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인생 최대의 문제 (눅 18:18-23)

첨부 1


얼마전에 지존파라 불리는 흉악범들과 사형수들 15명의 사형집행이 있었다는 것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사형 언도후 3-6개월 혹은 1년후에 집행이 되는 것이 관행이였으나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보이고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일찍 집행하였다 합니다. 경찰 신문에 보니 그 중 6명이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는데 아마도 인생 최대 문제인 죽음을 목전에 두고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에 감명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간성 상실, 가치관 상실, 도덕성이 상실되었다고 우리는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인간성, 가치관, 도덕성이 상실하였다 하여도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육신이 죽은 후의 내세는 있을까" "하나님은 계실까" "영생은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청년은 부자요 권력을 지닌 관원이요, 어릴적부터 율법의 가르침 아래서 잘 양육된 사람이였습니다. 즉,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요 세상적인 기준에 볼 때 아무 부족함이 없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의 문제를 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계명을 알고 있느냐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하시자 "내가 어려서 부터 다 지키었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부자관원에게 주님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쫒으라"고 권하셨고 이에 청년은 수심이 가득찬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1. 청년은 영생을 믿음으로서 얻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얻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청년이 영생을 얻는 길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주여,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입니까"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냐고 질문하는 것을 볼 때 동기가 잘못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계명을 지키고, 적당히 십일조 하고, 적당히 봉사는 할 수 있지만 재산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거기까지는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구원은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했으니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됩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당시의 교계는 부패하고 타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 고행도 하고, 금식도 하고, 성당의 대리석 바닥을 무릎으로 기어다녔으며 또한 빌라도 법정의 33계단을 무릎에 피가 철철 흐르도록 오르내렸지만 구원의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기쁨이 없고 죄악으로 인해 점점 마음만 답답해져 왔습니다. 그러던 중 로마서 주석을 쓰다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느니라" 란 말씀에 감동을 받아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에 대고 구원은 고행이나 수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며 억만금을 바친다
하여도, 몸을 가시로 찌르고 십자가를 지고 다닌다 할지라도 오직 이는 구원의 방법이 아니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라고 선포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거룩한 모임(HOLY CLUB)을 만들어 그 모임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 그가 북미대륙에 선교사로 갔다 영국으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배의 밑창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찬송소리에 이끌려 내려가 보니 함께 배를 탄 모라비안 교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죽음의 공포는 없고 평화만 가득차 있었습니다. 의아심에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묻자 그중 한 교도가 "당신은 죽음이 두렵습니까"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제약된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죽으면 시간을 벗어나 영생을 얻고 영생의 나라에 살게 되니 무엇이 두렵습니까
이 말을 들은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괴로왔습니다. '거룩한 모임'을 갖고 주의 일을 하는 목사인 자기 자신에게는 두려움이 오는데 저 사람들 속에서 과연 무엇이 있기에 평화로울 수 있는가 라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사회자가 읽던 로마서 서문 중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느니라"는 구절에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 짐을 느끼며 성령의 체험과 함께 구원의 확신을 받았다고 그의 일기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나의 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며 은총인 것입니다.

2. 청년은 영생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청년은 왜 근심하고 고민했습니까 청년은 영생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영생의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많은 성도들도 영생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관심에서 그치면 안됩니다. 영생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최대 목적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권세, 지식, 건강 아니면 명예입니까 다 중요한 것이지만 현대인의 비극은 이러한 것들을 쫒는데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현세에만 잘살면 된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영생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한 부자가 소출이 풍성하자 생각하기를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고 생각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내가 네 영혼을 도로 데려가면 네가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부자는 매일 기름진 음식에 비단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즐기며 살다 죽자 지옥에 떨어졌고 거지 나사로는 헌데를 핥으며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으로 연명하였지만 죽어 아브라함 품에 안겼습니다. 이를 본 지옥의 부자는 거지 나사로에게 물 한방울 얻기를 청하고 나사로를 부자가 살았던 집에 보내어 부자의 가족과 형제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증거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쾌락을 즐기며 먹고 허랑방탕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눈 앞의 생에 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3. 청년에게는 버리고 따르는 결단이 없습니다.
믿음의 길은 버리고 따르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청년에게 "네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모든 세상의 것을 버리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쫒았고, 모세는 애굽의 왕의 자리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한 길을 따라 갔는데 이것이 신앙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데 있어 얽어매는 모든 것을 풀어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영생의 길을 따르기 위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오셨습니까 세상과 영생, 두가지 모두를 얻을 수 없습니다. 모세가 애굽왕의 자리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뜻, 두가지 모두를 이룰 수 없었듯이 여러분도 기도함으로 결단한 후에 영생의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되면 그 어떠한 것도 과감히 놓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청년에게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너희가 진실로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죄악에 얽매여 있다면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버리고 따르는 결단이 이 젊은 청년에게 없었기에 고민하고 번민하다가 주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온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영생을 얻고 싶으냐"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세상의 것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담대한 결단으로 이 땅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가지고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