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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마 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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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몇달만 지나면 새로운 자동차 모델이 등장합니다. 저희는 언제 자가용 탈 여유가 될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돈 한푼 없으면서도 저 차는 마음에 들고 안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새 차가 나오면 ‘나도 저 차 한번 운전 해봤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가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저 차는 거저 줘도 안 타’ 이렇게 생각이 바뀝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게 간사한 것 같습니다. 외국 자동차를 본뜨지 않고 독자 모델로 만든 우리 나라 최초의 자동차는 현대에서 만든 포니입니다. 70년대 그 당시에 이탈리아 설계사에게 1억원이라는 개런티를 주고 설계를 부탁해서 만든 차입니다.
요즘은 눈을 씻고 하루 종일 찾아도 포니 자동차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그 포니를 타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포니’라는 말은 ‘조랑말’이라는 뜻입니다. 즉 당나귀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군중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쳤습니다.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했던 것을 기념해서 그날을 종려주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며칠 후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폭도들로 바뀝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했던 예수,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쳤던 예수, 그는 과연 누구입니까

1.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왕입니다.
우리는 왕하면 절대권위를 생각합니다. 왕은 왕관을 쓰고, 화려한 옷을 입습니다.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백성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는 낮고 천한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전능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아닌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창조자가 피조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까지도 깨뜨리시고 피조물인 인간의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왕국인 세상에 입성하실 때 그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왕의 이미지와는 상상이 안될 정도로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1-3)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피흘림으로 사단의 권세를 꺾었지만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왕적 이미지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왕은 위에서 군림하고 억눌러야지 그렇게 무력하게 죽는 분이 어떻게 왕일 수 있느냐 해서 인기가 없습니다.
그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왕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마굿간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는 왕이 날법한 동네에 사시지도 않았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요 1:45-6)
그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모습 또한 전혀 왕같지 않습니다. 비천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추운 겨울날 갈곳이 없어 이리저리 밀려 다니다가 마굿간 말구유에 탄생하셨어도 예수님은 왕입니다. 훌륭한 인물이 날 것 같지 않은 나사렛 출신이라 해도 그는 왕입니다. 나사렛에서 목수일이나 해가며 근근히 살아가셨다 해도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힘이 없어 비틀거리는 나귀를 타셨어도 예수님은 왕입니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어도 예수님은 왕입니다. 사단을 꺾은 왕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왕입니다. 우리의 왕되신 예수님은 왜 그렇게 오셨을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만일 예수님께서 화려한 왕복을 걸치고 나타나시고 권좌에서 모두를 호령하셨다면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곁에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시고 종려주일에 나귀를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유는 그가 낮고 천한, 괄시받는 사람들로부터 높은 높은 사람들까지 다 왕이 되셔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마 21:5)
세상의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합니다. 그들은 교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섬기는 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겸손하여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가 낮아지심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깨달으시고 감사함으로 겸손함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은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마 21:10-11)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오셔서 그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여신 선지자입니다. 예수님 이전에 수많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을 따라 오셔서 모든 약속을 성취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지자로되 다른 선지자와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어떻게 말합니까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9)
가르치는 권세 있는 자와 같다는 말은 하나님과 같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성이나 지식을 가지고 말하는 서기관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말씀하십니다. 그는 하나님으로 모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그가 누추한 옷을 입었을지라도, 왕과 같은 외모가 그에게 있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과 같은 권위, 권세를 가지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왔던 선지자들과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일컬어 위인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세계 4대 성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끼워 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화가 납니다.
예수님은 결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 중에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오직 한 길을 여신 선지자입니다. 그가 친히 하나님 되시고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겨진 관계를 중보자로서 연결하신 선지자입니다. 천하 인간에게 하나님이 구원얻을 이름을 예수 외에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자의 엄청난 이름을 겨우 위인의 반열에 세워놓고 있으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까
인도의 어느 교수가 젊었을 때 힌두교에 매력을 느껴 깊이 파고 들었으나 날이 갈수록 공허해지고 확신을 가질 수 없어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자매로부터 예수님을 소개 받았으나 여전히 갈등을 겪다가 어느날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 예수님을 알기 위해 교회에 찾아 나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눈을 열어 주셔서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뉴델리에서 택시를 탔는데 운전수까지 모두 네 사람이 탔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각자 자기 소개를 하자고 해서 간단히 인사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네 사람이 제각기 종교가 다 달랐다고 합니다.
그때 손님 중 한 사람이 “우리들은 종교가 제각기 다르지만 같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지요. 도달하는 길이 조금씩 다르지만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이오. 결국 우리는 한 배에 타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동의를 구하듯 다른 사람들을 둘러 보며 웃었습니다. 이때 가만히 앉아있던 그 교수가 버럭 고함을 쳤습니다.
“아니오. 당신들은 같은 배를 탔는지 모르지만 나는 다르오. 나는 다른 배를 탔오.” 하고는 차를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다른 종교와 같지 않습니다. 유일한 생명의 종교요, 구원의 종교입니다.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는 윤리, 도덕과 같은 교훈을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결코 구원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여시는 선지자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다 같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결코 같지 않다’고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주부 세명이 모여 각기 자기가 끼고 있는 반지를 자랑했습니다. 자랑이 끝나자 그 중에 한 주부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끼고 있는 반지가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형편에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요” 그때 남편으로부터 값비싼 반지를 선물로 받아 끼고 있던 한 여자가 소리치며 말했습니다. “내 반지는 당신들의 것과는 달라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선지자입니다.

3.예수님은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제사장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분입니다. 그는 죄용서 이전에 죄를 지적하여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성전을 정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신 일은 죄에 대한 책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①세상 부패를 탓하기 전에 성전 부패를 먼저 책망하셨고,
②정치인이나 랍비를 책망하기 전에 종교 지도자를 먼저 책망하셨고,
③이방인에게 노하시기 전에 바리새인에게 먼저 분노하셨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예수님이 세상에 재림하시면 제일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정화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상을 들러 엎고 채찍으로 내리치실 때 했던 일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무조건 용서가 아닙니다. 그의 엄청난 값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가 죄인입니까 성경적인 입장에서 봅시다.
(1)원죄:죄의 근성
“이러므로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원죄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범한 대표적, 법정적 죄로 전 인류에게 죄의 품성을 가져다 준 것을 의미합니다. 원죄로 인하여 인간은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무의 열매로 그 나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같이 인간의 역사는 죄로 점철된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열매가 크거나 작거나, 그 수가 많거나 적거나 관계없이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2)동기:마음의 죄(마 5:21-28 음욕=간음 미움=살인)
인간은 누구나 살인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환경을 따라서는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속마음을 그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가능성을 보고 모든 인간은 죄인임을 규정하셨습니다.
(3)요구:생략의 죄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하나님은 두 종류의 계명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령과 무엇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수많은 명령을 지켰어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분량에 미달하면 죄가 됩니다.
(4)불신:결정적인 죄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
위의 세 가지 죄는 믿으면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그 죄가 다 남아 있고, 그 죄 때문에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지 않는 게 가장 큰 죄입니다.
죄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저주와 사망의 결과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조건을 가지고 하나님께 구원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구원받는 것입니다. 죄는 덮어두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용서로써 해결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죄라도 다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8-9)
원죄든 자범죄는 믿고 용서를 구하면 다 용서받습니다. 죄에 대한 깨달음이나 분노없이 죄에 대한 용서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알고, 그 결과를 알 때 죄용서에 대한 감격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용서하신 제사장이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호산나’는 ‘주여,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언제 구원받아야 합니까 바로 지금입니다. 언제 은혜받아야 합니까 바로 지금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른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잠 27:1)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오늘 구원받아야 합니다. 오늘 은혜 받아야 합니다. 오늘 구원받도록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은혜 받도록 충성하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마귀는 오늘이라는 말을 매일 내일로 미루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또 내일로 미룹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로 미루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오늘 구원받으시고 오늘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끌어 오라 하셨습니다. 주께서 다른 것이 없어서 나귀를 타시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시기에 나귀 주인을 사랑하셔서 나귀를 타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어서 나를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니면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수 없어서 나를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쓰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일에 써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뭐라 말합니까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2-15)
이 복음을 전하도록 나를 부르시고 써주시는 것은 전폭적인 그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사단을 꺾으신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유일한 문을 여시고 그 앞으로 인도하는 선지자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입니다.
그가 오늘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 앞에 계십니다. 마음 문을 열고 모셔들입시다. 내 인생 가운데 오셔서 나를 건져달라고, 써 달라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를 환영합시다. 구원의 주님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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