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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의 근본문제3-사단 (출 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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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듣기 좋아하는 말이 있고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옛말에 보약은 입에 쓰고 듣기 싫은 말이 신상에는 이롭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이 듣기 싫어하고 귀에 거슬리더라도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분명한 영적 사실들에 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죄인은 죄 소리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나 죄인은 죄를 죄로 지적 받을 때 깨닫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죄를 죄라고 지적해주는 사람입니다.
병원에 가면 4층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숫자 4(四)를 죽을 ‘사(死)’와 비슷하다하여 싫어합니다. 그러나 죽음에 가장 가깝게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우리가 해주어야 할 일은 안 죽을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를 바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바로 믿어야 바로 죽을 수 있고, 바로 죽어야 천국갈 수 있습니다.
죄, 죽음 등과 더불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사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마귀, 귀신, 사단을 두려워하여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왜 인간이 마귀를 두려워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그를 이기는 길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랑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은혜로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 두 가지 불행의 배후에는 사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의 문제는 시작되었고 그 불행은 하나님께서 마귀를 지옥에 가두시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은 인간의 세 번째 근본문제인 사단문제를 생각해보고 그리스도가 되셔서 왕으로 우리를 마귀 권세에서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1.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사단에게 소속되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떠난 존재로 태어납니다.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속한 자, 즉 마귀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출애굽기는 우리에게 구원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실제적으로 있었던 이스라엘의 민족사 한 부분을 통해 구원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출애굽기에 나타나는 여러 대상과 사물들을 상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바로는 사단, 즉 마귀를 상징합니다. 애굽은 세상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노예생활을 하는 것으로부터 출애굽기는 시작합니다. 출애굽기는 왜 이스라엘이 노예생활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일까요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사단에게 소속되어 마귀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누구나 구원받아야 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구원의 의미를 그리고 있는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 종살이를 하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은 바로(사단)에게 사로잡힌 노예들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출 1:11-14)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남자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비돔과 라암셋이라는 국고성을 짓는 일에 동원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 농사일 등으로 비지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스럽게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날마다 늘어만 갔습니다.
학대를 받을수록 번식하고 창성했습니다. 나중에는 애굽 백성보다 더 수가 많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가 되면 이스라엘이 애굽 나라를 전복시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바로는 이스라엘을 말살하는 정책을 은밀하게 펴게 됩니다. 산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가정에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명령을 받은 십브라와 브아라는 산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아이들을 살리고 왕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 다음에 바로는 살인 명령을 전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출 1:22)
남녀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을 때 여자가 아이를 가지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지금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과학을 통해 태아의 성(性)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 일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임신하면 열달 동안 불안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그 날은 곧 장례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숱한 어린아이가 나일강에 던져져 고기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땅을 치고 어머니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고통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학대를 받아야 했습니까 그리고 이 고통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난 뒤에 죄지은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 있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6-19)
범죄한 하와에게는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의 수고와 남편에 대한 복종이 형벌로 주어졌습니다. 아담은 저주받은 땅에서 종신토록 땀을 흘리며 수고하여야 겨우 식물을 먹고살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남녀가 당하는 학대와 고통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진 사람이 사단에게 소속되어 얼마나 저주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사단에게 매어 마귀의 자녀로 영적, 정신적, 육체적 고통 가운데 살다가 죽은 뒤에는 자신은 영혼이 지옥에 가고 후손에게는 그 지긋지긋한 영적 유산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 불신자의 운명입니다.

2.인간은 자기 노력으로 이 저주의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지나가는 100 사람을 붙잡고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물어 보았습니다. 1,2,3위 대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위, 그럭저럭 삽니다. 2위, 마지 못해 삽니다. 3위, 죽지 못해 삽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정말 행복하다 느끼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마다 다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가정문제, 건강문제, 경제문제, 장래문제, 정신문제 등 어떤 것이든 이중 한두 가지를 문제로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는 견딜만 하고 어떤 이는 아주 심각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 인간에게는 누구나 고통스러운 환경을 이겨내 보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온갖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잘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때 사람은 ‘나만 그런가. 다른 사람들도 다 문제가 있는데. 그냥 그럭저럭 사는 거지’ 하며 체념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 문제의 정도가 아주 심각해지면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사방으로 뛰어다닙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을 때 사람은 절망에 빠지고 그 문제에서 망각으로 벗어나고자 합니다.
술을 마시고, 도박에 빠지고, 춤과 육체적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더 깊은 허무에 시달리고 더 큰 고통에 아픔을 이기지 못합니다. 사람은 이와 같은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중노동을 겪으면서 나일강에 버려지는 핏덩이 아이를 보고 울부짖는 부모를 보면서 이스라엘은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얼마나 애를 썼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도 뼈마디가 부러지고 허리가 휘는 중노동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자식 잃는 처절한 비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레위 남자가 레위 족속의 여자에게 결혼하여 얻은 아들입니다. 그의 부모는 이 아슬아슬한 죽음의 위기 가운데 아이를 낳아 석달 동안을 숨겨서 길렀습니다. 나중에는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갈대상자에 아이를 넣어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떠내려오는 갈대 상자를 마침 나일강에 목욕하러 나왔던 바로 공주가 건졌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사내 아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공주는 마침 자식이 없던 처지인지라 그 아이를 아들을 삼았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궁중에 유모로 들어가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으로 아들을 길렀습니다. 모세는 그런 우여곡절을 통해 바로궁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나이 40세 되던 해에 모세는 동족들이 노역하고 있는 장소에 나가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심히 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분을 참지 못하고 그 사람을 쳐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 다음날 애굽인을 쳐죽인 사실이 발각되어 모세는 광야로 도망하게 됩니다. 모세는 민족의 구원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하고 또 준비했는데 그 꿈은 하루 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구원을 위한 인간은 노력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구원을 나는 못한다 회한을 되씹으며 광야에서 4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어떤 노력, 어떤 수고를 통해서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강력한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이 인간의 노력에 있지 않습니다.
출애굽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출애굽은 모세의 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팡이로 뱀을 만들고 뱀을 다시 지팡이로 만들었으나 바로는 코웃음만 쳤습니다. 아홉 가지 재앙을 애굽 전역에 쏟아 부었지만 바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 앞에 우리는 바로, 곧 마귀가 어떤 존재요,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본래 하늘에서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 돌리도록 지음 받은 천사였습니다. 그는 지혜가 충족하며 아름다웠습니다. 어느 날 그는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지혜의 충족함으로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겔 28:7).
마귀는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고 하나님과 비기리라 하며 교만함으로 타락했습니다(사 14:13-14). 마귀는 본래 천사장이었는데 그의 밑에는 하늘의 천사 ⅓이 부하로 있었습니다. 마귀가 타락할 때 그에게 속했던 천사들도 함께 타락했습니다(계 12:·1-9). 범죄한 마귀는 하나님께 내어쫓긴 바 되어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때부터 마귀는 공중의 권세를 잡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인간에게 저주와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켜 인류를 불행에 빠뜨렸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마귀는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방해하고, 신자에게는 은혜 받지 못하게 하며 전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바로에게 사로잡혀 있는 이스라엘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에게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애를 써도 애굽에서 빠져 나올 길은 없었습니다.
오늘날 시대와 상황은 그 당시와 많이 바뀌었지만 마귀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상황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3장의 앉은뱅이가 평생을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해도 조금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기 이전의 인간은 기본적인 삶의 구조가 하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마귀의 자녀로 영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육체적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죽어서 본인은 지옥에 가고 후손에게 자신과 똑같은 삶의 구조를 물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 불신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해 주기 이전에 저와 여러분이 그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은 아직도 세상(애굽)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마귀(바로)의 올무에 묶여 고통받고 있습니다.

3.유월절 피 바른 날에 빠져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저주스러운 고통의 삶을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고를 알고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언제 어떻게 그들은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까 유월절 날,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어린양의 피를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르고 빠져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오랜 세월 몸부림쳐도 안되던 출애굽의 역사가 그 날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의 장자로부터 시작하여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자를 멸하시는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어린양이 누구를 가리킵니까 갈보리 언덕에서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마자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대책을 마련하셨습니다. 바로 창세기 3:15의 언약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생명은 생명으로만 살릴 수 있습니다. 죽어 있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생명이 죽어 있는 생명을 위하여 희생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애굽 전역에 모든 장자를 하나님이 쓸어버리신 날에 그토록 악독했던 바로도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날에 피 바르고 빠져 나왔습니다. 430년만에 그 지긋지긋한 고통을 끝내고 통쾌한 승리를 거두고 여호와의 큰 군대로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오늘도 여인의 후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언약을 붙잡을 때 마귀는 빼앗았던 생명을 다시 내어놓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엄청난 사단의 권세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을 믿을 때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만이 인간을 마귀에게서 건질 수 있습니다. 그만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피 흘리심으로 죄값을 담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통해서만 인간은 사단에게 묶인 저주스러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만이 참된 구원자입니다.
세상의 왕은 마귀입니다. 오늘날 모든 인간들 위에 사망이 왕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롬 5:14)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마귀의 최고 권세요, 최후 권세인 사망을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을 이기시고 세상의 왕을 꺾으셨습니다.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마귀에게 매여 있는 인간에게는 그를 꺾고 모든 저주에서 해방시켜 줄 왕이 필요했는데 예수님께서 모든 마귀 권세를 깨드리고 생명으로 승리하사 만왕의 왕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하나님은 천사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분만이 사단을 꺾을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만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도 사단, 마귀, 귀신이라는 존재를 두려워하여 언급하기도 싫어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있는 것을 없다고 부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3장부터 요한계시록 20장까지 사단이 지금도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기록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고 성경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없다고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또 있는 것을 없다고 부정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종살이보다 힘든 인생이 없습니다. 마귀 사단에게서 빠져 나와 영혼과 육신이 참된 자유를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가능합니다. 피 바른 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져 나왔듯이 오늘도 여전히 살아 오히려 마지막 때를 만나 더욱 우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마귀에게 승리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십자가를 붙드는 길밖에 없습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싸움을 걸어올 때마다 기도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 되셔서 승리케 하십니다.
분명하게 사단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의 계략을 깨달아 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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