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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의 소자를 귀하게 여기심 (마 18: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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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족케 하는 자의 죄(1-11) 남을 실족케 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으로 범죄케 하는 일을 말합니다. 실족케한다의 스칸달리조(skandaljo)란 말의 뜻은 ‘걸리게 한다’, ‘넘어지게 한다’, ‘범죄케 한다’는 의미로 이것은 그 행위에 있어서 고의적인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유혹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한다던가, 이단으로 이끌어 생명의 길에서 떨어지게 한다던가, 거짓 진리로 속여서 잘못된 길을 가게 하는 일 등은 다 남을 실족케하는 일입니다.

一 . 실족시키는 대상 예수님은 천국에서 누가 큰 자냐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린 아이와 소자를 혼돈하기 쉽지만 이 두 단어는 같은 뜻이 아닙니다.

 1. 어린아이 실제적인 어린 아이를 뜻합니다. 어린아이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어린이들도 어른들도 동일하게 필요합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토대로 하여 어린이들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사역에 포함되어야할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린 아이를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그 어린 아이에게 예수님의 구원의 도리를 가리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소자 예수님은 어린아이에게 관한 말씀 끝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소자란 말은 먼저 말씀하신 어린 아이와는 구별된 말입니다. 주님이 나를 믿는 이 소자라고 하셨을 주님은 그 곳에 있었던 주님을 따른 무리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소자란 말의 미크로스(mikros)는 어린아이처럼 보잘것없이 보이는 존재를 가리킨 말입니다. 이들은 생명의 길을 걸으려고 걸음마를 시작한 연약한 심령들입니다. 이들은 외부적인 유혹이나 작용에 의하여 쉽사리 넘어질 수 있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입니다. 이들을 어떤 이유에서이건 실족시키는 일은 차라리 그 목에 무거운 연자 맷돌을 매달아 깊은 바다 가운데 빠뜨려 버리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을 믿음에서 실족시키는 일은 그 사람의 참 생명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을 죽이는 죄보다 더욱 큰 죄가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二 . 소자를 실족시키는 일 실족시킨다는 말은 고의적인 뜻이 들어 있습니다. 거짓으로 어떤 계책으로, 속임수로 신앙이 연약한 사람으로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일입니다. 이 죄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영적인 살인 행위이기 때문에 극악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남을 실족시키는 일이 없도록 다음 네 가지 사항을 명심해야 합니다.

 1. 우리는 다른 사람을 죄의 길로 인도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비록 적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죄로 유혹 받도록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술을 많이 마심으로 부주의하여 벌거벗은 몸으로 자게 된 것이 그의 아들 함으로 하여금 죄의 길로 유혹 받게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많은 함의 자손들이 저주를 받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2. 우리는 신앙적인 본이 안되는 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으로 실족시키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종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모든 행실이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선한 일에 열심을 품고 덕을 세우며 다른 이에게 칭찬을 받을만한 행실을 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3. 우리는 혹 잘못된 성경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올바른 교리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증거 하는 진리란 어느 한 구절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참된 증거에서 진리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 경홀히 여기게 함으로 실족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며, 생명으로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그렇게 행동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들에게 존귀하게 여기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연약한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듯한 행동을 취하므로 그 사람으로 실족시키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三 . 죄에 대한 우리의 결단력 예수님은 실족케하는 죄의 중함을 여러 차례 경종 하셨습니다. 이 죄는 세상에 화를 불러오는 죄라고 하셨습니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남을 실족케 하는 범죄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지만 실족케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으로 인하여 실족함을 입은 사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돌이키게 하심으로 다시 일으키심을 받을 수 있는 소망이 있지만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한 사람은 그 보응을 하나님으로부터 반드시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남을 실족시키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죄를 결연히 끊어버리는 결단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손이나 발이 범죄케 할 때에 예수님은 몸의 한 부분이 범죄 했을 때 그 부분을 잘라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온전한 몸으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니 차라리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액면대로 받아 드릴 말씀이 아니라 하나의 비유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라(롬6:11)는 말씀이 바로 이 비유에 해당되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버리려면 이같은 결단력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2. 네 눈이 범죄케 할 때에 주님은 눈이 너희로 범죄케 할 때에는 눈을 빼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어찌 눈으로 나올 것입니까 마음에 있는 더러운 것이 눈을 통하여 범죄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뽑아버린다고 죄에 대한 용서가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이행해야할 회개에 따르는 결단력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회개란 이처럼 죄를 끊어 버리는 실행력이 없이는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삼가 이 소자 중에 그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연약한 심령들을 주님의 심정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고 말씀하심으로 그들도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2 잃은 양을 찾으시는 예수님(12-14) 소자의 생명을 귀하 여기시는 주님은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서 그들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심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로 들려주신 잃은 양의 경우는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니은 일백 마리의 양과 한 마리의 양을 대조적으로 등장시키셨습니다. 일백 마리란 한 교회의 온전한 교인 수효를 가리키신 것이고 잃은 한 마리란 목자를 잃은 양이며, 길을 잃은 양입니다.

一 . 누가 잃은 양입니까

1.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 생명의 길을 이탈한 소자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죄의 유혹을 받아 실족한 무리들입니다. 이 세상 우리 주변에는 실족케 하는 많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실족케 하려는 사단의 손길이 거짓 형제들을 통하여, 거짓 선지자들을 통하여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을 통하여 그 틈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5:8-9)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2. 아버지의 집을 나간 탕자도 있습니다.

탕자란 말이 우리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지만 탕자란 궁극적으로 아버지 집에 돌아온다는 사실이 전제된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되도록 선택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런 잃은 양을 찾으려고 애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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