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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미 있는 고통의 축복 (마 0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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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이 아무리 성숙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결코 고통 그 자체를 기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고통을 기뻐하라는 말이 결코 신앙인은 마땅히 고통을 즐거워 할 본능이 있다는 말은 아닌 것인 것입니다. 신앙은 가학적이거나 자학적인 것을 추구하는 몰상식한 종교는 아닙니다. 단지 성경은 우리들의 인생에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어떠한 인간이라도 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오해 중에 하나는 마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특히 신앙이 성숙한 사람일 수록 고통이 많을 것이라는 오해가 우리의 헌신과 신앙의 자유를 파괴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죄를 범한 이후로 고통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살아가는 동안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부터 고통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며 때로는 고통을 경험하고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고통하는 인간들에게 기쁨과 자유를 하나님이 주기 원한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시작은 고통속에 있는 의미를 찾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도덕적인 고통이냐 아니면 부도덕함으로 인한 고통이냐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좀 더 종교적으로 표현한다면 신앙으로 인한 고통이냐 아니면 세상적인 욕심으로 인한 고통이냐 하는 말로 이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의 원인이 만약 신앙적인 이유와 도덕적 이유로 인한 것이라면 우리는 위로와 평안을 회복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통의 원인이 욕심이나 부도덕함으로 나타난 것일 때는 결코 그 고통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한은 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으로 부터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우리의 신앙을 침체로 몰고가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말씀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세 가지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1.의미있는 고통의 성격
성경은 신앙인들에게 결코 인생이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을 전쟁과 비유시켜 말하고 있다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고통이라는 말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으로 경험되는 말일 것입니다.
돌이켜 볼 때 고통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이라는 말이 결코 낯선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통을 당 할 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을 찾아 보셨습니까
성경은 고통이 시작되는 원인을 두 가지로 압축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한 고통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신앙으로 인한 고통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잊고 싶어 하는 것들을 확인 시켜 줍니다. 우리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로 부터 도망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이러한 마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고통이 죄로인한 것이라면 마땅히 회개를 가리키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때 주님의 용서로부터 우리가 자유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나의 죄로인하지 않은 고통이 있을 수 있다고 성경은 또 말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우리가 이러한 고통도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고통은 여기서 시작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했을 때 세상은 용납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불이익으로 우리를 괴롭히며 아픔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분노와 회의로 몰고 갈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고통의 원인이 주님을 닮아 가고자 하는 신앙적 이유로 당하는 고통이라면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고통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나의 죄로인한 것인지 아니면 주님을 닮아가려는 열망에서 당하는 고통인지에 대해 혼란을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가지고 계시다면 우리가 이제부터 당하는 고통이 결코 죄의 이유만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부족함은 주님을 닮고자 하는 열망으로 부터 경험되는 인격적인 고통일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복이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를 행합니다. 그러나 절대 정의를 이루지 못하는 우리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처럼 절대적인 사랑으로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면에서 부터 경험되는 인격적인 고통과 외부로 부터 공격되어지는 고통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고통으로 부터 자유로와져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절망하기 보다는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주님을 위해 받는 고통이라고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받는 고통을 설명 할 때 완전한 삶을 그 기준으로 찾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완전하지 못한 정의와 사랑으로 고통합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행복을 잃어 버리는 비밀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삶을 말씀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죄로인한 고통을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주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고통에서 자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에 무력감을 가지기 전에 주님의 권면에 순종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2.고통에 대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주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우리의 인생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누리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고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에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의 시각으로 보는 인생관은 서투릅니다. 주님안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세상의 상식으로 우리의 인생을 평가합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며 양심적인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능력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교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거듭난 이후로부터 자신의 능력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고통스럽게 느꼈다면 그 배경에는 우리의 교만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관점으로 자신의 인생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두 가지 내용의 이유를 들어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현실을 보기 보다 약속을 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은 우리가 생각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저도 이러한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과거의 역사를 들어 그 미래가 거짓이 아니라는 확증을 주십니다.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고통이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신앙을 가진자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고통의 대부분은 신앙인이기 때문에 신앙이 있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에 기쁨을 누리는 것이 성경적일 것입니다. 십자가의 용서와 주님의 사랑을 믿는 우리들이라면 우리의 인생에 대해 가치를 누려야 하는 것이 마땅 한 삶일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팔복에 대해 교훈을 주시면서 그 교훈의 끝을 오늘 본문으로 결론을 대신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누리는것이 결코 죄악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인생이라면 우리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기뻐하며 즐거워 하며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하나의 결론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형태로든지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진정한 고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결론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인생을 자신의 편견과 감정에서 벗어나 말씀으로 살펴 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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