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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노아 (창 0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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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입어 죄와 허물을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부활의 소망과 영생의 소망을 받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한 사랑을 하나님께로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족장들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지 않았으나 아론의 지팡이만은 싹이 나게 하심으로 레위 지파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음을 증명하였습니다.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200만명 가량이 다 죽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죽었지만 기생 라합과 그 가족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도 부족한 자였고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40년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이스라엘을 아주 강대한 나라로 키웠습니다.

본문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노아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세가지 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2. 당시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셨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3. 노아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비결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당시 상황은 어떠 하였는가요
노아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죄악이 관영 하였습니다(5)
관영 하였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바인데 이는 크다 충분하다 너무 많다 넘쳤다 라는 뜻입니다. 온 세상 어디를 보아도 죄악이 크고 너무 많고 넘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한곳을 보아도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죄악으로 넘치고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모두가 타락한 세상입니다.
이에 칼빈은 인간의 전적 타락 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본성이 부패하고 죄에 오염되었으므로 스스로는 아무런 선도 행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이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영을 세탁하지 아니하면 죄악이 관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후에 예수님은 가장 죄악이 많았던 시대를 노아의 시대였다고 눅17:27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베드로도 나중에 노아의 때를 벧후2:10이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러운 정욕가운데서 행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고 이성이 없는 짐승 같아서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저주의 자식이라”.
노아 시대에는 죄악이 충만한 때였습니다. 정욕과 탐욕으로 넘쳐나던 때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짐승과 같이 살 때였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날 이 세상이 노아의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노아시대 보다 더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폭탄 테러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독가스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일본의 독가스 사건은 사이비 종교가 저지른 죄악이라는 것을 볼 때 더욱 무섭습니다.
지금 인간의 영들이 혼탁합니다. 영이 흐려졌고 사단이가 강하게 역사를 합니다. 그래서 이단종교가 성행하고 이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며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무서운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지존파 사건으로 이 사회가 얼마나 타락 했었는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또 다른 지존파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시대를 잘 돌아 보십시오. 죄악이 관영 합니다. 이 죄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다 죄악가운데 살고 있다 고하여 우리도 그 죄에 빠져 살아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2) 생각이 악하였습니다(5)
생각하는 것마다 선하지 못 하고 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온 세상이 그랬습니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11). 하였습니다. 강포란 하마스라는 말인데 이는 흉악하다 라는 뜻입니다. 또한 충만하다는 티말레인데 이는 가득하다 더 이상 채울 자리가 없다 라는 뜻입니다. 즉 온 땅의 사람들이 흉악함으로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누구 몇몇만 흉악하게 산 것이 아니라 모든 혈육 있는 자가 다 흉악한 죄를 범하며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한국 상황을 이렇게 풍자하는 코메디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남 한 고층 아파트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 세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불량 청소년으로 공부는 않고 나쁜 일만 하고 다니는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야단을 치자 아들이 “에잇 죽어버리자!”하고 창문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외 아들이 창문에서 뛰어 내리는 것을 본 어머니가 “아들 없는 세상 살아서 무엇하나”라고 외치며 창문을 뛰어내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도 “나 혼자 살아서 무엇하냐”라고 외치며 창문을 뛰어내렸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아들은 비행청소년이라 고층 아파트에서 비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날 나리라 그도 날랐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제비족이라 역시 날라서 다 살았습니다. 웃기는 코메디와 같은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죄악성을 말하고 있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어디를 보아도 죄악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어디를 보아도 죄악으로 충만한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해야 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당시에 땅에 네피림에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이 말씀은 힘센 용사들만이 살 수 있는 세상이었고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은 힘센 사람의 노예로 살던 시대라는 이야기입니다. 힘센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짓누르고 빼앗고 억압하던 시대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돈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있으면 사람은 노예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돈이 없으면 남의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있는 사람들은 사람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만 계산하려 합니다. 또한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려고 하다가 악한 죄도 서슴지 않고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많지 않아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노아 당시는 한참 잘못된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이 걸리는 병중에는 켕글리뉴로파디(Gangglineeuropathy)라는 병이 있다고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살이 곪아 썩어가도 아프지 않습니다. 심지어 뼈가 썩어가고 뼈가 떨어져 나가고 온 몸이 곪아서 구더기가 생기고 죽어도 아프지 않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이 병은 죄에 대한 무감각증입니다. 죄를 짓고도 아프지 않습니다. 바울이 딤전4:2에서 말한 대로 “양심에 화인 맞는 자들”입니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이러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2.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셨는가
이같이 노아시대는 죄악이 관영 하였고 생각이 모두가 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친히 보셨습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그런데 하나님은 겉만 보신 것이 아니라 속도 보셨습니다.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 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같이 쓴 뿌리, 더러워진 샘까지 보셨습니다. 욕심의 잉태, 도덕의 부패, 거짓말투성이를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보셨기에 증인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악을 친히 보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숨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변명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두 가지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1)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6).
속썩이는 자녀를 가진 부모가 차라리 자식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는 심정을 하나님은 가지셨습니다.
(2) 쓸어버리기로 하셨습니다(7).
심판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쓸어버리다라는 뜻은 이러합니다.
(1) 더러운 쓰레기를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처넣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2) 사람이 글을 쓰다가 틀린 글씨를 지우개로 말끔히 지워버리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3)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주민등록에서 제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모두는 미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심정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속상하셨던지 육축과 기는 짐승까지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동물들은 인간의 죄악으로 같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시대의 악을 보며 한탄하시고 쓸어버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예비하라 하시며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120년간 전도하였어도 성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노아는 끝까지 복음을 전했고, 지금 우리도 노아처럼 끝까지 전해야해야 합니다.
노아 때에는 물로 심판을 하셨지만 이제는 이 세상을 불로 심판을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보시고 후회하시고 한탄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방주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아시대의 구원의 방주는 노아의 손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이미 방주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방주입니다. 노아시대에는 짐승 한 쌍씩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주였지만 지금은 누구든지 들어가도 모자람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를 건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이제 불로 심판하시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방주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여기계신 모든 성도는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노아와 같은 성도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노아처럼 구원의 방주가 예비되어 있으니 누구든지 들어오라고 외쳐야 할 것입니다.

3. 노아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같이 죄의 흐름이 가득 찼고 넘쳤고, 강했고 끊임이 없었기에 쓸어버리고 작정하셨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 한 사람만을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보십시오. 아무리 물이 짜더라도 물고기는 소금에 물들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소금기 속에서 살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고기 맛이 짜지 않습니다. 노아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는 최악시대에 최선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퇴비더미위에 맨드라미 꽃이 피듯이, 쓰레기더미에 민들레 꽃이 아름답게 피듯이, 지저분한 늪 위에 수련화가 청초하게 피는 듯이 노아는 죄악이 충만한 가운데에서도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1) 의인이었습니다(6).
성경에서 챠다크라는 의인이라는 말은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쓴다는 뜻입니다. 즉 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진실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의롭게 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전7:20에서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노아는 의롭게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성경에서 의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 후 첫 의인은 노아입니다. 노아는 악한 세대 속에서도 회개하며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교통신호가 계속 빨갛게 켜져 있었습니다. 고장난 것이 확실하였습니다. 다른 차들은 그냥 눈치껏 지나갔습니다. 만약에 저도 그곳에 있었다면 저도 눈치껏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독한 차가 6시간 파란 등이 켜지기를 기다렸습니다. 6시간만에 신호들이 고쳐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시를 상대로 그날 신호등을 지키느라고 일하지 못한 보상을 신청하였습니다. 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어쩌면 바보라고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떳떳하였습니다. 유독 유행을 따르지 않고 정확하게 살려고 하였습니다. 노아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모두가 죄를 범하고 살고 있고, 모두가 적당하게 살아간다고 하여도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룩하게 살도록 해야합니다. 의롭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 완전하였습니다(9).
완전하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성실하다는 뜻입니다. 노아는 성실하였습니다. 잠28:18에서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하셨습니다.
세계적인 철학자 쇼펜하워가 어느 날 어둠이 깔리고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공원지기가 와서 문을 닫으려고 하면서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쇼펜하워는 “그것은 몰라서 이러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갈 것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갈 것입니까” “나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간의 대화였습니다.
그 후 쇼펜하워는 “인간은 항상 세 가지 질문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둘째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셋째는 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성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왜 태어났습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롭게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천국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고 기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9)
노아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죄악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죄악이 관영한 세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랐고 하나님과만 동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동행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4) 준비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나의 첫 인상은 고래입니다. 다니엘의 첫 인상은 사자입니다. 아담의 첫 인상은 선악과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첫 인상은 방주입니다. 노아는 120년간 방주를 지었는데 그것도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웃음거리였습니다. 바다에 탱크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킬 터이니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쓰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나가는 자에게는 언제나 기적이 주어지고 보상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다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것입니다.
노아는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살면서 믿음을 지켜 혼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 나라에서도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받치는 사람을 가르켜서 충신이라고 합니다. 노아는 모든 사람들이 죄악으로 물을 마시듯 살 때 오직 혼자만이 믿음을 지키므로 하나님께 충신이 된 것입니다. 교회도 힘들고 어려울 때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는 충성스러운 성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노아가 죄악을 이겼더니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를 이길 수 있는 특별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노아는 죄악 가운데서 혼자 믿음으로 살았더니 모든 사람이 물로 심판을 받고 죽었을 때 그 가족만이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남과 다르게 오직 믿음으로 살았더니 남과 다르게 믿음의 방주에서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미국의 시카코는 시카코가 범죄가 아주 적은 도시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겨울이 길고 추운 곳이어서 사람들이 옷을 두껍게 입기 때문에 노출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와 같은 더운 도시는 성범죄가 많다는 것입니다. 옷을 적게 입고 노출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범죄도 많아지고 신앙생활도 나태하여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겨울보다는 여름이 신앙생활이 나태하여지고 게을러지고 범죄도 많아지게 됩니다. 요즈음은 봄이 없어지고 겨울에서 직접 여름으로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질 수록 더욱 신앙에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땅에 죄악이 더 커지고 많아 질 수록 더욱 굳센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울 수록 믿음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죄가 나를 짓누르고 유혹할 수록 노아와 같은 믿음의 삶으로 승리히시기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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