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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다섯 가지 확신5-승리의 확신 (히 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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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의 생활은 사실은 영적전쟁입니다.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기지 않으면 패하는 것이고, 패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전투에 있어 매일같이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신자는 늘 성도의 싸움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공중에 권세 잡은 자, 악한 영들과의 싸움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귀는 세상 일에 분주하게 함으로 예배에 빠지게 합니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잡념을 가지게 함으로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거나 졸음을 통해서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성령이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시지만 그것과 동시에 악한 마귀가 예배를 방해하기 위하여 여러분을 노리고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단을 꺾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를 결박해 놓고 이 예배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요즘 신자들의 입에서도 거리낌없이 나오는 말이 신앙생활이 힘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는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알고 있으며,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힘든 것이 아니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힘들게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에게 구원받게 하기 위하여 힘든 조건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를 잡아 그 피를 뿌리며 제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인간의 근본문제를 다 해결하신 사실을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믿음생활도 우리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해주심으로 반드시 승리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하나님은 방주를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는 자는 살리라 하셨습니다. 불평함으로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놋뱀을 만들어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구원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범죄한 자가 제단 뿔을 잡으면 살게 하셨습니다. 범죄한 자가 도피성에 들어가면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모두 구원의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는 발 있는 자는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단 뿔은 손만 있으면 잡을 수 있습니다. 놋뱀은 눈만 있으면 쳐다볼 수 있습니다. 도피성은 달리기만 잘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런 염려없이 너무 쉽게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구원만 쉽게 하신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도 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기뻐야 하고, 쉽고 즐거운 길이 되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이것은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본인이 알든 모르든 7가지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이 권세를 통하여 신자는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곱 가지 권세가 무엇입니까
①양자권(요 1:12, 요 5:24)
②성령동행권(요 14:16-27)
③기도응답권(요 16:24)
④천사동원권(히 1:14)
⑤사단결박권(마 12:23-25)
⑥천국시민권(빌 3:20)
⑦세계정복권(마 28:16-20)
마귀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신자들에게는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분명하게 이 사실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증거를 가지고 증인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이 사실들을 깨닫고 승리해야 합니다. 신자가 영적싸움에서 실패하면 고난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져야 할 다섯 번째 확신은 승리의 확신입니다. 오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라는 네 사람의 생애를 통해 승리하고 싶다가 아니라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신자임을 깨닫는 복된 시간을 삼고자 합니다.

1.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까지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 신앙생활에서 승리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포기함으로 모든 영적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기 전에 먼저 그가 가진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버리게 하시는 이유는 새로운 것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문도, 학문도, 지위도, 권세도 다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그가 버림으로 손해를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작은 것을 버리고 엄청난 것을 얻었습니다. 일시적인 것을 포기하고 영원한 것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버림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또 우리에게 버리라고 하시는 이유는 새롭고 영원한 것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버릴 때 그 이상으로 넘치게 채워주신 것이 그의 생애였습니다. 그가 버린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⑴인간적인 배경을 버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배경이 무엇이었습니까 본토, 친척, 아비집입니다. 저에게도 있고, 아브라함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버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본토, 즉 고향 땅을 버렸습니다. 지금도 말과 글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 가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친척을 버렸습니다. 친척은 아브라함의 일가친척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알고 있고 의지할 만한 모든 사람들을 말씀합니다.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반경 안에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비집도 떠나라 하셨습니다. 부모의 보호도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세 가지 모두가 다 참으로 떠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곧바로 떠난 것이 아닙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창 11:31-32)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가나안으로 가고자 떠나기는 했지만 오다가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그만큼 본토, 친척, 아비집은 떠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형의 이름이 하란입니다. 하란은 ‘열매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데라의 이름의 뜻은 ‘연기하다’입니다. 하란에 머물러 생활했지만 그 이름의 뜻처럼 삶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그 이름처럼 아브라함이 가는 길을 자꾸만 막고 떠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 7:4)
그래서 창세기 12:5에는 아브라함이 들어가는 장면을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기 싫어하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버리게 하셨고,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⑵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에 과거 자기가 살던 갈대아 우르보다는 낫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가족과 육축의 떼를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면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허물치 않으시고 바로로부터 많은 육축과 재물을 얻어 가나안으로 되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는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치고 가축을 길렀습니다.
그런데 땅은 좁고 가축은 많아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종들 사이에 다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불러 한 골육된 너와 내가 싸우는 것이 마땅치 못하니 헤어져 살자고 제의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당연히 삼촌에게 우선권을 주었어야 할 조카 롯은 서둘러 에덴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은 비옥한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여 떠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나무 수풀 근처로 옮겨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재물을 포기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재물만 바라보고 떠나갔던 조카 롯의 가정은 철저하게 망했습니다.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두 딸은 패륜의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의 땅이었는고로 불과 유황으로 망할 때에 롯의 모든 소유도 함께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동서남북의 땅을 그와 그의 후손의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척박한 땅에서 318명의 가병을 거느리고, 1000여명의 식솔을 거느릴 만큼 아브라함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롯이 가나안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는 집에서 길리운 가병 318명을 이끌고 밤에 야습하여 승리했습니다.
승리 후에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사람은 내게 돌리고 재물은 네가 취하라 했을 때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렸습니다.
⑶아브라함은 인본주의를 버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 마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근심과 염려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가 망신만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본토, 친척, 아비집을 버리라고 했는데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에 간다는 두려움 때문에 조카를 늘 대동하고 다녔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평생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하갈이라는 애굽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조카 롯도, 다메섹 엘리에셀도, 너의 후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몸에서 날 씨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날 씨를 후사로 삼겠다고 했는데 약속이 늦어지자 86세에 하갈과의 사이에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와 같은 불신앙을 인하여 하나님은 99세까지 침묵하십니다. 분명히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인하여 13년간 침묵으로 책망하셨습니다. 하갈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 살아 생전에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후손된 이삭과 이스마엘은 영원한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마다 인본주의 쓴 일은 모두 다 화근을 불러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일 이 사실을 깨닫고 인본주의를 버렸습니다. 자기를 버렸습니다. 자기 생각을 포기했습니다.
⑷아브라함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집에서 내보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 유일한 혈육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아들, 네 독자 이삭은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내게 번제로 바치라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명령을 거절할 명분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두말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자식까지 드리는 헌신으로 믿음을 확인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

2.이삭
이삭은 나이 40이 되도록 연애한번 못해본 졸장부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또 기근이 들자 이삭은 기근을 피하여 블레셋 땅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이삭은 본래 양치는 목자였는데 블레셋에 이르러는 농사를 하였습니다. 그 해에 다른 사람들은 다 흉년이 들었으나 이삭은 백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시기한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흙으로 메꾸어 버렸습니다.
이삭은 원망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또 샘을 팠습니다. 또 물이 나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또 빼앗았습니다. 또 주어버렸습니다. 나중에는 샘의 근원을 얻었습니다.
나중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찾아와 오히려 우리를 해하지 말라 말합니다. 이삭은 원수의 땅에서 핍박 때문에 더 잘되는 축복으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3.야곱
야곱은 인본주의의 명수입니다. 하나님은 출생 이전부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신뢰했어야 할 그가 앞질러서 인본주의를 사용함으로 온갖 고생을 다했습니다.
야곱은 형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습니다. 아버지를 속여 형이 받아야 할 축복권을 가로챘습니다. 그로 인하여 야곱은 20년간 온갖 고생을 다하게 됩니다. 인본주의를 쓰고 얻은 것 이상으로 상실한 것도 많았습니다. 야곱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쉽게 그 인본주의가 포기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인본주의는 창세기 32장에서 극치를 나타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외삼촌의 집을 떠나 고향 땅으로 되돌아갑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형과 원수를 맺고 떠난 일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야곱은 세일 땅 에돔 들에 살고 있는 형에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를 미리 보내어 형의 환심을 사려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에서는 400인의 병사를 이끌고 달려왔습니다. 기겁을 한 야곱의 인본주의 기질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가축의 떼를 둘로 나누었습니다(창 32:7-8).
한 떼를 치면 다른 떼를 이끌고 도망할 생각이었습니다.
⒝다시 짐승을 택하여 예물로 자신보다 앞서 보냅니다(창 32:13-16).
세 떼를 나누어 보내면서 예물을 받고 형의 마음이 누그러지기를 바랍니다.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과 딸 하나로 하여금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합니다.
형이 예물을 받고도, 네 명의 동생 아내와 12자녀를 보고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 죽이고자 할 때는 도망하여 혼자만이라도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 하십니까 야곱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환도뼈를 부러뜨려 버렸습니다. 이제는 도망 갈래야 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인본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려 버린 것입니다. 그 밤에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다음 날 야곱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창세기 33:1-3을 보면 열두 자녀를 두 아내와 두 여종에게 맡겼습니다. 400인을 거느린 형이 올 때에 야곱은 제일 앞에 나가 형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되고 인본주의를 포기할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창 33:4)
그렇게 살기등등했던 에서가 야곱을 측은히 여기며 목을 안고 통곡했습니다. 원한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감격의 상봉을 했습니다. 머리 좋은 야곱이 인본주의를 쓴 대가는 20년 세월의 험악한 고생뿐이었습니다.
야곱의 생애 중 최고의 승리의 장면은 무엇입니까 바로에게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창 47:10)
당시에 바로는 세계에서 최고가는 왕이었습니다. 그가 야곱에게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야곱이 “내가 축복기도 해드리겠습니다” 자청했을 리는 없습니다. 바로가 요청한 것입니다. 바로가 볼 때에 야곱은 승리자요, 축복 받은 자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전혀 축복 받지 못할 만한 사람인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 붙잡고 살아갈 때 축복 받을 만한 인격으로 바꾸어서 축복하셨습니다.

4.요셉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최고로 많은 고생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를 측은히 여기고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기울여 주었지만 그 일들이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샀습니다. 급기야 형들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애굽에 종으로 팔렸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10여 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꿈을 통해 주신 언약이 있었기에 그 약속을 믿고 승리했습니다. 그의 나이 30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세계를 다스렸습니다. 정확하게 22년만에 열한 볏단과 해와 달과 별이 절하는 요셉의 꿈은 성취되었습니다.
요셉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한 계획을 성취시키셨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을 붙들었고, 그가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 받을 때에 그로 말미암아 가정이 살았고, 그 시대가 살았습니다. 애굽과 전세계가 살았습니다. 요셉은 승리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수 그리스도, 오실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어려서 그가 꾼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하나님이 꿈을 주셨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그가 언약을 굳게 잡았으면 하나님이 그와 같은 꿈을 주셨겠는가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약 붙잡은 사람은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승리케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창조, 타락, 노아홍수, 바벨탑이라는 네 가지 사건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라는 네 족장이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승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들을 승리케 하신 하나님은 우리도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승리는 누구나 소원하는 바입니다. 어떻게 승리할 것입니까
①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예수님은 모든 싸움을 싸워 이기신 분입니다. 그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가 이기게 하십니다.
②믿음이 있어야 이깁니다.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장입니다. 그 믿음이 증인들을 통하여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도 함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16명의 믿음의 선진들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가 23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정의를 성경은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그를 주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따랐던 사람들이 히브리서 11장의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누구는’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은 고난을 이겼습니다. 불가능을 이겼습니다. 죽음도 이겼습니다. 히브리서 11:38은 선언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이들은 세상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이기고 믿음만이 이길 수 있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1-3)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이겼다면 우리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 가진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여러분에게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꺾을 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는 사단과 싸워 이기신 분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가 우리로 이기게 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잘나서 승리한 사람이 아닙니다. 언약을 붙잡을 때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실패할 수 없는 인생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승리할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로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승리할 것입니다.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감당치 못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승리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날마다 십자가 군병으로 복음의 깃발을 들고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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