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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자랑 십자가 (갈 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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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중 오늘 매우 이상한 기분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짐작한다.

많은 교회가 오늘을 부활주일로 지키는데 어찌하여 우리 교회만은 그렇게 하지를 않는가하여 의아해 하실 줄 믿는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 나도 그렇게 하겠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이날은 무슨날 저날은 무슨날 하면서 날들을 지키는데 매우 익숙해 졌다.

그래서 그 날이 아니면 뭔가 큰일이라도 발생하는 것터럼 야단들이다.

오늘이라는 이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정말 내 속에서 살아 계시는가 아니 겠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들이 이렇게 날에 대하여 관심이 많게 되었는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이 왜 이날을 주일이라고 하시는지 아시는가 주님께서 바로 이날에 부활을 하셨기에 일년 52 주 이 날을 주일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날 즉 주일에는 언제나 주님의 부활이 확이되어 져야 하는것이다.

52 주가 다 부활의 날인 것이다.

하루만의 부활을 중시하지 말고 우리들의 전체적인 삶 속에 주님의 부활의 기쁨이 늘 넘쳐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남달리 한 주를 물린 것이였다.

또 하나는 2 천년전 그러니 첫 번의 부활주일이 양력으로 4월 7일이었음을 에릭 사우어란 신학자가 밝혔다.

4월 7일이 주일이 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4월 7일이 훨신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바로 알기 위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자 한다.

부활도 귀중하지만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더 자랑을 했었다.

14절에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노라"고 했었다." 1,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나의 자랑은 십자가 박엔 없다고 했던 것일까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하나님의 사랑이 다 답겨 있엇기 때문이었다.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표시로 아들 예수를 주셨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주시었는가 요3;16절이 있기 전에 14절에 이렇게 말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했다.

들려야 한다는 말이 무었을 의미 하는가 모세가 뱀을 어디에 들었는가 장대에 달았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장대인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주신바 되었다는 말인 것이다.

어떤 분은 이렇게 이유를 단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지 아니했더라면 십자가는 없어도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에덴의 선악과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였던 것이다.

물론 십자가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다.

여러분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언제 느껴 보는가 결혼해서 자식새끼 낳아 길러보면서 ...

그렇다고 부모의 사랑을 다 알 수 있는가 부모의 사랑을 다 알기는커녕 점점 날이 가면서 부모님들의 사랑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다는 것만을 느낄뿐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향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시면 아담이 알아 듣고 그 말을 이해했을까 부모가 자식낳아 기르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 어린 것이 알아 들을 수 있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 내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대 독생자 외 아들을 십자가에 달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롬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하셨다.

우리는 이 십자가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것이다.

십자가를 볼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볼 줄 안다는 것이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이는가 2,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을 절반이나 기록한 사람이다.

그런 그의 핵심적인 사상이 무었이었을까 6;14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 라고 했다.

사도 바울이 옥에 같이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기도하고 죽을 험난한 경험을 많이한 이유는 십자가 전하는 것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의 메세지는 예수의 생애를 닮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에수를 닮아야 하는 일이 기독교의 교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기독교의 핵심 메세지는 아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보라.

그들의 전한 메세지는 예수를 닮으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었다.

주님의 최후의 만찬을 보라.

눅22;19-20절에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또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는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다.

그렇다.

보혈 ! 십자가의 피 ! 이것이 복음의 핵심 주제이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1;5절에 "또 충성되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에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해방하시고" 여기서 주의 재림을 말하면서 중요하게 강조함이 십자가에 죽으신 죽음과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흘리신 피를 강조하고 있다.

십자가가 곧 그리스도의 보혈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 주님께서 성찬식을 베푸셨을 때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해서 주님을 기념하라고 하셨다.

영원히 기념되어야 할 기념이 무었인가 떡과 포도주였다.

떡과 포도주는 곧 갈보리의 주님의 십자가였던 것이다.

3,십자가는 구원의 근거이다.

 사도 바울이 왜 십자가만 자랑을 했을까 사도 바울이 왜 십자가만을 설교 했을까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6;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 모두가 이렇게 죄에서 해방되고 구원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이다.

갈3;1절에는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느냐 십자가를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더 십자가만을 자랑했던 것이다.

만일인데 예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했던들 그 누구도 구원을 얻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들이 전해야할 복음도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십자가를 바라 보시라.

신실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 보신 적이 계신가 갈보리의 세게의 십자가 중 가운데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 보신적이 계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운데 십자가상에서 무었을 하셨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신 경험이 계신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왜 인간의 옷을 입으셨는지를...

왜 그분이 죽으셔야 했는지를 ...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는지를...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분은 하늘에서 죽으시기 위하여 오시었기 때문이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왜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어야 했는가 14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과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죄의 삯은 사망이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도 없느니라"고 하시었다.

구약의 성도는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짐승을 잡아 짐승의 피를 흘리게 했었다. 소, 송아지, 양, 비들기, 참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급할 때 애급의 장자들은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장자는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앗다.

그것은 문설주에 피를 발랐기 때문이었다.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양의 피를 ...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무어라고 소개를 했는가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고 했던 것이다.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오시었던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믿음이 구원이시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가를 묻지 않는다.

여러분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묻지 않는다.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는가를 묻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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