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감사의 생활 (골 03:12-17)

첨부 1


본문 15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사랑하는 믿음의 자녀들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권면한 말입니다.
너희는 여러가지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간곡한 권고 입니다.
신학자 디히트리히 본훼퍼는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구별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즐겁고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가, 그렇지 못한가에 있다 고 말했읍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란 감사하는 생활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의 특징이 감사생활 로 나타나야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감사생활 이 되겠읍니까
이 감사생활 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감사생활 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감사하는 생활을 잘 하려면 매사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읍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불평하는 마음에 마귀가 거한다.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가버린다. 감사하면 감사할 조건이 또 오고, 불평하면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또 오게 될 것이다 는 말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호도나무 아래 앉아 그 나무를 쳐다보며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호도나무를 잘못 창조하였다. 만약 하나님이 호도알을 수박덩이 만큼 크게 만들었으면 한 개만 따도 족할 터인데
그러다가 이 청년은 호도나무 아래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회오리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무꼭대기에 달렸던 호도 한 알이 떨어져 콧등을 쳤습니다.
벌떡 일어난 청년이 자기 코를 만져보니 피가 약간 흐르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불평하던 그가 기도하기를 하나님, 호도나무 잘 만들었나이다. 호도알을 수박덩이 만큼 크게 만들지 않고 작게 만든 것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꼭 같은 조건에서도 생각에 따라 불평할 수도 있고 감사할 수도 있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기를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자요,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할 조건을 쫓는 중에 우리가 그의 백성 이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옛날 중국인들은 요, 순의 백성됨을 자랑하고, 영국인들은 대주인임을 자랑했으며 스위스인은 자유인임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B.c 640-546)는 희랍인의 3대 감사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금수로 지음 받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2) 여자로 태어 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것
(3) 야만인이 아니고 희랍인이 된 것 등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그들이 감사하고 자랑할 조건보다 훨씬 더 감사하고 자랑할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에 보면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의 저희와 함께 거하시더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어느 다른 조건보다 가장 큰 감사의 조건일 것입니다.
둘째, 감사하는 생활을 하려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 가운데서도 큰 은혜가 바로 감사할 줄 아는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 은혜를 구하는 이가 많지마는 받은바 은혜에 대하여 그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심히 적습니다.
그러기에 옛날 다윗의 시가운데 보면 자기의 영혼을 깨우치며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송하여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1) 은혜를 많이 받은 이가 감사치 않고 (2)큰 은혜일수록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실 때에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서 문둥병환자 10명을 고쳐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열사람 중에 오직 한 사람 만이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여 예수께 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본 예수님은 좀 서운하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침을 받은 자가 열이 아니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열사람의 문둥병자가 다 나음을 받았지마는 그 은혜를 깨닫고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사람은 오직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그 한사람은 바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어떻게 봐도 사마리아인 보다는 유대인이 은혜를 더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를받은 유대인 아홉 명은 감사치도 않고 그냥 갔던 것입니다.
또 은혜가 클수록 잊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문자 그대로 여기서 말하는 문둥명자와 같이 참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미국 노예시장에서 불쌍한 흑인 노예가족이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사 한 분이 나타나 흑인노예 부모를 비싼값을 치루고사서 흑인노예들에게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가고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시오 하고 그들을 노예에서 풀어 주었습니다.
이 노예들은 너무나 감격하여 말하기를 이제 내가 다른 곳에 가서 노예가 다시 될지라도 나를 구출해 준 주인님을 위해서 사랑받고 평생 살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마귀의 종이 되고 죄의 종이 되었을때 예수님의 피값으로 우리를 자유롭게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는 이 은혜를 자유롭게 맛볼 수 있으며 이 받은 은혜를 남에게 자유롭게 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역사를 좀 거슬려 대원군이 집권했을 당시만 해도 얼마나 많은 크리스찬이 순교를 당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같은 나라이면서도 이북 땅에는 신앙의 자유가 뺏겨져 있습니다.
이북 뿐만이 아닙니다. 아직도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부자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에서는 만일 기독교로 개종하여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그는 당장에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직장을 잃어버리고 혼자서 노동을 하면서 갖은 박해 속에서도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벌써 외국선교사는 본국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교도들이 물건을 훔치면 당장에 손목을 자르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손목을 자르는 가혹한 회교도의 형벌보다 사회제도를 개선하여 물건을 훔치지 않게 하는 기독교를 동경하고 많은 회교 청년들이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입니다.
또 회교도의 가정에서는 부인을 다섯까지 얻도록 되어 있어서 여러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 불행한 것을 보고서 기독교로 전향하는 회교도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사를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 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에 자유롭고 풍부할 생활을 향락할 줄은 알면서도 그 축복을주신 하나님께는 감사 할 줄 모르는 우리는 회개 해야 할 것입니다.
피이핀 이라는 사람은 자기는 세가지만 있으면 감사하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첫째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건강한 몸이요, 셋째는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 빼앗긴다 할지라도 자유스러운 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감사하는 생활을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그때의 불신세계를 말할 때 두가지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한다 고 믿지 않는 이가 하나님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냥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조건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습니다.
수량의 기준이 아니라 마음의 기준입니다.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고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100만원을 가지고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만원을 가지고도 감사하는 이가 있습니다.
매튜 헨리라는 유명한 주석가가 있습니다.
이분이 한번은 저녁 늦게 집에 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났습니다.
얻어 맞기도 하고 옷도 찢기고, 시계와 그밖의 돈도 다 뺏겼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의 모습을 보자 부인과 자녀들이 너무나 놀랍고, 분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이 어떻게 하나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기 서재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내용인즉
(1)내가 다치고 돈을 빼앗기긴 하였으나 생명을 잃지 않았으니 감사하고
(2) 지금까지 이 골목을 12년간 다녔으나 오늘같은 날이 없이 그간지켜 주
셨으니 감사하고
(3) 세상에는 남을 해치려는 못된 강도가 있는데 나는 목사가 되게 해 주셨
으니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그 강도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있는 이와 없는 이의 차이라고 봅니다.
믿음이 없으면 왜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나
왜 하나님이 손해나게 했나
불평과 원망을 하며 그 강도놈 벼락이나 맞아라! 하고 저주했을지도 모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평안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울 때도 감사를 드리고, 순경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살 때에만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욥이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가 다 없어진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이라.
이 말밖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섬기다 그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가게 될 것을 알면서도 전과 똑같이 하루에 세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문을 열어놓고 감사의 기도 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환경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심한 나병환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병은 점점 심하여져 코와 손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고 썩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하나님 내가 이 병으로 온몸이 썩어져 죽는다 할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나의 성대만은 상하지 않게하여 줍소서. 그리하면 이 성대를 가지고 내 생명 다하는 날 까지 하나님을 찬양 하리이다. 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입니까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 존 하갈이라는 분은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려고 하던 1950년에 자기의 아들이 갑자기 뇌성마비에 걸려서 쓰러졌읍니다.
그분은 비록 아들이 불치의 병으로 누웠으나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리혀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 아들의 병을 오히려 감사합니다.
저 아들로 인해 나를 겸손하게 만드셨고 남의 어려움을 돕는 마음을 주셨으며, 내 아들처럼 병들어 시달리는 이웃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고 복음을 전할 수있는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고 했읍니다.
이분은 나중에 유명한 부흥사요, 전도자가 되셨읍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
그는 바로 어느 경우도 감사를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 입니다.
지난 1년을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감사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긍정적인 마음이요, 찬송하는 마음이요, 축복을 가져오는 비결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