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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잔치는 벌어졌는데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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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 생애중에 애경사를 겸험하게 된다.가정마다 흔히 경험하는 잔치는 백일잔치, 돐잔치, 결혼잔치, 회갑잔치등 다양한 경사스러운 기쁨을 겸험하였을 것이다. 이런때면 이웃을 초대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며 즐거워한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요 즐거움과 보람일것이다.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나라를 잔치집에 비유하고 있다. 신구약에 잔치하는 비유나 교훈이 많이 나타나 있고 예수님께서 잔치에 대해 많이 말씀하고 있다.
잔치를 치룬 경험에 의하면 그날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기쁨이 넘쳐나는 것이 잔치집의 특징이다. 또한 먹을 것이 풍성하여 이때는 누구든지 오면 먹을 것이 있어 배를 불릴수 있어 좋다. "생일 날 먹자고 일해 굶는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잔치 때는 혼자하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서로 협조하며 기쁨을 나누는데 많은 이웃을 초청한다. 우리는 초청받을 때도 있고 초청할때도 있는데 잔치날 손님 없이 혼자 즐기는 기쁨은 의미가 없다. 서로 축하하며 축하받으며 음식을 나누며 즐기는 것이 우리의 미풍양속이 되어 있다.

1. 잔치를 배설한 주인
본문은 "큰 잔치를 할새"라고 했고, 마22:1-에는 "어떤 임금이 그 아들의 혼인잔치로" 비유하고 있다. 결혼은 이륜지 대사라 신성하게 여겼다. 오늘의 결혼식장은 초청자도 초청을 받은자도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다. 청접장을 "고지서"라 표현할 정도이고 보면 큰 부담이 될것이다.
오늘의 사회 일각에서는 혼수문제로 결혼전부터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본다. 결혼식 날은 두사람의 결합으로 우리사회에 새 가정이 세워짐을 축하하며 기뻐하는 날인데 그런데 먹는 일, 나볼일 끝나면 가버리는 하객들의 모습은 보기 않좋은 모습도 많다.
성경에서 보면 아버지의 품을 떠나 허랑바탕하여 처참한 인생이 되어버린 무단가출 자식으로 노심초사하던 아버지는 그 자식이 돌아올때 과거의 잘못 된 모습을 꾸짖기 보다 살아서 돌아온 일로만 만족하여 이웃을 불러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기도 하며 자녀를 잃어버려 미아가 되었을때 또는 유괴를 당하였을때 부모의 간장이 녹고 아픔에서 울다가 그 미아를 찾았을때의 부모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잔치를 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베풀어진 잔치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에 베푸신 잔치이다. 아들의 결혼식이요 아버지의 품을 멀리 떠나던 탕자가 돌아온 기쁨의 잔치요 또한 잃어버린 미아를 천신만고 끝어 찾은 기쁨의 잔치인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탕자같은 인생,미아같은 인생을 찾으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 잔치는 참 좋으신 잔치이다. 인류구원을 위한 거룩한 잔치에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큰 잔치를 베푸신 하나님은 온 인류를 초대하고 계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 오라는 것이다. 쉬게 해주리라.
주리고 목마른 자들 오라는 것이다. 생수가 넘치게 해 주리라.
주홍보다 진홍보다 더 붉은 죄를 짊어진자 오라. 자유케 해 주리라.
질병의 무거운 짐진자 오라. 내가 치료해 주리라.
즉음의 공포와 불안에 떠는 자는 오라. 내가 평안을 주리라.
오늘처럼 삭막한 세상에 살아가며 이웃도 모르고 친처고 모르고 살아가는 시대에 오늘 우리 인생을 초대하시는 주의 음성에 마음을 기울여 초청에 응하여 보라. 행복할것이다.

2. 초청 받은자
유대나라 12대왕 히스기야 때 저가 왕위에 오르자 하나님께 범죄하고 성전문을 닫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기에 이방 강대국에 침노를 당하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가 떠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잔치를 배설하고 단에서 부엘세바까지 보발군을 보내어 오라고 초청을 하였다.
때에 국민들의 반응은 조롱하고 비웃는 자도 있었고, 스스로 겸비하여 모여오기로 하였고, 크게 감동을 받아서 모여 오기로 하였다. 노아 당시 방주를 만들어 놓고 방주로 초청하였으나 노아의 가족외에는 한사람도 들어오지 못했다. 본문에서 주인의 큰 잔치에 초청을 하였건만 저들은 저들은 같이 사양했고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봐야 하겠다. 나는 소를 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용서하도록 하라.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고 거절하였다.초대에 불응한 것이다. 초청에 거절은 성의에 대한 거절이요, 주인의 정성을 무시한 것이다. 정성으로 처청에 응하였을때 거절을 당해보라. 그 모욕감, 배신감에 얼마나 섭섭하며 괴롭겠는가 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복된 자이다. 어린양 예수의 혼인잔치에 참여치 못하는 자는 최대의 불행이다. 우리는 주의 영광스러운 잔치에 참여할수 잇는 복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3. 종들의 역할
초청자와 초청 받은자의 사이에는 전달자가 필요하다. 초청하시는 주인의 뜻을 바로 알고 잔치의 내용을 바로알아 초청자에게 바로 전달하여야 할 사람은 종들이다. 구약의 선지자는 바로 그 전달자들이었다.
엘리사 시대에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 있을때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어린 소녀가 주모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더면 좋겠나이다.저가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이 일로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를 찾아가 고침을 받았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였음으로 사마리아 성에는 자녀까지 잡아먹는 비극이 일어났다. 때에 성문밖에서 얻어 먹고 살던 4명의 문둥이가 아람군대가 철수한 그 진지에 가서 그 많은 먹을 것을 발건하고 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 날 아름다운 소식에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치리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하며 저 양식의 소식을 전하므로 사마리아 성이 굶주림의 죽임에서 살아나게 되었다.
주인은 초청 받은 자들의 거절로 심히 노하여서 종들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아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하셨다. 자기들이 사업과 직장과 돈벌이에 분주하다고 핑게하여 초청을 거절하던 사람들에 비하여 시내거리 골목에 있는 불구인생 소외된 저 인생들은 초청에 잘 응해 주었다. 그러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주인은 그 빈자리를 못 보시는 분이다.
빈 자리!!!!!!!!
있어야 할 사람이 있어서 비어 있을때 주인의 마음은 괴로웠다. 잔치날 명절때 가족중 자리에 있어야 할 식구가 빠져 비어 있으면 얼마나 생각하게 되는가.
주일 날 교회 성도들이 앉아야 할 자리에 사람이 없어 비어 있을때 목사의 심정은 아프다. 자기의 자리를 비우지 말자. 주인은 종들에게 다시 명령을 하셨다. "길과 개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것이 잔치를 베푸신 주인의 뜻이요 심정이요 소원하는 일이다.
종들이 이 주인의 뜻을 깊이 깨닫고 자리를 채우는 일을 하여야 한다.1) 잔치는 베풀어 졌는데, 종들이 할 일을 바로 열심히 하여야 한다. 종은 주인의 뜻을 알아야 한다. 오찬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신다.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며 유괴되어 잃어버린 자녀를 기다리고 계시다. 언제라도 돌아오면 먹이려고 오찬을 준비하고 계시다.
2) 빈자리를 보고 못견뎌 하신다. 빈자리를 보실때마다 그 자리에 와 앉아야 할 자녀를 생각하며 기다리고 계시다. 교회에 등록하고도 학습세례를 받고도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도 거룩한 예배시간에 돈벌이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삶의 분주함 때문에 핑계하며 자리를 비우는 자들, 주님의 가슴을 태우는 불충한 자들이다. 종들은 빨리가서 데려다가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3)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채워야 만족하실 분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을 강권하여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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