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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처받은 치료자 (사 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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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육신의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신체에 장애를 입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늘 병에 시달립니다. 의약이 발달해서 과거에 불치병으로 인정되었던 많은 병들이 극복되었지만 새로운 병이 또 생겨나고 인간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질병은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입니다.
이렇듯 몸 안으로 앓는 병이 있지만 몸 밖으로 나타나는 상처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살면서 몸에 많은 상처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상처가 있습니다. 어려서 칼에 손을 베인 상처가 있고, 타박상을 입어 그 상처가 남은 것도 있습니다.
저에게도 불에 데인 상처, 칼에 베인 상처, 못에 찔린 상처 등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저희 아들 준규가 돐을 갓 지난 아이이지만 저 아이에게도 얼굴에만 세군 데 상처가 있습니다. 선아가 손톱으로 할퀸 자국과, 벽에 부딪혀 생긴 상처가 이마에 있습니다. 턱에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때 생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상처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어느 의학자가 어머니의 모태에서 태어나 하나도 상처를 입지 않은 순수한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좀체로 그런 사람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큰 상처는 아니라 하더라도 작은 상처가 한 두개씩은 누구에게나 다 있었습니다. 누구는 머리 속에 숨겨진 상처를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라 해서 만났더니 그에게도 팔뚝에 예방 주사를 맞은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일생을 살면서 안팎으로 질병에 시달리며 상처를 입고 그것을 쌓아가면서 살아갑니다.

2.마음의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 몸에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흉한 상처가 없을지라도 누구에게나 마음의 상처는 있습니다. 어쩌면 마음의 상처는 신체에 입은 상처보다 깊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은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인데도 본인에게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족 간에도 서로 한 솥밥을 먹고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가족이기에 이해하고도 넘어갈 수 있겠으나 그런 관계가 사랑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상처가 더 깊을 수도 있습니다. 부부 지간에 상처는 더 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은 흔히 친정을 들어 자신을 공격할 때 그 상처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편과 아내이기에 더 깊게 사랑하고 이해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을 경우 상대적으로 상처는 더 깊을 수 있습니다.
남편으로, 아내로 상대방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갈 때 한이 남습니다. 흔히 우리 민족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 합니다. 가족 구성원들끼리 서로 잊혀지지 않는 상처들을 저마다 많이 가지고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시골에 가서 아주머니들 말씀을 듣다보면 내가 겪은 이야기를 다 말하자면 책 몇권은 넉근히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한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남이 어떻게 여길지라도 스스로 생각해보면 쌓인 한이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을 것입니다. 인간은 한을 다 말하지 못하지 못하면 속으로 쌓이게 되고 병이 됩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상처의 깊은 앙금들이 있습니다.
대중 가요 가수 중에 ‘밤에 떠난 여인’이라는 노래를 부른 하남석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어느날 밤에 나와 TV에 나와 고백하는 말을 듣고 그는 ‘상처가 참 깊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원치 않는 자녀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에게 미운 자식으로 괄시를 많이 받았습니다. 마침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아버지는 그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늘 말했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 못 피고 숨죽이며 살았답니다.
평생을 살면서 아버지는 따뜻한 말 한 마디, 표정하나 던져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노년에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우셨는데 임종을 몇일 앞둔 어느날 그는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친구들이 사가지고 온 과일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힘없는 목소리로 “귤 먹어라”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아버지에게 평생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습니다. 그동안 받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솟구쳐 올라와 한없이 울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상처가 없습니까 남편에게 받은 상처, 아내에게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남긴 상처가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님에게 안겨준 상처가 있습니다. 저희 큰 형님이 2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그 아픔으로 우시는 모습을 한번도 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밭에 나가셔서 밭고랑을 매면서 많이 우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여러분은 곁에 있는 성도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목사인 저를 통하여, 사모님을 통하여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여러분에게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여러분을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못내 가슴 아팠던 적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3.상처를 주고 받았으니 용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서로 미워하면 마음에 서로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반대로 인간관계 속에서는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기기 마련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들 사이에 어떤 잘못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남자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사랑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렇습니다.
사랑한 것도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내가 그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그도 나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상처받은 사람들끼리는 서로가 용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실 상처는 용서하는 만큼 치료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하고 그를 용서할 때 사랑은 치료될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설움도 받았고 고통도 겪었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만큼 남편도 당신을 통해 상처받은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지금가지 살면서 받은 상처의 고통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십시오. 그 상처 이상으로 여러분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그분들에게는 있습니다.
자식으로부터 서운함을 느끼며 상처를 받은 기억이 여러분에게 또한 있을 것입니다. 온갖 기대를 다 가지고 밤낮없이 수고했는데 그 댓가는 고생하고 가슴에 못만 박힌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용서하십시오.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십시오. 그래야 당신의 상한 마음이 치료됩니다.
지금까지 저와 더불어 신앙생활하면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십시오. 제 양심을 걸고 제가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리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저를 사랑해 주십시오. 저도 여러분을 용서할 것입니다. 서운했던 것, 야속했던 것도 용서할 것입니다. 더 많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할 것입니다.

4.예수님은 상처입은 치료자이십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나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상하셨고 찔리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6)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육신과 심령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가지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셔서 상처가 남았습니다. 손과 발에 못에 박혀 상처가 남았습니다. 허리는 창에 찔러 상처가 남았습니다. 온몸은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의 제자에게 팔림으로 상처가 깊었습니다. 사랑하는 수제자 베드로 마저 부인함으로 고통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도망쳐 버림으로 외로움에 우셨습니다.
엘리 엘리 마라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나이까” 영혼의 통곡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상처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가 아무리 깊어도 예수님이 당하신 상처의 고통만큼 깊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영혼육의 모든 고통과 상처는 바로 우리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성경은 바로 주님이 입으신 그 고난과 상처와 아픔들이 우리를 대신 하신 것이기에 오늘 우리의 현실의 삶에서 수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어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상처를 입으셨으나 그래도 쓰러지지 않으시고 또 상처를 입으셨기에 다른 상처 입은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과 동정을 가지시고 상처입은 자에게 치료자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상처입은 치료자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상처와 괴로움이 있는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경제적인 삶에 상처를 입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픈 상처만 어루만지며 탄식하지 말고 바로 그렇기에 내게 아픔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를 위해 고난을 대신 당하신 그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분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바으셨기에 그 십자가를 바라 보는 자는 고통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대신하여 아픔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아픔이 있습니까 그것을 고치고 해결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 당하신 치료자입니다. 상처를 당신이 입으셨으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싸매어주시는 그분, 상처입은 치료자 그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교회는 아파하는 자들과 더불어 아파할 정도가 아니라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리고 그것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료하는 자리까지 나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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