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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0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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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거듭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 인가 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참으로 <에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고 하는 것은 <거듭난 자>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거듭나지 못했다 는 것은 곧 믿는 자가 아님을 의미한다.

여기 거듭난다는 말은 헬라어로 겐네데 아노덴이라는 두 단 어로 겐네데는 출생이라는 뜻이고, 아노덴은 다시, 또는 위로부 터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born from above, 또는 born again이라 고 하여 중생이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니고데모가 한밤 중에 찾아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깨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깨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반드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 어가는 절대 조건인 것이다.

니고데모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 인정받은 바리새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바리새인은 6천명 가량 있 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율법에 대해 진지했고 신학적으로는 보수 주의자들로, 구약성경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었 고 특히 구약성경 맨 처음에 나오는 모세 5경을 문자 그대로 믿 는 사람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니고데모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흠 잡을 데 가 없었고 교육도 많이 받았으며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교에서는 최고의 입법기관으로 이들은 입 법, 행정, 사법권을 모두 다 장악하고 있었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사형권 하나만 빼놓고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 있었다.

니고데모는 세상에서 참으로 존경받는 사람으로 뛰어난 가문에 속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고 말씀하셨음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행위나 학벌, 권력, 가 문, 인간의 공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거듭나야 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크게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 한 자로 이분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 4장 28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이삭 두 아들이 있었다. 이스마엘은 하갈을 통해서 낳은 아들인 데 이는 육체를 따라 난 자라고 했고, 이삭은 사라를 통해서 낳 은 아들인데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했다.

그런데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 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다(29절)' 고 했는데 다시 말하면 거듭 나지 못한 자들이 거듭난 자를 괴롭힌다는 뜻이다.

또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로 구분하고 있는데 교회안 에는 양과 염소가 함깨 있어 염소같은 신자는 밤낮 남을 뿔로 받 아 괴롭게 하여 교회를 시끄럽게 만든다.

니고데모는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었고 어떤 의미에 서는 가장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그는 질문하기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 나이까'라고 했다.

그는 거듭난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 듭난다는 것은 씨앗을 땅에 심듯이,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중생은 곧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없던 마음 속에 성령이 임하여, 요한일서 3장 9절의 말씀대로 하나님 의 씨가 마음 속에 들어와 계시는 것이다.

거듭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의롭고 선하다고 해도 내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생명이 임하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생은 일생에 한번 뿐인 단회적인 것이므로 중생케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중생은 한번 뿐이고 한번 뿌린 씨앗이 점점 자라듯이 신앙과 인격도 자라게 된다. 그래서 점점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되는 데 이것을 성화라고 한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타락된 생활을 할 때는 우리 속에 마귀 가 들어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꼭 마귀와 같았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를 받아 점점 자라게 되면 주님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변치 않는 것은 마음, 즉 성품이 고 성질이다. 그러나 이것은 에스겔 36장 26절의 말씀대로 성령 의 충만함을 받으면,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며 돌같이 강퍅하고 고질적인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변 화되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성질이 사납고 강퍅한 사람은 아 직 은혜를 받지 못하여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부활의 몸과 같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데 이것을 영화라고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은 거듭나는 것인데 거듭나기 전에는 전노의 자녀, 어두움의 자녀였으나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 님의 자녀, 곧 빛의 자녀인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본문에 보면, 니고데모는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했는 데 그 이유는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특 별히 하나님을 잘 맏는다는 바리새인이요 동시에 가장 높은 지위 인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으므로 이렇게 높은 지식과 명예를 가진 지체높은 자신이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깨 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깨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깨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하면서 거창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니고데모의 이 말은 그가 아직 중생치 못한 자임을 보 여 준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깨서 보내신 선지자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심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참으로 예수님이 누군지 똑바로 알았다면 '주여 저는 죄인 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면서 앞드렸을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에 게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보다는 다만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하 셨을 것이다.

참으로 거듭나게 되면, 두 가지 증거가 나타나는데, 가.회개와 나.믿음이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고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 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 람들은 체면과 위신 때문에 통회 자복하지 못한다. 이것이 거듭 나지 못함에서 오는 가장 중요한 증거이다.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되는데 여기 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가장 좋 은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 보면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쫓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다.

그리고 로마서 10잘 14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믿지 아니하 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 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라고 했고, 또 17절에 보면 '그러므 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 느니라' 고 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보면 '하나님 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 로 하나님깨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했다.

우리의 부족한 전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서는 우리의 전도 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 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성령깨서 역사하시면 그 순간 죄를 회개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데, 이것이 곧 중생하는 순간이 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보면, 우리가 입어야 할 하나님의 전신갑 주 중의 하나가 '성령의 겁 곧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했다. 이 것은 일종의 공격무기로서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마귀가 우리를 유혹할 때 승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전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귀는 물러간다.

우리가 가장 성령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대는 바로 전도할 때 이다. 마귀의 유혹을 받는 장소에서 전도해 보라!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있다. 성령의 검이 나타나 마귀를 내쫓는 것이다.

예수님도 누구와 항상 함깨 하시는가 하면 복음을 전하는 사 람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보면 '예수깨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붙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깨 있 으리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8장 29절에도 보면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깨 하 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복음을 전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누구든지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언제 나 함개 하시며 혼자 두지 아니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하나 님의 자녀가 된다. 이것이 거듭나는 순간이요 영생을 얻는 순간 이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본문 5절에 보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을 이해 하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깨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인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 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 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바람으로 비유하셨다.

바람은 보이지 않으며 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느낄수는 있으며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봐서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도 어떻게 이뤄지는지 자세 해 알 수 없으나 신비하게 이뤄지는데 거듭난 자의 변화된 모습 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누구나 죄를 회개하고 믿을으로 살 뿐만 아니라 날마다 주님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 열 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듯이 중생했는지 못했는지는 그 열매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늘 나라 백성이 되시길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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