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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3:1-5)

첨부 1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보면 감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정치계에도 전부 남의 허물 들추기에 정신이 없고, 사회 속에서의 백성들도 입에서 욕과 불평과 원망이 터져나옵니다. 경제는 어려워져서 부도나는 기업이 속출하고 가정에도 서로를 향한 감사와 기쁨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유는 하나님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의 고백은 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이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가만히 묵상하는 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와 감사를 하도록 만듭니다.
예)풍랑이 이는 어두운 바다에 배 한척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 때에 멀리 아주 희미하게 불빛이 보입니다. 길을 안내하는 등대인 것입니다. 이 배의 사공이 어떻하여야 살아날까요 지금 일고있는 풍랑과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면서 불평과 원망을 한다면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희미한 불빛이지만 그 빛을 바라보면서 그 빛을 향하여 노를 저어간다면 그는 살아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세상을 보고 문제를 보고 답답한 일을 보고 원망과 불평으로만 일관한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희미하지만 하나님의 하신 일을 헤아리면서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손길을 의지하면 거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또 다른 불평과 원망을 낳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성도가 누리고 있는 또 하나의 삶의 무기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있지만 감사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예)10명의 문둥병자의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부르짖어 고침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 가운데 9명은 감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현 주소인지 모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있습니다. 눈물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는 모습은 우리가 쉽게 할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1.만약에라는 말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내가 부자가 되면, 병을 고치면, 이런 좋은 환경이 좋아지면, 내 믿음이 좋아지면 등등으로 “만약에”라는 말 때문에 감사를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에서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 고난이 있고, 좋지 못한 환경이 있다고 하여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보이지 않는 당신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랍비 아키바의 이야기-
랍비 아키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나귀와 개와 작은 램프를 가지고 있었다. 밤의 장막이 내리자 아키바는 오두막 한 채를 발견하고 거기서 잠을 자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그는 램프를 들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바람이 불어 램프가 꺼지자 그는 할 수 없이 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리가 와서 옆에 있던 개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자가 와서 당나귀를 물어갔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는 램프를 가지고 홀로 터덕터덕 출발했습니다. 이윽고 어떤 마을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는 전날밤 도적이 나타나서 그 마을을 파괴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에 램프가 꺼지지 않았다면 그도 도적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개가 살아 있었다면 개 짖는 소리에 도적에게 발견되었을지도 모른다. 당나귀도 역시 시끄럽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모든 것을 잃은 덕택에 그는 도적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것입니다.
랍비는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 나쁜 일도 좋은 일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음을 믿고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깨우쳤습니다.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어려운 중에서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중에서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매사에 불평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그가 수박 밭을 지나게 되었는데 가냘픈 줄기에 머리통만한 수박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쳇 하나님도 너무하시지 저 가냘픈 줄기에 저렇게 커다란 수박을 매달아놓고 이 커다란 고목나무엔 쬐만한 밤톨을 달아놓다니"
그가 어느날 밤나무밑에서 낮잠을 즐기는데 그의 머리위로 밤송이가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깨고 말았다. "큰일 날뻔했군, 만약 하나님이 이 나무에다가 수박을 매달아 놓았었더라면 난 죽었을지도 몰라...." 그 이후로 그 사람은 어떤 중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만약에...”라는 말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의 환경과 처지에 따라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더욱 큰 감사의 조건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2.우리의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많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예)어느 분이 그럽디다. 오히려 가난하고 어려우면 욕심도 없고 감사를 더 잘한다고-그저 먹고사는 것만도 감사하다. 이 정도로 우리가 사는 것만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잘살게 되고 여유가 생기면 욕심이 생기고 좀더 좀더 하면서 자꾸 모자라게만 생각되어져 감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노태우 전대통령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 많은 돈을 무엇하려고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땅을 다 사서 다시 대통령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예)국민일보에 한나어머니라는 만화-똑같은 선물을 받아든 두 사람이 하나는 감사, 하나는 불평. 그것은 서물을 담은 그릇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4:11-13)“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도 우리의 신앙안에서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자족하기를 배워 올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간다면 지금 우리의 형편이 어떻든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에게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감사의 조건을 찾지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환경은 두가지의 모습입니다.
불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감사할 환경이 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흔히 컵의 물을 보고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겨우”라는 말과 “아직”이라는 말입니다.
예)남편 염가 양도-어느 잡지에 이런 해외 토픽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한 주부가 남편을 팔겠다는 이색 신문광고를 낸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주말이 되면 남편은 아내보다는 사냥이나 골프를 즐겼기 때문에 불만에 차있던 아내가 이런 엉뚱한 광고를 냈던 것입니다. 광고의 문안은 이러했습니다. 남편을 염가로 양도함. 사냥 도구와 골프채 및 개 한 마리는 덤으로 드림. 광고를 내니까 흥미를 가진 여성들로부터 60여 통의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남편을 구입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남편이 살아있다는 것을 다행하게 여기라고 이야기하는 한 과부의 충고가 있었고, 남편이 바람 안 피우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는 한 주부의 조언이 있었고, 남편과 헤어진 뒤 아이들의 양육 문제로 어려웠었다는 이혼녀의 충고가 있었고, 더러는 남편 말고. 개만 줄 수 없느냐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지금의 형편에서 불평과 원망의 요소를 찾지 마시고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증대시켜 더욱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정말 감사의 일이 발생하고 감사의 조건이 기적으로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1.공개적인 감사이어야 합니다.
(시35:18)“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57:9)“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이것은 하나의 간증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간증은 하나님이 나에게 향하신 일을 공개적으로 회중에서 찬양하며 감사하는 일입니다.

2.구체적인 감사이어야 합니다.
먼저 말로서 감사하여야 합니다.
다음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삶의 변화와 주님을 위한 헌신과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다음은 물질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말, 행동, 물질 이 세가지로 우리는 구체적인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3.진심으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예)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해 무우를 심었더니 어찌나 잘되었는지 거의 사람 몸만한 무우를 뽑게 되었다. 농부는 그 고을을 잘 다스려 주고 있는 원님의 선정 탓이라 생각하고 그 무우를 원님께 가져다 바쳤다 원님은 이 농부의 고마워하는 생각을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하다고 하속을 불러 물어보니 최근 큰 황소 한 마리가 들어온 것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원님은 이 황소를 농부에게주었다. 이 소문이 온 동리에 퍼지자 이를 배아파 하는 악한 농부가 무우를 바치고 황소를 얻었으니 황소를 바치면 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원님께 황소를 바쳤다. 원님은 고맙다고 하면서 관가에 들어온 것중에 귀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다 주라 했는데 이는 지난번에 들어 온 무우였다.
이렇듯 감사는 공개적으로, 구체적으로, 진심으로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와 감사의 조건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감사할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의 열매가 30배, 60배, 110배로 맺힐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내 마음에서 뽑아버리십시오.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예)감자와의 싸움-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를 지은 저자 다하라 요네꼬는 일본의 여성으로서 18세의 소녀때에 열차에 뛰어 들어 자살을 기도하다 두다리와 한팔을 잃고 남은 한손도 손가락이 셋만 남게 되었다. 그후 주님안에서 새 삶을 얻었고 사고 후 34년이 지난 지금 52세로 두자녀를 두었고 목사의 아내로 성실하게 살고 있다.
나에게 남겨진 손가락!
오른손에 남은 세개의 손가락으로 처음으로 한 개의 감자 껍질을 벗기려고 했을 때의 일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나의 기분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데구르르 굴러가는가 하면 바닥에 떨어져서 멋대로 굴러가는 감자를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식칼을 들고 좇아 다니는 나의 마음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초조감과 무서운 힘으로 덮쳐오는 절망감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조금만 더 계속되었더라면 손에 들고 있던 식칼로 무슨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처절한 목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손가락 세개로 식칼을 든 채,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처량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아버지여! 당신은 나 같은 인생도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것을 결혼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나의 가정은 당신께서 선물로 주신 가정입니다. 이제 나의 남편은 얼마 있지 않아서 돌아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도 허기가 져서 내가 만든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저녁 반찬으로 사용할 이 감자를 깎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나의 이 약함을, 이 처량한 상태를 무엇하나 빼 놓지 않고 다 아실뿐만 아니라 오늘까지 나를 인도해 오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여,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줄 압니다.
당신의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옵소서.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소서. 이 감자를 꼭 깎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내가 정신없이 기도를 끝내고 났을 때에 마치 잔잔한 물가에 차츰차츰 물이 차 오르듯이 형용할 수 없는 평안함이 나의 마음에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에는 정말 희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급히 다른 감자를 씻어서 도마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먼저 그것을 반으로 쪼개 놓았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둘로 쪼개 놓은 감자의 반을 도마위에 엎어 놓고 칼로 윗 부분부터 껍질을 벗겨 나갔더니 마치 감자가 도마위에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승리감에 나의 기쁨은 충만했고,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나는 그 말 저녁식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만 해도 나의 인생에 이렇게도 깊은 만족감과 충실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삶이 진정한 삶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에 감사와 희망의 눈물이 다시금 앞을 가려 왔습니다.
사랑하는 서부교회 성도여러분!
불평과 원망은 또 다른 불평과 원망을 낳지만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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