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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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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신구약 성경 66권을 요약한 것으로서 우리들이 성경 전체를 모르더라도 이 사도신경을 알면 기독교에 대해서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부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를 생가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부분에는 3가지 수식어가 나옵니다.

① 전능하사 ② 천지를 만드신 ③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오늘은 이 3가지 가운데 첫번째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7장 1절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히브리어는 “엘 샤다이”라고 말을 합니다. 엘은 하나님의 명칭 가운데서 엘로힘의 단수형이고, 샤다이는 ‘충분한’ ‘자족한’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두 단어를 합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또는 “하나님은 산 위에 우뚝서신 위엄이 높으신 분이시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것은 하나님의 전 성격을 나타내는데 모든 것을 총괄하시는 못할 것이 없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나무를 창조하셨습니다. 산도 바다도 그의 것이고 또 천사도 자연도 사람도 우주의 모든 것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사” 이것을 우리가 전제하고 신앙고백한다면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다가 염려하고 낙심하고 절망 가운데 있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우리가 신앙고백하면서도 절망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앙고백과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중언부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정신없이 지껄이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전능하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면서 낙심하고 절망한다면 신앙고백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패했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고백을 하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화)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나라는 나라를 잃은지 2534년 만에 독립을 했습니다. 작은 이스라엘 나라를 강한 아랍 연합군이 세 번이나 공격을 했는데 세 번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1차 전쟁은 25일 만에, 2차 전쟁은 11일 만에, 3차 전쟁은 6일만에 초전박살 시켜서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그 승리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서 우리 정부에서 군사 전문가를 파견시켜서 조사를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10일이나 걸려서 조사했지만 정확한 조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아도 우리 나라의 강원도 만한 좁은 땅이고, 엄청난 아랍 연합군에 비하면 인적 자원은 60대 일이고, 군사적으로는 100대 일의 엄청난 비율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무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나라가 승리를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려고 할 때 그 조사원중에 한 크리스찬 대령이 “우리가 한 번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보자!”고 제안을 해서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 종교지도자는 승리의 비결에 대해서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에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전쟁을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 비결은 기도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1차 전쟁을 할 때는 사막에서 모래가 일어나서 적진의 시야를 가림으로 대승리를 거뒀고, 2차 전쟁은 사막에서 벌떼가 나타나서 그들을 씀으로 이겼고, 3차 전쟁은 하늘에서 불비가 내려 이스라엘이 승리했습니다. 이 3차 전쟁의 승리를 전폭기 비행사가 촬영했는데 그 사진에도 불비가 내리는 것이 찍혔다고 합니다. 즉 그 이스라엘의 전쟁 승리보고는 “전능하신 하나님 함께 해 주셔서 우리가 승리했습니다.”였다.

 1.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크게는 우주로부터 작게는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고 할 때에 하나님은 악도 주관하시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도 주관하시지만 악도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때때로 선한 것만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악한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왜 이 세상에 악이 생겼는지 우리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악도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원론적인 세계관이란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있는데 인간은 그 틈바구니에서 고민하고 그리고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욥기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합니다. “너는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 이 때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참소하였습니다. “주의 손을 펴서 욥을 치소서 그리하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사탄은 욥의 순수한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그가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가 복받고 모든 것이 형통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그렇지 만일 하나님께서 복을 거두어 가시면 주를 배반하고 정녕 하나님을 욕하리이다.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참소하였습니다.

욥을 고소하는 사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욥을 헤치되 그러나 그의 생명은 헤치지 말아라” 그 결과 욥은 심하게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고생은 하나님이 허락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이 고생을 잘 참고 승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개인적으로는 큰 은혜의 체험이요, 더 큰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욥은 고난을 다 통과한 후에 욥42장에 보면 “귀로 듣던 하나님을내가 눈으로 친히 뵈었습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의 소유는 전보다 배가 넘쳤습니다. 그에게 가장 아름당누 딸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을 볼 때에 악한 일을 당할 때에 우리가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렇다고하면 왜 하나님은 이런 악을 용납하시는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이 자기 딴에는 마음대로 날뛰며, 마음대로 믿는 이를 괴롭히고 이 세상에서 악을 고소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결국 그는 심판을 받아 묶임을 당해서 무저갱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성경은 악을 이김으로 인해서 오히려 순결해지고,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됨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역사요 기독교 역사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하나님은 악한 자를 다스리기 위해서 선한 자를 쓰기 보다는 더 악한 자를 쓰는 것을 성경의 여러곳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고 선지자를 무시하고 교만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방 블레셋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블레셋을 막대기로 사용하셨습니다.

예화) 일본 히로시마는 2차 세계대전의 막을 내리게 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입니다. 그 때 원자폭탄이 로마 카톨릭 천주교 성당에 떨어졌습니다. 성당안에 있는 모든 것이 파괴 되었습니다. 원자탄의 위력은 대단해서 40만의 생명을 빼앗았고, 돌도 쇠도 다 녹였는데 성당안에 있던 노란 종 하나는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성당을 새로 지을 때 거기에 글귀를 쓰기를 “불가사이한 일이다”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불가사이한 일”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노란 종 하나는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고 있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구별없이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악이 가득한 세대에서 악하게 살면 역사가 지나고 난 후에 부끄러운 일이요, 하나님 앞에서 죄송한 일이요,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이 악한 세상에서 선하게 살면 그것은 빛나는 일이요, 하나님 앞에 영광이요 상급입니다.

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악한 자들을 오늘 용납하고, 그대로 보고 계십니까 그것은 악한 자도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선하게 사는 사람들을 상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믿고 언제나 선을 쫓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전능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선하신 섭리를 따라 온전하게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가 계획하신 일에 실패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이끌고 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광야는 더위와 추위가 교차하며, 물이 없고, 양식이 없는 곳입니다. 장정만 60만 총인구 2백만과 가축들이 불모지인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가능케 하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지키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게 했을까 1967년 이스라엘의 3차 전쟁때의 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문제의 희나이 반도에 진주하여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초저녁 메추라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그야말로 우박처럼 새까맣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을 보고 전문가들이 연구를 했는데 그 지방에는 메추라기들이 철새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그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힘이 떨어지면 그냥 한 곳에 머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룻밤을 지내서 힘을 얻어 다음에 떼를 지어 날아간다고 합니다.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가 하실려고 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이스라엘과 같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막과 뜨거운 태양, 차가운 밤, 기갈이 있습니다. 험한 세월입니다. 환난과 질고와 시험과 실패와 슬픔과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그 뜻을 온전히 이루신다’는 것을 믿으며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전능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사랑하지만 능력이 부족합니다. 어린 아이가 아파서 고통을 당할 때 그의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갑습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아이의 아픈 것을 고쳐주기 위해 애쓰지만 어쩔수가 없습니다. 아기를 안고 “아기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대신 아프면 좋을 텐데”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이렇게 무능합니다.

또 인간의 지식도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가 알고 경험한 것외에는 지식이 없습니다. 그 지식의 한계에서 전능하심을 깨달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어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모든 것을 동원해서 생각을 하면서 “할 수 없다”고 포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창 17:1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불신앙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75세에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때는 이미 사라가 단산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2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 그의 아내가89세가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의학으로 볼 때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상속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왜 믿지 못하느냐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내가 한다면 하는 것이지 네 아내가 단산한 것이 무슨상관이 있느냐 흔들리지 말고 믿으라고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때로는 어지럽고 때로는 악하고 때로는 모순 투성이고 어려운 일이 부딪쳐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그가 계획하고 원하시는 것은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불만스러운 환경속에서도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믿는 사람에게 낙심은 금물입니다. 항상 내 무능과 내 부족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온전히 돕지 못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나를 도우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누구든지 그의 사랑을 입는 자는 승리하는 자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그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말이며, 그가 모든 것을 이루는 분이십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완전한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조그만 사고력, 경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보지말고,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그 능력을 힘 입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 도우심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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