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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판의역사1 (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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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성 어거스틴은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 사요 동시에 구원사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인류 역 사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없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인 류가 경험했던 모든 문명사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동시 에 존재해 왔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심판과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즉, 하나님께서 공의와 거룩의 속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죄를 용납하실 수 없으시며 죄가 있는 곳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의 속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 역사 속에 구원의 손길을 펴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속성, 그것 때문에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심판과 구원의 사건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특별히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후에 인간의 역사는 심판과 구원의 드라마를 더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요한복음 3장 17,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 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 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 은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느냐 거절하느냐에 따라서 심판과 구원이 결정됩니다. 이 구원자 되신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인류 역사는 구원의 역사와 심판의 역사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것이고 또 종결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때가 가까울수록 이 땅에 더욱 극적인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전개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주님의 재림 이 가까울수록 세상에는 더욱 죄가 많아질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합니다. 불의한 인간과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심 판의 와중에서도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될 것 입니다. 죄가 극성을 부릴수록 하나님의 심판도 분명해지고 동시 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도 더 놀랍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부터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속(救贖)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이 땅에서 전개될 심판의 드라마를 보여 줍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요한계시록 6장 이후의 사건을 예수님이 재림하기 직전 칠 년 동안에 일어나게 될 심판의 역사 로 국한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이 메 시지를 주셨을 때 일차적으로 이 말씀을 받았던 사람들이 1세 기의 그리스도인이었음을 기억해 보십시오. 만일 주께서 로마의 박해를 받고 있던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얘들아, 1900년 후에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불의를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예 언을 하셨다면, 그들에게 그 메시지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 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저는 6장 이후에 나타나는 심판의 드 라마를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 전개될 하나님의 심판 역사 전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심판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 가속화될 것이고 또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이 땅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의 드라마를 예수님 오시기 직전의 7년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성경을 너무 좁게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큰 환난이 있을 것을 누누이 언급합니다. 6장부터 시작되는 심판의 내용을 보면,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판의 단계는 특별히 세 가지 사건을 통해서 연속적으로 나타나는데, 일곱 인봉(印封) 심판, 일곱 나팔 심판, 일곱 대접 심판이 그것입니다. 인봉이 하나하나 떼어질 때마다 심판은 가속화됩니다. 그 다음에 나팔을 불고 대접을 쏟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인봉을 다 뗀 다음에 나팔을 부는 것이 아니라 여섯번째 인봉까지 떼고 일곱 번째 인봉의 심판에서 일곱 단계의 나팔 심판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일곱번째 나팔의 심판이 일곱 단 계의 대접 심판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므로 일곱번째 인봉과 나팔 전체와 대접 전체는 마지막 심판의 최후 단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섯번째 인봉쯤 되어서 마 지막 심판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때가 마태복음에서 말 한 최후 환난의 단계라고 생각하지만,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 은 아닙니다.

심판의 첫번째 단계 6장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첫번째로 흰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탄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학자들 은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어떤 학자들은 정반대로 적그리스도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성경의 기자가 이 말을 타고 있는 사람보다는 이때 일어나는 현상을 더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것이 역사 속에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위한 첫번째 무대라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인류에 대한 심판의 역사가 불가피한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들의 정복 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합 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탄 자가 그리스도라기보다는 적그리 스도라고 하는 편이 본문의 전체 정황에 휠씬 더 합당하다고 생 각합니다. 이 인봉을 떼는 분이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이신데 그분 이 또 자기 자신을 보여 준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말을 탄 자는 메시야적 야심을 가진 적그리스도라고 생각됩니다. 나쁜 사람이 왜 흰색으로 나 타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마귀가 역사할 때 항상 나 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는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역사 속에 나타난 모든 영 웅들이 항상 나쁜 동기를 가지고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다 그 나름대로의 정당한 명분을 가지 고 싸웁니다. 평화를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그러나 사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정치 종교적인 욕망이 숨어 있는 경 우들이 많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쓰기 얼마 전에 티투스 황제가 자신의 정치 종교적인 욕망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을 짓밟았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사담 후세인 같은 사람이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들 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한 정복욕 때문에 역사는 얼 마나 혼란해집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처음에는 많은 가짜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나다가 마지막 에는 진짜 적그리스도가 등장합니다. 가짜 중의 왕초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들은 정치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종교적 야심을 가진 자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에 의해서 역사는 언제나 혼란과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심판의 첫번째 무대입니다.

심판의 두번째 단계 3,4절 말씀입니다.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 았더라.

심판의 두번째 무대에서 우리는 메시야적 야심을 가진 적그리스도 들에 의해 전개되는 피 묻은 전쟁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이것 도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통해서 죄 많은 이 세 상과 인류를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세월을 거듭할수록 이 전쟁의 잔혹함은 더욱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사실은 그들이 이런 일들을 제멋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어떤 사건도 지구 상에 일어날 수 없습니다. 중동 사태도 하나님이 허락하시기 때 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전쟁은 비극입니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전쟁의 역사 배후에는 그것을 통해 인류를 응징하시고,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시고 , 역사의 방향을 잡아 가시는 하나 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역사는 아직도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큰 칼을 받았더라 했는데, 이 큰 칼은 아마도 그들이 사 용하는 잔혹한 무기들의 상징일 것입니다. 전쟁에 사용되는 무 기가 얼마나 그 공포와 잔인함을 더해 가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의 피 흘리는 역 사가 심판의 두번째 무대입니다.

심판의 세번째 단계 5,6절 말씀입니다.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나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 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저울을 가지고 등장한 것으로 보아서 먹고 살기가 곤란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밀 한 되면 그 당시에 장정이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데나리온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해서 받을 수 있는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므로 한 되는 하루 양식을 상징하고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을 상징합 니다. 힘껏 일해서 하루 품삯을 받고 그 품삯으로 하루 먹을 양식만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기근의 역사가 등장합니다. 이 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입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했는데, 하루 품삯으로 하루 양식을 사 버렸으니까 사실 감람유와 포도주가 있어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 감람유와 포도주는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들 중의 하나였지만, 그들은 그것도 살 여유가 없 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소수에 의한 부(富)의 독점 현상을 상징해 주는 사건일지 모릅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가난한 사 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은 더욱 자본을 독점하는 어려운 시대가 되어 갈 것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근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이디오피아에서…. 역사는 하나님의 마지막 시간표를 향해서 숨 가쁘게 굴러 가고 있습니다. 미국 과 같이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아나 가난 이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굶주림과 더불어 싸우고 있는 이 비극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심판의 네번째 단계 7,8절 말씀입니다.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 은 사망이니 음부(陰府)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劍)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 이더라.

청황색은 시체 색깔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경제적으로 궁핍하면 남은 길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네번째 단계는 바로 이 죽음의 무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쓰인 사망 이라는 단어를 온역이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는데, 이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나타냅니다. 중세에도 페스트가 유럽 전역을 휩쓸어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비극이 있었습 니다. 지난번 걸프전이 터졌을 때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 이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였지 않습니까? 현대에는 전에는 알 지 못했던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서 인류를 위협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이즈입니다.

전인류의 사분의 일이 죽는다는 것은,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든 상징적으로 보든 인류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질병 들이 지구상에 점점 더 많아지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검이 인 위적인 죽음의 원인을 보여 준다면, 흉년은 자연적인 재해를 나타낼 것입니다. 또 땅의 짐승으로써 죽인다는 것은 자연 속 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피해로 볼 수도 있고 그 당시 그리스 도인들이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들에게 찢겨 죽임을 당하 는 사실을 문자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죽 음이 지구를 덮고 있습니다. 이것이 네번째 심판의 무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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