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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마 22: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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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가 닥쳐왔습니다. 겨울이 추운 계절이지만 어차피 한철 아니겠습니까 잘 참고 견디면 따뜻한 봄은 다가올 것입니다. 추운 계절 춥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나아질 것이 없으니 ‘제까짓 게 아무리 추워도 어차피 한철이다’ 마음먹고 봄을 기다리면 한결 견디기 쉬우리라 생각합니다.
추위에 약한 사람이 사철 추운 지역에 가서 산다면 그것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이 온다는 확신이 있을 때 그 계절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겨울 한파처럼 매서운 추위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어야 할까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반드시 봄이 온다는 확신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원종수 권사님의 어머니 김철례 권사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미국에 있는 딸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오늘만 살아라. 내일은 주님의 날이란다.” 저는 이 짧은 한 마디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들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은 더 이상 나의 시간은 아닙니다. 내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내일을 준비한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내일이라는 시간을 살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셔야 사는 것입니다. 또 하루가 지나면 그날은 오늘일 뿐 더 이상 내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영원한 오늘, 즉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오늘을 살아갈 뿐입니다. 오늘만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나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만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오늘을 살고 내일은 내일의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만 살자. 내일은 주님의 날이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막연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 앞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이 돕고 축복하실 것을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고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바라며 오늘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가 살아야 할 마땅한 삶의 태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세 가지를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다하여’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리새인의 위선을 철저하게 배격합니다. 또 적당한 형식주의도 배격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적당히’ 혹은 ‘대충’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는 사랑,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는 사랑이 아니라면 그 사랑은 가짜일 수밖에 없습니다.
①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행동을 먼저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행함으로 자신들의 의를 주장했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은 행동은 하나님 보실 때는 가증할 뿐이었습니다. 행동으로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몸이 움직입니다. ‘마음을 다하여’라는 말씀 뒤에 ‘목숨을 다하여’라는 말씀이 나오지만 목숨을 드리는 것은 마음을 드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을 드릴 수 있을 때 목숨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감격 속에 받으셨습니다. 죄많은 여인의 옥합을 깬 향유를 받으셨습니다. 그들의 물질과 행동 이전에 마음과 인격을 먼저 받으신 것입니다.
②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여야 합니다.
누구나 생명은 하나 뿐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의 가치 있는 일에 드려야 하고, 의미 있는 생애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살고, 그를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사랑은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밋밋한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헌신과 희생의 사랑이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하여 죽기를 원했습니다.
선교사는 죽으러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다 보면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제 중국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계신 송덕용 목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중국에 가면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선교에 힘쓰다가 가족들이 어떤 위험에 닥치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모릅니다. 나는 주님으로부터 가라는 명령만 받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죽을 것인지를 결정한 사람은 인생의 참길을 찾은 사람입니다.
③뜻을 다하여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세 번째 원칙은 뜻을 다한 사랑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주관이 있습니다. 저마다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사물과 사건을 보고 자유롭게 판단합니다. 뜻을 다한다는 것은 판단의 옳고 그름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전폭적으로 내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옳고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이 그건 틀렸다 하시면 내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생활, 이것이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이웃 사랑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행복의 기준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관계성을 통해 나타납니다. 신앙인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질 때만이 참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고 계시다”라고 느끼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에 대하여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불행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은 이웃에 대한 나의 삶의 태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인간의 불행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가족을 나와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웃을 나와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용서하고 위하여 선을 베풀며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웃, 그가 누구여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 정하여 보내신 사람으로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할 사람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행복합니다. 남의 아픔과 고통을 나의 아픔과 상처로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참행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주님은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의 척도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내일을 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오늘만이 나의 날입니다. 이 시간만이 나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늘 말해야 합니다. “오늘만 살자. 내일은 주님의 날이다.” 오늘을 내게 주신 유일한 시간으로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최선을 다하는 삶은 하나님과 이웃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사는 삶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든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서 후회할 일은 없습니다. 1년이 저물어 갑니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을 사랑했던 시간들이 후회가 됩니까 남을 사랑했던 마음들이 후회가 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인생이 반드시 후회를 남깁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후회를 남깁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생전에 그에게 잘해 주지 못했던 기억들이 고통을 줍니다. 사랑은 살아 있을 때 주는 것입니다. 곁에 있을 때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웃도 내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사랑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가장 뜨겁게 최선을 다해 사랑만 하십시오. 그리고 내일은 주님께 맡기십시오. 내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오늘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내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채워 주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습니다. 채워 주시는 은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땀흘리고 애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후회를 남기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태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세와 이웃을 사랑하는 자세로 해야 합니다. 이 자세가 아니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습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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