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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의 사명 (마 2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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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안에서 만나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 라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입니다. 요일4: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 게 하려 하심이니라"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 대한 사람을 확 증하셨습니다. 롬5:8"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 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로 우리는 요한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말씀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지만 우리는 하나 님의 자녀로, 한 형제가 되어 각각의 처지에서 살아오다가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은 물론 하나님의 사랑이며, 성령의 역사 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여 주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멀리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이였고, 가깝게 는 한국선교초기의 선교사들이였으며, 또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 도록 전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복음 이 전해진 과정을 우리는 좁게는 전도의 결과라 하고 넓은 의미에서 선교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이 한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 광돌릴 수 있게 된 것은 많은 이들이 선교적 사명을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의 빚진 자들입니다. 이 빚을 우리는 갚 아야 합니다. 선교의 빚을 우리가 갚는 방벋은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여러분과 함께 선교적 사명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생각하면서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마28:19-20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 40 일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다가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선교의 대헌장이라고도 말합니다. 교회의 3대 사명은 케리그마(선교), 디아코니아(봉사), 코이노니아(친교)입니다. 그런데 친교와 봉사는 선교를 위한 전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 회의 역활중에 최고의 것입니다.

유명한 신학자 에밀 부르너는 "불이 붙음으로써 불이 있는 것과 같이 교회는 선교에 의하여 존재한다."고 말함으로 교회의 존재이유가 곧 복음선교에 있다 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도날드 밀러라고 하는 신학자는 "선교는 교회의 생 명이 되는 것이며 교회를 선교를 배척하는 경우에는 교회로서의 의의를 상실 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현대3?학자들에 의해서 선교의 중요성이 재발견된 것입니다. 좀더 요약 한다면 "선교는 교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 교회전체의 홱 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의 역활을 감당할 때 참다운 교회 가 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교회를 새롭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즉 교회란 무엇이냐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대로 교회를 헬라어로 에 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는 에크라는 말과 크레시아라는 말의 합성어 입니다. 에크는 "나왔다"는 뜻이고, 크레시아는 "부름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교회 곧 에클레시아는 "부름을 받아 나온 무리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나온 무리를 가리켜 교회라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예배당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 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우리는 교회의 한 지체로서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는 선교를 감당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교회가 선교를 하므로 교회가 되는 것처럼 교회를 이루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역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때에 진정한 의미의 성도가 되 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외국의 교회지도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이 시대의 선교의 사명 을 제일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선교의 잠재력을 가진 나라는 한국이라고 합 니다. 여기서 선교라고 할 때, 선교라는 개념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보통 선 교라는 말과 전도라는 말을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구별과 이해는 선교는 해외선교로 이해하고, 전도는 국내선교로 이해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선교는 사회봉사적 차원으로, 전도는 개인 영혼구원으로 분리하여 말하는 경 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와 선교를 이렇게 이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전도 는 선교의 한 부분이고 선교는 전도를 포함한 보다 넓은 의미로 이해하면 좋 겠습니다. 이 말씀을 제가 길게 설명하는 것은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선교라 하면 너무 해외선교라만 생각하고 그방면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 다. 해외선교도 중요하지만 국내선교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외선 선교가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국내선교가 이뤄지지 못하면 오래 버틸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주변에 대한 선교를 강조합니다.

한국교회가 선교100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된데는 많은 원인과 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면 기독교가 교육사업에 힘썼고, 또한 학원선교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입 니다. 지금도 많은 기독교 학교가 있고 이들 학교 출신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배출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학원선교가 기독교계통의 학교에서는 수 월하고 담당교사가 있어 원할한 편입니다. 그러나 공립학교에서 학생들에 대 한 선교를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많은 어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러 한 가운데서도 여러분들이 학원선교에 애쓰시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감사한마 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보다 많은 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선교적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이점에서 대하여 여러분 나름대로 기도하시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 셨고 또 현재 실천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몇 가지를 간추려 말씀드립니다.

 1.새로은 인식이 필요합니다. 즉 여러분의 사명을 새롭게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학문을 교육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투자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교과목을 지도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믿는 선생님이든 믿지 않는 선생님이든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선생님은 여기 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지식만 가르쳐 고등학교에 혹은 대 학에, 또는 사회에 진출시키는 것만해도 참으로 힘들고 큰일이라고 인정합니 다. 학생들에게 이러한 현실적인 삶의 문제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생명, 영혼 까지 구원하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셨다는 사명감을 가여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적인 차원에서 볼때 저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은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천하 보다 귀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교사의 사명을 주셨다고 새롭게 깨닫고 사명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사명감이 있을 때 선교에 힘쓰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2.무엇으로 선교할 것입니까 기독교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해야 합 니다. 기독교학교에서는 예배시간과 성경공부시간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여러분께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학 생들에게 복음을 미칠 수 있겠습니다. 사랑입니다. 학생을 사랑하지 않는 선생님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은 형식에 그칠 때가 많 습니다. 즉 잘 하는 학생에 대한 사랑이 많고 속섞이는 학생에 대한 사랑이 적습니다. 아예, 어떤 문제학생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갖게 하기 도 합니다. 이러한 차원을 넘어선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랑입니까 부모가 자식에 갖는 그정도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야 하고, 희생적인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기적을 낳습니다. 저는 첫돌후 두 다리로 걷지 못하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성경학교 때 물가에서 고기잡고 있는 나를 발견한 교 회학교의 선생님이 나를 공부하는 곳으로 데려가 예수님은 이처럼 걷지 못하 는 사람도 사랑하셨다고 가르치면서, 저를 꼭 안고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사랑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좀 철이들어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오늘과 같이 완전치는 않지만 두 다리로 걷고 있습니다. 선생님 여러분, 학생들에 대한 여러분의 희생적인 사랑이 여 러분의 학생들에게 기적이 있게 합니다. 어떤 기적을 바랍니까 저들의 이름 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기적이 있게 됩니다. 기적의 사랑을 가집시다. 무엇 보다 학생들로 하여금 편애의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성어 거스틴은 원죄의 증거중에 하나가 질투심이라고 했습니다. 남학생이든 여학 생이든 모두 선생님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편애하는 느낌을 저들 에게 준다면 학생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교사에 대한 감정 전체가 삐뿔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는 구원할 수 있어도 하나는 실족하고 맙니다. 그 러므로 편애치 말아야 합니다. 편애를 극복사는 길은 모자라는 학생에게, 문 제학생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자라고 문제학생은 더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사랑의 양이 같아지게 됩 니다. 희생적이고, 편애치않는 사랑을 실천할 때 학생들에게 복음전파가 가 능케 됩니다. (관심/주는것/이해/용서)

3.믿음의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열심은 무엇입니까 열심히 예배드리고, 열심히 기도하며, 열심히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또한 열심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힘 을 다하여 열심히 가르칠 때 학생들은 성실성을 느끼게 되며, 언제나 좋은 인상을 갖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 교사로서 선교의 사명을 담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 하여 사명감을 새롭게 갖고, 사랑을 주며, 열심있는 신앙생활이 있기를 바랍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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