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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로 미래로 세계로2 (마 24:14, 행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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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추석 명절을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는 2500만 인파의 대이동이 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매년 명절을 맞이하고 또 보내면서 느끼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옛날이 더 좋았는데 하는 생각을 하지만 인간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시간(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인간은 영원히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옛날이 좋았는데 하는 생각을 아담만큼 짙게 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그 엄청난 축복을 잠시나마 누렸던 사람입니다. 범죄함으로 그 모든 축복을 상실하고 난 뒤에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마에 소금땀을 흘리면서 그들은 얼마나 에덴 동산을 그리워했을까요 그러나 인간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반대로 미래로 나아갈 뿐입니다.
물이 가지는 진리가 있습니다. 물의 속성입니다. 물은 끝없이 아래로만 흐릅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아래를 향하여 흐르며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끝내 바다에 이릅니다. 아래로 끝없이 흐르는 물은 막을 수 없습니다. 흐르는 물을 돌로 막으면 돌아갑니다. 둑을 쌓아 막으면 넘어갑니다. 끝내 바다에 이르고야 맙니다. 아래로 흐르는 물을 잡아둘 재간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흐르는 시간을 잡아둘 수 없습니다. 시간은 무심한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인간은 어떤 종교를 가지느냐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면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충북대학교 총장을 지낸 정범모 박사는 ‘종교인과 교육’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①유교, 불교인-과거 지향적
지금도 불교, 유교인들은 중국의 요순시대, 춘추전국시대를 말합니다. 죽은 선조의 업적들을 말하며 날마다 족보를 뒤척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뒤로 돌이킵니다.
②이슬람교인-현세 지향적
어제에 대한 반성도 내일에 대한 소망도 없이 오늘 진탕 먹고 즐깁니다.
③기독교인-미래 지향적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도 미래에 대한 찬란한 소망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행복해도 그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크게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시간과 때에 대한 하나님의 굳은 약속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미래의 소망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위의 두 요절을 통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주님의 언약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소망을 더욱 굳게 할 수 있는 축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천국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후회가 없으시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반대해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집니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막으려는 자들은 산산이 깨어졌습니다.
로마가 10명의 악한 왕들이 나와서 250년 동안 엄청난 핍박을 기독교에 가했지만 기독교는 주님의 약속대로 로마를 복음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었기에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아직 전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12억만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습니까 전도와 선교를 통한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분명하게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몇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①세계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공산권, 회교권, 불교문화권, 이들은 과거에는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은 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문들이 서서히 열리고 있습니다. 과거 저희가 어릴 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양대 산맥으로 세계를 분할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공산주의가 군사력의 우위를 지키며 심각하게 자유진영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산주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소련마저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현재는 사상, 인종 등은 물론 모든 국가간의 장벽이 무너지고 문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철벽같이만 여겨졌던 공산주의가 종말을 고했고, 중국의 죽의 장막이 열렸습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종교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문들도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열릴 것입니다. 완전한 선교의 자유가 주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북한 문도 열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②교통수단이 발달하며 왕래가 빨라집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과거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왕래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고속도로가 뚫리고 이제는 우리 나라도 고속전철의 개통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가 비행기를 타보니까 보통 시속 800Km쯤 날아가는데 빠를 때는 시속 1000Km까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빠른 교통수단의 발달로 복음도 빠르게 급속도로 확산될 것입니다.
③정보산업이 발달합니다.
말세에는 빨리 왕래하며 지식을 더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매체들을 통하여 지식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보 속에 기독교 정보도 날마다 늘어가기만 합니다. 누구나 원하면 마음껏 그 자료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아직 자유롭게 복음을 접할 수 없는 중국, 소련, 북한에서도 아시아 방송, 극동방송은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남한에 귀순한 경우가 있습니다. 소련에서 방송을 몰래 청취하다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3국을 통해 귀순한 북한의 벌목공도 있습니다. 제가 만든 다락방 관련 자료도 이미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빠른 정보의 확산은 빠른 복음의 확산을 가져올 것입니다.
선교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상스럽게도 한국 사람들은 어디든지 가면 교회를 세웁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그곳에 일본 상품이 있습니다. 세계 구석구석에 중국인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짧은 역사만에 이토록 엄청난 부흥을 이룬 것은 세계선교의 책임을 감당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본은 경제동물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면서 엄청난 경제적 부를 축적했습니다. 중국은 현재 아이를 한 명만 갖도록 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있습니다. 둘을 낳으면 그 아이는 호적에 올릴 수도 없고 초등교육까지 받는 의무교육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중국 본토 안에만 인구가 12억이요, 세계 구석구석에 중국인이 없는 지역이 없습니다. 한국의 기독교, 일본의 경제력, 중국의 인구, 이 세 가지가 앞으로 세계선교의 핵이 될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는 말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온다는 말은 아닙니다. 모든 지역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져 구원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때 주님은 오신다는 뜻입니다. 세계복음화는 주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계획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2.세상의 끝은 반드시 옵니다.
모든 만물이 시작이 있으면 끝은 당연히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세상의 끝은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 세상종말은 결코 비극이 아닙니다. 두려움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것은 철저하게 소망적인 것입니다.
이번 추석에 집에 갔더니 시골집을 다시 짓는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하니까 명절 때가 되면 방이 부족하여 잘 곳이 없습니다. 평상시에도 조카들의 공부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조카들이 하는 이야기가 증조 할머니 돌아가시면 그 방은 내 방이다 했습니다. 할머니가 그 말을 들으시고 그래 빨리 죽어야 할텐데 잘 안 죽는다 말씀하셨습니다.
장사꾼이 손해보고 판다는 말,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 노인네가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이 3대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저는 할머니의 빨리 죽어야 할텐데 안 죽는다는 그 말씀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금년 할머니 연세가 83세입니다. 늙어도 죽음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두려운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면역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바울은 내가 빨리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땅에 있는 것도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이 죽어야 영원한 천국입니다. 세상종말은 성도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소망입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세상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아모스 3:7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선지자에게 계시하사 미리 알려 주시고 그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알 수 있으며 그 날이 정확하게 1992년 10월 28일 자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자신들의 주장이 오류였음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런 식의 신앙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에게 알리신다고, 신약에서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모순됩니까 아닙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이 산에 올라갔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잠시 후에 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마 17:5)
모세와 엘리야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사라졌습니다.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보다 크십니다. 나아가 그 선지자들이 말한 그 실체입니다. 우리는 그 선지자의 말한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예수님이 몇 년 몇 월 몇 시에 오신다는 그런 오류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때에 세상에 끝이 오고 그날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을 굳게 붙잡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을 떠나면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에 우리의 관심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 되겠는가 말씀에 비추어 보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2-4)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자기사랑
자기만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웃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②돈을 사랑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돈을 사랑한다는 말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습니까 돈으로 천국을 얻을 수 있습니까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중요한 일은 한 가지도 돈으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③쾌락을 사랑
현재만 바라보고 육신의 안일만을 좇아간다는 말입니다. 육체의 만족만을 추구하고 편한 것만 좋아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고통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빛과 어두움의 자녀들에 과한 말씀이 나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몇 십 년 살 세상을 위하여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하고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천국에 가서 살게 될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더 많은 투자가 천국을 위하여, 그곳에서 살아갈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하여 투자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끝은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행복해도 더 좋은 천국이 예비되었으므로 기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갑자기 옵니다. 준비한 자에게는 소망 중에 기다림 가운데 옵니다. 실력 있는 학생들에게 입시일은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준비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두려운 날입니다. 세상 끝 날이, 여러분 생애에 가장 기쁜 날이 될 수 있기를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예수님은 심판주로 다시 오십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복음전파와 세상종말과 주님 재림은 동시적 사건입니다. 초림의 재림은 우리를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건지러 오신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재림하시는 주님은 심판의 주님이십니다.
초림의 주님에 대하여는 온갖 핍박을 다 했어도 관계없습니다. 초림의 주님은 그와 같은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림의 주님은 거절하면 영영 멸망하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막 3:28-29)
성령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마지막 사역의 모습입니다. 성령 다음은 재림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거절하고 구원을 거절하면 그대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심판의 주님 앞에 요행은 통하지 않습니다.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무서운 공의 하나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자기를 가리켜 주의 사랑하는 제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그는 두려움으로 떨었습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 1:17-19)
다시 오실 주님은 심판의 주님입니다. 주님의 재림 뒤에 다시 구원 얻을 기회는 얻습니다. 신앙과 불신앙, 충성과 불충성을 가지고 우리를 심판하실 주님입니다. 불신자들은 심판이 없다 말합니다. 지옥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없다기보다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일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심판도 있고, 지옥도 있습니다. 지금 보좌 위에 계신 주님은 심판주로 반드시 이 땅 위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일은 그 계획에 나를 맡기고 주님을 따라 사는 일입니다. 누구도 꺾을 수 없고 반드시 이루어질 계획에 나를 맡기고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믿고 순종하며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세계로 교회의 두 번째 신앙의 목표는 ‘미래로’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언제 오셔도 좋다는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이 이루시는 계획의 순서가 있습니다.
①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
②천국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날에 세상의 끝이 올 것입니다.
③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주로 이 땅 위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주님의 계획에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어려움도 핍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만 바라보며 전진할 때 승리하게 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예수님은 우편에 있는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를 천국에, 불신자를 지옥에 보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 심판의 주님입니다. 반드시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백여 형제가 주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을 목격했고, 분명한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이 말씀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전체적인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①하늘만 쳐다보면 신비주의자가 됩니다.
②땅만 쳐다보면 인본주의자, 육신주의자가 됩니다.
③소망 중에 주님을 기다리며 충성하면 사명자가 됩니다.
우리들 각자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주님이 주신 너무도 분명한 이 미래의 언약을 붙잡고 언약 붙잡고 내가 주님 앞에 가기까지, 주님이 우리 곁에 오시기까지 주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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