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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이 임하옵시며 (눅 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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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오늘은 주기도 중 “나라이 임하옵시며...”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의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순절에 이 부분을 생각하는 것은 아주 의미가 깊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위에서 오셔서 줄기차게 외치셨던 바로 그 복음, 즉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첫번째 설교제목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15에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다음에 맨 처음 설교를 하셨는데 그 설교내용이 바로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란 것은 도대체 어떤 개념인가 먼저 언어적 정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 와 “하늘 나라”를 섞어서 쓰고 있는데 일단 “하늘나라”, 즉 “천국(天國)” 이라고 하면 어쩐지 죽어서 가는 영원한 나라란 의미가 짙게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란 저 하늘 어디엔가 있는 어떤 타계적인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주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나라”란 개념은 아람어로는 "Malkuta"란 말로 되어 있고, 이 말은 히브리어에서 왕, 다스림을 가리키는 멜레크(Melek)에서 왔습니다. 이 말의 희랍어는 “바실레이아(Basileia)” 인데 이것은 어떤 영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림”, 혹은 “주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지배하는 곳을 가리킵니다. 찬송가 495장에는 하늘나라가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첫 설교제목이었습니다

1.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2.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3.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찬송에서 묘사하는 하늘나라는 첫째, “죄사함을 받은 상태”, “멀리있는 실체가 아닌 내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나라”, 그리고 셋째로는 “그 곳이 어디이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사후에 가는 어떤 별도의 공간적 세계라기 보다는 이 세상속에 살고 있지만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떤 영적 상태(Spiritual state)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영적상태입니다 그러면 죽어서 갈 곳은 없느냐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 세상의 육체를 벗어나고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완전하게 이룩되는 곳이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그곳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했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많이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 보다는 주로 비유를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개념이 현실속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결코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아마 비유로서 설명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이 마태복음 13장인데 우선 마태복음 13:44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숨겨놓은 보화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발견하게 되면 집에 가서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사게 되는 그런 값진 것이다 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3:45 도 44절과 비슷한데 이번에는 “값진 진주”에 비유했습니다. 이것도 너무 값지기 때문에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 살 만큼 값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어떤 것”이라는 암시를 줍니다.

그 다음에 계속해서 또 다른 비유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기를 가득잡고 난 뒤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고기는 버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심판의 순간”으로 나타납니다.

또 마태복음 13:31 (막 4:26-32) 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인데 나중에 큰 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또 마태복음 13:33 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고 했습니다. 누룩을 넣으면 마구 부풀어 오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영향력이 센 어떤 능력(Power)” “작지만 힘이센 어떤 것(Something powerful)"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바울서신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유일하게 묘사된 곳은 로마서 14:17 인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神的)이고 정신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약하고 보잘 것 없어보이나 강하고 가치있는 하나님의 힘을 보여줍니다 이상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보통의 눈으로 보아서는 잘 안 나타나지만 그 가치는 이 세상 전체보다도 더 가치있고, 그 힘은 미약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강한 어떤 하나님의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들로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약간 힘듭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직접적인 설명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 세상의 가치기준이 통하지 아니합니다 마태복음 8:11 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동과 서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나라의 사람들은 그 때 그 잔치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가치기준이 하늘나라에서도 통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누가복음 22:30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주님과 함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밥상에 초대되어 같이 밥을 먹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 이들은 바로 주님이 시련을 겪는 동안에 그 시련을 함께 겪으며 견디어 낸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주님과 함께 고난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1-14에는 유명한 혼인잔치의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에서는 하늘나라의 멋진 잔치에는 오히려 이 세상에서 마땅히 초대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닌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거듭난 자, 마음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20, 7:21, 18:3, 19:17, 23, 25:21, 23 등에서는 하늘나라는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진솔하게 행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3:3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거듭나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1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하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했고 마태복음 5:10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하늘나라의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3:43 에는 하늘나라에서는 의인들이 해같이 빛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 하나님의 나라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성경말씀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은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보다도 이 세상에서 보잘 것 없이 업신여김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선 훨씬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란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땅위의 사물이 물위에 비치는 형태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높던 것은 낮아지고 낮던 것은 높아집니다. 이 세상에서 부유하던 자는 가난해지고 가난한 자가 부유해 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혁명성을 가리키는 것이고 가치의 전도현상이 나타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치의 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나라 정의의 나라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의를 위해 산 사람, 몸을 던져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 이 땅위에서 겸허하게 산 사람들, 핍박과 고난속에 산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타협하고 안일하게 살며 정의를 외면하고 현실을 따라 기회주의자로 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면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된다고 했습니다. 처세술에 능하고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유익을 구하는 인격보다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의 나라(Kingdom of Justice)란 뜻입니다.

이 두 가지의 묘사에서 우리가 분별할 수 있는 점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그 가치규범이 다르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의 규범이 옳고 선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면서 이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엄연히 우리가운데 존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것은 밭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아무리 값진 보화라도 눈앞의 유익에 눈이 어두워진, 소위 말하면 현실적인 선택을 항상 하려는 우리 인간에게는 이 감추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항상 간과해 버리고 맙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것이 보이면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 그 값진 것을 사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사람들은 이 세상 부귀영화에 눈이 어두워 이 가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엄연히 우리 가운데 존재합니다 왜 예수님은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현재의 삶이 결코 지혜로운 것이 아니란 부정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사야 6:9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거하고 어린 아이가 독사와 함께 노는 나라를 지향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상하게 하는 일도 없고 상함을 입는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나라는 어떻습니까 끊임없이 남을 상하게 하고 내가 상함을 입는 삶이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또 요한계시록에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의 나라에는 다시 사망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질병과 사망과 눈물과 아픔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아픔이 없고 사망이 없고 눈물이 없는 나라를 지향하는 것은 지당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우리 인류의 현실을 보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 나라를 이 땅위에 이룩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로 보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로를 상하게 하는 인류의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 하면 엄청난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고 실현불가능한 지상의 유토피아(Utopia)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어려운 개념이거나 실현불가능한 신기루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없다.

(3)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요란하게 밖에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조용히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말합니다. 우리의 심령 저 깊은 곳에서 가치의 전환이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이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입니다. 죄악을 도모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선을 행하는 마음이 일며,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사랑하고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징표입니다. 마땅히 복수하고 정죄해야 하는 대상이나 용서하고 관용할 수 있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마음에 자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심령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마음의 변화는 소리없이 일어나고 이 변화는 겨자씨만큼 지극히 작은 변화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변화들이 너와 내 마음에 연이어 일어날 때 세상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부정이 사라지고 미움과 전쟁이 사라지며 사랑과 화평의 세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나라를 이루어주기 위해서 이 땅위에 오셨고 그는 줄기차게 그런 나라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끝내 그런 나라를 이 세상에 세워주고 우리에게 계속 그 나라를 선포하고 확장시켜나가도록 부탁하고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의 마음에서 부터 세워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의 나라는 내 속에 임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마음에 먼저 세워지고 너의 마음에 조용히 세워질 때 그 나라는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점점 넓혀져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사순절이 우리 마음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웁시다. 그리고 그 나라가 점점 조용한 가운데 온 천하로 확장되어 나가게 하십시다. 그랬을 때 이 땅에는 눈물이 사라지고 사망이 사라지고 곡하는 것이 사라지고 성령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만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목표를 위해서 우리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우리 마음에 세운 하나님의 나라가 온 천하로 확장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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