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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들레헴에 가봅시다 (사 02:2-4, 눅 02:8-20)

첨부 1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탄생하신 성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平康)이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흔히 기쁜 성탄이라고 말하며 즐거워하지만, 이 성탄절의 기쁨이 무엇이며,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특히 IMF 시대에 맞는 성탄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그 뜻을 올바로 알기 위하여 그 옛날 첫 번 성탄으로 돌아가 들녘에서 양떼를 지키다가 천사의 전하여 준 소식을 들은 목자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 한 마구간에 탄생하신 아기를 찾아보고 얻은 것은 무엇이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도 오늘 그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찾아가 그들이 얻은 것, 그들이 발견한 것들을 함께 얻고 함께 발견하여야 하겠습니다. 베들레헴에 가보지 아니하고는 우리가 진정한 기쁨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즈음 성지순례들을 많이 합니다만 성지 베들레헴이 아니라 2천년 전 유다의 보잘 것 없는 한 고을인 베들레헴에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장사꾼들과 화려한 옷 입은 순례자들로 붐비는 베들레헴이 아니라, 로마 황제의 명에 의해 마지못해 끌려온 백성들의 응어리진 탄식 소리가 들리는 베들레헴에 가 보자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는 천군 천사의 합창이 울려 퍼진 유다의 어느 들녘에 우리도 양을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 때 거기에 있던 목자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가 보자는 것입니다.
<1>
먼저 목자들이 베들레헴 말구유를 찾았을 때 거기 누워 계신 아기 예수를 뵈옵고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냄새나는 마구간이요, 요셉과 마리아는 자기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바로 그 아기가 틀림없이 천사가 말한 메시야임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믿음으로 베들레헴을 찾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5절에 보면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루어진 일을 보자"라고 말하면서 빨리 갔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목자들은 천사가 알려준 사실이 정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간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보려고 간 것입니다. 두 가지 태도는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심하는 태도요, 다른 하나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천사가 전하여 준 놀라운 소식을 저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은 것입니다. 베들레헴을 향한 행진은 조금도 의심치 아니한 믿음의 행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베들레헴에 왔다 할지라도 거기 너무 초라한 마구간과 너무 평범한 사람들의 흔히 있을 수 있는 한 아기의 출생을 보고 의심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놔두고 왜 하필 이런 보잘 것 없는 촌구석에서 태어나셨을까 온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가 말구유에 태어나다니'
이런 의심들이 뭉게뭉게 구름일 듯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전하는 소리를 듣고 어쩌면 큰 기대를 걸고 왔을는지도 모릅니다. '그 아기의 머리에서는 광채가 날 것이다. 부모들은 천사와 같을 것이다. 천사들이 들러서 지킬는지도 모른다.' 그랬다가 너무나 초라한 광경에 맥이 빠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전혀 그런 의심은 없이 오직 확신을 가지고 찾아와서 기쁨으로 아기 예수를 뵈옵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고 하였습니다. 초라한 겉모양에 미혹 당하지 아니하고 그 아기를 메시야로 믿은 목자들의 신앙은 참으로 훌륭한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탄을 축하하면서 떠들썩하지만 그리고 아기 예수가 나신 베들레헴에 가보자고 하지만, 믿음이 없이는 그 모든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베들레헴에 가보자고 할 때 거기서 굉장한 사건을 기대하고 간다면 우리는 곧 실망할 것입니다. 화려한 것, 큰 것, 굉장한 것만을 좋아하는 현대인인 우리가 막상 그 옛날 목자들과 함께 그 초라한 베들레헴 마구간에 갔다면 우리는 그 너무나도 초라함에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기가 막혀 실망을 안고 돌아섰을는지 모릅니다.
말구유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이 문명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명에 세뇌된 현대인들의 편견과 망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텔과 거리에 화려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추리와 번쩍이는 등불 아래서 베풀어지는 풍요로운 선남선녀들의 파티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 옛날 베들레헴으로 가보자는 것은 현대 문명에 찌들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다 쏟아 버리고, 초라하게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자 함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그것은 이미 승리하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겸손이 필요합니다. 초라한 아기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뵈올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탄을 맞이하면서 이 믿음을 얻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베들레헴 가 보자고 하는 것은, 물질 문명을 좇아 함께 화려함과 거대함을 추구해온 교회, 그래서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무력화된 교회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참된 생명을 보고자 함에서입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에 가 보고 거기에 누우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다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성탄에 베들레헴으로 가보자는 것은, 거기 기적(奇蹟)도 없고, 광채(光彩)도 없으며, 영광도 없이 초라하게 조용히 누워 계신 아기 예수를 뵈옵고자 함입니다. 그의 낮아지심을 뵈오려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의 겸손하심을 본받으려고 가자고 한 것입니다. 기적을 보고 병고침을 받고 풍성한 물질적 축복을 받으려고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동안 겁없이 우리의 삶을 부풀려 왔고, 알맹이는 없이 거품만 잔뜩 부풀은 경제성장의 열매를 즐기면서 한껏 교만했고, 한껏 방자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이 허구의 바벨탑 밑에 비참하게 깔려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허탈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베들레헴으로 내려 가야 하겠습니다. 작은 마을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신 아기를 뵈옵고 그 앞에 우리가 헛된 영광을 추구하며 교만하였던 죄를 자복하고 그가 이 땅에 가져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며, 그의 겸손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번 성탄은, 우리가 기뻐하며 축제로 맞이하는 성탄이 아닌 회개하며 자기를 돌아보는 성탄이 되게 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2>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뵈옵고 기뻐하면서 천사가 그 아기에 대하여 들려준 것을 그대로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은 동방박사들과 같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마리아의 가슴에 길이 간직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천사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하였다는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목자들이 들려준 이 말씀은 마리아에게는 더 없는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자기가 낳은 아기가 그리스도임을 재차 확인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자들은 그 아기 예수가 메시야임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증언한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길이 남을 귀한 선물을 전한 것입니다.
오늘 이 성탄의 아침에 베들레헴에 가보자는 것은 우리가 거기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뵈옵고, 그 앞에 나아가 통곡하며 우리 자신을 들어내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림으로 그의 탄생을 축하드릴 입장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엄청난 빚더미를 안게 된 채무국(債務國)의 가난뱅이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탕자와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것 펑펑거리고 다 써버린 다음 갑자기 닥쳐온 흉년으로 인하여 돼지 우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탕자와 같은 자리에서 성탄을 맞이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실상 자기의 비참함 때문에 낙담이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탕자가 그 비참한 자리에서 아버지 집을 기억하고 그리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의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베들레헴 가난한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잃어버린 비참한 우리 자신들이지만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어내 그 아기 예수님 앞에 나아갑시다. 탕자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아버지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깨어지고 상처받은 모습으로 베들레헴에 찾아가 그 아기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분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헛된 욕망을 좇아 마음의 평정을 잃고 방황하던 삶에서 돌이켜 우리가 진정으로 기다리고 사모했어야 할 메시야 앞에 다시 나가 평정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경배를 드린다면, 그 아기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것처럼 기뻐하실 것입니다.
통회하며 자복하는 상처받은 심령과 말구유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이야말로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라는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것이 오늘 이 성탄의 아침에 주님께 드릴 귀한 선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에 보면, 사랑하는 두 남녀가 결혼을 했는데, 이들은 몹시도 가난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오자 사랑하는 남편에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선물을 해야 할텐데 선물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의 물결치는 금발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빗을 사주기로 했습니다. 그는 차고 있던 시계를 전당잡혀 빗을 샀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선물로 그가 차고 있는 시계의 낡은 줄 대신 새 시계줄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자기의 아름다운 머리를 짤라 팔아서 그 돈으로 시계줄을 샀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들은 서로 선물을 교환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선물은 빗과 시계줄이었는데, 찰 시계가 없고 빗을 머리가 없으니 그 선물들은 쓸모 없는 것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물의 양이 얼마나 많으냐 얼마나 좋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 사랑하는 마음, 사모하는 마음, 진정으로 통회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가보자고 하는 것은 아기 예수님께 조용히 드려진 목자들의 뜨거운 신앙고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성탄의 아침에 여러분에게는 아기 예수님께 바칠 뜨거운 마음,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이제까지 헛된 욕망을 좇았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주님께로 돌아가 이제는 주님만을 섬기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겠노라는 각오가 준비되었습니까 준비되었으면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님께 겸손히 엎드려 경배를 드립시다.
<3>
끝으로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보고들은 그 모든 일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며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목자들은 전과 같이 다시 양치는 목자로 돌아갔지만, 베들레헴 말구유를 다녀간 후 저들의 삶은 소망으로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사모하던 메시야가 드디어 탄생하셨으니 이제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답답하고 안타깝던 저들의 마음속에 소망이 자리잡게 되므로 해서 이제는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비록 저들이 살아서 그 소망의 성취를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입술에서 찬송은 끊어지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저들의 겉생활은 베들레헴에 가기 전이나 갔다 온 후에나 달라진 것이 없지만, 저들의 마음만은 크게 달라진 것입니다. 어둠으로 꽉 차 있던 마음속에 빛이 비취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평과 한숨이 변하여 찬송이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성탄에 베들레헴에 가 보자는 것은 우리도 이와 같은 소망을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절망을 느낍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제대로 되는 것을 볼 수 없고, 희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경제학자를 불러다가 희망을 이야기 해보라고 해도 결국 그들이 전하여 주는 말은 더욱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할뿐입니다. 과학자를 불러다가 미래의 희망을 기대해 보지만 그 역시 신통한 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서도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희망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탄에 다시 베들레헴에 가 보자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임마누엘이신 아기 예수님을 뵈올 것이며, 그가 우리를 절망 가운데서 구원하실 구세주이심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 부르며 다시 우리의 삶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거기에 아무 말 없이 누워 계시지만 우리의 모든 절망을 거두어 가시고 우리 속에 새 생명을 주실 하늘의 씨앗으로 거기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씨앗에서 미래의 풍성한 열매를 보듯이 아기 예수 속에서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오늘 결코 절망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님을 뵈옵는다고 당장 우리의 고달픈 삶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경제 형편이 호전되고 빚이 당장 청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없었던 일자리가 생겨나고 경제가 활성화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당장에 우리의 병이 치료되고 건강이 넘쳐흐르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옛날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뵈올 때 하나님이 이 땅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시려고 그 역사를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처럼, 오늘 이 절망의 땅에 지금도 아기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베들레헴 순례는 우리에게 매우 값진 성탄 선물이 될 것입니다.
성탄은 해마다 우리를 찾아옵니다. 우리는 그 때마다 새롭게 베들레헴으로 빨리 달려가서 아기 예수님을 뵈옵시다. 그의 낮아지심과 겸손을 배우고, 우리를 위하여 모두를 내어 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 전체를 봉헌하며, 그가 주시는 새로운 희망으로 오늘 이 땅에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탕자가 돼지 우리에서 털고 일어나 아버지 집을 향하여 돌아가듯 베들레헴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납시다. 베들레헴은 아기 예수님이 나신 곳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겸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잃었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거기서 얻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싸매주며 낙담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성탄에 베들레헴에 가보고 새 희망을 얻어 이 땅의 어두움과 절망을 걷어내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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