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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대의 여하를 무론하고 고통과 비애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 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이 피곤하며, 경제생활이나 문화생활을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더구나 사람의 정신생활인 심령의 상태는 복잡 다단한 세상에서 진정한 안식을 맛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진정한 위안과 안식 을 얻지 못하고 불안과 공포 가운데서 지낼 때가 많습니다. 더우기 현대교회 처럼 조직망 위에 서 있는 성도들은 적지 않은 불안을 때때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의 구하는 바는 안식과 위안과 휴식입니다. 해마다 여름철 이면 휴가철을 맞이합니다. 일년의 절반을 보내고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좀 해 소해볼 양으로 각각 산으로 바다로 부지런히 찾아 갑니다. 그런데 휴가를 지나보면 오히려 온갖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피로와 스트레스만 더 많이 접하고 맙니다. 만원 버스, 만원열차,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자가용 행렬로 거북이 운행에 교통 지옥을 맛봅니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해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면 시 끌법적한 고성방가와 취기에 흔들에 대는 모습하며, 아무데나 버려진 오물더미에서 솔솔 흘러 오는 썩는 냄새,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장사아치들 은 한대목 잡으려고 터무니 없는 바가지 요금으로 배짱 팅기며 장사하지만 사 주어 야하는 피서지 분위기, 이 모든 것이 쉬러간 사람들을 더 피곤하게 만듭니다. 휴가 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면 남는 것은 올해도 휴가를 다녀 왔다는 것과 피곤함 과 개운치 못한 마음 뿐입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쉼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 은 피곤하고 힘들기에 날마다 그 피곤함을 들기 위해 안식을 찾아 나섭니다. 틈만 생기면 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달랩니다. 좀더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술 이라는 더 큰 위안을 찾아갑니다. 술과 담배로서도 만족 못하면 아편으로 위로 받고자 합 니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으로는 결코 참 안식과 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을 통해 안식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렇게 세상 사람들이 찾는 안식은 또 다시 그 육체와 아울러 심령을 더욱더 피곤하 게 만들기 위한 시한부 안식입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영원한 안식이 무었이겠습니까 이에대한 해답이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본문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 시는 쉼과 안식이 무었인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살펴 보고자 합니다.

I.우리들(인간)의 모습

1.수고하고 짐진자들입니다.

인간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수고의 짐을 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혹자는 율법을 지켜야만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줄 알고 부지런히 율법적인 생활을 하므로 피곤합 니다. 또한 혹자는 세상의 안락과 명예와 이익을 얻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줄 로 믿고서 이 일에 날마다 수고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더 안락한 생활을 영위 하게 될까 어떤 방법으로 힘써야 더 큰 명예를 차지 할수 있을까 궁리하느라 쉬 일 날이 없습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아무리 피곤한 일이라도,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아무리 악한 일이라 할지라도 덤벼드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의 생 리요, 모습입니다.

 2.무거운 짐을 진자들입니다.

더구나 인생은 무거운 죄와 죄책의 짐에 짓눌리고 있습니다. 장래에 대안 불안 과 지난날에 대한 끝없는 후회의 짐으로 마음이 가벼울 날이 거의 없습니다. 때로 는 힘겨운 질병의 짐을 지고 전전긍긍해야 하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갈 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날 이면 날마다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에 조심의 길을 가야하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 아야 하는 분노와 슬픔의 짐에 마음은 잠잘 날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억척같은 마음의 짐을 지고, 젊은 이들은 성공 에 대한 야망으로 몸과 마음을 쉬임없이 가동시킵니다.

이와같이 인생사란 피곤함의 연속이요 무거운 짐을 힘겹게 버티며 짊어지고 나아 가는 짐꾼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쉼이 없고 피곤한 인생들을 향하여 예수님 께서는 쉼을 위한 초청을 하시고 계십니다.

II.우리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무거운 짐과 그 비참함을 아시고 친히 찾아 오셔서 참된 안식과 쉼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런데 이 주님의 초청에 응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거절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는 어떠한 자들을 더욱더 관심을 가지시고 부르십니다.

 1.예수님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1)목마르고 돈 없는 자를 초청하십니다.(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쉼과 영혼의 평안에 목말라하는 심령들, 참으로 심령이 가난하여 겸손한 자들은 주님의 초청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2)고통받는 자들을 초청하십니다.(막3: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 주님은 질병으로 시달리며 고통받아 한없이 지쳐있는 심령들을 민망히 여기시고 친히 찾아가 그 모든 고통을 거두어 주셨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신음하는 자가 주님을 찾아가 병 낫고자 간절히 간구할때에 네가 원하니 흉악한 질 병에서 놓임을 받으라 선포하시며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온전한 쉼과 평안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비천하며 약하고 가난하고 압제 당하는 자들에게 찾아가 하늘의 영원한 소망을 주시며 모든 세상의 고통과 압제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3)죄인을 초청하십니다.(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흉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었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2.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사람들1)악을 행하는 자(사65:12)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살육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 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 며 나의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2)세상의 영화를 누리는 자(마22: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 하거늘" 3)영생에 무관심한 자(요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4)영의 귀가 막히고 영의 눈이 먼 자(마15: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한대" 5)마귀에 사로잡힌 사람들(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 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III.배워서 얻는 예수님의 쉼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허덕이며 땀흘리고 비틀거리는 인생들에 게 휴식이 넘치는 삶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쉼 과 평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1.내게로 오라! 진정으로 쉼과 평안을 체험하고자 한다면 우선 주님께로 나아오라고 명령하십니 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서 주님의 쉼과 평안을 얻겠다는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는 주님 앞으 로 나아가야 합니다.

 2.멍애를 메라! 주님께서는 무거운 짐에 수고하는 자들을 오라고 하시고는 그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멍에를 짊어지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연고 일까요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가 갖다준 죄와 질병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의 멍에 등을 다 꺽어 버리시고 또, 벗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갈5:1절에서 "그리스도 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 에를 매지말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죄악과 저주와 죽음으로 끌어가는 종의 멍에를 단호히 그리스도의 은혜로 벗어 버려야합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멍에를 짊어져야합니 다.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멍에는 인간들이 만들어 짊어지고 다니는 멍에 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멍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짊어 지워 주시는 멍에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데 필 요한 의무의 멍에를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국민은 국민으로서의 짊어져야할 기 본적인 의무의 멍에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삶을 살아 가고자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기본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멍에인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멍에란 종의 멍에라는 의미도 있고 또한, 유익이란 의미도 있습니 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는 성도가 되려면 종과 같은 겸손 한 자세로 모든 의무의 멍에를 짊어져야 합니다. 동시에 이 멍에는 우리를 쉽게해 주는 도구입니다. 농부가 짐승에게 짐을 지울 때에 멍에가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를 잘 압니다. 짐승에게 짐을 지울때 멍에없이 짐승의 등에 짐을 지우면 짐승의 맨등 에 상처를 내고 고통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멍에가 없이는 한꺼번에 많은 짐을 짊 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멍에란 짐승에게 있어서 참으로 좋은 도구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멍에가 없는 맨 어깨나 등에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삶의 짐을 얹지말라는 것입니다.

 3.나의 멍에를 메라! 예수님께서는 다른 멍에가 아니라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의 뜻은 우리 인간의 지혜나 수단으로 멍에를 제작하지 말고 예수님의 멍에 아래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간이 스스로 휴식을 얻기 위하여 제작한 멍에는 술,쾌 락, 사기, 음란 등으로 이는 일시적인 환락은 가져다 주지만 무서운 죄악의 포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제공하는 멍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들에나가 농부가 여러 마리의 소에 한 멍에를 얹어서 밭을 가는 것을 종종 봅니다. 특히 어 린 송아지에게 밭고랑을 바르게 걷고 또 주인의 명령에 순복하여 행동하는 것을 가 르치기 위하여 어미 소의 멍에아래 함께 두어서 밭을 갈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상 멍에를 끄는 것은 어미 소이나 멍에 안에 어미 소와 송아지가 함께 있으므로 송아지도 멍에를 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송아지는 어미소를 그냥 따라가기 만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예수 님께 나아와 모든 짐을 맡기고 주님의 멍에아래 들어오면 주님께서 우리 짐을 져주 심으로 우리는 주님의 멍에 아래서 인생의 짐을 짊어지되 쉽고 가볍게 휴식과 즐거 움이 넘친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그리스도의 멍에 아레 들아갈 수 있습니까

4.내게와서 배우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 를 메고 내게서 배우라" 예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신 가볍고 편한 쉼의 멍에는 배워야 들어갈 수 있는 멍 에 입니다. 그러므로 이 쉼은 배워야 얻을 수 있는 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 용서 받고 구원 얻는 것은 배움이나 노력으로 말미암지 않고 말씀을 듣고 믿음 으로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과 생활의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쉼을 얻는 비결 은 배워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연조가 길고 신령한 생활의 비결을 배우면 배울수록 더 깊 은 평안과 휴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었을 배워야 주 예수님의 멍에 아래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 님께서는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멍에가 온유와 겸손입 니다.

온유란 무었을 의미할까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온유를 무력함 내지 무저항을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온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온유란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길들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 듣고, 배우며, 순복하고, 의지하며,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후에라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끊임없이 가르치시고 또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깨뜨리셔서 온유한 성도로 변화하게 하시며 그 결과로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순복하고 믿게 하심으로 넘치는 평안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령의 가르치심과 연단을 받아 온유하게 되면 될수록 삶의 짐은 더욱더 가벼워지고 쉬워지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들어가는 데는 또한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예 수님꼐서는 친히 하늘 영광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으로 찾아 오셨고, 또한 인간 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더욱 낮추사 가장 처참한 십자가의 죽음까지 감수하 셨으니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멍에 아래 들어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낮추고 겸비 하지 않고서는 안됩니다.

고집이 세고 완악하여 교만한 사람의 생애는 항상 무거운 짐과 수고로운 일들로써 피 눈물을 흘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아온유하고 겸비하게 된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같이 하셔서 휴식과 쉼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시 며 부르십니다. 그리고 와서 당신의 멍에 아래로 들어 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멍에 아래 들어갈 때에 진정 한 쉼과 평안과 휴식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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