가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그림을 그렸지만 이제는 자신의 모든 욕심을 버렸습니다.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는 야망을 버리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어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눈물을 짜내며 기도하며 영혼의 감격과 진액으로 그림을 완성시켰습니다.
그 그림이 젠센돌프를 변화시켰습니다. 그가 창설한 모라비안교의 교도들이 요한 웨슬레를 변화시켰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죽어가는 영국 사회를 살렸고 20만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고인 물은 썩습니다. 물은 흐를 때 비로소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요단강은 헬몬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를 거쳐 사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하류로 물을 흘려 보내고 상류로부터 계속 물을 공급받는 갈릴리는 언제나 맑고 푸른 물을 언제나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해는 받기만 하고 나누어 주지를 못합니다.
사해바다는 바다 표면보다 400M나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염분이 25%나 됩니다. 사해 바다 위로는 유독성 가스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새도 날아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른 구원의 물줄기를 여러분은 누구에게 공급하고 있습니까

3.전도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하십니다. 다만 사람을 통하여 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으로도 일컬어 지는 것입니다. 성령과 사도들이 동역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의 잘못된 한 두가지 습관도 못 바꾸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인생을 무슨 수로 바꾸겠습니까
우리가 못 하기에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라 하셨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영혼구원을 위해 가면 모든 필요를 그가 채워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곁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하마. 내 이름으로 가라!” 강권하십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자기를 가리켜 복음에 빚진자라고 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
빚은 갚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모든 신앙의 선진들에게 복음에 빚을 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고 있는 현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복음에 눈 뜨고 생명에 미친 사람들이 그들이 생명을 희생하여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 복음입니다.
로마에 가서 카타콤을 볼 때에 그 규모와 길이의 엄청남에 놀랐습니다. 장장 250년 동안 악독한 황제 10명의 그 엄청난 핍박을 견디며 신앙을 사수한 이름없는 600만 영혼들이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장본인들입니다. 그들의 피흘림이 없었다면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산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살아라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빚을 죽은 사람들에게 갚을 수 없습니다. 산사람에게 갚아야 합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 갚을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에게 우리가 육신적으로 해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에게 육신이 있어야 양복이라도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그의 시신이 묻힌 무덤이 있어야 비석이라도 세워드릴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그의 소원을 따라 하나님의 최대 소원이 영혼구원임을 깨달아 모든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모습을 보고 마게도냐로 건너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디든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6:9-10)”
전해주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멸망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면 이보다 악한 모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가장 복되다 말합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5)”
우리가 걷는 날마다의 발걸음은 복음 전파자의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구원받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살아 계신다면 복음의 불길은 불신자에게 붙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자신들의 대에서 혈통이 끊기면 가장 부끄러운 수치로 알았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어쨌든 우리는 오늘 구원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전해진 이 복음의 불길이 나에게서 끊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불은 불을 낳아야 합니다. 복음은 계속 불길로 번져가야 합니다.
현재도 매달 5천만명의 인구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⅔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119개국에는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으며 1,200여 작은 부족단위의 국가들이 아직 그냥 버려져 있습니다. 한국에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산골, 농촌, 어촌이 많이 있습니다. 516개 섬에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며 더우기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많은 도시에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정확히 듣지 못하고 방황하는 무리가 많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부터,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장 먼곳까지, 원수된 사람에게까지 가서 이 생명의 주님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여러분 인생에 구체적인 관심이 되고 목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최고의 열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헌신적으로 희생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역사하사 크신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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