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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날을 기다리며 (슥 09:8-12, 히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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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들은 또 다시 대강절을 맞이했습니다. 오늘이 교회력으로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의 시작은 대강절 첫째주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대강절은 교회력으로 신년이 되며, 따라서 대강절 첫째주일인 오늘이 신년 정월 초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대강절 첫째주일은 해마다 11월 27일에서 12월 3일 사이에, 그 어느 한 날에 옵니다. 그리고 대강절은 늘 4주일을 지키게 됩니다. 그 길이는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길면 28일간이고, 짧으면 22일간 입니다. 11월 27일에 대강절이 시작되면 28일간이 되고, 12월 3일에 대강절 첫째주일이 시작되면 22일간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의 대강절 첫째주일은 11월 27일이었고, 금년은 바로 오늘 12월 3일이 대강절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성탄절 이브까지 22일을 대강절로 지키게 됩니다. 교회력으로 신년 새해를 맞이하시는 여러분들과 가정 위에 신령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대강절(Advent)이란 것은 "도착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기차역이나 공항에 나가서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키는 이 대강절은 다시 오시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 땅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해마다 되돌아오는 대강절을 지키는데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을 회상하면서, 또 다시 지금 나의 마음속에 말씀과 영으로 임재해 주실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있는 불신의 세계와 가족들과 이웃들의 마음속에 임재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앞으로 마지막 때, 그 날에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로 지키는 것이 대강절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강절 계절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이토록 즐거움과 기쁨으로 성탄절까지 앞으로 4번의 대강절 주일을 지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즐거움과 기쁨으로 우리 주님을 기다리는 이 계절에 나의 마음속에 환한 빛으로 주민께서 찾아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바랄 것은 기쁨과 희망을 주시는 주님께서 나의 가정 한 복판에 임재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이 계절에 우리 모두 내가 사는 이 어두운 사회 구석구석에 빛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진실로 임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개인이, 나의 가정이, 우리교회가, 이 사회와 이 나라 이 백성이 보다 밝게 살아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박해시대를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은, 악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기 때문에 그날을 한없이 고대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교인들은 피곤해지고, 신앙에서 떠나는 이들도 있었으리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권면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히브리서를 쓴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들의 본문에서(히10:19-25) 대단히 중요한 것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에, 그 날을 기다리면서 성도들이 힘써야 할 몇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권면 합니다. 히브리서는 레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레위기의 해석자가 바로 히브리서 기자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죄를 씻는 제사행위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이 제사(속죄제) 에는 제사장이 있어야 했고, 희생제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희생제물 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범죄한 백성들의 죄가 사함을 받고서 비로소 저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양이 되시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롭고 살 길을 터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능력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온전한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온전한 믿음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내가 깨끗하게 되고,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죄악입니다. 죄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기다리면서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온전한 믿음을" 지키기에 어려운 시대에 사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애타게 믿음을 지키도록 권면하기 위하여 히브리 11장에서 과거의 신앙의 위인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믿음, 에녹의 믿음, 노아의 믿음, 아브라함과 모세의 믿음, 이토록 믿음의 조상들을 본보기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불의 세력과 칼날과 악형과 희롱과 채찍, 결박, 투옥, 돌로 치는 것, 톱으로 켜는 것, 유리하며 궁핍하게 되는 것과 환난과 학대 등과 더불어 용감히 싸울 것을 권면 했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은 믿음 없이는 도무지 극복하고 이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11:33-40) 이 시대에 옛날과 같은 그같은 박해는 없어도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많습니다. 무신론, 공산주의, 자본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이기주의, 자기 중심주의 등....
둘째로, "소망을 굳게 잡자"고 권면 합니다. 23절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라는 이 말씀은 "그날을 기다리면서"흔들리지 말고 "소망을 굳게 잡자"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에서 고난 가운데 있는 신도들을 위로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딜 수 있도록 소망에 관한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끝까지 견고히 잡자"(3:6)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부지런하여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이다"(6:11)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11:1) 우리들의 소망의 근거는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한 바를 꼭 지켜 주시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며, 소망하며,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요즈음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살은 왜 하는 것일까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기 때문에 생을 포기해 버립니다. 한 정신과 의사선생님이 자살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데, 불합리한 입시제도와 성적위주의 교육제도라는 사회적인 요소와 개개인의 자아능력 부족, 가정의 강압적인 분위기라는 개인적 가정적 요소를 그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의사 선생님은 입시제도, 성적위주의 사회적 병리 현상보다, 개인의 적응능력 부족과 가정의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녀들과 부모들에게 다음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소망을 가지라고 권면 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는 길은 바로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에게는 사랑으로 감싸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과 행동을 하라고 합니다. 비록 자녀들이 현실적인 요구가 감당키 어렵고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이들을 잘 감싸주고 보호해 준다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가정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나 과잉요구로 가득차 있는 숨막히는 장소가 가정이 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가정 분위기와 부모님들의 태도가 입시제도보다 오히려 견디기 힘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시생을 가진 부모님들은, 우선 자신들이 강박감에서 벗어나서 평안한 여유있는 마음으로, 가정분위기를 편안하게 하여 자녀를 믿고 신뢰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자살은 그가 처한 현실문제나 상황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한 장래에도 도무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극한적 상황에서, 그 고통을 벗어나려는 방법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시생들과 부모님들은 희망을 갖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입시의 당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살은 인생의 최대의 패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살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자살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산 소망이며, 희망이 되십니다. 이 소망을 굳게 잡고 그 날을 기다리십시다.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소망을 굳게 잡는 일입니다.
셋째로, "그 날을 기다리며"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서로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에 힘쓰는 일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24절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할 신앙의 열매 3가지는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상대로 소망은 자기 자신을 상대로, 사랑은 이웃 사람을 상대로 발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것, 영원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항상 있어야 하는 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피차 서로 사랑의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권면하자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어떻게 되어 살 것인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딤후3:1이하)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무절제하고, 배반하고, 쾌락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말세의 징조를 열거하고 있는데,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이고, 기근과 지진 등의 재난이 심하게 될 것이고, 나라와 나라사이에 전쟁을 하고, 서로 미워하고,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종말에 사는 우리들은 그 날을 기다리며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피차 돌보며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2월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랑을 실천하는 계절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모이기를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배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5절"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요즈음의 그리스도인들 여러 가지 이유로 예배하는 일에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성수주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더 길게 이야기하면 잔소리가 될 것 같아서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제직들만이라도 성수주일합시다. 항존직 중에도 아직 주일날 가게 문을 열고 장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주일성수하십시다.
"그 날을 기다리며" 사는 삶을 "종말론적인 삶" 이라고 합니다. 종말론적 인 삶이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정신을 차리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이, 오늘이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면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 날을 기다리며 믿음을 온전히 지키며, 소망을 굳게 잡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모이기에 힘쓰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서, 경건하게 이 대강절을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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