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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법과 사랑의 딜레마 (요 0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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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흔한 농담입니다."2+2의 답이 뭐냐고 물었을 때, 수학 이론가는 "3과 5 사이 어디 쯤에 있을 수 밖에 없 습니다." 고 대답할 것이고,계리사는 " 4 입니다."하고 대뜸 대답할 것이고,변호사는 문을 닫고 아무도 엿듣는이가 없음 을 확인한 뒤에 " 답을 어떻게 만들어 드릴까요"하고 말할 것입니다.이 이야기는 법과 그 실천은 거리가 먼 것을 풍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보다 인간을 더 중요시하셨고 그에 반하 여 유대교 지도자들은 인간보다 율법을 더 우선으로 생각하 였습니다.예수님은 인간이 율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율 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막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 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본문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죄를 사하신 이야기는 예 수께서 세상을 율법에 따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을 사랑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 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 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 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이처럼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 려 오셨으며(마5:17),율법을 완성하는 근본 정신은 사랑임을 천명(闡明)하고 있습니다.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바리새인의 소위 준법생활에 대한 예수님의 공격은 "(마23: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 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는 것이었고 "(눅11:42)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 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 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는 것이었습니다.정의(正義)와 사랑이 법정신(法精神)의 초석(礎 石)임을 밝힌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 재인 예수를 어떻게 해서든지 체포할 충분한 증거를 얻고자 올무를 놓았습니다.그들의 올무는 다름아닌 정치적,종교적 함정이 깔린 간교한 음모에서 비롯된 바,예수를 율법의 파괴 자요,하나님의 왕권을 침해하는 죄인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이 었습니다.이러한 음모가 구체화된 것이 바로 간음하다 현장 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께 끌고 온 일입니다.유대 율법의 집성(集成)인 미슈나(Mishnah)는 간음에 대한 형벌은 교살 (絞殺)이라고 정해져 있으며 그 교살의 방법까지도 규정하고 있습니다."남자는 분뇨 속에서 무릎까지 흠뻑 둘러싸고 두 장의 수건이 부드러운 수건을 위로 거친 것을 밑으로 해서 그 남자의 목에 두른다(형벌은 하나님의 형벌인 고로 흔적이 남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 다음에 두 사람의 사나이가 각각 반대 방향으로 그 남자가 죽을 때까지 잡아다니게 된 다." 간음한 죄는 가장 더러운 죄라 하여 아주 더럽게 죽였 던 것입니다.또 한 가지 성경에 기록된 간음한 죄에 대한 벌 은 온 동네 사람들이 동구밖에 나가서 돌을 던져 죽이는 것 입니다.그야말로 돌무더기 속에 집어넣는 참혹한 극형으로 아이들까지 동원하여 동네 사람 전체가 참가하는 처형 방법 입니다.그렇게 함으로서 그 마을에서는 다시 그와 같은 죄가 없도록,즉 악을 완전히 제거하자는 데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범죄는 첫째가 우상숭배입니다.십계명 가운 데 가장 처음 나오는 계명이 우상숭배를 절대 금하라는 것 입니다.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 니라 (출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 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 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 와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 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상숭배로 인해 따르는 모든 행위가 더럽기 때문입니 다.우상숭배에는 항상 음란한 행위가 뒤따랐던 것입니다.둘 째는 살인죄입니다.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은 존엄한 것입니다.그러므로 인권을 침해하거나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세 째는 간음죄입니다.이 세 가지 범죄는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절대로 없도록 하자는 것을 하나님의 법 정신으로 여겼던것 입니다. 간음(姦淫)이란 남녀 간의 불법 성교를 뜻하는 것입 니다.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주변 이방인들의 우상숭배하는 국 가들은 다산(多産) 종교에 의해 성적(性的) 방종(放縱)을 널 리 허용했으며 심지어 제사 의식을 통하여 이를 장려하기까 지 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하여 간음을 철저 히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한편 예수께서는 간음죄의 행위 를 더욱 확대시켜 마음으로 범하는 음욕(淫慾)까지도 간음죄 로 정죄하셨습니다.

"(마5: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 나 (마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 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같은 개념은 다시금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도 적 용되는데, 곧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우 상숭배는 하나님에 대한 영적(靈的) 간음인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렘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 라." 예수께서는 음행(淫行)한 연고(緣故)외에는 이혼을 허락 하지 아니하십니다.다시말해 남편이나 여자가 간음했을 때만 이 이혼이 가능한 데 이는 간음한 사람을 죽은 것으로 간주 하기 때문입니다.

"(마5: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마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 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 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이처럼 간음은 중범죄(重犯罪)로서 율법을 적용시키면 이 간음한 여인을 처형하는데는 사실상 예수님의 동의(同意) 는 필요없는 것이었습니다.

"(신22:21)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 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신22:22) 남 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 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신22:23) 처 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중 에서 만나 통간하면 (신22: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 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자만을 예수께로 끌고 왔 습니다.그들이 노리는 함정은 예수가 여인을 용서하게 된다 면 결과적으로 율법의 권위와 가치를 무시하게 되거나, 여인 에게 죽음을 선고함으로서 자신의 사랑의 메시지를 포기하 게 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그뿐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에게 는 원칙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음으로 예수가 만 약 사형을 선고하게 된다면 그것은 로마 총독의 권한 침해 라는 구실로 그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었 습니다.이렇듯 모든 죄인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힘쓰신 예수님이시지만,유대교 지도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고 갖은 음모와 계책을 감행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눈은 어 두움에 가리워져 있었으므로 진리에 대한 무지한 영적 소경 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법대로 하자면 간음한 여인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하며, 또한 사형을 선고하게 되면 로마법을 침해하게 되어 고발당 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그 여인을 사랑으로 용서하라고 하 면 유대의 율법을 위배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은 무력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법과 사랑의 딜레마 (dilemma)'에 몰아넣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딜레마를 두 차레에 걸친 초월 적인 지혜의 행위와 말씀으로 간단하게 해결하신 것이었습 니다.예수님의 판결은 죄없는 자가 돌로 쳐죽이라는 법의 집 행입니다.모세의 율법에는 증인이 먼저 죄인에게 손을 대어 그를 죽게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13:9) 너는 용서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신13:10)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 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한 자니 너는 돌 로 쳐죽이라." "(신17:7) 이런 자를 죽임에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 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법에 따라 처형을 하되 처형하는 자 스스로가 죄없는 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 스스로를 심판하는 일 없이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마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그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돌을 던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법 정신을 생각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내가 돌을 던져 간음한 여인을 죽이라는 심판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돌을 던지므로 나 로 하여금 그와 같은 범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경계입 니다.

한 사형수가 단두대로 끌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 대신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람이었습니다.'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형을 피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드디어 단두대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단두대에 올라가려는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리 속에 서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사형당하기 전에 할 말이 있으니 잠깐만이라도 임금님을 뵙게 해 줄 수 없겠소"이제 곧 죽을 사람의 마지막 소원인지라 알현(謁見) 이 허락되었습니다.임금님 앞에 선 그 죄수는 다짜고짜 품에 서 금덩어리 하나를 꺼내 그 앞으로 내밀며 말했습니다."이 금덩이는 보통 금덩이가 아니라 죄없는 사람이 심으면 싹이 나서 나중에는 금덩어리 열매가 열리는 진귀한 것입니다.그 런데 저는 이미 죄인이므로 심어도 소용이 없고,또 이제 곧 죽어야 하니까 심을 수도 없습니다.그래서 이것을 죄 없으신 임금님께 바치고 세상을 떠나려 하는 것입니다."어리둥절하 게 금덩이를 받아들은 임금이 생각했습니다.'나도 죄가 있으 니 심어도 싹이 안 나올거야,또 만일 심었다가 싹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백성들에게 임금님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당 할 것이 아닌가'임금은 얼른 금덩이를 옆 자리의 대신에게 넘겨주며 심어 보라고 하였습니다.그러나 그 대신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가 싶더니 옆에 있는 다른 대신에게 또 다 시 얼른 넘겨 주었습니다.그렇게 해서 그 금덩이는 자꾸만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으로 밀려갔습니다.결국엔 누구 하나 심으려는 자 없이 핑계만이 무성해졌습니다.이 광경을 본 죄 수는 "이 중에도 죄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죽이려 하십니까"하면서 자신의 무죄함을 거듭 호소 했습니다.그의 호소에 임금 이하 모든 대신들의 얼굴은 발갛 게 달아올랐고,결국 이 죽을 죄인은 사형을 면하게 되었습니 다.

본문에 보면,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 돌을 던지기 전 에 자신을 돌아볼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한 사람씩 한 사 람씩 다 흩어졌습니다.

"(요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 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 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이 때,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 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 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 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 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간음한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 밖에는 없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돌을 던지지 않으 셨습니다.그녀를 정죄치 않으셨습니다.어떤 면에서 이같은 예수님의 행위는 자신을 죄인으로 동일시(Identification) 한 것입니다.나는 의롭다고 의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 쌍히 여기시고 죄인을 사랑하셨으므로 스스로 죄인의 위치 에 앉으신 것입니다.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를 사랑할 수 없 습니다.같이 낮아져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사랑은 감상적이 거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죄인을 사랑하려면 나 도 죄인과 동일시 되어야 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 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이어 "가서 다시는 죄를 범 치 말라."(11절)는 전제하에 사죄를 선언하시고 있습니다.이 는 예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임을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 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나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시는 것이 아 니라 죄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 기 위하여 오시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때 문에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와 죄의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 들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 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 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 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 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간음한 여인을 죽음의 깊은 어두움 가운데서 예수 앞에 이르게 하였으나, 율법의 완성이시며 사랑의 실체 이시고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새로운 생명과 빛으로 축복하셨습니다.십자가는 법과 사랑의 딜레마를 극복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 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 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 전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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