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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사람의 가치 (욘 03:1-10)

첨부 1


DP-115JON-310-A::::::::::::::::::본문개관:1) 지난해는 유달리 인신매매범들이 극성을 부렸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이 는 사람의 가치를 짓밟아버린 인권유린 이었다.

2) 한사람의 가치는 매우 귀하다. 요한 웨슬레의 헌신은 도덕적으로 타락했 던 영국 사회를 살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루터의 용기는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 었다.

3) 그런가하면 한사람의 실수가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라크 의 독재자 후세인의 광란은 전세계의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은 모든 인류에게 죄의 형벌을 주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의 헌신은 모든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다. 본문에는 헌신된 한사람이 소개되 어 있다. 그는 요나였다. 한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항했던 적도 있었 지만 뉘우치고 회개한 요나는 놀라운 일을 성취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와 같 이 헌신된 한사람의 가치가 그 어느때 보다 더욱 필요한 때이다.

I. 하나님은 헌신된 사역자를 찾으신다(1-4).

A.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이 임했다(1).

 1. 그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 령을 거역했던 뼈아픈 과거가 있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다시 요나를 찾아주신 것이다.

 3. 하나님의 뜻은 요나를 통하여 니느웨의 회개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B. 헌신이란 완전한 순종을 의미한다(2-4).

 1. 요나가 해야할 임무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치는 일이었다.

 2. 그러나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솔직히 요나의 감정은 니 느웨 사람들을 미워했기 때문이었다.

 3. 실제로 니느웨 사람들은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었다(1:2).

그러한 곳에서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비장한 각오가 요구되기 때문 이다.

C. 하나님은 이 시대의 회개한 요나를 찾으신다.

 1.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은 나의 과거를 문 제삼지 않으신다.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불러주신다.

 2.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존심이 아니다. 오직 부르심에 대한 응답만 이 필요할 뿐이다.

 3. 자신의 고집에 얽메여서는 안된다.

 4. 요나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순종했던 용기가 우리에게도 필 요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헌신된 사역자를 찾으시는데 그 이유는 한 사람의 가치가 귀하기 때문이다.

II. 한사람의 헌신은 한나라를 건진다(5-9).

A. 니느웨 전체가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1. 요나의 전도를 받은 니느웨 사람들은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요나 의 말에 모두가 순종했다.

 2. 이상하게도 이러한 회개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3. 일반 백성 뿐만 아니라 왕까지도 솔선수범하여 회개운동에 참여했다.

남여노소, 지위 고하를 막라한 회개운동이 전개됐다.

 4.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 모두가 금식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굶 는 것처럼 힘든 일도 없다. 그런데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왕부터 어린 아이까지 모두가 금식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B. 지금 우리에게는 요나와 같은 헌신자가 필요하다.

 1. 우리는 그 어느때 보다도 도덕적, 윤리적으로 어려운 때를 맞고있다.

그러기에 요나와 같은 헌신된 한사람의 가치가 절실히 요구된다.

 2. 모세의 헌신은 이스라엘을 구했다. 루터의 헌신은 기독교를 살렸다.

죤낙스는 영국의 교회를 일으켰고, 웨슬레의 헌신은 영국사회를 살렸 다.

한사람의 가치는 귀하다. 하나님은 헌신된 한사람을 찾으신다. 한사 람의 헌신이 나라를 건졌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기 더 중요한 가 치가 있다.

III. 한사람의 헌신이 하나님의 계획을 변경시켰다(1O).

A.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취소됐다.

 1. 회개라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 면 절대로 회개할 수 없다.

 2. 일년에 한 두명 전도하기도 힘든데 한꺼번에 왕으로 부터 온 백성까 지 단체로 회개의 역사가 임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B. 참된 헌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 받는다.

 1. 우리가 기적을 체험치 못함은 왜일까 참된 헌신이 없어서이다.

 2.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은 절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했다.

요나의 헌신은 니느웨를 구했다. 내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헌신한다면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이땅에 큰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결 론 세상 역사는 헌신된 한사람의 가치로 움직여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이처럼 귀하다. 주님은 한 영혼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도 귀히 여 기셨다. 그래서 한 영혼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다. 우리 모두 헌신하 자.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응답하자가 되자. 이것이 나라가 살고 내가 사 는 길이다. (개인/헌신/요나) DP-115JON-32-Y:::::::::::::::::::더 큰 은혜::욘 3:1-2:::::::::::::::::::서론

1. 현대인은 고독의 병을 앓고 있다. 함께 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가족과 는 하루종일 떨어져 있으니 절대적인 위로가 되지 못한다. 친구는 언제나 경쟁 의 상대다.

 2. 현대인은 더 큰 은혜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도 더 큰 은혜가 필요하 다. 이전보다 더 힘들고 더 피곤하기 때문이다. 실패가 많기 때문이다. 더 많 은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3. 주님은 요나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에게 징계를 내리지도 않았다. 오히 려 그에게 변함없는 은혜를 베푸셨다. 어떤 은혜를 베푸셨을까 I. 재기의 은혜가 임했다(1).

A.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임했다.

 1. 요나는 죽여도 마땅했던 배반의 선지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 게 재기의 은혜를 더하셨다. 마치 정전 후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방은 이전보다 더 밝게 보이는 것을 생각하셨기 때문인것 같다.

 2. 요나가 물고기 뱃속을 통하여 살아나기는 했지만 그로서는 앞일이 막 연했을 것이다. 하나님께 커다란 불순종을 했으니 말이다. 사람도 실 수한 자는 책임을 묻는게 도리다. 지난번 서울 시장은 겨우 두달도 못 채우고 물러났던 것처럼 말이다.

 3.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버리고 줄행랑친 요나를 너그럽게 용서하시 고 다시 불러주셨다.

B.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신다.

 1. 만일 단 한번의 부름으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된다면 우리 중에 구원받 을 자가 있을까 예수님은 세번씩이나 모른다고 잡아뗐던 베드로를 불 러주셨고 회개한 그에게 내 양을 치라는 목양의 사명을 더하셨다.

 2. 내가 회개할 때 주님은 나를 찾아 오신다. 그런데 주께서 찾아 오 실 때는 그냥오시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축복과 더 큰 구원의 능력 으로 오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요나의 몰골이 도대 체 뭐란 말인가 악취나는 고기뱃속에 삼일간을 갇혀있었으니 그 꼴이 어떠했을까

3. 우리는 실수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실수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붙잡 은 적도 없건만 말이다. 한번의 실수로 우리의 인생이 끝난다면 얼 마나 허무할까 그것은 매우 불명예스런 일이다. 그런데 감사하게 도 하나님은 요나를 다시 불러주셨다. 그에게 기쁨을 더해 주셨다. 그 리고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더해 주신다. 우리의 기쁨이 계속 지속되도록 조처해 주신다.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선 포하라".

 4.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되, 재 도전의 기회를 주시되 마지못 해 억지로 주시지 않는다. 마치 이 세상에 나 말고는 그 일을 할 사 람이 없는 듯이 나를 인정해 주면서 멀리까지 찾아와 주신다. 바다 밑 고기 뱃속까지 말이다.

 5. 눅 15장의 "탕자비유"와 구약의 요나는 무언가 비슷한 것이 있다. 탕 자는 아버지를 떠났고 요나는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났다. 탕자는 돼지 먹이를 먹었고 요나는 고기 뱃속의 비린내를 맡았다. 탕자는 아버 지를 찾았고 요나는 하나님을 찾았다.6. 하나님은 우리가 깨닫기만 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신다. 그리 고 더 큰 능력을 주신다. 회개한 요나를 통하여 니느웨에 대부흥이 일 어났으니 말이다.

II.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2).

A.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1. "너는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그에게 재소명을 부여하셨다. 영예 로운 복직을 명하셨다. 결코 억지로이거나 마지 못해 주어진 복직이 아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한번에 3천명의 개종자를 주시지 않았 던가 결코 너를 정죄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인이다. 요나 를 통하여 니느웨 전체의 회개를 허락하셨다.

 2. 하나님은 니느웨의 구원을 위해 애당초부터 요나를 도구로 세우셨 다. 그래서 특수한 방법으로 요나를 훈련하신 것이다. 요나의 영 혼 뿐만 아니라 니느웨 백성의 구원을 위해 그를 부르셨다.

 3. 요나에게는 최대의 단점이 있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습관이 었다. 분명히 하나님은 말씀하셨음에도 그는 자기의 주관을 따라 임의 로 처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그에게 명하셨다.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B. 니느웨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1. 끝까지 요나를 훈련시키심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준다.

 2. 고집부리는 요나에게 구체적으로 깨닫게끔 명령하셨다.

C.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1. 일이 뜻대로 안된다고 생각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간섭인 줄 알아야 한다. 요나를 기억하라. 만일 그가 만사형통 했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2. 자신의 고집을 포기하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라. 하나님 이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귀기울이라. 지금까지 요나가 고통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긴 때문이었다. 도무지 하나님의 명령이 자신의 구미와 맞지가 않았다. 왜 하나님의 명령을 하찮게 여기 는가 (은혜/소명) DP-855EPH22-24-R:::::::::::::::::::::::::::::가정이 교회가 되려면::엡 5:22-24:::::::::::::::::::::::::::::"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 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심에 모실 때 우리들의 가정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시간을 통해 말씀드리고 자 합니다.

백과사전을 보면 가정이란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가 일정 한 장소에서 기거, 침식을 같이 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국어 사전에서는 가정을 "부부와 자녀들이 가장을 중심으로 한 모임" 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가정에 위기가 닥쳐오고 가정이 깨 지게 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1. 가정에 위기가 오는 이유 먼저 하나님이 이 가정을 어떻게 만드셨는가를 살펴봅시 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창조의 순서를 보면, 첫째날, 빛과 어두움을 갈라 낮과 밤을 만드시고(1:3-5), 둘째날, 물과 창공을 나누어 하늘을 만드시고(1:6-8), 셋째날, 땅과 바다를 나누어 육지와 풀과 씨가진 열매맺 는 나무가 돋아나게 하시고(1:9-13), 넷째날, 해, 달, 별을 만드셔서 빛나게 하시고(1:14-19), 다섯째날, 생물, 물고기, 새 등을 만드시고(1:20-23), 여섯째날, 육축, 날짐승, 짐승을 만드시고, 그리고 맨 마 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집수리를 다 하고, 전기가설도 다 하고, 정원에 꽃을 심고, 동산에 동물들이 뛰놀게 하고, 나무 에는 새소리가 지저귀도록 다 만드신 후에 사람에게 "이젠 들 어가 살아라" 하신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발견 하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 하나님은 자상하신 분이십니다. 즉흥적이거 나 무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 다.

아담의 가정에서는 하나님이 어른이셨으며, 보호자이셨습 니다. 하지만 바로 이 거룩하고 신성한 관계를 사탄이 깨뜨렸 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가정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과소 평가하 고,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인데 있었습니다. 아담의 가정이 왜 풍지박산이 되었습니까 마귀인 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 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사탄의 소리, 뱀의 소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 소리, 아무 이야기나 다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 령 어떤 불량한 사람이 "나와 함께 저 집 담을 넘어가 한탕 털 자"고 소근거렸다면, 누가 그에게 그거 참 좋은 "말씀"이라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말씀과 소리를 구분합시다. 매끄럽고 유창하고 감미롭다 고 해서 말씀이 아닙니다. 뱀이 한 소리는 뱀의 소리이고, 하 나님의 소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각하고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이것 이 진짜일까"라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최초의 가정은 그래 서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그 대로 지켰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뒤로 제쳐놓고 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소리 라고 장단 맞추다가 죄에 빠져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오늘 현대 가정의 위기는 무엇입니까 사업이 잘 안되는 것이 위기입니까 돈이 없는 것이 위기입니까 집이 비좁고 환 경이 적당치 못한 것입니까 물론 이러한 요소도 위기의 조건 이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위기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뱀의 소리 밑에 두다가 아담의 가정이 부서지 고 망가진 것처럼, 현대 가정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능 력, 권위를 돈이나 행복, 환경, 조건들 밑에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가정은 백이면 백 모두 파멸하고 맙니다. 부디 하 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가정이 교회가 되려면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혁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의 혁명입니다. 이 혁명은 말씀의 혁명이고, 성령의 혁명입니 다. 이 혁명은 죄를 뒤집어 엎고, 불태우고, 새로운 인간을 만 듭니다. 그리고 그 새로와진 인간들이 새세상, 새역사, 새질서 를 창조하도록 하는 혁명입니다.

이것을 예수 혁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혁명, 예수 혁명, 성령 혁명은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일어납니다. 내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일어 납니다.

다른 혁명은 사탄의 혁명입니다. 이 혁명은 죄의 혁명, 타락의 혁명이며, 멸망의 혁명입니다. 가정을 망치고, 사회를 망치고, 국가를 망칩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폼페이도, 로마도, 이 사탄의 혁명세력 때문에 망했습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보십시다. 도적떼들이 한 고을을 점령 했다고 합시다. 약탈, 살인, 강간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 가정에는, 우리들 마음 속에는,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 주인 과 종 두 사람이 어느 날 창고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그 창고를 노리는 도둑이 들거라는 사전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 에 종에게만 맡길 수가 없어서 주인도 나섰던 것입니다.

자정이 지나 1시, 2시가 되자 종은 쓰러져 코를 골며 잠 을 잤습니다. 세상 모르고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잠이 뭡니까 더 정신이 초롱초롱 해집니다. 밤이 깊어질 수록 긴장이 더해 갑니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손에 힘을 줍니다.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주인은 이렇게 긴장되어 있는데 종은 마음 편하게 잠만 잡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인에게 있어서는 창고의 물건이 자기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소유를 자기가 지 켜야 되기 때문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우리 인생이 고달프고 피곤한 까닭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 다.

여러분, 내 가정,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보십시오. 왜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을 해야 됩니까 오늘을 살아가 는 인생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지고 다니면서 눈 에 핏발이 서고 편안을 찾지 못합니다. 어서 주님께 주인의 자 리를 내드리십시오. 주님께 가정의 주인이 되셔달라고 부탁드 리십시오. 그러면 그 때부터 가정은 평안과 기쁨과 안식을 주 는 곳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3. 가정이 가정답게 되려면 먼저 가정에는 사랑과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서 로 주는 것이고, 신뢰는 서로 기대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가정이 건전해지고 견고해 집니다.

메마른 세상, 가시밭 같은 세상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 십시오. 자기가 자기를 기댈 수는 없습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돕는 신뢰가 가정에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서로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건전한 교회가 그러 하듯이 가정도 각각 자기 자리를 지키면 됩니다. 바울은 남편 의 역할과 아내의 역할에 대하여 설명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남편에 게 복종하라는 것이고, 남편은 자기 몸처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엄청난 진리가 들 어 있습니다.

바울은 부부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부부도 그러하고,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무조건 절대 복종하듯 이 아내가 그러해야 하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큰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각각 맡겨진 자리와 직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지키면 됩 니다. 그 자리를 안 지키고 남에게만 네 자리를 지키라고 큰소 리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남편 자리에 들어가 자기 자리를 지키면 자연히 아내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자기 자리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부부가 살든, 형제가 살든, 자매가 살든, 가정은 가정입니다. 믿음이 있는 가정, 기도가 있는 가정, 성경을 읽는 가정, 거기가 바로 가정교회입니다.

시편 133편을 보십시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 니 곧 영생이로다." 이 시인은 가정, 곧 형제의 공동체를 영생 공동체, 구원 의 공동체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영생의 공동 체가 되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가 되고,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낙원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가정) DP-115JON7Y::::::::::::::::::::요나서 강해::욘 3:7-10::::::::::::::::::::

1. 개 요 니느웨 백성들의 금식과 회개와 간구가 등장한다. 10절에 하나님의 은총 이 주어졌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 원인은 무엇인가 은혜는 선물이요, 선 물은 거저 주는 것이다. 10절을 은혜, 은총으로 볼 때 그 원인은 하나님 의 선물로 귀결되지만 10절의 원인을 7-8절에 둔다면 "행위에 대한 댓 가"가 된다. 설교자에게 신학적인 통찰이 요구되는 본문이다.

 2. 설교 개요 본 문:욘 3:7-10 제 목:위기 극복의 비결 중심내용:진정한 회개는 은총의 비결이다.

서론

1. 우리는 살면서 종종 위기를 만난다. 위기라는 말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 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다는 말이다. 굳이 정의를 내리지 않아도 쉽게 납득되 는 용어다.

 2. 위기를 만나는 원인은 여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떤 동기로 위기 를 만났든 간에 위기를 잘 극복하면 본인에게 득이 된다는 사실이다.

 3. 니느웨 백성들의 형편을 살펴 보자. 그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어려움이 뭔 지, 위기가 뭔지를 모르고 살아온 자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틀림없는 위기 가 닥쳤다. 이제 40일 후면 성이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농담으 로 쉽게 처리할 성격은 아니었다. 이미 요나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 재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요나의 일거수 일투족은 이미 니느웨성 전체의 화제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문을 통하여 요나를 이미 알고 있었을 뿐만 아 니라 요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열심히 기도한다. 새벽기도도 하고 철야도 하 고 금식도 한다. 어떤 때는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그 러나 어떤 때는 이상할 만큼, 정말이지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스러울 만큼 문 제가 안 풀릴 때도 있다.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안풀렸을 때의 심 정이 어떤가 한마디로 속이 상한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상고할 본문은 이러 한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마음을 집중하고 자세히 살펴 보자.

 5. 본문을 중심으로 "위기 극복의 비결"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기다리자.

I. 위기를 만나거든 자신을 살펴 보라(7-8).

A. 니느웨왕은 조서를 내렸다.

 1. 조서의 내용이 문제다. 성경의 여러 부분이 이방왕의 조서를 소개하 고 있다.

모르드개를 해치기 위해 내렸던 아하수에로왕의 조서, 다니엘시대 느브갓 네살왕의 조서등 여러종류의 조서가 있는데 한가지 공통점은 성도들을 박 해하기 위한 내용이었다.그러나 니느웨왕의 조서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

 2. 금식을 명했다. 물까지도 금했다. 완전한 단식을 명했다. 심지어는 짐승 까지도 이 명령에 포함시켰다. 아직까지 한번도 굶어보지 않은 이들로 서는 대단한 의지의 결단이었다.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짐승들 역시 굶을 필요가 있었다. 그들의 주인과 더불어 운명을 마쳐야 할 처지 였으니 말이다.

 3. 굵은 삼베를 걸치라고 하였다. 단순히 옷을 바꿔 입는 것만을 의미하지 는 않는다. 본래 그들의 몸에는 언제나 사치스러운 옷이 걸쳐 있었다.그 들은 언제나 잔치를 즐겼고 분위기를 돋구기 위해 언제나 요사스러운 의 복을 걸치고 있었다. 당대 최신의 팻숀만을 추구하던 이들이 가장 낡 고 고통의 상징인 베옷을 입는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일이요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다.

 4. 단순히 굶고 베옷이나 걸치는 쇼가 아니었다.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 이다. 솔직히 하나님이 누군지도 잘 모른다. 단순히 요나의 소문을 통하 여 알고 있는 정도였을 것이다. 바알에게 기도하라면 몰라도 여호와 하나 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기적의 현존이었다.

 5. 악을 버릴 것을 명했다. 참된 변화는 악을 버리는 것이다. 이사야는 형식 적으로 금식하며 싸우는 종교주의자들을 책망했다(사 58).

B. 우리도 위기를 만날 때 자신을 살펴야 한다.

 1. 니느웨 백성이 위기를 만난 것은 분명히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였 다. 자업자득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체념하지 않았다. 절대로 체념하지 말 자. 포기하지 말자. 낙심하지 말자.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야 한다.

 2.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끝까지 시도하라. 현재의 상태에서 내 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자. 그 동안 하나님과의 교제에 이상은 없었는가 단순히 나의 고난이 내 잘못이 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때때로 의인에게도 고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 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야만 한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경건의 시 간을 가졌는가

3. 지금 나의 행동은 말씀에 비추어 어떤 상태인가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는 가 세상연락을 취하지는 않았는가 주님과 세상중에서 하나를 택한다 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만일 육신의 정욕으로 옷입혀져 있다면 마땅히 벗 어 던져야 한다. 그리고 불편 하더라도 "베옷"을 걸쳐야 한다. 베옷은 구 시대의 옷이다. 그래서 멋이 없다. 폼이 안난다. 베옷은 세상 안목에 대 한 철저한 거부반응을 뜻한다. 베옷은 창피하다. 괜히 자존심이 상한다.하 지만 "자아"를 버려야 한다. 자존심을 버리자. 그럴 때 주님을 만날 수 있 다. 모시메리가 아닌 굵은 베옷을 입으라.

삶의 위기는 새로운 챤스다. 그러므로 삶의 위기를 만나거든 "자신을 돌아 보자". 그러나 성도에게는 삶의 위기란 있을 수 없다.왜일까 II. 위기는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절호의 챤스다(9-10).

A. 니느웨왕은 자신들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했다.

 1. 니느웨왕은 회개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했음에도 "혹시 누가알겠느냐"는 자세를 취했다.

 2. 왕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취했다. 8절에서 그는 각 기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하였고,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을 명했 다.이것은 9절의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을 멸망치 않게 하 실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3. 니느웨왕의 "혹시"라는 기대와 믿음은 1:6에서 언급된 이방인 선장의 "혹 시"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B. 은혜는 댓가가 아니다.

 1.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다. 내가 할 회개를 했으니 다음은 하나님께 서 내게 베푸실 차례라는 자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행위다. 결 코 구원은 주고 받는 공정거래가 아니다. 용서의 근거는 오직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 뿐이다. 은혜의 근거 역시 예수의 십자가 뿐이다. 내 가 십자가를 믿는 믿음까지도, 회개도 모두가 하나님이 내려주신 은혜라 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금식을 했고 베옷 을 입었고 혹은 재에 앉았다고 해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처럼 주장 해 서는 안된다.

 2. 우리는 때때로 특별 기도회니, 금식기도니, 철야기도니 하면서 법석을 떤 다. 매우 좋은 일이다. 이 일은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 혜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과의 무 슨 무역조건으로 제시하려 들려는 태도다. "내가 00일 금식했으니까, 내 가 00일 새벽기도 했으니까, 00일 철야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은혜 를 주실 것" 이라는 태도를 갖는다. 과연 옳은 신앙일까 만일 그러한 행 위 때문에 복 받는 다면 그것은 "공로"이지 절대로 "은혜"가 아니다.

 3.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온갖 좋은 것들은 그의 주권적인 결정에 따라 값 없이 받는 은혜의 선물들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보상을 청구 하거나 대 가를 요구할 근거나 권리가 없다. 우리들이 받는 은혜는 모두가 주님의 십 자가 공로에 근거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선물일 뿐이다.

 4. "혹시"라는 마음 자세는 참된 회개와 겸비의 표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 혜에 대한 솔직한 의존이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대한 소 망"이다.

만일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무엇을 잘한 것이 있다면 우리 속에 "소원을 두 고 행하게 하시려는"(빌 2:13) 하나님의 은혜다. 이것은 우리들의 마땅 한 의 무 에 지나지 않는다(눅 7:10).그러기에 우리들은 행위를 하나님 의 은혜를 청구하는 보상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눅 17:9).

 5.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있는 자이다. 가난한 심령을 가진 자야말로 재 위 에 앉은 사람이다. 그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결코 교만 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들도 니느웨 백성들처럼 일체의 자랑과 자만의 모습 을 버리자. 먹기 위해 사는 인생이 되지 말자. 육체를 위해 사는 자가 되지 말자.6. 니느웨의 구원은 하나님의 용서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게 된 배 경이 중요하다. 니느웨 백성들이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때문이었 다. 물론 선한 행위가 구원의 바탕은 아니다.그러나 선행은 참된 회개와 믿 음의 증거라는 사실이다(약2:24-26).

결 론

1. 혹시 자신의 실수로 인한 삶의 위기를 만날지라도 절망하지 말자. 소망을 갖 자.

 2.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바랄 형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너 무나 사치스러운 소망이었다.

 3. 하지만 이들은 요나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았다. 우리도 하나님 을 알자. 여호와를 힘써 알자.

 4. "내가 이러 이러하게 했기 때문에"라고 말하지 말자. "혹시나"하는 그 분 의 자비에 의지했더니 이렇게 되었다고 고백하자. 그리고 참된 회개의 열매 를 맺자. 배고픔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욕심을 금하자. 베옷은 껄끄럽고 창피 하다. 불편하다. 어쩌면 믿음생활이란 금식처럼, 베옷 입은 것처럼 고통스러 울 때도 있다. 이것을 알자. (위기/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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