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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생수 (삼하 2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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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은 다윗왕이 이스라엘 병사들을 이끌고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다윗이 아둘람굴에서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는 그의 고향 베들레헴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갈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베들레헴 성문곁에 있는 우물물을 한 번 마셨으면 좋겠다"고 독백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세 용사가 이 말을 듣고 서로 의논한 후 칼을 빼들고 적진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피나는 싸움을 하고 베들레헴 성문 곁의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 다윗왕에게 가져왔습니다.
세 용사는 수많은 적군들과 싸워가며 물을 길어 왔으니 얼마나 많이 피를 흘렸겠습니까 다윗은 피투성이가 된 세 용사의 모습을 보고는 결코 그 물을 마실 수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그 물은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적진속에 들어간 그의 사랑하는 부하들의 피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베들레헴의 물을 찾는 다윗의 모습은 바로 온 인류의 모습입니다.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갈망하는 다윗의 모습에서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물을 찾는 존재입니다. 에덴동산에는 네 강물이 흘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천국의 모습은 생명강이 흐르는 곳입니다. 물이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지옥은 바로 물이 없는 곳입니다. 지구의 2/3가 바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류의 고대문화는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의 최대의 저주는 가뭄과 기근입니다. 사람의 육체는 70-80%가 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흙에 물이 있어야 생물이 사는 것처럼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도 물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은 물을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건강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육체만 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도 물을 마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42편에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육체의 갈증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갈증도 느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돈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교회에 온 것은 영혼의 물을 마시러 온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 우물가에 어떤 여인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네가 먹는 이 물은 먹으면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네게 주는 물은 한 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세상에서 구하는 물이 있고, 예수님이 주시는 물이 있습니다. 인간이 구하는 물은 육신은 만족하게 할 수 있지만 영혼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영혼을 만족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셔야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하시니 생수는 곧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입니다. 그 옛날 다윗왕이 베들레헴 성문옆에 있는 우물물을 사모한 것처럼 오늘 우리 성도들도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인간의 비극은 인간들이 영혼의 물은 마실 생각을 하지 않고 육신의 물만을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왔습니다. 모두가 육신만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이 땅에 모든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갈증이 해결되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2. 다윗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세 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 온 인류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떠서 온 인류에게 마시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하기 위해서 마귀의 진지인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피를 흘리며 싸우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피흘리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마시는 영적인 생명수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 광야에 이르렀을 때 갈증이 심해서 견딜 수 없었는데 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한 나무를 꺾어 물에 넣으니 쓴 물이 단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십자가를 뜻합니다. 인생은 쓰디쓴 마라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십자가의 나무를 던지면 생수로 변화되어 집니다. 여러분의 쓴 인생에도 십자가의 보혈을 묻혀 아름다운 생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성소에서 샘물이 솟아오르는데 이 물이 바다로 들어가면 썩은 물이 깨끗해지고 강으로 들어가면 강 좌우에 나무가 잘 자라고 열매가 많아서 축복이 넘치며 창대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이 나무 열매를 따서 먹으니 고침 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성소에서 흐르는 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생명수이시며 성령의 물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와서 이 성전에서 흐르는 생수가 여러분들의 심령과 영혼을 살찌게 하시고, 여러분들의 갈증이 다 해결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다윗왕은 세 용사가 떠온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다윗이 그 물을 마셔도 좋았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할 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물을 마실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세 용사의 희생의 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고귀한 희생의 물을 여호와 앞에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서 값주고 사신 나의 몸, 내가 받은 구원, 내가 받은 축복, 내가 받은 영광, 내가 받은 승리, 내가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 내가 받은 믿음, 이 고귀한 것들이 다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믿음과 구원을 쉽게 생각합니다. 물론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기까지는 거기에 피흘리신 분이 계십니다. 고귀한 살을 찢어 놓으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주님이 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고귀한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인생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재주, 물질, 믿음, 육체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며 사는 것만이 피로 값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이 구원이 고귀합니다. 내가 받은 이 은혜가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내 것이라고 아무렇게나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얼마든지 그 물을 마실 수 있었고 그 물을 마신다고 해서 시비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나의 인생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시간도, 나의 물질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주고 사신 고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나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 앞에 다 바쳐야 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고귀한 그 피가 헛되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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