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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락방은 알고 누리고 전하는 것입니다3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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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두 주에 걸쳐 다락방이 무엇인가를 하는 점들을 알아 보았습니다. 첫주에 다락방은 아는 것, 깨닫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둘째 주에는 누림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다락방은 알고 누리고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전하는 내용, 무엇을 전할 것인가 왜 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앙의 최종결론은 증거에 있습니다. 내가 믿고 체험한 바 사실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각 복음서의 마지막 장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하여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
48)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 21:15)
주님은 제자들에게 증인의 삶을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증인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증거의 신분은 특권입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증거해야 할까요

1.말씀의 능력을 증거해야 합니다.
성경공부는 지식전달이 아닙니다. 학습이 아닙니다. 사실에 대한 증거입니다. 성경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믿지 않고 무엇을 믿을 수 있습니까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렵고 좌절을 느끼는 이유는 인간이 변하는 것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젊음, 건강, 생명과 물질, 명예 등 인간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모든 것이 나를 떠나는 날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언제나 이 물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도둑이 가져가지 않는다 하여 사람들은 저마다 은행에 예금해 둡니다. “땅은 절대로 누가 훔쳐 가지 않으니 절대 안심이다” 생각하고 땅을 사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도 변합니다. 그에게서 떠나는 날이 분명히 옵니다. 이렇게 변하는 것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불신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신자라고 합니다. 신자가 되었으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고독하고 초조해하고 있다면 이는 아직도 물질을 의지하고 명예를 의지하고, 젊음을 의지하고, 가족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삶의 기둥을 세워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영혼의 평안과 기쁨은 절로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우리들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과 현실의 괴리감을 느낍니다. 괴리감이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씀대로 이루어지는데 뭔가 우리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문제를 시정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다락방은 말씀운동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며, 힘과 능력을 공급하고, 소망을 주는 운동입니다. 모든 인생 문제의 해결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꺾고 승리한 사실을 증거해야 합니다.
영적존재들은 죽지 않습니다. 소멸되지 않습니다. 노아 홍수 시대에 노아의 여덟식구를 제와하고는 모두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실 때 방주에 들어가지 않은 모든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네피림 시대를 오게 하고,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사단은 죽지 않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과 유황으로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를 죄악의 도성으로 만들었던 사단은 죽지 않았습니다.
히틀러도 죽고, 김일성도 죽었지만 그들 속에 들어가 있던 사단은 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여전히 살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사단이 존재하고 그가 역사하는 한 그를 이겨낼 하나님의 능력도 동시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호흡하고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문제투성입니다.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지금 아무 문제도 없는 분이 계십니까 없습니다. 문제는 다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할만한 능력이 본인 자신에게 있다면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해결할 수 없기에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에게는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나는 무능하고 매일 같이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신분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 유혹과 사단의 공격을 받습니다. 날마다 이 사단을 꺾고 승리할 수 있는 이름, 왕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나에게 역사를 주시는 하나님,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증거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그리스도가 저들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전도의 동기는 나에게 필요한 그리스도가 저들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3.신앙은 언제나 오늘 나에게 적용된 말씀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보이는 것은 인식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믿으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보이는대로 깨달으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사실을 보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시대의 사건들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들을 그대로 믿습니다. 과거로 되돌아가 다시 살펴볼 수도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내용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단지 기록된 사건으로서 끝난 말씀이 아니라 오늘 그대로 나에게 재연될 수 있는 말씀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셨던 사건이 오늘 나의 사건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역사를 오늘 나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라는 시간을 오늘 살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은 아득히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그 사실들을 깨닫고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시민입니다.
이 땅에 살아도 천국에 가서 살게 될 하늘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시간 개념은 불신자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과거가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과거가 오늘 우리에게는 현재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미래도 아득히 먼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미래입니다. 미래도 오늘인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이, 유월절 출애굽의 역사가, 날마다 메추라기와 만나로 먹이시는 여호와 이레의 역사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증인에게 증거할 내용이 아득히 먼 과거의 이야기밖에 없으면 불행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 나에게 역사하심으로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가 증거되어야 합니다.

말에는 내용이 있어야 하고 증거는 사실이 있어이야 합니다. 신앙에 있어 소위 간증이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애 속에 역사하신 주님을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자기 증거는 오늘 나와 관계하고 있는 예수가 증거되어야 합니다. 대부분 지난 과거,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된 동기, 배경 등을 말하는데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무의미합니다.
신앙은 벌써 지나버린 옛날이야기도 아니요, 아득히 먼 미래 이야기도 아니요, 오늘 나와 함께 하고 계신 예수를 증거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할 말이 없다는 것만큼 큰 불행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오늘 살아서 나와 함께 역사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일이나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그 증거를 주십니다. 요셉, 모세, 여호수아, 예레미야에게 함께 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살았다고 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현재적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는 언제나 현재로 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살아서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적으로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역시 그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시대에도 동일한 힘을 지니며 동일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생생하게 경험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성경의 사실이 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다고 믿고,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엄청난 능력을 삶에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의 오류가 있다면, 성도의 무력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다고 말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말씀이 현재적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말씀이 자신에게 적용된다고 믿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현재성을 의심합니다. 그 말씀이 오늘날 자신에게까지 살아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불치병이라고 하는 병이 들면 금방 맥이 풀려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린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고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고 하나, 그 영혼 속에는 살았다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슬픈 표정을 짓고 안과 밖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변해도 인간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도 변함없이 동일한 능력으로 언제나 있을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내가 현재 경험하지 못하면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습니다. 이 말씀의 효력은 믿는 자들에게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이적은 현재적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장난이 심하다고 야단을 치지만 장난이 심하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장난꾸러기라도 병이 들면 조용합니다. 나가서 놀라고 해도 싫다며 누워 있습니다. 사람은 생명력이 있을수록 운동력이 있고, 운동력이 있을수록 활발하게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영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육체와 환경까지도 지배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오늘도 변하지 않고 “우리를 영생케 하셨다”는 그 말씀은 그대로 살아 있으며, “오늘도 우리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계시는 그 말씀과 “우리를 치료한다”고 하시는 그 말씀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하시는 그 말씀 또한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이 살아있는 말씀이 운동력이 있어서 나를 지배하고, 나를 영생케 하고 나를 사랑받게 하고, 나로 하여금 사랑하게 하고, 헌신하게 하고, 소망 중에 주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로 파고들어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게 하고, 생명이 무엇인지 나누어 주게 하고, 기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행복한 인간, 승리하는 인간, 기쁨이 넘치고 자신있고 두려움이 없으며 감사할 줄 아는 인간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날마다 생명의 언약을 누리고 날마다 증거하는 능력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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