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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을 열망하라 (시 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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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설날은 IMF 체제에서 고통스러운 일년 끝에 맞는 명절입니다. 그 어간에 많은 직장인이 일자리를 잃었고 많은 회사도 문을 닫았습니다. 따라서 고향에 아예 갈 수 없거나, 가더라도 예전처럼 소위 '광내고' 갈 처지가 못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를 세상 말로 '쉰 세대'들이 즐겨 부르던 트롯 가요를 선창하면 이심전심 모두들 목멘 소리로 부르던 세월이 있었습니다.
이번 귀향은 '금의환향'보다는 삶에 지치고 패배한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어머니의 품이 되고, '사랑과 위안'의 현장이 되어 자신을 자신답게 살게 하는 늙은 부모와 옛 산과 들, 흙과 물을 머금고 와서 희망의 봄꽃을 피우기를 기대합니다.
Ⅰ. 경건이란 무엇인가
첫째, 경건이란 '하싸드'(chasad)로 '좋다, 친절하다'에서 유래했고, 대체적으로 거룩한 자(삼상 2:9, 시 16:10), 성도(시 31:23, 37:28), 건경한 자(신 33:8, 시 32:6)를 의미했습니다. 또한 유세베이아(&1349;&1373;&1363;&1349;&1346;&1349;&1343;&1345;)로 '경건한, 존경하는, 종교적인'에서 유래했고 의미는 좋은 것을 취하다(롬 13:2), 가지다(계 10:9,10), 받다(갈 3:2), 경배하다(마 15:9), 공경하다(행 16:14, 18:7,13), 경건하다(딤전 4:7,8, 6:3,6) 등이 있습니다.
둘째, 경건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요 9:31). 하나님께서 육적인 존재에서 영적인 존재로 신성이 변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롬 8:5,6). 마치 현악기(가야금, 거문고, 바이올린)나 발현악기(기타)를 연주하기 위해 현(소리내는 줄)을 조율한 정상한 상태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기도 때처럼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요나처럼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 아노라"(욘 1:12)고 고백하고 원래의 사명을 되찾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부합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뜻합니다.
Ⅱ. 왜 경건을 열망해야 하는가
첫째, 경건은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공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바탕하여 마음과 영혼에서 이루어지는 교훈과 훈련으로서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습니다(딤전 4:6-8). 따라서 우리의 삶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리라' 다짐하고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와 경건된 삶을 살아가야 하며, 또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많은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경건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과 더불어 온전한 빛으로 인도해 주시고(시 4:3, 신 33:8), 갖가지 환난에서의 은신처와 보호자가 되어주십니다(시 32:7, 37:28). 또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데 경건한 자를 종으로 사용하시며 이로 인하여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게 하십니다(시 50:5, 시 30:4). 말하자면 온전한 신앙 생활을 영위하는 영성과 범사가 온전케 되는 삶의 풍요가 뒤따르는 복을 받습니다.
둘째, 경건을 열망하면 미래가 열립니다(시 32: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노새나 청개구리처럼 억지를 부리거나 권면을 무시하지 말고 민첩하게 순종하면 우리의 갈 길이 반드시 열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경건된 삶은 오직 성경에 근거한 훈련에 있습니다. 마치 군인이 훈련을 거부한다면 적과 싸워 이길 수 없음같이 성도들은 경건을 열망하는 훈련을 받아야만 승리와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16세기에 영국의 청교도들의 개혁 운동은 '오직 성경과 오직 믿음으로'이었습니다. 성공회로부터 갖은 핍박 끝에 그들은 영국에서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으로 향하여 1620년 12월 11일 메사추세츠 주의 프리모스 항에 상륙, 41명이 생존하여 오늘의 미국을 건설하는 미래가 열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21세기의 비젼을 갖고 전도 활동과 부흥 운동, 그리고 경건된 삶을 열망하여 하나님을 공경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Ⅲ. 무엇을 어떻게 경건할 수 있는가
첫째, 내 허물과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께 자복함으로써 입니다(시 32:5). 누구든지 자기 양심 앞에서 죄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사죄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 앞에서 허물과 죄악을 숨지지 않고 자복하는 자는 사유하심을 받습니다.
진심으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비행과 범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적 태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다 용서하십니다. 또한 자복하고 회개하는 신앙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과 장래를 보장하십니다.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주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둘째,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시 32:6). 만남의 기회는 영적인 사건이므로 내 생애의 최고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 위로 올라가는 열성을 보인 끝에 예수님을 만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눅 19:1-10). 바디메오는 여리고로 지나가시는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을 때 그는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이 지으신 오묘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눅 18:35-43, 막 10:46-52). 여러분은 어떤 믿음으로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하나님의 때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놓치지 않도록 세월을 아껴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엡 5:16).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요 1:29, 36) 생명과 풍요를 주시려고 오셨고 곧 재림하셔서 더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요 10:10, 계 22:12). 그리고 홍수(천재지변)가 나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이 와도 하나님만이 안전 지대이며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시 32:6, 23:1-6).
결 론
하나님께서 진노의 증거들을 다윗에게 보이시면서 그를 준엄하게 시험하실 때, 다윗은 그 길고 무서운 고통을 견딘 후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증거로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적용하고 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유익을 위하여 거울 보듯하여 적용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죄악에서 무상으로 용서받는 데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면 그 것보다 더 무서운 저주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원수 같은 우리에게 죄악을 자복하고 영적 회복의 기회로 삼고 감사의 예배로서 죄과를 용서받는 직통 길을 열어주셨으니 이때를 놓치지 말고 죄악을 다 털어 버리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경건을 더욱 열망합시다. 하나님께 대한 경건은 원자 폭탄보다 더한 강력한 힘을 가졌습니다(고후 10:4). 이 힘(능력)으로 살아있는 뿌리는 새 봄과 함께 새싹을 대지 위에 솟구치게 하듯 해야 하고 또한 경건의 뿌리를 여러 곳에 모종하여 새 봄과 더불어 영적 농사 대풍하시고 포도원에 아홉 가지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역사가 있기를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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