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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 06:9-13)

첨부 1


이번 기간동안에는 특별히 주기도를 연속적으로 묵상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기도는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셔서 행한 모든 구원의 역사의 경험을 가장 함축적으로 정리하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 주기도는 그 의 가르침의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기도는 복 음서의 요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기도 속에 복음 의 내용이 모두 들어있고 예수님의 구원행동의 범위가 다 나 타나 있습니다.주기도에는예수의 구원행동과 복음의 모든 내용이 나타나 있습니다 . 누가복음 11:1에는 이 주기도가 나오게 된 배경을 기 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하고 요구한데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것은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가르쳐달라,
즉 기도의 형식같은 것을 가르쳐달라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가르침의 핵심을 알려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많은 종교가 있었는데 모든 종교에는 정해진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의 내용은 바로 그 기도의 내용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순히 인간이 어려울 때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깊은 의미에서 신앙의 내용이며 한 종교가 갖는 신학의 핵심입니다.
정리된 기도는 한 신앙공동 체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신조(Creed)와 같습니다.
서양교회를 보면 예배서를 예배서(Book of Worship)라고 하지 않고 기도서(Book of Prayer)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도가 곧 예배의 내용이고 신앙의 내용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를 이해한 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선명하고 정확하게 이해 하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주기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입니다
오늘은 먼저 주기도의 전체적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주기도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으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시작하신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점은 예수님의 기도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을 듣노라면 기도란 당연히 하나님을 향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여기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정황은 모르지만 이런 가정을 한번 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 겠느냐 하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당 신의 가르침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즉 당신의 사상과 신학 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을때 제자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이 모든 권위를 다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좌지 우지할 수 있는
최후의 힘이 있는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그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 제자들의 그 요청을 받고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고 가르쳐주신
첫대목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마지막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는 하나님에게로 다시 방향을 돌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속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 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므 로 그에게 권세가 있다고 보통 생각하는데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지 자신이 스스로 창출하신 것은 아 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
지 가끔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대통령에게 역사의 주권 이 잡혀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아주 앞선 과학이, 경제가 역사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 의 역사, 이 세상의 생명은 어떤 철학도, 어떤 사상도, 어떤 이데올로기도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하는 소리
를 듣고 대뜸 돌아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연속해서 기도하기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땅 위에 임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 다.
줄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어떤 계획과 뜻이 땅위에 임하도 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주기도의 전체가 역사의 주인이, 이 세
상의 주인이 하나님이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주기도의 제일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 떤 사본에는 없는 말인데 현재 주기도의 형태에는 있습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주기도 전체는
역사와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잇습니다
이것을 영어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이것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당신의 것이란 말입니 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 라는 말입니다. 이는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 다. 하나님 절대신앙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가 주일예배를 드릴 때 이런 맥을 짚어가
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예배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온 우리는 예배 서두에 우리의 죄를 참회합니다. 그리고 용 서의 확인을 받습니다. 그리고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에 응답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감사의 예물을 바칩니 다. 중보기도를 하고 당신의 위로의 약속이 주어지면 그 다음 에 우리는 일어서서 주기도송을 합니다. 그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주기도영창을 합니까 우리가 주기도 송을 부를 때 막연히 찬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이 래야 할 것입니다.
이제 생은 나의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다시 한번 확인하거니와 나의 생명, 나의 삶,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삶, 이 역사와 인류의 미래 모
든 것은 당신의 것이고 당신에게 그 권위가 있습니 다

이렇게 고백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인간의 큰 착각은
역사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우리 인간의 큰 착각은 우리의 역사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착각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는데도 말입니 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를 불렀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말하기를 주기도는 주님이 제자들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하나님께 드린 기도며 오늘 우리가 이 기도를 드릴 때는 예수는 중보자가 아니라 우리와 나란히 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고 했습니다. 사 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예 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죄인임으로 하 나님께 감히 기도드리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해 우 리가 용서함을 받았으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말이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근원이요 역사의 주 인이시다란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고의 권위를 바친 예수님 그 분이 기도를 드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여 하고 자기의 자세를 하늘로 향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그 런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림은
하나님이 역사와 세상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그 의미는 이 세상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하 나님만 존재하지도 않고 세상만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과 세상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보는 것은 주기도의 반은 하늘 과 관계되어 있고 반은 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처음 세 가 지 기도는 하늘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그 다음의 세 가지는 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 를 사하 여 주옵시고주기도는
하늘과 땅이 연결되도록 간구합니다
우리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 서.
그런데 이렇게 하늘에 관계된 기도와 땅에 관계된 기도로 구 성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주기도문은 끊임없이 하늘과 땅 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라이 (땅 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 어지라는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늘의 것이 땅에 이루어 지라는 것을 간구합니다. 이것은 땅이 땅 스스로만 존 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의해, 즉 하나님에 의해 존재하며 땅 스스로가 스스로 살 수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원칙과 축복하에서만 원만하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땅의 독단적 인 삶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이란 스포츠가 있습니다. 이 스포츠는
산소통을 짊어지고 바다 속에 들어가서 바다밑을 구경하고 즐기는 스포츠입니다. 산소통을 짊어지고 입에 산소마스크를 끼고 바다속에 들어가는데 그 속에 들어가는 순간 그는 완전 히 등에 짊어진 산소통에서 나오는 산소에 생명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산소공급이 끊기면 그는 바로 죽는 것입니 다. 이 세상의 삶이란 것이 말하자면 늘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총이란 산소공급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은총이 끊 기면 바로 생명은 끝인 것입니다. 구약의 신앙중에 중요한 하 나는 인간의 비참한 운명은 하나님이 그 은총을 거두어가시 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제사장 아론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축복할 때는 이렇게 축복하라고 일렀습니 다(민수기 6:23-26)이 세상의 삶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산소공급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 를 원 하노라.

이 축복기도에 따르면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얼 굴이 우리를 향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 면 그것이 곧 불행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이 항상 그들을 향하여 있도록 축복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기장 중요한 기초는
이 세상은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 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 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땅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 하늘의 뜻이 땅에 임할 때 거기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있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이 땅위의 삶을 사셨습니다
다는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순 종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가르쳐 주시고 싶었던 것입니
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이요 역사의 원리임을 알려주시고 싶 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이 원칙을 가지고 사셨습니 다. 그는 이 땅의 원리에 따라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철저 히 때로는 고독하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이 땅의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묵상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점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늘의 뜻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그 날을 향해서 복음을 증거하고 외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즉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질 때 거기에 구원이 있고 해방이 있고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위에 살면서
하늘의 뜻을 추구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빕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사순절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실현되도록 기도하고 나 자신 그렇게 순종하려는 결 심을 마음속에 다지는 경건한 기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 니다. 아멘.
(199

5.

3.

5.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부산진교회 박성원 목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본 문 / 시편 14:1-7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 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 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 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저희 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 대에 계심이로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 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이스라엘의 구원 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 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오늘은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인 주기도를 연속해서 묵상하는데 지난 주일에 이어 두번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 며... 하는 부분을 생각하겠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 는다. 란 말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먼저 이름 이란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렇지만 이름이란 단순히 누구를 부르기 위 한 호칭이 아닙니다. 이름은 인격을 말하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존재(Being)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19에 보 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모든 동물들을 이끌어 오게 하시고 이름을 지어주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한편으로는 동물들을 구 별하는 호칭을 주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 서 그 동물의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존재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이름에 관해서는 이보다 훨씬 더 진지한 의
도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같은 사람의 이름이 바뀐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었고 야곱이 이스 라엘로, 바요나 시몬이 베드로로, 사울이 바울로 바뀌었습니 다. 이들의 이름이 바뀔 때는 그들의 삶의 의미와 목적까지도 바뀌었습니다. 이를테면 사울이 바울로 바뀔 때는 자기를 하 나님앞에서 큰 자로 생각했던 교만을 없애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나타낸 것입 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할 때는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인격이 마땅한 대우를 받게 하라, 즉 인간은 하나님의 인격에 마땅한 대우를 해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은
하나님의 인격에
마땅한 대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격에 마땅한 대우를 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기에서 예수님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중 요한 것은 거룩 이란 말입니다. 거룩이란 말은 원래는 구별 된다 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무리 가깝지만 엄연히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까운 것은 가까운 것이고 존재가 다른 것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 님이 거룩하시다 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은 인간과는 엄연히 다르다. 란 뜻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을 포
함한 이 세상의 피조물은 어떤 것이라도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란 것은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 의 일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랬을 때 인간 세상에서는 불평등이 생기고 한 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는 억 압이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힛틀러 치하에서 나치독재에 저항했던 20세기의 유
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하나님을 묘사해서 절 대타자(絶對他者) 라고 했습니다. 바르트가 하나님을 절대타 자 라고 전혀 타협불가능한 한 어조로 아주 강력하게 표현한 이유는 바로 히틀러가 하나님의 행세를 하던 역사적 정황에 서였습니다. 바르트는 독일국민이 히틀러를 마치 하나님처럼, 구세주처럼 생각하려고 하는 풍조가 일던 상황에서 하나님 은 절대타자이시다. 즉 이 세상의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자리에 갈 수는 없다고 강력히 히틀러독재체제를 비판했던 것입니다.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 존재가 상당히 많습니다. 인류역사 속에 나타난 수 많은 독제자들이 다 이런 범주에 속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행위 도 바로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 행위라고 생각 합니다. 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강요할 때, 즉 자기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며 섬김을 강요할 때 이것도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인간과 구별되는 존재이며
모든 인간은 평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
류의 평등정신이 벌써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마져도 제자들과 나란히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이름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감히 어떤 사람이 다른 사 람에게 자신을 섬기도록 강요합니까 어떤 경우에 교회에서 까지 직분의 고하를 의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사는 평신 도보다 높고 장로는 집사보다 높고 목사는 장로보다 높고...
하는 식은 주기도앞에서는 불경에 가까운 의식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과 구별되는 존재인 것이고 하나님 이외의 모든 존재는 평등한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
며 하고 기도하라고 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 이 여기지 말라는 의미와도 연결되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무시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14편 말씀은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것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약 6년전, 지금은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남아프리카 공 화국이 인종분리정책으로 백인들이 흑인들을 엄청나게 억압 하고 있을 때 이 인종차별에 대해 싸우던 한 목사님이 한국 을 방문했는데 제가 통역으로 동행하면서 함께 광주를 방문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그 때 80년 광주사태를 자기 나라 의 스웨토(Sweto) 사건과 같은 맥락에 두었습니다. 스웨토사 건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의 억압에 대해 봉기한 흑인학생들을 무차별 사격으로 수천명이나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이 사건과 광주사태를 나란히 연결하면서 그 목 사님은 이 일들은 하나님은 없다 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저 지를 수 있는 일이지 하나님이 엄연히 계신다 고 생각한다 면 절대로 저지를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
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 지 모릅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기록중에 하나인 유 태인 600만명 학살은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했습니다. 독일 나치주의자들이 하나님 이 계신다고 생각했으면 절대로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역사 속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무시하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얼마전에 94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한국에 온 적이 있습니다. 이 작가는 요즈음 대부 분의 일본사람들이 일본의 조선식민지는 결국 조선에 유익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조선을 비롯한 아시 아에 저지른 만행을 참회하지 않고는 다른 아시아나라와 공 존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한 드문 일본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 분이 아마 85년엔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시 인 김지하씨를 찾아와서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의 내용은 히로시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하여 히로시마에 대한 동정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질문을 받 자 말자 대뜸 극렬하게 저항하듯이 일본은 히로시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 전에 30만 남경학살에 대해 어떻 게 생각하느냐 일본에 끌려간 20만 조선정신대를 어떻게 생 각하느냐 하고 먼저 물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여기 남경학 살이란 것이 무언인지 아십니까 일본군이 남경을 점령하고 부녀자를 모조리 끌어내고서 일본군인들이 줄을 서서 강간을 하고서는 마지막 군인이 칼로 살해하는데 그 숫자가 30만명 이란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수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인간이하의 삶을 살도록 억압받는
현장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
오며... 하고 기도하라고 할 때 무조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올리고 찬양하라는 의미만을 뜻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 님은 그 당시 수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사회에서 인간이하의 삶을 살아가도록 억압하는 현장을 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께서 세리와 죄인과 창녀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 신 행동의 이면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바로 종교인 으로 가장 의롭다고 자처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죄인 이라고 규정지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종교적으 로 부정하다고 규정지어 놓은 사람 만을 예수님은 가까이 하 고 사랑했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심성이 바리새인들의 심성보 다도 더 낫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보다는 나는 죄인 이로소이다. 하고 가슴을 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은 더 어 여삐 여기시고 받으시며, 바리새인들의 과시하듯이 바치는 헌 금보다는 과부의 엽전 두 닢을 하나님은 더 기꺼이 받으신다 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그 심정이 무엇이겠습니 까 율법주의자들이 버린 사람들을 하나님은 더 귀하게 여기 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 돌 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까 오늘 읽은 시편 말씀에도 저희 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도 다. 하고 또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했습니다.
주기도에는
인간의 인권과 존엄성이 망각되지 않도록
구하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주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는 마
태복음의 문맥은 바리새인들의 신앙관념을 통렬히 비판하는 것과 맥을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주기도가 들 어 있는 6장 9절 전과 14절 이후를 읽어보십시요 전부가 외 식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통렬한 비판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리나 죄인이나 창녀들의 인권을 빼 앗고 자기들만 의롭다고 스스로 자신을 찬양하는 바리새인들 을 옆에 두고 주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 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고 기도하라고 일렀습니다. 여기 에서 주기도는 이들의 인권이, 이들의 존엄성이 망각되지 않 게 하옵시며... 하는 메아리(Echo)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계시는데 인간이 함부로 심판하지 말라는 뜻도 있지 않겠습니까
생태계 파괴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는
인간행위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인권적 차원외에도 하나님이 계시
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인간의 행동이 너무나 많은 것을 봅니다. 생태계파괴도 그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정원에 어떤 사람이 들어와서 마구 나무를 자르고 꽃을 꺾으면 엄청나게 화를 낼 것입니다. 만약 내가 정원에 있는데 도 어떤 사람이 들어와서 그런 짓을 하면 나를 무시한 것으 로 여겨서 화가 머리끝까지 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 님이 만드시고 하나님이 만드신 후 보기에 좋다고 하신 이 생태계를 우리는 마음대로 잘라내고 밀어부치고 해서 지금 엉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만드신 이 정원 에 엄연히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 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고 기도해야 하는 주기도 에 대해 정확하게 적대되는 행위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순절은 인간이 거만하게도
하나님의 자리를 점유한 것에 대한 참회를 의미합니다.
혹시 우리는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까 남이 나를 섬기기를 바란 적이 없으며 남이 나를 섬기지 않는다고 억압한 적은 없습니까 혹시 우리는 하나님 이 엄연히 살아계시는데도 마치 하나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것 처럼 행동한 적이 없습니까 깊은 참회가 있는 사순 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점유한 것에 대한
참회의 사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본 문:누가복음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 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오늘은 주기도 중 나라이 임하옵시며... 에 대해 묵 상하겠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의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순절에 이 부분을 생각하 는 것은 아주 의미가 깊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위에서 오셔서 줄기차게 외치셨던 바로 그 복음, 즉 하 나님의 나라 의 실현을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는 예수님의 첫번째 설교제목이었습
니다. 마가복음 1:15에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다음에 맨 처음 설교를 하셨는데 그 설교내용이 바로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 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 란 것은 도대체 어떤 개념인
가 먼저 언어적 정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의 나라 와 하늘 나라 를 섞어서 쓰고 있는데 일단 하늘나 라 , 즉 천국(天國) 이라고 하면 어쩐지 죽어서 가는 영원한 나라란 의미가 짙게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서학자들에 의 하면 하나님의 나라 란 저 하늘 어디엔가 있는 어떤 타계적 인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주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나라 란 개념은 아람어로는 "Malkuta"란 말로 되어 있고, 이 말은 히브리어에서 왕, 다스림을 가리키 는 멜레크(Melek)에서 왔습니다. 이 말의 희랍어는 바실레이 아(Basileia) 인데 이것은 어떤 영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림 , 혹은 주권 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지배하는 곳을 가리킵니다. 찬송가 495장에는 하늘나라가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첫 설교제목이었습니다

1.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2.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3.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찬송에서 묘사하는 하늘나라는 첫째, 죄사함을 받은 상 태 , 멀리있는 실체가 아닌 내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나라 , 그리고 셋째로는 그 곳이 어디이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 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사 후에 가는 어떤 별도의 공간적 세계라기 보다는 이 세상속에 살고 있지만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떤 영적 상태 (Spiritual state)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영적상태입니다
그러면 죽어서 갈 곳은 없느냐 그런 것은 결코 아
닙니다. 오히려 그 이 세상의 육체를 벗어나고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완전하게 이룩되는 곳이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그곳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했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누
구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많이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의 나라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 보다는 주로 비유를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란 개념이 현실속에 사 는 우리들로서는 결코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아마 비유로 서 설명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이
마태복음 13장인데 우선 마태복음 13:44을 보면 하나님의 나 라는 밭에 숨겨놓은 보화와 같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이 그것을 발견하게 되면 집에 가서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서 그 밭을 사게 되는 그런 값진 것이다 라고 합니다. 마태복 음 13:45 도 44절과 비슷한데 이번에는 값진 진주 에 비유했 습니다. 이것도 너무 값지기 때문에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 살 만큼 값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 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어떤 것 이라는 암시를 줍니다.
그 다음에 계속해서 또 다른 비유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 과 같다고 되어 있 습니다. 고기를 가득잡고 난 뒤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 쁜 고기는 버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 는 어떤 심판의 순간 으로 나타납니다.
또 마태복음 13:31 (막 4:26-32) 에서는 하나님의 나 라는 겨자씨 와 같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인 데 나중에 큰 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또 마태복음 13:33 에서 는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 과 같다고 했습니다. 누룩을 넣으 면 마구 부풀어 오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영향력이 센 어떤 능력(Power) 작지만 힘이 센 어떤 것(Something powerful)"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습니 다.
바울서신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유일하게 묘
사된 곳은 로마서 14:17 인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 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 와 기쁨 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 는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神的)이고 정신적 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약하고 보잘 것 없어보이나
강하고 가치있는 하나님의 힘을 보여줍니다
이상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은 무엇
입니까. 이 세상에서 보통의 눈으로 보아서는 잘 안 나타나지 만 그 가치는 이 세상 전체보다도 더 가치있고, 그 힘은 미약 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강한 어떤 하나님의 힘을 말하고 있습 니다.
그런데 이 비유들로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을 구
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약간 힘듭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을 보 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직접적인 설명은 아니더라도 하나 님의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 의 나라에 가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 세상의 가치기준이
통하지 아니합니다
마태복음 8:11 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동과 서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나라의 사람들은 그 때 그 잔치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 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가치기준이 하늘나라에서도 통하 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누가복음 22:30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주님과 함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밥 상에 초대되어 같이 밥을 먹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 이들은 바로 주님이 시련을 겪는 동안에 그 시련을 함께 겪으며 견 디어 낸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주님과 함께 고난 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 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1-14에는 유명한 혼인잔치의 비유가 나
옵니다. 여기에서는 하늘나라의 멋진 잔치에는 오히려 이 세 상에서 마땅히 초대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닌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고 했습니 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거듭난 자, 마음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20, 7:21, 18:3, 19:17, 23, 25:21, 23 등에서 는 하늘나라는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 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진솔하게 행하는 사람이 들어가 는 곳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3:3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거듭나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마태 복음 5:1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하늘 나라를 볼 수 있 다고 했고 마태복음 5:10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하 늘나라의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3:43 에는 하늘나 라에서는 의인들이 해같이 빛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 하나님의 나라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갈 수 있 는가에 대한 성경말씀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은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보다도 이
세상에서 보잘 것 없이 업신여김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선 훨씬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란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땅위의 사물이 물위에 비치는 형태와 같습니다. 이 세상 에서 높던 것은 낮아지고 낮던 것은 높아집니다. 이 세상에서 부유하던 자는 가난해지고 가난한 자가 부유해 집니다. 이것 은 하나님의 나라의 혁명성을 가리키는 것이고 가치의 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치의 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나라
정의의 나라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의를 위해 산 사람, 몸을 던져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 이 땅위에서 겸허하게 산 사람들, 핍박과 고난속에 산 사람들 이라고 했습니다. 타협하고 안일하게 살며 정의를 외면하고 현실을 따라 기회주의자로 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면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된다고 했습니다. 처세술에 능하고 이 리 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유익을 구하는 인격보다는 어린아 이처럼 순수하고 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 라는 정의의 나라(Kingdom of Justice)란 뜻입니다.
이 두 가지의 묘사에서 우리가 분별할 수 있는 점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그 가치규범이 다르고 결 국 하나님의 나라의 규범이 옳고 선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문 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면서 이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엄연히 우리가운데 존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대 로 그것은 밭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아무리 값진 보 화라도 눈앞의 유익에 눈이 어두워진, 소위 말하면 현실적인 선택을 항상 하려는 우리 인간에게는 이 감추어진, 눈에 보이 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항상 간과해 버리고 맙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것이 보이면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 그 값진 것을 사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사람들은 이 세상 부귀영화에 눈이 어두워 이 가치를 발견하지 못합니 다.하나님의 나라는
엄연히 우리 가운데
존재합니다
왜 예수님은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현재의 삶이 결코 지혜로운 것이 아니란 부정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 면 이사야 6:9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 께 거하고 어린 아이가 독사와 함께 노는 나라를 지향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상하게 하는 일도 없고 상함을 입 는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나라는 어떻습니 까 끊임없이 남을 상하게 하고 내가 상함을 입는 삶이 계속 되고 있지 않습니까
또 요한계시록에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의 나 라에는 다시 사망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질병과 사망과 눈물과 아픔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아픔이 없고 사망이 없고 눈물이 없는 나라를 지향 하는 것은 지당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우리 인류의 현실을 보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 나라를 이 땅위에 이룩하 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로 보셨기 때문에 이 세 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 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로를 상하게 하는 인류의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 하면 엄청난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고 실현불가능한 지상의 유토피아(Utopia)처럼 생 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어려운 개념이거나 실현불가능한 신기루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없다.
(3)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요란하게 밖에서 이루어
지는 나라가 아니라 조용히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말 합니다. 우리의 심령 저 깊은 곳에서 가치의 전환이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이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입니다. 죄악을 도모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선을 행하는 마음이 일며, 남을 시기하고 질 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사랑하고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 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 는 징표입니다. 마땅히 복수하고 정죄해야 하는 대상이나 용 서하고 관용할 수 있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마음에 자리하 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심령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마음의 변화는 소리없이 일어나고 이 변화는 겨
자씨만큼 지극히 작은 변화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변화들 이 너와 내 마음에 연이어 일어날 때 세상은 변화하는 것입 니다. 부정이 사라지고 미움과 전쟁이 사라지며 사랑과 화평 의 세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나라를 이루어주기 위해
서 이 땅위에 오셨고 그는 줄기차게 그런 나라를 세우는 것 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끝내 그런 나라를 이 세 상에 세워주고 우리에게 계속 그 나라를 선포하고 확장시켜 나가도록 부탁하고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의 마 음에서 부터 세워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의 나라는 내 속 에 임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마음에 먼저 세워 지고 너의 마음에 조용히 세워질 때 그 나라는 마치 밭에 감 추인 보화처럼 점점 넓혀져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사순절이 우리 마음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웁시다. 그리고 그 나라가 점점 조용한 가 운데 온 천하로 확장되어 나가게 하십시다. 그랬을 때 이 땅 에는 눈물이 사라지고 사망이 사라지고 곡하는 것이 사라지 고 성령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만이 넘치게 될 것입 니다. 바로 이 목표를 위해서 우리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 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우리 마음에 세운 하나님의 나라가
온 천하로 확장되게 합시다
뜻이 이루어지이다.
본 문:요한계시록 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 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 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 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 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오늘로 우리는 사순절 넷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주기
도의 네번째 부분을 묵상하겠습니다. 네번째 기도는 뜻이 하늘 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는 부분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몸을 두고 계실 때 줄기차게 주 장해 온 기도입니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 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요한복음 4:34에서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했습니다. 그가 온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뜻 을 이 땅 위에 온전하게 이루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그 것이 자신의 존재의의(Raison d'etre)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도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 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이 내용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위해 오셨습니다
먼저 이 기도는 종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 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기도는 이 세상을 등뒤로 하고 저 하늘을 향한 어떤 간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생각에서도 보는대로 우리는 보통 종교라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인가 하늘 저편의 일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과는 무관한 이 땅을 초월하는 어떤 타계적인 의미를 먼저 연상합니다.
지난 주에 한국에는 대학교수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엄 청난 사건이 일어났고 일본에서는 지하철에 독까스를 살포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낸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독까스 살포는 신흥 종교집단에 의해 저질러 진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 신흥종교집단은 바로 종말론에 심취하여 이 세상을 부정하는 그 런 사이비집단입니다.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신흥종교집단이 나 이단들은 대부분 이 세상에 대한 강한 부정적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저 세상에 대한 희망만을 이야기합니 다. 그래서 그들은 종말론에 심취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종교적 사고의 일반적 경 향이 바로 이런 종말론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종말론의 등식은 이 세상은 멸망하고 저 세상에 희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정한 종말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진정한 종말론은 바로 이 주기도 속에 나타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독교의 진정한 종말론은
주기도 속에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종말론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 땅 에 펼쳐지고 당신의 계획과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이 루어지기를 기원하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 이 바로 기독교의 종말론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를 완전히 통치하실 때-이것을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재 림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만-바로 그 때가 종말인 것이지 이 세상이 끝나는 것이 종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낙원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종말론 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사건에서부터 시 작하여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서 신앙의 방향이 아주 분명한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우리 는 성육신(Incarnation)사건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육 신을 입는 것입니다. 즉 영이 육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행 방향이 땅이 하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땅을 향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생각했던 나라이 임하옵시며... 의 기도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내려오는 것, 즉 방향이 하늘에서 땅 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말씀속에서도 분명히 보는 것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이것은 인간의 진행방향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행방향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늘로 향하여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항상 땅을 향해서, 우리 인간을 향해서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 라. 란 저 유명한 요한복음 3:16에서도 하나님의 관심을 땅을 향 해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유명한 아론 의 축복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땅과 인간을 향해 있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 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에 대해 인간이 향해야 할 방향은 반대로 땅이 아 닙니다. 인간이 취해야 할 진행방향은 하늘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인간이 땅을 향해 있는 그것인 바로 세속주의(Securalism)입니다.
인간은 항상 그 얼굴을 하늘을 향해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의지를 물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 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 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 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곳은
모든 세계, 모든 영역을 포함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이 기도가 포함하는 영역입니다. 이 기도의 영역은 하늘과 땅 입니다. 뜻이 하늘에 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했습니다. 고대 근동지 역과 구약에서는 하늘과 땅 이 함께 쓰일 때는 그것은 하나님 의 모든 피조세계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어느 한 구석도 빠짐이 없는 모든 세계를 의미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 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 할 때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영역, 혹은 영적인 영역만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영역을 말합니다. 우리의 심령에서부 터 시작하여 정치적 영역, 사회적 영역, 경제적 영역, 모든 영역 을 다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기도를 드릴 때는 교회안 에서 신앙적인 차원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영역, 정치적 영역, 사회적 영역, 군사적 영역, 경제적 영역, 문화적 영역 모든 영역을 총망라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 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자, 그러면 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그 뜻이란 도대체 무슨 뜻이겠습니까 궁극적인 뜻은 에베소 서 1:10에 나타나 있습니다. 에베소서 1:10에는 이렇게 말씀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하심 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일,일치가
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일, 일치 그것이 바로 궁극적으로 이루어 져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 일되어야 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온 세상이, 이 세상의 어느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 에 의해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온 세상에 기독교 깃발을 꽃는 그런 의미에서의 세계복음화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의 구원, 인간의 모든 삶의 구원을 의미 합니다. 그 구원이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 원래 주신 그 선한 마음을 가지고 그 고유의 권리를 누리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서 에덴동산의 피조물처럼 평화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온 인류의 구원
인간의 모든 삶의 구원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을 조금 구체적으로 볼 수 있겠 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성경말씀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 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 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 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 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진 상태입니 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 단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는 하늘 에서 단장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십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눈물을 씻기시므 로 다시는 사망도, 애통하는 것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있지 않도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상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습니까 얼마 나 많은 사망과 곡하는 것과 애통하는 것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습니까 우리 인생살이 전체가 눈물과 사망과 통 곡과 아픔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우는 울음의 시작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져 갑니다. 우리는 과거에 한많은 생 을 사시고 늙으신 어머님에게서 내가 흘린 눈물이 다 모이면 강물을 이루고도 남을 것이다. 란 자조섞인 소리를 자주 들었습 니다. 비유법같은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 눈물의 문화, 사망의 문화, 애통의 문화, 아픔의 문화를 이런 것들이 다시 있 지 않는 문화로 바꿔야 합니다.
눈물과 사망, 애통, 아픔이 다시 있지 않는 세상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간절히 주님과 함 께 기도해야 할 이 기도제목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 서도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해야 할 구체적인 제목을 바로 이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어서 속히 오셔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망과
이 세상 삶에서 쌓인 온갖 한과 억눌림과 원통함과 우리의 통곡과 우리의 아픔을 거두어 가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의 눈물을 씻겨주소서.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지켜주시고
똑같은 생명으로 태어나서도 버림받고 없인여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이 절망을 거두어 주옵소서.

주여, 우리 인간의 눈에서 마를 새없이 흐르는 이 눈물을 땅을 치며 통곡해야 할 우리의 슬픔을 주여, 거두어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의 눈물을 씻겨주소서
우리의 아픔을 거두어 주옵소서
주여, 수많은 귀한 생명들이 질병으로 아픔을 겪고 마음의 상처로 아픔을 겪고
그래서 이제 우리의 창자는 썩을 대로 썩었습니다.
주여, 우리의 이 아픔을 거두어 주옵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이다. 하는 기도는 바로 이런 모든 기도 를 다 담고 있습니다. 이 기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샬롬 (Shalom)입니다. 샬롬 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 인간답게 살면서 반드시 누려야 할 그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상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눈물많고 사망이 엄습하고 곡하는 것과 애통하는 것과 아픈 것이 지배하는 이 세상이 눈물이 없고 사망과 곡하는 것과 애통하는 곳과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 는 그 상태가 되는 것이 바로 샬롬 입니다. 주님은 이 땅을 그 렇게 만들어 모든 만물을 구원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눈물이 그치지 않는, 사망과 곡하는 것 이 그치지 않는, 통곡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아픔이 그치지 않는 이 세상에 다시는 사망이 없고 곡하는 것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 없고 아픈 것이 있지 않는 그 평화의 세상, 샬롬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두 손을 모으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여,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의 세상
샬롬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 노예로 끌려간 흑인들은 유난히 천국을 사모하 는 찬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백인들의 비참한 억압에 시달리면서 흑인들은 언젠가는 이 고통이 끝나고 하나님앞에서 영원한 자 유와 평화가 올 날이 있을 것 이라고 소망하면서 그들은 민권승 리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투쟁했습니다.
이들이 부른 흑인영가중에서 그 언젠가 우리는 승리하리라! 란 찬송이 있습니다.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someday.
Oh, deep in my hear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오, 참맘으로 나는 믿네
우리 승리하리라

1. 우리 승리하리
우리 승리하리
우리 승리하리 그 날에

오 참 맘으로 나는 믿네
우리 승리하리라.

2. 두려움이 없네
두려움이 없네
두려움이 없네 우리는

3. 손에 손을 잡고
손에 손을 잡고
힘을 합하리라 우리는

4. 평화롭게 살리
평화롭게 살리
평화롭게 살리 그 날에
이 찬송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 위에도 이루 어 질 것이라는 강력한 그 희망으로 언젠가 흑인에게도 자유와 평화가 임할 것이라는 찬송입니다. 흑인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와 함께 그날이 오게 하기 위해 이 영가를 부르며 함께 행진하 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감옥에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이 땅에 그 언젠가는 눈 물이 더이상 없고 사망이 더 이상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픔이 다시 있지 않는, 음 것들이 다 지나가 버린 그 날이 올 것이라 는 믿음으로 오늘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줄기차게 기도하십시다.
아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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