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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 얻은 자의 축복을 깨달읍시다 (눅 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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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저의 생애 가운데 물질이 넉넉했던 때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일년이 지나서 아내에게 “일년을 견디어냈다” 대견한 듯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따금 그때 이야기를 할라치면 나중에 교회가 성장하고 형편도 좀 나아진 뒤에 웃으면서 말하자 그래서 남겨둡니다.
설교집을 낸 뒤에 어렵던 살림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책값은 들어오지 않고 여기 저기서 빌려간 돈을 빨리 돌려달라는 부탁이 들어옵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어려운 우리 형편을 봐서 급전을 돌려준 것인데 갚지 못하고 있으니 달라는 사람도 미안하고 갚지 못하는 제 마음도 몸둘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개척해서 칠 년째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강단에 앉아 기도하려니 부화가 치밀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토록 여러 해를 고생을 했고, 그 고생이 또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입장이고 보니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지나간 과거의 일은 고생했어도 추억으로 묻어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당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목사의 가정이 가난하면 성도의 가정도 가난하고 목사가 고생하면 그만큼 성도들도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아마 저의 비슷한 처지인 분들이 여러분들 가운데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위로 받으시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모든 인생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났습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
이 집을 짓는 것을 우리 중 누구도 보지 못했지만 이 집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집을 지은 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집이 우연히 있다거나 스스로 생겼다고 말하는 이는 없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시라 성경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기원은 또 어떻습니까
다른 것은 다 지은 이가 있고 인생만큼은 거저 생겼을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인생을 내신 이가 계십니다. 세상에 나게 하시고 그 생명을 거두시며 심판하실 주님이 계십니다. 그것을 알고 사는 것이 인생의 최대의 지혜입니다.
어떤 인생도 자기 스스로 출생을 주장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불효자가 “어머니 왜 날 낳으셨어요” 말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낳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통해서 그 가정에서 태어나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셨습니다. 반대로 내가 내 자식 낳는다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식도 내맘대로 낳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낳을 수 있습니다.
친구 가운데 마산 합성교회에서 목회 하시는 손혁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이 결혼한지 5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없다기 보다는 낳지를 못했습니다. 습관성 유산이 되어 6번이나 유산이 되었습니다. 유산이 될 때마다 사모님과 목사님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 있었겠습니까
일곱 번째 부부가 기도로 매달려 아들 하나를 얻었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감사했던지 아이 이름을 ‘하은’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아이라는 뜻입니다. 이번에 대전에 가서 만났는데 아이는 사람의 힘으로는 낳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합니다. 사람이 낳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낳게 하신다는 좋은 증거가 되었습니다.
모든 인생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태어납니다. 부모가 자기 의사로 자식을 낳는 것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 자기 의지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100% 인간의 출생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2.인생은 두 길로 갈라집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상에 태어난 인생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그가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창세기 3:1-6에 보니까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요한복음 8:44에 마귀에게 속한 신분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3:23에 모두가 죄에 빠졌습니다.
성경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악의 결과로 인간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걸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인간이 구원 얻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 얻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구원 얻게 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구원 얻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언제나 두 길로 인생이 나뉘어집니다. 아버지 안에 있는 자가 있고 아버지의 사랑을 뿌리치고 멀리 달아나는 불신앙의 인생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사람을 나누고 분류할 수 있지만 가장 정확한 구분은 예수님을 믿는 자와 안 믿는 자, 그래서 구원 얻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입니다.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어떤 조건을 가졌을지라도 구원 얻지 못합니다. 인간이 구원 얻을 다른 길을 예수 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집에 거하였지만 작은 아들은 분깃을 달라 아버지를 졸라 집을 떠났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함께 사는 인생과 아버지를 떠나 나 몰라라 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에 계십니까

3.하나님을 떠난 자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태어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모든 축복과 은혜가 간직되어 있음에도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은 구속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자기 마음대로 살면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 하나님을 떠나갑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아내를 빼앗길 뻔한 위기를 만났습니다. 이삭도 그랄로 내려갔다가 똑같은 위기를 당합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자 모압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그 땅에서 여러 해 사는 동안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은 자기 힘으로 행복하고 만족할 것 같지만 말할 수 없는 기근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기 힘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힘으로 살면 제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생은 반드시 실패와 좌절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불행은 안팎에서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떠나니 자연 자기가 인생의 주인입니다. 그는 허랑방탕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인생의 참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얻었던 분깃을 다 날려 버렸습니다. 그가 사는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남에게 매여 사는 종이 되었습니다. 들로 나가 돼지를 치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그가 얼마나 배고팠는지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고 싶어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먹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물질의 기근을 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의 불행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많지만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도 근심이 있고 걱정이 있습니다. 실속 있게 사는 것 같아도 공허합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늦게 자리에 누우며 재물이 늘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많은 친구 속에서도 외로움이 있고 사람들의 칭찬과 갈채 속에서도 참 내 모습이 없음을 절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잃어버리고 몸만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만 가지고 세상에 나와서 먹고사는 일과 육체를 즐겁게 하는 일에 빠져서 살아온 것이 여러분의 인생이 아닙니까 혹 정신세계와 사상과 철학을 추구하고 종교에 심취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먹고사는 범주를 넘지 못하고 내몸 하나 주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이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하면서 어찌할 수 없는 삶의 흐름에 떠내려가면서 허덕거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영적인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속사람이 죄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생명을 잃음으로 나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죄문제를 해결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죄사함을 받아야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용서 받지 않으면 이 땅에서 영적으로 시달림을 받고 죽어서 지옥갑니다. 그것이 불신자의 인생의 결론입니다. 죄는 하나님께 대하여 짓는 것이고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4.깨달을 때 축복 받습니다.
본문 속에 탕자가 예수님을 떠난 불신자를 상징한다면 장자는 믿는 신앙인을 말합니다. 불신자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버리고 떠나서 불행하다면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땅히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이상하게도 큰 아들도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로부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얻지 못하는 궁핍함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 집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한 말씀도 어긴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지 못할 만큼 가난했습니다. 그러면 그 가난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에 속한 품군 하나 하나에게도 양식을 넉넉하게 채워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 엄청난 축복의 조건 속에 살면서도 축복의 은혜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신분 하나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아들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인정머리 없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였습니까 큰 아들은 아버지를 잘 모르고 대단히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돌아와 아버지가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때에 큰 아들은 화를 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말씀을 한 마디도 어기지 않고 순종한 자기에게는 벗들과 즐기도록 염소 새끼 한 마리도 내어주신 일이 없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 창기들과 더불어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왔을 때는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말합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때 큰 아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것이 다 자신의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것이 곧 자신의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철저하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들이라는 신분 속에 아버지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자신은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구원받은 자녀에게는 일곱 가지 권세가 주어집니다.
①양자권 ②성령동행권 ③기도청구권 ④사단결박권
⑤하늘시민권 ⑥하늘보좌 ⑦천사동원권
이와 같은 엄청난 권세가 우리 믿는 자, 하나님 자녀의 권세입니다. 미국에 이민가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미국 가서 매달 생활비를 보내 드릴께요.” 매달 아들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돈은 오지 않았습니다. 돈을 기다리다 결국 어머니는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아들이 돌아와 보니 자기가 보낸 수표를 가지고 어머니는 문종이 찢어진 곳을 바르고 벽에 발라 놓았습니다. 은행에 가서 바꾸기만 하면 돈이 됩니다. 수표가 곧 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어머니는 굶어 죽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이와 같은 상태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깨달으면 갑부입니다. 그러나 모르면 극빈자입니다.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 가운데 이 기근과 고통이 없습니까 예수 안에 있으면서, 구원받은 신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축복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기근 속에 저와 여러분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 말씀을 읽으면서 준비하면서 제가 가난했던 것을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시는 권세와 능력과 축복을 누리지 못한 큰 아들과 같은 저 자신을 회개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제가 큰 부자인 사실이 깨달아져서 마음이 기뻤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권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가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은 곧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방황하는 저 인생들도 돌아와 그 권세와 능력을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물며 주님 안에 있는, 자녀된 우리들에게야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진수성찬을 옆에 두고 굶어 죽어 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주시는 축복, 허락하신 약속만큼은 우리가 받으면서 누리면서 삽시다. 기도하면 주십니다. 구하면 응답하십니다. 그것이 예수생명 얻은 자가 누릴 수 있는 권세입니다.
불신자가 기근과 고통을 벗어 던질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겁니다. 예수 믿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구원 얻은 자의 축복을 깨닫고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아버지는 세상이 욕하고 저주하는 인생이 돌아왔을 때 누더기를 벗기고 목욕시킨 후에 새옷을 입혔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발에 새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잃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온 이 기쁨을 나누자 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아버지가 주는 축복과 은혜입니다. 교회 안에 불신자가 하나님께 돌아와 사랑 받는 모습을 보면 배가 아픈 분은 안 계십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의 자녀 됨을 기뻐하십시오. 그가 사랑의 아버지 품에 안겨 새 삶을 얻게 됨을 감사하십시오.
큰 아들이 동생이 환영받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기를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나와서 들어가자고 권합니다. 그 잔치의 풍성한 식탁은 돌아온 탕자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큰 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모두가 구원받고 그 풍성한 사랑의 식탁에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기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생명, 능력의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살아 계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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